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of a former idiot who became a top star RAW novel - Chapter (57)
전직 망돌이 탑스타 된 썰 푼다-57화(57/110)
57
안 그래도 살얼음판 같던 분위기가 더욱 꽁꽁 얼어붙었다.
“…뭔가 잘못됐나요? 지시하신 대로 했는데요.”
다만 거기에 독자적인 해석을 곁들이기는 했다.
침대에 어떤 방식으로 드러눕던, 거기까지는 디렉팅이 들어가지는 않았으니까.
모든 공간을 사랑하는 것이 이 컨셉의 핵심이라면, 침대 역시 사랑해 마지않는 대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로운의 상상력이 한계를 모르고 무한하게 뻗어 나갔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 * *
‘내가 가장 안심하고 무방비 상태로 대할 수 있는 상대.’
아무런 조건 없이 무조건적으로 사랑을 퍼붓고 받아들여 주는 존재라면 단 하나뿐이다.
바로 부모님이다.
‘물론 나는 아니긴 하지만.’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가족과는 연이 없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보편적인 인식을 모르지는 않았다.
로운은 마치 모든 피로함을 내려놓고 부모님께 어리광을 부리며 위로받는 느낌으로 침대를 파고들었다.
푹신하고 안락한 침대가 마치 고생했다는 듯 도닥여 끌어안는 것처럼 그를 감싸주었다.
세상의 그 어떤 고난에서도 지켜 줄 것 같은 그런 든든함과 안락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그 평온한 상태를 잠시간 누리던 로운은 콘티에 따라 손을 뻗었다.
그리고.
달칵.
불이 꺼졌다.
“컷!”
바로 컷사인이 울리고 다시 불이 켜지는 순간.
이진명이 로운을 불렀다.
그리고 물었던 것이다.
“어떻습니까?”
이제는 익숙할 대로 익숙해진 물음이었다.
‘생각한 대로 잘 나온 거 같은데.’
영상을 확인한 로운이 생각했다.
스파르타식으로 실시간 구르다 보니 몸은 힘들어도 어색하거나 어설픈 부분이 바로바로 교정되는 보람이 있었다.
한없이 피곤한 뒷모습.
그러나 침대로 향하는 발걸음은 피곤함과는 별개로 들뜬 기분을 아주 잘 보여 주었다.
침대에 살짝 걸터 앉나 싶더니 곧장 폭신한 침구에 몸을 던진다.
여기저기 털썩 떨어진 옷가지나 가방을 보면 회사에 찌든 사회인처럼 보이지만 침대에 파묻혀 행복한 미소를 짓는 얼굴은 달랐다.
속세의 모든 고난을 모두 내려놓을 수 있는 곳에서 우러나는 만족감이 온몸에서 우러나왔다.
평온함을 누리던 이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옷도 채 갈아입지 못했지만, 이 침대가 너무나 안락하고 편안하여 도무지 벗어날 수 없는 느낌이 제대로 느껴졌다.
이윽고 로운의 기다란 손가락이 툭, 조명을 건드렸다.
그리고 곧 불이 꺼지고, 영상도 끝이 났다.
‘이건 판별안을 사용하지 않아도 알겠어.’
지금 판별안을 가동시킨다면 분명 황금빛으로 찬란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래서 로운은 대답했다.
“네. 괜찮은 것 같네요.”
헌데 이진명의 반응이 영 심상찮았다.
“정말 이게 마음에 든다는 겁니까? 정말로요? 진심입니까?”
마치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되묻기까지 한다.
“…뭔가 잘못됐나요? 지시하신 대로 했는데요.”
“아니죠. 지금 여기에 당신의 스토리를 넣었잖습니까!”
그건 그랬다.
컷과 컷 사이에 있는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로운 나름대로의 해석을 집어넣었으니까.
높아진 언성과 심상찮은 디렉터의 반응에 안 그래도 살벌하던 촬영장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
“저기, 디렉터님. 그러지 마시고…….”
이 분위기를 근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던 매니저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한쪽에서 눈치만 보던 태운 기업의 직원과 이진명의 조수도 다가왔다.
삐걱대면서도 어찌어찌 막판까지 왔는데.
다 끝나기 직전에 싸움이라니.
절대로 안 될 일이었다.
‘언제 터지나 했다.’
모두가 그런 공통적인 생각을 하며 일촉즉발인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때였다.
이진명의 격양된 목소리가 촬영장을 울린 것은.
“어떻게 이런 천재적인 발상을 떠올릴 수 있던 겁니까!”
“…네?”
다가오던 사람들이 멈칫했다.
바로 코앞에서 듣던 로운마저도 잠시 귀를 의심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번 말문이 터진 이진명은 폭주기관차나 다름없었다.
