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of a former idiot who became a top star RAW novel - Chapter (55)
전직 망돌이 탑스타 된 썰 푼다-55화(55/110)
55
태운의 회장은 머리가 하얗게 샌 나이 지긋한 양반이었지만 생각은 그 누구보다도 유연했다.
오죽하면 아무것도 아닌 이진명을 그 뛰어난 눈썰미로 발견해 내지 않았던가?
나이를 떠나 서 회장은 대화가 아주 잘 통하는 상대였다.
그런데.
“자네 얼굴에 생각이 다 드러나네만. 지금 내가 웬 변덕을 부리나 하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맞나?”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하고는 있습니다. 회장님이야 워낙 저에게 다 맡겨 주셨던 분이니까요. 혹시 제 작업물이 이제는 마음에 안 드시기라도……?”
혹시나 하고 묻자, 회장이 또 한번 허허 웃음을 터트렸다.
“그럴 리가 있나. 내가 자네를 아니면 누굴 믿고 광고를 맡겨?”
“그럼 그 사람은 갑자기 무슨 일입니까?”
“내가 자네를 믿었듯이, 이번엔 자네가 나를 믿어 봐 줄 수는 없나?”
거대 기업의 총수가 할 말이라기엔 한없이 소탈한 말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이진명이 아는 서양철 회장이었다.
“그렇게까지 괜찮은 친구입니까?”
“괜찮지 않으면 내가 천하의 이진명이 앞에 들이밀기나 했겠어? 내가 자네의 그 까다로운 안목을 아는데 말이야.”
“만나 보고 별로면 어떡합니까? 퇴짜놔도 됩니까?”
“허헛, 자네가 그러고 싶다면 그래야지. 근데 말이야.”
서양철이 시원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밀어붙이기는 했어도 이진명이 영 아니다 싶으면 마음대로 하라는 허락이었다.
서 회장의 의미심장하게 덧붙였다.
“나랑 내기나 한판하겠나?”
“갑자기 뭔 내기요? 별로 그럴 기분 아닌데요.”
“그러지 말고 한번 내기나 합세나. 나는 자네가 그 청년을 마음에 들 거라는 데에 걸지. 내기 상품은 뭐가 좋을까……. 그렇지. 자네가 저번에 갖고 싶다던 차가 있지 않았던가?”
“…그걸 주신다고요? 전 세계 10대 한정인 그거요?”
“그래. 자네 마음에 쏙 든다에 그걸 걸지.”
“회장님이 세금까지 책임져 주시는 거죠?”
“당연하다마다. 자네는 역시 마음에 안 든다에 걸 테지? 만약 자네가 진다면 자네는 무얼 걸 텐가?”
“제가 가진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냥 열심히 찍기나 하겠습니다.”
서 회장이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그거면 충분하네.”
서 회장의 알쏭달쏭한 면담을 끝내고 돌아나오는 길.
‘…진짜 뭐지?’
서 회장이 괜히 저렇게 나올 리가 없다.
하지만 서 회장이 자신의 애마까지 걸어가며 내기를 제안하는 걸 보면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재계에서 오래도록 굴러먹은 노련한 기업가가 질 것이 뻔한 내기를 하지는 않을 테니까.
‘이거… 불안한데? 가자마자 좀 알아봐야겠어.’
그런데 서 회장의 자신감과는 별개로 이 낙하산은 딱히 볼 것이 없었다.
-얼굴 진짜 그렇게 쓸거면 나나 줬으면;
-요새 팔로워 좀 많다 싶으면 개나 소나 다 영화 찍겠다고 설침
-저렇게 생겨서 끼가 없는 것도 진짜 재주라면 재주다
좋은 소리도 없을뿐더러 클립으로 돌아다니는 그 짧은 영상에서조차 어색함이 철철 넘쳐흐르는 연기가 돋보였다.
‘뭐… 그나마 최근 찍은 영화가 좀 반응이 좋은 거 같기는 한데. 김성하 감독 연출에 구일환과 강차헌 출연이라니. 이건 안 뜨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냐?’
소오오올찍히 말하자면 이 낙하산의 외모는 이진명의 취향이 맞기는 했다.
하지만 그러면 뭐 하는가?
최근 사진을 제외한다면 모조라 다 별로였다.
