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of a former idiot who became a top star RAW novel - Chapter (62)
전직 망돌이 탑스타 된 썰 푼다-62화(62/110)
62
재벌가.
막강한 재력과 넘치는 자본을 가진 집안을 뜻한다.
‘돈이 모이는 곳에는 언제나 잡음이 꼬이기 마련이고…….’
로운이 처음으로 본 재벌, 태운의 서 회장의 집안도 그러했다.
서 회장이 단단하게 중심을 잡고 있지만 그 밑의 아들들은 아직도 서로 알게 모르게 반목하고 있다는 사실을 국민 모두가 알 정도였다.
‘그래서 지긋지긋하다고 집을 나간 사람도 있었지.’
그게 이번에 골수 이식을 무사히 받게 되었다는 막내 증손자 가족이었다.
“…….”
“…….”
남자의 서늘한 눈이 로운을 말없이 쳐다본다.
어째서인지 못해 먹겠다며 뛰쳐나간 서 회장 막내아들 일가의 이야기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게 예사롭지 않다.
저 위압감이 느껴지는 서늘한 분위기도 그러했지만.
잘생겼다는 공통점을 제외한다면 로운을 전혀 닮지 않은 생김새의 남자.
그러나 로운은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저 남자는 재벌이며, 동시에…….
“…형?”
그의 형이었다.
로운을 서릿발 같은 눈으로 내려다보던 남자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래. 오냐. 내가 네 형이다. 용케 잊지는 않은 모양이구나?”
남자가 단단하게 끼고 있던 팔짱을 풀었다.
벽에 기대어 있던 남자가 몸을 일으키며 로운의 앞으로 다가왔다.
“하도 메시지를 맛있게 씹어 잡수시기에 형이 있는지조차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말이야.”
“그… 죄송합니다……?”
“죄송한 건 알기는 하냐? 내 연락을 다 씹은 건 그렇다 치자꾸나. 근데 그것도 모자라 어머니께 연락은 왜 안 하는데? 이게 귀엽다 귀엽다 하니까 아주 형 말이 우습게 들리지?”
고상한 말투로 칼날 같은 질책이 날아올 것만 같던 고고한 인상의 남자.
그러나 정작 상대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뭔가 익숙한데?’
고상하게 시작되지만 끝으로 갈수록 점점 날것이 되어 가는 저 말투.
메시지를 보낸 이와 동일인이 틀림없었다.
“그런 건 아니고…….”
“이래서 오냐오냐 키워서는 안 됐는데. 하…….”
남자가 머리를 스윽 쓸어올렸다.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분위기 있는 모습이었지만 로운에게는 달리 보였다.
‘…본체가 속을 많이 썩였나 본데?’
말 안 듣는 말썽쟁이 동생을 둔 환장한 형의 모습,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인식하자마자 긴장이 풀렸다.
집 사이즈를 보고 알게 모르게 겁을 집어먹었던 모양이었다.
“어디 한번 무슨 이유인지 들어나 보자.”
그야 영혼이 바꼈으니까요?
그치만 그렇게 대답할 수는 없다.
가족을 보러 왔다가 병원으로 끌려 갈 수는 없는 일이니까.
‘기억상실증 얘기를 꺼내도 되나?’
아직은 형만 보기는 했지만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는 법.
본체 가족의 분위기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건 확실했지만.
‘이런 집이라면 모를 수가 없을 것 같긴 한데.’
여전히 의문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알면서도 연락을 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러다 보니 자연히 답할 수 있는 선택지가 얼마없었다.
로운은 눈을 굴리다 가장 무난한 답을 골랐다.
“어쩌다 보니……?”
“아. 어쩌다 보니 이 형님의 연락도 맛있게 씹어 드셨고 어머니께 연락도 못 드렸다?”
남자가 코웃음을 쳤다.
“그래서, 태운 광고도 어쩌다 찍은 거고?”
그건 진짜로 어쩌다 보니 찍은 게 맞았다.
“네.”
“하. 뭐 잘했다고 그렇게 당당하게 대답을 하냐, 대답을? 형이 그렇게 형 회사 광고부터 찍으라고 했을 땐 집안 후광 덕 보기 싫다고 그렇게 난리 난리를 치더니만. 뭐? 태운?”
이건 상당히 의외였다.
인별그램 같은 걸 보면 본체는 과시욕이 상당히 많은 타입 같았는데.