“내가 맞춰 보겠습니다. 혹시 가족을 떠올린 겁니까?”
“그… 맞는데요.”
“하! 쉬는 공간이 가족의 품처럼 안락하다니. 대체 어떻게 이런 발상을 떠올릴 수가 있죠?”
이상하다.
듣기엔 칭찬 같기는 한데 얼굴이 시뻘개진 채로 화내듯 말하고 있으려니 어째 칭찬보다는 욕을 먹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렇게 되면 타겟층도 다양하게 잡을 수 있겠군요. 사회 초년생부터 청년층, 더 나아가 가족이란 키워드로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중장년층까지!”
그렇게까지 깊은 생각을 한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얻어 걸리게 생겼다.
“대체 당신이란 사람은 어디서 나타난 겁니까! 당신 같은 사람이 있었다면 벌써 내 새끼들은 세상으로 나와 빛을 봤을 텐데!”
“그, …네?”
“처음부터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완벽한 영상들에서 더 완벽함을 끌어내다니. 정말 내 두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더군요!”
…그러니까 그게 괴롭히려고 부른 게 아니었다고?
“저, 디렉터님? 지금 너무 흥분하신 것 같은데… 잠시 진정 좀…….”
이제 그의 어시스턴트는 다른 의미로 이진명을 진정시키기 시작했다.
말리기 위해 다가온 매니저나 태운의 직원조차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하는 기색으로 서 있었다.
“……!”
그제야 돌아가는 상황을 알아챘는지 이진명이 말을 멈추고 우뚝 섰다.
촬영장은 이제 다른 의미로 삐그덕 거리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벌겋던 이진명의 얼굴은 거의 폭발 직전까지 물든 채였다.
그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흔들리는 눈을 하고는 주변을 황급히 주변을 돌아보았다.
당연하지만 모두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도 입을 쩍 벌린 채로.
“그, 그, 거, 그. 오, 오늘 촬영 이만 마칩니다!”
방금까지도 멀쩡하던 이진명이 삐걱삐걱대며 외쳤다.
그러고는 로운이 뭐라고 대꾸하기도 전에 후다닥 촬영장을 빠져나갔다.
“디렉터님, 디렉터니임! 이렇게 가시면 어떡해요오!”
그 뒤를 쫓아가는 어시스턴트의 애처로운 외침소리.
그리고.
[업보 수치가 20 감소하였습니다.]시스템의 알림 소리만이 아련하게 울려 퍼졌다.
“그… 감사합니다……?”
뒤늦은 감사 인사만이 주인을 떠난 자리에 맴돌았다.
* * *
“거기 어시가 연락 왔는데 감독이 너 싫어하는 거 아니라더라.”
모든 촬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길.
허겁지겁 얼레벌레 마무리된 촬영장을 정리한 것은 뒤늦게 홀로 돌아온 조수였다.
그는 이진명이 지금 죽느냐 사느냐 기로에 서 있다며 침통한 목소리로 소식을 전했다.
아마 그가 죽는다면 사인은 쪽팔림사일지도 모른다.
“자기도 그 양반이 그러는 거 처음 봤대. 원체 자존심이 높은 사람이라 뭘 좋아한다고 말을 쉽게 안 한다던데.”
현장에서는 거의 울 것처럼 굴던 매니저는 다시 활짝 핀 얼굴로 돌아온 지 오래였다.
그 대단한 디렉터가 로운에게 극찬을 쏟아낸 것이 몹시 자랑스러운 모양이었다.
“하… 우리 로운이 이렇게 대단해서 어쩌지? 그 대단하다는 태운 광고에서 그런 극찬을 받다니. 그나저나 그 디렉터 양반 암만 생각해도 진짜 웃기네. 설마 다음 촬영 때도 또 그러는 건 아니겠지?”
매니저의 말은 씨가 되었다.
두 번째 컨셉이자 두 번째 시리즈의 촬영 날.
“안녕하세요.”
“…….”
로운은 이번에도 말이 없는 이진명과 마주하게 되었다.
‘아니, 표정만 무표정하면 뭐하는데요.’
[업보 수치가 5 감소…….] [업보 수치가…….]자꾸만 띠롱거리며 감소하는 수치들이 대신해서 말하고 있는 것을.
로운이 은은한 미소를 띠자 지켜보던 조수가 보다못해 이진명의 옆구리를 퍽 찔렀다.
“아, 뭐해요. 디렉터님! 오늘 준비하겠다고 이틀째 밤 샜으면서! 그런 거나 얘기해서 점수를 딸 생각은 못할망정 오늘도 이러면 어떡해요?”
로운은 이진명의 프라이버시를 지켜 주기로 했다.
