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of a former idiot who became a top star RAW novel - Chapter (56)
전직 망돌이 탑스타 된 썰 푼다-56화(56/110)
56
“소파 가죽 위를 쓰다듬는 것처럼 손끝으로 천천히 쓸어주세요. 그리고 입가에 대 주시고요.”
본격적으로 촬영을 진행하면서도 이진명은 불행회로를 멈추지 않았다.
‘방금 전은 우연이겠지. 프레임 안에 담기면 분명 별로일 거야…….’
그러나 이진명의 이번 예측도 장렬히 빗나가 버렸다.
뷰 파인더 너머로 보고 있음에도 빠져들 것만 같았다.
이미 사전에 기획해 둔 구도는 이미 머릿속에서 휘발된 지 오래였다.
분명 자신이 주문한 대로 움직이고 있는데, 왠지 타인의 사생활을 엿보는 듯한 부적절한 감정이 들었다.
정점은 연인을 매만지는 것처럼 소파의 표면을 쓸던 로운의 손가락이 아랫입술을 스치고 지나갔을 때였다.
카메라와 시선을 맞추며 눈가를 휘는 마지막이 피날레였다.
“큽……!”
이진명은 갑자기 심장을 덮쳐 오는 통증에 가슴을 움켜쥐었다.
“이로운 씨……?”
“네, 네?”
“방금 왜 웃으셨죠?”
“…별로였나요?”
마지막의 미소는 분명 이진명이 주문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다시 갈까요?”
“…아뇨. 왜 거기서 웃으셨는지가 궁금했습니다.”
“아. 콘티 설명을 보니까 ‘내가 사랑하는 공간’이 주제더라고요. 그런데 디렉터님께서 소파를 쓰다듬으라고 하신 걸 생각하니까, 딱 연인들의 사랑이 생각나서요. 사랑의 종류는 다양하고, 굳이 손끝을 사용하라고 지시 내리셨던 이유가 있으시겠거니 했거든요. 그래서 마지막엔 사랑하는 연인을 바라보게 되면… 웃음이 나올 거 같아서. 그래서 웃었는데……. 안 그러는 게 나았을까요?”
백점만점인 해석이었다.
자신이 교수라면 A+을 주고 대학원 진학을 진지하게 권했을지도 모른다.
딱 이진명이 생각한 대로였다.
태운이 곧 새로 출시할 이 새로운 쇼파는 가죽의 부드럽기가 말도 못하게 뛰어났다.
몸을 묻으면 푹 파묻히는 것처럼 아늑하게 감싸 안기는 기분도 끝내주게 안락했다.
거기서 이진명은 아이디어를 착안했다.
‘가구라고 꼭 스펙만 선전해야 하는 법 있나? 특징을 감각적으로 극대화하는 게 오히려 더 직관적일 수도 있지.’
물론 콘티에는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적어 놓지는 않았다.
그림으로 어떤 식으로 움직일지에 대한 동선과 행동 지시문만을 적어 두었더랬다.
30분 먼저 온 로운이 이 모든 것을 확인한 것까지는 알았지만…….
‘어떻게… 어떻게 이렇게 섬세하고 눈치까지 빠를 수가 있지?’
출제자의 의도를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파악해 내다니.
그것도 그 짧은 시간 내에 말이다!
고집불통에 제멋대로 군다는 캐해가 오류가 생겼다.
동시에.
‘피곤하다.’
이진명은 급격한 피로를 느꼈다.
머릿속에 있는 두 개의 자아가 내는 소리를 듣다 보니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아니, 정확히는 양쪽이 똑같은 얘기를 해 대는 걸 브레이크를 잡고 있자니 진이 다 빠졌다.
역시 서 회장이 괜한 사람을 들이밀 리가 없었다.
‘그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괜한 자존심에 두고 보자고 이를 악물었던 게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그는 백기를 들고 말았다.
완벽한 패배였다.
* * *
“잠시 쉬었다 갑니다.”
이진명이 생각보다 일찍 휴식 시간을 선언했다.
로운은 어리둥절해졌다.
‘아까부터 자꾸 뭔가를 묻더니만… 역시 내가 마음에 안 드나?’
처음 들어왔을 때 강렬한 눈빛으로 쏘아보는 것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어색함을 뚫고 인사를 건넸지만 돌아오는 것은 답변 대신 무뚝뚝하게 내밀어진 손이었다.
‘대화도 나누기 싫다는 소린가?’
하지만 그렇다기엔 갑자기 줄어든 업보 수치가 영 심상치 않았다.