‘둘 중 하나겠군. 자수성가하겠다는 열정 넘치는 마음이었거나, 아니면 정말로 가족이랑 문제가 있었다거나.’
아무리 생각해도 전자는 아닌 것 같고.
후자라고 하기엔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알 수가 없는 게 문제다.
진짜로 재벌가라면 본체가 이걸 이용하려 들었을 텐데 말이다.
“이게 아주 사람 복장을 참 희한하게 터트린단 말야?”
일단 이쪽이 연락을 안 하고 본의 아니게 무시한 건 사실이기는 했다.
터진 복장에 심심한 조의를 표하며 얌전히 눈만 굴리는데.
“어디서 눈을 그렇게 똥그랗게 뜨는데? 그렇게 귀엽게 쳐다본다 해서 봐줄 줄 알아?”
경악스러운 말이 들렸다.
뭔가 엄하게 말하려는 것 같기는 한데.
내용에서 다 글러먹었다.
‘귀엽… 똥그……?’
성인 남성으로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단어다.
설마 이래서 본체가 집안에 학을 뗀 건가?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복에 겨워 배가 불러 터졌었네.’
본체에 대한 한심함만 추가로 적립되었다.
설마하니 이런 취급 때문에 집을 나간 건 아니겠지?
‘하지만 왠지 그럴 것 같단 말이지.’
한심한 한편, 부럽기도 했다.
적어도 집안을 좀먹는 버러지 취급보다는 낫지 않은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아이 취급보다는 넘치는 사랑을 받는 쪽이 두말할 것 없이 훨씬 더 낫다.
“하여간. 그렇게 예쁘게 입 다물고 있는다고 형이 아직도 봐줄 줄 알지.”
‘봐줄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해 로운은 상대가 초면이었지만 왠지 답을 알 것 같았다.
“그래. 내가 너한테 무슨 말을 하겠냐. 일단 어머니 곧 오시니까 오시면 안아 드리고 잘 달래 드려. 네 걱정 많이 하셨으니까.”
“네…….”
“잘못했다고 눈치 보는 거냐? 존댓말 징그러우니까 치우던가.”
“으… 으응.”
오랜만이라고 할지라도 이전의 본체와는 분명 여러모로 다를 것이다.
매니저가 늘 하는 말이.
-사람이 바껴도 어떻게 이렇게 바뀔 수가 있지. 하느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제발 기억 찾는 클리셰 같은 일은 없게 해 주세요. 그런 작품들 제가 싹 다 조사 버릴 테니까요.
이런 거였으니까.
‘가족이라면 모를 수가 없을 텐데.’
정말 몰라서 아무 말이 없는 건지 아니면 일부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로운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는 알 수 없는 눈으로 로운을 바라보더니.
“…그래. 착하다.”
툭.
머리 위로 손바닥을 올렸다.
그리고.
슥슥.
“……?”
“관리는 열심히 받고 있나 보구나.”
“……?”
“앞으로도 꾸준히 받아라. 돈 모자라면 형한테 말하고.”
그러더니만 몸을 돌려 위층으로 사라졌다.
남은 로운은 어땠냐면.
“……?”
물음표만 머리 위로 띄울 뿐이었다.
‘머릿결? 머릿결이 여기서 왜 나오는데?’
물론 관리를 잘하기는 했다.
직접 한 건 아니고 주기적으로 샵에 다니니 전문가들이 알아서 손질을 해 주는 덕분이다.
‘진짜 머릿결 확인한 거라고? 쓰다듬은 거 아니고?’
차가운 표정이나 하는 말을 들어보면 정말로 머릿결이 궁금해서일지도 모르지만.
직전까지 보인 어처구니없는 태도를 생각하면 의외로 쓰다듬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진짜 예측이 불가능한 곳이네.’
일단 집 크기부터 주눅 들게 만들더니만.
갑자기 귀여움인지 구박인지 반가움인지 모를 타박을 애정과 함께 쏟아놓고 가는 형이라니.
“거참…….”
하지만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첫인상이 독특하게 박힌 집을 로운이 천천히 돌아보았다.
응접실 크기만 해도 대단했다.
바깥에서 보며 감탄한 크기만큼 집 안도 어마어마하게 넓었다.
‘이 정도면 정말 재벌집 맞는 거겠지?’
응접실 한 면은 아예 장식장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단란한 가족사진이 나란히 진열되어 있었다.
“안 닮았는데……?”