대신 궁금한 것을 물었다.
“이틀이나요?”
“어쩐지 세트장이 영 심상치 않아 보이더라니…….”
첫 번째 촬영때도 거대한 스튜디오 크기에 놀라고 그 안의 세팅에 또 한 번 놀랐었건만.
두 번째 촬영인 오늘은 그보다 더했다.
실제로 있을 집을 옮겨온 것처럼 아예 세트장을 마련해 놓은 것이다.
“힘을 아주 빡 주셨네.”
“아휴. 말도 마세요. 우리 디렉터님이 어찌나 성화던지. 진짜 이틀 전부터 나와서 세세하게 위치 정하고 픽스하고 또 옮기고 픽스하고. 장난이 아니었다니까요? 하나같이 아직 출시 전인 제품이라 우리가 함부로 만지지도 못하고. 저분들이 진짜 고생하셨죠.”
매니저가 은근하게 묻자 조수가 자판기처럼 썰을 쏟아냈다.
과연 조수의 말처럼 한편에 서 있는 태운 직원들의 얼굴에 드리워져 있는 피곤이 심상치 않다.
이진명이 얼마나 그들을 닦달해 가며 디스플레이를 신경 썼는지 알 것 같았다.
“자, 그럼 테이크 1, 가겠습니다!”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었다.
총괄 디렉터와 메인 모델 사이의 알력다툼인 줄 알았던 저번 촬영과는 분위기부터가 달랐다.
이제는 뚝딱이는 분위기가 왜 그런지 다들 알고 있는 덕이었다.
물론 한결같은 부분도 있기는 했다.
‘저분은 여전히 말을 안 하시네?’
디렉팅을 제외한다면 이진명은 여전히 로운에게 몇 마디 말밖에 하지 않았다.
-이로운 씨.
-이리 와서 보세요.
-어떻습니까?
처음에는 저 짧은 말이 눈치를 주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뭐, 그럴 수도 있지. 모든 사람이 다 말이 많아야 하는 건 아니니까!’
상대가 말이 없다면 이쪽에서 그 빈 자리를 채우면 될 일이다.
‘애초에 그렇게 꽉 막히고 딱딱한 사람도 아닌 것 같고.’
오해하고 있던 저번 촬영도 로운이 자체 해석을 덧붙였어도 오히려 칭찬을 하지 않았던가.
자신의 권위에 도전한다고 그 어떤 의견조차 받지 않는 감독이 수두룩한 것이 이 판이다.
그러나 이진명은 달랐다.
오히려 로운이 의견 내는 것을 몹시 달가워했다.
“디렉터님, 이 부분에서는 혹시 이렇게 한 번 가 보면…….”
로운이 이렇게 말을 꺼낼 때마다 눈이 반짝이고는 했으니까.
물론 제대로 된 답변은 입에 풀을 칠한 것인 양 돌아오지 않았지만.
뭐,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업보 수치가…….]대신해서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가 무엇보다도 더 정확하게 이진명의 마음의 소리를 알려 주고 있었으니까.
로운은 더 이상 이진명이 어렵지 않았다.
‘그런 것치고 저 뚝딱이는 반응은 왜 더 심해지는지는 모르겠지만…….’
친해져 보겠다고 쉬는 시간에 가서 말을 걸어 본 게 잘못이었을까.
“디렉터님. 지금 커피 코로 마시고 계십니다.”
“쿨럭, 푸업, 쿨럭!”
“우리 디렉터님 진짜 어쩌지… 내가 십 년을 함께하면서 이런 모습 진짜 처음인데…….”
“켁! 케엑!”
“아우, 그나저나 로운 씨. 우리 씨지팀이 너무 좋아하던데요. 손볼 게 없다고. 이게 우리가 배우가 메인은 아닌데, 어쩌다 보니 메인이 되게 생겼어요.”
“제가 뭘 한 게 있나요. 다 잘 찍어 주신 덕분이죠.”
“무슨 그런 소리를 하세요. 우리 디렉터님이 로운 씨 칭찬을 얼마나… 아야! 아, 왜 때리고 그러세요!”
“켁, 쿨럭, 시키지도 않은 말, 하지, 말, 물, 물 좀……!”
이진명의 삐걱거림이 좀 더 심해진 듯해 미안해져 버렸다.
진짜 사레가 들었는지 아니면 물을 핑계로 때리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시스턴트의 등짝으로 이진명의 손바닥에 퍽퍽 날아들었다.
여하튼 그 덕에 촬영시간은 좀 늘어났지만 촬영 자체는 무사히 잘 수월하게 끝났다.
그렇게 또 한 번의 촬영을 거쳐 세 번째 일정까지 모두 마무리되었다.
마침내 모든 촬영일정이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