하나같이 동태눈깔에 영혼도 없는데다가.
향기 없는 꽃이 딱 이러했을까 싶을 정도였던 것.
‘가진 건 쥐뿔도 없으면서 자기가 잘난 줄 아는 머리 텅텅 빈 애송이를 대체 어떻게 써먹으라고?’
주제에 아집도 강해 주변의 말이라고는 1도 귀담아 듣지 않을 타입처럼 보였다.
‘그나마 가진 건 얼굴 하나뿐인데 어떻게 해야 제일 잘 돋보이는지도 모르는 것 같고.’
얼굴 근육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저런 걸 가지고 어떻게 일을 하란 말인가…….
특히나 이진명은 렌즈 너머의 피사체와 교감하며 상대의 모든것을 끌어내는 타입의 감독이었다.
‘그래야 시너지가 최고조를 이룰 수 있으니까.’
그런데 알아보면 알아볼 수록 암만 봐도 이걸 좋아할 수는 없는 것 같았다.
그의 조수는 최근 개봉한 영화를 인상깊게 봤는지.
“그렇게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은데……. 딱 디렉터님이 원하는 인물상이던데요? 기본적으로 일단 연기력도 되고 뭣보다 걔가 사람을 끌 줄 알더라고요? 강차헌이랑 투샷에서 안 밀리는 신인 처음 봤잖아요. 거기에 이제 막 영화로 알려지기 시작해서 느낌도 새롭고. 딱 디렉터님이 바라던 인재상이던데?”
라는 망발을 내뱉기는 했다.
“그런 인간이었으면 내가 벌써 알아봤지 않았겠니, 수철아?”
“아, 찰스라고 불러 주시라니까요? 글로벌 시대인데 이름도 글로벌하게 가야죠.”
“응. 시끄럽고 일단 세팅이나 준비해.”
“정말 찍으시게요? 싫으시다면서요.”
싫다.
정말로 싫다!
만약 태운의 광고만 아니었다면 바로 계약 파기하고 훌훌 털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 회장이 저렇게 나오는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터.
“그래도 내가 은혜를 모르는 놈은 아니잖니. 회장님이 만나라도 보라고 했으니 일단 진행은 해 봐야지. 마음에 안 들면 그때 드랍해도 된다고도 하셨고.”
그래야 서 회장에게 할 말이 생긴다.
‘연기력도 뭣도 없는 놈을 그 공들인 프로젝트에 꽂아넣을 수는 없는 일이니까!’
적당한 모델만 집어넣어도 성공할 수밖에 없는 광고다.
심혈을 기울인 역작을 웬 듣도 보도 못한 망나니 때문에 망치게 둘 수는 없다.
‘대체 회장님을 어떻게 구슬려서 그 자리를 꿰찼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을 거다.’
직접 대면한 후에도 자신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서 회장도 납득할 것이다.
‘어차피 그런 종류의 인간들은 조금만 자기 비위를 안 맞춰 줘도 빈정상해하며 뛰쳐나갈 테니 오히려 잘됐어.’
어르고 달래 가며 작업할 생각은 전혀 없으니 아마도 상대 쪽에서 못 견디고 자리를 박차고 나갈 확률이 더 높다.
이진명은 로운이 성질을 내며 촬영장을 떠나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 장면을 떠올리기만 해도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조금이라도 싫은 티만 내봐라. 바로 모델 교체 들어간다.’
그렇게 생각하며 벼르는 것이 벌써 며칠째.
그 와중에도 준비는 착실하게 진행되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진명은 프로페셔너한 국제적 명성을 지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으니까.
수탉의 목을 비틀어도 아침은 온다더니 결국 그 날이 닥치고야 말았다.
“디렉터님, 지금 모델 도착했다고 합니다.”
“벌써?”
이진명은 흘끗 시계를 확인했다.
약속했던 시간보다 정확히 30분 이른 시각이었다.
본래대로라면 정신머리가 똑바로 박혔다고 생각했을 이진명.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뭐야. 우리가 준비 중이면 어떡하려고 이렇게 일찍 오는데?’
자신이 일할 환경과 준비된 세팅을 미리 확인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 맞다.
