The story of a former idiot who became a top star RAW novel - Chapter (47)
전직 망돌이 탑스타 된 썰 푼다-47화(47/110)
47
‘그 불친절한 의뢰가 이런 식으로 돌아온다니.’
아무리 말해 봤자 믿지 못했을 것이다.
일을 시키는데 뭘 시키는지조차 명확하지 않은.
그야말로 불친절함의 끝판왕인 의뢰였으니까.
오죽하면 의뢰 대상자가 누군지도 몰라 일단 오디션부터 붙고 보자고 생각했었을까.
‘이대로 괜찮은 건가 싶었던 게 바로 얼마 전이었는데.’
의뢰를 완벽히 완료한 지금.
로운의 생각은 완벽하게 바뀌어 있었다.
[흠흠. 사내 녀석이 무슨 그런 낯간지러운 말을 다 하느냐.]“하지만 사실인데요. 덕분에 이렇게 또 다른 기회를 얻게 되기도 했고요. 게다가…….”
[게다가?]“아마 청화 님이, 그리고 의뢰가 없었다면 저는 아마도 이 귀중한 기회를 귀중한지도 모르는 채로 놓쳤을 거예요.”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만약 청화가 없었다면, 그리고 의뢰라는 강제적인 무언가가 없었다면.
‘아마도 계속 과거 생각에만 사로잡혀서 기껏 얻게 된 두 번째 기회도 그냥 날려버리지 않았을까?’
카운트다운이라는 시한폭탄이 있었기에 로운은 강제적으로 활발히 움직이며 과거에 대한 생각을 잊을 수 있었다.
비록 잠깐씩 찾아오는 과거의 편린을 아주 떨쳐 버릴 수는 없다지만…….
‘그래도 나도 이제 조금은 도움이 되는 것 같으니까.’
의뢰뿐만이 아니었다.
청화가, 김 감독이, 그리고 더 나아가 로운이 모르는 불특정 다수까지.
로운이 기울인 노력을 알아주었다. 인정해 주었다.
그저 해야 하는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인데 돌아오는 보상이 몹시 값졌다.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보답받지 못하는 생을 살아온 로운은 알았다.
스스로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꼈던 비참한 과거는 여전히 한구석에서 언제든 그를 잡아먹으려는 것처럼 웅크리고 있다지만.
동시에 로운의 마음 한구석 어딘가에서는 자긍심이라는 이름의 새싹이 조심스레 여린 새싹을 틔워 내고 있었다.
[…너는 정말이지 예전부터 지금까지 아주 한결같구나. 그래. 앞으로 나도 열심히 너를 돕겠느니라!]무슨 생각을 했는지 청화가 퐁퐁 작은 물방울을 뿌리며 로운의 어깨에 달라붙었다.
[기다려 보거라. 내 제물, 아니 영감들에게서 최고의 의뢰를 뜯어 낼 터이니. 안 그래도 보따리 싸 들고 오겠다는 양반들이 한둘이 아닌데 이 몸께서 꼼꼼히 살펴보겠느니라!]“뭐든 좋아요. 열심히 할게요.”
첫 의뢰의 성공.
따지고 보면 이제 간신히 첫발을 내디딘 격일 터.
하지만 동시에 미래를 향한 로운의 용기 어린 첫 발자국이기도 했다.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열심히 해 보자.’
수명이건, 업보 수치건 차근차근하다 보면 언젠가 결실을 맺게 될 터.
미래를 향한 로운의 용기 있는 첫걸음의 시작이었다.
* * *
표절 감독이라는 한줄기 남은 미심쩍은 이슈마저 깔끔하게 가신 귀로.
개봉한 지 한 달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귀로는 그야말로 폭풍의 눈 그 자체였다.
[거짓과 진실, 그 공방의 시작. ‘귀로’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가!]이런 특집 기사까지 나올 정도로 사람들은 모든 상황이 종료된 지금, 오히려 더 관심을 드러냈다.
“그럴만하지. 오죽 드라마틱했어? 몇 년에 걸친 복수야 이게.”
로운보다 더 꼼꼼히 모든 기사와 소식들을 모니터링하는 매니저가 말했다.
픽션보다 더 픽션 같은 실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던 것.
“김 감독이 조금만 더 용기 내서 아예 증거들을 풀어 버렸으면 지금보다 더 화제였을 텐데.”
매니저가 못내 아쉬운 듯 중얼거렸지만 로운은 어깨만 으쓱했다.
“이미 밝혀진 것만으로도 넘치지 않아요?”
얼마 전.
한 매체에서 익명을 요청한 업계 관계자가 인터뷰를 한 것이 꽤나 이슈가 되었다.
김 감독이 처음 업계에서 표절 감독으로 몰릴 당시, 조승완이 로비를 벌였다는 사실을 풀어 버렸던 것이다.