[업보 수치가 10 감소하였습니다.]하필이면 이진명과 처음으로 눈이 마주쳤을 때 뜬 알림이었다.
‘그걸 보면 내가 완전히 싫은 건 아닌거 같은데…….’
하지만 총괄 디렉터가 이렇게까지 적대적으로 나오는 걸 보면 착각일지도 모르겠다.
시스템도 착각이란 걸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어쩔 수 없지.’
최근 로운이 본체의 업보를 청산하면 느낀 것은 이랬다.
‘굳이 싫어하는 사람을 붙잡고 당장 안달복달할 필요는 없다!’
할 일만 제대로 묵묵히 하면 된다.
그러다 보면 모두가 그 노력을 알아주는 때가 오게 될 테니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백번 떠들어 봤자 행동이 그대로면 입만 살았다고 더 이미지만 안 좋아질 뿐이니까. 그냥 직접 보여 주는 수밖에.’
그나마 다행이라면 감소하는 업보 수치가 간접적으로나마 잘하고 있다고 알려 주고 있다는 것이랄까?
첫 인상 때문에 깐깐하지 않을까 짐작했던 작업은 생각보다 수월하게 흘러갔다.
‘…그래도 괜한 트집을 잡지는 않네?’
무한으로 리테이크를 시킬 줄 알았는데 그런 것은 없다.
그저 로운이 한 일이라고는 디렉터의 요청에 따른 것밖에 없었다.
여기 보라면 보고, 저기 보라면 저기 보고.
얌전히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괜히 나선다고 트집을 잡으면 곤란하니까.
‘하지만… 이 정도는 해도 되지 않을까?’
이진명이 제시한 콘티도 분명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로운의 눈에는 보였다.
아주 살짝 조금만 보태면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오리라는 것이.
“소파 가죽 위를 쓰다듬는 것처럼…….”
로운은 이진명의 지시를 들으며 생각했다.
‘이 정도는… 괜찮을 것 같은데?’
촬영 전 미리 설명해 주던 전반적인 흐름이나 스토리 보드 상의 내용을 떠올려도 딱히 문제될 것은 없어 보였다.
그래서 슬쩍 한 가지를 덧붙였다.
“방금, 왜 웃으셨죠……?”
이런 반응이 되돌아올 줄 모르고.
그래도 아주 꽉 막힌 사람은 아닌 듯했다.
당장이라도 다시 찍자고 할 것 같던 이진명은 의외로 로운의 해석을 듣더니.
“…좋아요. 아주 좋습니다. 좋아요. 계속 그대로 가 봅시다.”
긍정적인 답변을 내놨던 것이다.
‘진짜 괜찮은 거 맞겠지?’
뭔가 억누르는 듯한 목소리라던가 표정이 좀 심상찮아 보이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촬영 자체는 별문제 없이 흘러갔다.
…갑자기 이진명이 수시로 로운을 불러 모니터 앞에 세우게 된 것만 제외한다면.
* * *
벌써 세 번쨰 휴식 시간이다.
“그, 로운아……?”
수정 메이크업을 받고 있는 로운에게 매니저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머뭇거리는 매니저를 대신해 로운이 그의 말을 대신했다.
“저 괴롭히는 거 같다고요?”
“…지금이라도 그만둘래? 형이 어떻게 좀 잘 말해 볼게.”
눈물이 매달려 그렁그렁한 눈으로 매니저가 말했다.
“어떻게 그래요. 이거 기회라고 형이 엄청 좋아했었잖아요. 전 괜찮아요.”
“진짜? 아니, 그래도 이건 내가 봐도 너무하다 싶거든? 아무리 자기가 유명해도 그렇지, 이건 좀…….”
“진짜 괜찮아요.”
이제는 코끝까지 붉어진 매니저를 로운이 능숙하게 달랬다.
‘뭐… 방식이 좀 이상하긴 해도 업보 수치가 줄어든 걸 보면 날 아주 싫어하는 건 아닌 거 같던데 말이야. 그리고 방식도 왠지 도움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누구보다 태운광고라며 좋아하고 기다리던 매니저다.
그런 매니저가 이런 취급까지 받아야 되냐고 손수건을 물어 뜯는 이유는 하나였다.
‘모니터링 못해서 한 맺혀 죽은 귀신이 붙었나…….’
매 씬을 찍을 때마다 이진명이 집착적으로 로운을 불러들였기 때문이다.
로운을 모니터 앞에 세운 뒤 방금 찍은 테이크를 확인하게 만들었다.
사실 당연한 일이기는 했다.
촬영 후 모니터링은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니까.
그런데 그 빈도수가 너무 잦았다.