어떤 식으로 촬영이 진행될지를 고려하는 것은 촬영 감독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평소라면 느낌 좋은 시작에 흐뭇해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한번 미운털이 박히니 별게 다 거슬리는 모양이었다.
“올라오고 계십니다.”
태운에서 파견된 직원이 몹시 긴장한 태도로 보고했다.
태운회장이 직접 신경 써 달라고 한 탓인지 로운을 신경 쓰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것마저도 이진명에게는 아니꼽게 느껴졌다.
‘어디 그 잘난 낯짝 좀 한번 봐 볼까.’
이진명이 팔짱을 낀 채로 뾰족한 눈을한 채 출입문을 노려볼 때였다.
딸랑!
천천히 문이 열렸다.
그리고.
“……?”
순간적으로 이진명의 숨이 턱 막혔다.
머리 위로 벼락을 내리친 것도 같았다.
‘어?’
기세등등하게 전투력을 끌어올린 것이 언제냐는 듯.
그 잠깐 사이에 전투력은 어딜 가고 수많은 물음표만이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녔다.
이진명은 도무지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막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의 뒤로 찬란한 빛이 비춰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계단에 조명을 설치했던가? 아니, 그보다. 왜 저 사람만 환히 빛나지?’
대단하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이진명의 머리 위로 벼락을 내리치게 하는 일은 지금까지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이었으니까.
이상한 상황은 계속되었다.
‘조명이… 아냐?’
마치 성화에 나오는 성인들이 두른 헤일로처럼, 막 들어온 사람이 움직일 때마다 머리 주변의 은은한 빛은 여전했던 것이다.
[프레시하고 상큼하며 그러면서도 어설프면 곤란해.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있어야 하거든. 존재감도 뺴놓을 수 없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당기는 그런 매력이 있어야 하거든.]한때 모든 스탭들이 감독님 미치셨냐며 입을 모아 말도 안 된다고 혀를 차던.
마치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나 다름없다며 비난을 샀던 이진명의 이데아가 눈앞에 있었다.
“…안녕하세요?”
빛을 두르고 온 상대가 인사했다.
‘미쳤나 봐.’
이진명은 생각했다.
단순한 인사인데도 저절로 집중하게 만드는 저 미친 목소리라니.
-얼마나 잘났는지 한번 얼굴이나 봐야지.
-뭐, 볼 것도 없어 보이는데?
-얼굴이 괜찮으면 뭐해. 향기 없는 꽃이나 다름없는데.
과거도 아니다.
바로 며칠 전까지, 아니, 방금 전까지 하던 생각이 일시에 휘발되어 날라갔다.
-빡빡하게 해서 도망가게 만들어야지. 그럼 회장님도 별말 못할 테니까.
남몰래 은밀하게 품은 각오마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머릿속에서 깨끗하게 지워졌다.
“이로운입니다.”
다시 한번 단정한 목소리가 상냥하게 인사를 건넨다.
‘대답해야 돼!’
이진명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벼락을 맞아 작동이 중단된 몸뚱이는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던 것이다.
삐걱삐걱.
이진명은 고장난 로봇처럼 삐걱대는 몸을 움직여 간신히 악수에 성공했다.
고난이 예정된 입덕 부정기의 시작이었다.
* * *
촬영은 생각보다도 더 무난하고 스무스하게 진행되었다.
물론 이진명의 입장에서는 아니었다.
그는 지금 인지부조화를 일으키는 중이었으니까.
“고개를 살짝 내려 보세요. 조명을 등지면서 역광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지시를 내리면서도 이진명은 기대하지 않았다.
‘제 얼굴이 잘난 줄 알 테니 이목구비가 그림자에 묻히는 역광은 거절하겠지!’
그런데.
“이렇게요? 방향은 이렇게 틀면 될까요?”
“…맞습니다. 딱 좋네요.”
…말을 안 듣기는커녕, 너무나도 잘 들었다!
게다가 얼마나 프로페셔널한지 일부러 자신이 서 있는 쪽의 조명을 확인하더니 딱 이진명이 원하는 수준으로 몸을 틀기까지 했다.
어두운 배경으로 곧게 뻗은 등과 날렵한 허리선 그리고 길게 이어지는 다리의 실루엣이 완벽했다.
‘…아니야. 처음이니까 아직 본색을 드러내기는 좀 그랬던 거겠지.’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