그런 증언까지 나온 상황에서 본인의 힘으로 역전 드라마를 쓴 김 감독이 일약 스타덤에 오른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김 감독의 과거 이야기가 끌어올려지면서 영화계 역시 이 분위기에 편승했다.
“자정하겠다는 기사도 뜬 것 같던데요.”
로운의 말처럼 반성의 분위기가 조성되며 자정하겠다는 움직임이 생긴 것.
매니저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그거야 안 하면 돌 맞아 죽을 것 같으니까 그런 거고. 김 감독이 차기작 홍보하면서 은근하게 흘리지 않았으면 아직도 모르쇠하고 있었을걸?”
그건 그랬다.
마치 보상이라도 하듯 김 감독을 외면하던 곳들이 하나같이 김 감독을 열심히 찾아대었다.
그렇게 하면 대중들에게 면죄부라도 살 수 있는 것처럼.
무척이나 속 보이는 행보였으나 정작 김 감독은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뭐 그쪽에서 그렇게 나온다면야 나도 다 방법이 있거든. 누가 만들어 준 기회인데 잘 써먹어야 하지 않겠어?
김 감독은 쏟아지는 관심에 힘입어 이미 내정된 차기작을 자연스레 홍보하기 시작했다.
친구와의 이야기가 정성스레 다듬어져 미담으로 퍼지는 것은 덤이었다.
그 과정에서 김 감독이 가진 기록 일부가 공개되었다.
증거나 마찬가지인 그것들에 대중의 반응은 남달랐다.
-저거 진짜면 조승완 부관참시 해야 하는 거 아님?
└조승완 아직 안 죽었는데 그냥 죽여 버림;
└남 매장하려고 했으면 자기도 매장당할 각오는 했어야지
조승완의 과거 발언과 회피력 만렙인 기자회견까지 함께 끌어올려지며 여론의 호된 뭇매를 맞기도 했다.
그렇게 김 감독이 바쁘게 움직이는 사이.
로운 역시 열심히 여기저기 불려다니느라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내야 했다.
어딜 가도 김 감독이 그를 끼고 다녔기 때문이다.
[제 것도 못 챙기는 한심한 인간이지만 보는 눈 하나는 제대로 박혔구나. 흐응. 이 녀석이 아니었으면 아직도 빌빌거리고 있었을 테니 주제 파악 하나는 확실해. 보는 눈은 있어.]“그… 귀로의 성공이 제 덕이라는 건 너무 과대평가가 아닐까요?”
[뭔 소리야. 애가 겸손해도 이렇게 겸손할 줄이야……. 잘 듣거라. 네가 아니었으면 저 인간이 저렇게 다시 건재하게 다시 설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하느냐?]“…너무 자의식 과잉이 아닐까요?”
청화가 혀를 차고.
“제가 그 친구의 마지막 이야기를 들을 수 있던 것도 여기 있는 로운이 덕이죠. 로운이가 아니었다면 저는 그 친구가 제게 남긴 얘기가 있다는 것조차 몰랐을 겁니다. 제게는 은인이죠. 이 친구를 볼 때마다 영감이 떠오르는 것도 그랬고요. 단순한 감사 인사로는 끝낼 수 없는 친구입니다.”
김 감독이 출연하는 프로그램마다 이런 말을 해도.
‘내가 어느 정도 역할을 한 건 맞기는 하지만. 그렇게까지 대단하게 뭔가를 한 건 아닌 거 같은데.’
이제 막 싹트기 시작한 자신감과는 별개다.
로운은 나름 객관적으로 자기 자신을 판단했다.
물론.
[현재 업보 수치가 1 감소하였습니다.] [현재 업보 수치가 1 감소하였습니다.] [현재 업보 수치가 2 감소하였습니다.] [현재 업보 수치가 1 감소하였습니다.]…….
줄어드는 업보 수치를 보면 청화의 말이 아예 틀린 것만은 아니기는 했다.
‘처음엔 뭔가 했었는데.’
갑자기 뜨는 낯선 숫자들을 보며 처음엔 경계했던 로운.
개봉했을 때는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눈앞에서 숫자가 실시간으로 좌르륵 줄어가는데 아주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처음에야 놀랐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이 숫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업보 수치가 줄어들게 될 줄이야.’
한마디로 로운의 이미지가 실시간으로 갱신되고 있다는 소리다.
귀로가 잘될수록 로운의 마이너스 이미지. 즉, 업보 역시 조금씩 청산이 되고 있다는 뜻일 터.
‘이렇게 되면 작품을 많이 찍을수록 유리할 것 같은데.’
귀로를 찍으면서 바뀐 인식도 그렇고.
슬쩍 욕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다만 여전히 문제가 남아 있었다.
“근데 형, 오늘도 연락 온 거 없어요?”