마치 사진을 한 컷 찍고 확인하고, 한 컷 찍고 확인하고 그러는 것과 똑같다고나 할까?
‘약간 좀… X개 훈련이 생각난다고 해야 하나…….’
지켜보는 입장에서 얼마나 답답했을지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었다.
덕분에 지금 촬영장의 분위기도 살얼음판처럼 삐걱대고 있었으니 말이다.
방금 전만 해도.
“이로운 씨. 이리 와서 보세요.”
“네.”
“어때 보입니까.”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상황을 반복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도움이 되는 건 확실해.’
처음 이진명이 그를 불러다 모니터 앞에 세웠을 때는 로운도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 반성하라고 부른 건가?’
하고 말이다.
첫 인사조차 무시하고 악수만 나눈 사람이다.
서 회장 때문에 억지로 맡고는 있지만 딱히 내키지 않는 기색도 역력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로운을 곱게 봐줄 이유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그저 괴롭히는 줄로만 알았다.
헌데…….
‘…반성할 만한데?’
로운에 눈에도 보였다.
여기저기 어설프기 짝이 없는 부분들이.
‘방금 호흡이랑 시선 처리가 조금 부자연스럽게 맞물렸어. 동시에 들어가야 덜 어색할 것 같은데.’
사감을 제외한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자 아쉬운 부분들이 여기저기서 자꾸만 튀어나왔다.
적당히 괜찮은 수준이기는 했지만, 로운이 원하는 것은 적당히가 아니었다.
아쉬움을 남기는 일은 이제 사양이었으니까.
그래서 로운은 아무 말 없이 그의 대답을 기다리는 이진명에게 이렇게 말했다.
“다시 가도 되나요?”
라고.
이진명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눈으로 로운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잘 들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려나?’
어쨌거나 중요한 건 이진명이 아니라 로운 자신이 만들어 내는 결과물이었다.
안 그래도 그가 태운의 광고를 맡았으니 분명 잡음이 생길 텐데.
결과물마저 시원찮으면 이건 기회가 아니라 독배나 마찬가지다.
이제 좀 나아지나 싶은 평판이 최악으로 처박힐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뭐, 가리온 시절에는 3분짜리 무대를 스무 번도 넘게 반복한 적도 있으니까.’
이 정도면 선녀였다.
덕분에 가면 갈수록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사라져 갔다.
‘나를 싫어하는 것치고는 의외로 상식적이기도 하고.’
꼬투리를 잡으려면 얼마든지 잡을 수 있지만 이진명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사실 생각해 보면 이진명은 로운에게 대놓고 꼽주지도 않았다.
그저 불러서 어떠냐고 묻기만 했을 뿐이었다.
‘그런거 보면 아주 나쁜 사람만은 아닌 거 같은데.’
첫 인사를 제대로 받아주지 않았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이렇게까지 신사적일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이진명 덕분에 로운은 그 짧은 사이에도 성장할 수 있었으니까.
사소한 디테일의 차이지만 그 작은 차이가 완성도를 좌우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알게 되었던 것.
“다시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이로운 씨, 준비되면 나와 주세요.”
때마침 휴식 시간이 종료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씬 하나.
촬영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
* * *
태운의 광고는 총 3가지로, 시리즈 형식으로 진행된다.
로운은 그 첫 번째 광고의 마지막 씬을 앞두고 있었다.
‘끝까지 정신차리고 잘하자.’
비록 상대는 로운이 별로인 모양이었지만, 로운은 고마운 마음까지 들 지경이었다.
어쨌거나 이진명도 한 분야의 거장이다.
그런 이에게서 배울 점이 없을 리가 없다.
‘김 감독님이 자애로운 스타일이라면 이분은 좀 엄한 타입인거지.’
양쪽 다 배울 점은 차고도 넘쳤다.
“침대 누워 불을 끄고 눈을 감고 잠드는 척하시면 됩니다.”
마지막 씬은 시리즈의 첫 번째 컨셉인 ‘내가 사랑하는 공간’의 피날레. 바로 침실이었다.
‘침대로 걸어가 누워서 하품하다가 자리 잡는 거였지? 마지막에 조명만 끄면 되고.’
마지막으로 안정을 찾는 곳이 바로 침실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파트였다.
콘티나 스토리 보드 역시 그저 걸어가 누운 다음 불을 끈다고만 표현되어 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엔… 좀 아쉽지 않나?’
로운은 약간의 해석을 곁들이기로 했다.
그것이.
“정말 이게 마음에 든다는 겁니까? 정말로요? 진심입니까?”
이런 심상찮은 반응을 부를 줄은 모르는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