어릴 적부터 기록같이 주욱 남겨져 있는 가족사진들.
애기 때는 생긴 것만큼이나 햇살처럼 활짝 웃던 본체는 청소년을 지나 성인이 된 어느 시점을 기점으로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음울하기도 하고 혼란스럽기도 한.
마치 이곳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초조함을 담은 듯한 얼굴.
‘부족함 없는 돈. 화목하기만 한 가족. 그런데 넌 뭐 때문에 그렇게 어두운 얼굴인 건데? 대체 뭘 감추고 있는 거지?’
로운은 유리 너머의 사진에게 물었다.
당연히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분체는 분명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
덮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로운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앞으로 그가 평생을 써야 할 몸.
더 이상 그 어떤 위험요소도 남겨 두고 싶지 않았다.
그때.
현관문 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돌아보니 사진에서 본 얼굴들이 거기에 있었다.
“왔구나.”
무뚝뚝해 보이는 중년 남자가 먼저 물었다.
형이 나이를 먹으면 딱 저렇게 될 것처럼 판박이가 따로 없어 누군지 알아보기는 어렵지 않았다.
“여보, 로운이가 왔어요.”
그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남자의 뒤로는 날카로운 인상의 차가운 미인이 막 들어오는 중이었다.
“어머, 그 애가 왔어요?”
알려 주지 않아도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본체의 어머니였다.
옆에서 아버지가 어머니가 벗는 코트를 받아들었다.
겉옷을 벗은 어머니가 표정 없이 문 앞에서 두 팔을 벌렸다.
“……?”
이 가족만의 특이한 인사법인가?
…는 그럴 리가 없었다.
‘아. 안아 드리라는 뜻이구나.’
어머니 옆에 서 있던 아버지가 힘껏 눈동자를 굴리며 눈치를 줬다.
로운이 주춤거리며 다가가 상대를 조심스레 껴안았다. 그러자.
꽈아악!
가녀린 체구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의 힘이 로운을 껴안아 왔다.
“잘 왔어, 우리 아가.”
그와 함께 더해지는 한마디.
그 말은 분명 로운에게 향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로운이 본체와 바뀐 지 모르고 있을 테니 이 말은 분명 본체에게 하는 말일 터.
“…….”
하지만 로운에게는 아니었다.
정수리에 벼락이라도 내리친 것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무언가 따뜻한 것이 왈칵 머리부터 쏟아지는 것 같았다.
따뜻한 물속으로 잠겨 드는 것도 같았다.
“허허. 로운이가 오랜만이라고 당신에게 많이 미안했나 보아요. 이렇게 기특하게 구는 걸 보면.”
자신도 모르게 울컥한 로운이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어머니만을 안고 있고 있었다.
그가 정신을 차린 건 옆의 아버지가 무뚝뚝한 표정 위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했을 때였다.
로운은 아쉬움을 감추며 상대를 끌어안은 팔을 풀었다.
‘아쉬워…….’
비록 자신을 향한 포옹은 아니었지만.
이런 무조건적인 사랑이 느껴지는 따뜻한 포옹은 처음이었다.
그의 기억 속에서 포옹이란 귀찮음이 역력한, 먹고 떨어지라는 투의 건성건성인 등 두드림 몇 번이 다였는데.
‘뭐지. 이 느낌은.’
따뜻한 손이 마지막까지 한번 꾸욱 쥐었다 놓아준 자신의 손을 로운이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로운을 온통 뒤흔든 이들은 잠시 옷을 갈아입겠다며 자리를 떴다.
혼자 남은 로운은 잠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여러 감정들이 밀려드는 것을 느꼈다.
우두커니 선 채로 감정의 홍수 속에서 로운은 속절없이 흔들렸다.
“뭐 하냐?”
로운이 정신을 차린 것은 먼저 올라갔던 형이 내려오며 그를 불렀을 때였다.
“어머니 들어가시던데. 안아 드렸어?”
“으응…….”
“또 안 한다고 뻗댔으면 혼내려고 했는데. 잘했어. 근데 왜 그렇게 멍하게 있어?”
형은 로운이 대답할 틈을 주지 않았다.
“식당으로 가셨을 거니까 우리도 가자. 밥 먹어야지.”
그러더니 너무 당연하다는 듯 먼저 앞서 나간다.
그 등을 보며 로운은 생각했다.
마치 이상한 세계에 떨어진 기분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