정신없던 지난 한 주간을 떠올리던 로운은 매니저에게 마침 생각난 질문을 던졌다.
“그게… 아직 딱히 이거다 싶은 건 없네. 귀로에서 맡은 캐릭터 같은 역할은 별로라며.”
“아무래도 벌써부터 캐릭터 역할이 고정되면 곤란하니까요.”
“그건 그렇지. 연기 풀을 벌써부터 줄일 필요는 없으니까.”
로운의 말에 매니저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리온 때도 컴백 때마다 매번 컨셉을 달리했었지. 고정된 이미지보다 여러 다양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게 다양한 팬층을 끌어오기도 좋고.’
무엇보다 계속 똑같은 모습만 보여 준다면 쉽게 매너리즘에 빠진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사람도 매번 똑같은 반찬이나 메뉴만 먹으면 쉽게 질리지 않는가.
쉽게 말해 고인물이 되면 곤란하다는 소리다.
“로운이 네가 연차가 쌓이면 모르겠는데 지금으로서는 곤란하긴 하지. 음.”
이윽고 매니저가 기특하다는 눈으로 로운을 바라보았다.
“사실 지금 들어온 이 배역들, 받아들이는 건 당장이야 일감이 생기는 거니 좋아 보여도 장기적으로는 독이거든. 그런데 이런 것도 알아서 할 줄 알고. 우리 로운이 정말 너무 기특하고… 기억상실증 너무 좋고…….”
매니저의 마음의 소리가 슬쩍 삐져나온 것 같지만 로운은 모르는 척해 주기로 했다.
“그래도 너무 조급해하지는 마. 로운이 네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이 꼭 있을 거니까.”
“네.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애초에 본체였던 이로운이라는 배우는 삼류조차 되지 못하는 최하급이었다.
어쩌다가 김성하 감독으로 단박에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지만.
‘아마 간을 보는 거겠지. 이게 일시적으로 반짝 그런 건지 아니면 아닌 건지.’
워낙에 망작을 깔아놓아서일까.
귀로가 이례적으로 특출났던 것인지.
아니면 기존 작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평가절하된 것인지.
다들 갈피를 못 잡은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지.’
그가 보기에도 본체의 업보는 쉽게 벗어질 만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일단 수치부터가 백팔만이잖은가.
‘무슨 백팔번뇌도 아니고.’
그나마 귀로의 개봉으로 줄어든 수치는 이랬다.
[현재 업보 수치: -1,074,890]‘그래도 백팔번뇌는 벗어났네.’
이건 앞으로 꾸준히 작품을 찍거나 달라진 모습을 보여 준다면 점차 바뀌게 될 것이다.
로운은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보다는 지금 로운에게 신경 쓰이는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작품은 그렇다 쳐도, 의뢰는 왜 연락이 없지?’
다음 의뢰였다.
‘청화 님 하시는 말로는 관조자분들께서 다들 좋게 봐주신 것 같았는데…….’
다음 의뢰가 바로 이어질 줄 알았건만 첫 의뢰를 완료하고도 벌써 열흘이나 지났는데도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그에 대한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 * *
[조율 중이니라.]“…조율이요? 혹시 의뢰 넣고자 하는 분들이 안 계신 거예요?”
로운은 한편에 떠 있는 시스템 창을 바라보았다.
[현재 남은 수명: 59일]두 번째 의뢰를 받기까지 여유롭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건가?
[무슨 소리를 하는게야? 그 반대다, 반대!]“네? 반대요?”
[그래! 지금 널 찾는 영감탱이들이 너무 많아 중재 중이니라.]“그, 네?”
[말도 마라. 지금 아주 난리도 아니니라. 네가 너무 잘한 탓… 아니, 잘한 덕이지.]안 그래도 요새 청화가 왜 보였다 안 보였다 하나 했더니만.
위쪽에서 뭔가 치열한 공방이 오가는 모양이었다.
[이럴 때 한탕 땡겨야 하지 않겠느냐! 무려 저 깐깐한 하늘의 법칙이 인정한 인재니라. 당연히 아무 의뢰나 받을 수는 없지!]설마 그런 이유였냐.
“그… 저기, 그래도 되나요?”
이쪽은 목숨이 걸려 있다.
조심스럽게 묻자 꼬리가 달린 물방울이 자신만만하게 가슴을 내민다.
[안 될 건 뭐가 있느냐? 아쉬운 건 이쪽이 아니라 저쪽이니라. 큼큼. 너는 일단 가만히 있어 보아라. 이 몸이 최고의 의뢰를 골라 주겠느니라!]믿고 기다려도 될까.
어쨌거나 운명공동체인 청화다.
로운은 청화를 믿고 기다리기로 했다.
그다음 날부터 더 정신없는 메시지들이 띠롱거리며 눈앞을 수놓을 줄도 모르는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