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of a former idiot who became a top star RAW novel - Chapter (69)
전직 망돌이 탑스타 된 썰 푼다-69화(69/110)
69
세 사람의 회의는 급물살을 탔다.
로운의 아이디어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덕이었다.
“난 멸치육수로 낸 국수를 넣었으면 좋겠어. 나 시골 가면 맨날 할머니가 해 주시던 거거든. 이건 국물만 미리 내놓으면 국수만 그때그때 삶아서 내면 되니까 손도 많이 안 가고 좋아.”
김봉근이 내는 의견을 강차헌이 받아적었다.
“강차헌 씨는 어릴 적 떠오르는 거 뭐 없어요?”
“붕어빵.”
“음?”
“붕어빵 먹었던 것 같은데.”
“그거 디저트로 하면 딱이겠다. 하긴. 요새 붕어빵 파는 사람도 많이 줄었다고 하더라. 사 먹으려고 현금 들고 다녀도 파는 곳이 없어서 못 사 먹게 되더라고?”
단박에 디저트까지 정해졌다.
“로운이 너는 어릴 적에 먹은 거 뭐 없어?”
“음…….”
어릴 적의 추억이라.
‘…라면?’
아버지는 항상 바깥으로 나돌았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대신해 두 형제를 건사하기 위해 일을 하시느라 바쁘셨다.
하나 있는 형도 늘 학원이다 뭐다 집에 늦게 들어왔었다.
홀로 있는 어린 로운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몇 가지 없었다.
‘그때 라면 한 개로 하루 두 끼를 먹었어서 지겹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짓을 다 커서 또 하게 될 줄은 몰랐었지.’
간의 균형을 깨지지 않을 정도로 절묘하게 물의 양을 맞추고 우선 면을 먼저 건져 먹는다.
남은 국물은 말라붙은 찬밥을 넣고 푹 끓여내면 졸아붙은 덕에 제법 맛있는 한 끼가 되었다.
‘…그치만 그걸 지금 말하면 분위기가 좀 이상할 것 같으니까.’
“저는 딱히 생각나는 건 없어요. 그보다, 지역농산물도 함께 사용하면 어때요?”
“확실히 국수만 있으면 심심하긴 하지. 그럼 비빔밥은 어때? 강원도는 곤드레 나물이 유명하거든.”
곤드레를 비롯해 고사리나 곰취, 시래기나 더덕도 유명하단다.
“아마 특판장에 팔지 않을까 싶은데. 이건 가 봐야 알 것 같긴 해.”
벌써 메인 메뉴 두 가지가 뚝딱 정해졌다.
“에피타이저가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순두부 유명하지 않아요?”
“아, 맞아. 순두부! 그거 거기에 오이 채썰어 넣고 간 좀 간간하게 맞추면 되게 맛있어. 건강식이기도 하고!”
차게 해서 먹으면 건강하고도 맛있는 에피타이저가 될 것 같았다.
“순두부도 받아올 수 있는지 한번 봐야겠다.”
몇 번 더 아이디어가 오가자 강차헌이 기록하고 있던 메모장이 가득 찼다.
“아, 이거 한 피디님이 보시면 배 아파 하시겠는데. 우리가 이렇게 쉽게 정할 줄은 몰랐겠지?”
크흐흐, 그렇게 웃는 모습이 한 피디에게 납치되듯 끌려온 원한이 상당한 듯했다.
“그럼 메뉴는 우선 이 정도로 하고 뭘 더하고 뭘 덜하면 좋을지는 만들어 보고 정하면 되겠네요.”
앞으로 남은 시간은 4일.
그동안 세 사람은 식당에 걸맞은 인재로 다시 태어나야 했다.
“근데 너희들 중에 혹시 나 보조해 줄 만한 사람 있어? 메뉴 보면 혼자서도 가능할 거 같기는 한데 만약의 경우 누가 도와줄 수 있으면 좋겠거든.”
김봉근의 말에 강차헌과 로운의 시선이 마주쳤다.
여기서 이긴다면 메인 셰프를 보조할 보조 셰프로 승격한다.
만약 아니라면…….
‘잡일꾼이지, 뭐.’
인원이 워낙 작아서 메인 셰프인 김봉근을 제외하고는 모두 멀티를 뛰어야겠지만서도.
“…얘들아? 너네 갑자기 눈에 불이 붙은 거 같은데.”
그렇게 시작되었다.
두 사람의 뜬금없는 요리실력 대결이.
* * *
결과만 말하자면 이렇다.
로운은 주방에서 쫓겨났다.
제작진이 삐까번쩍하게 맞춘 고급 가재도구에 새빨간 선혈을 묻힐 뻔한 뒤였다.
“로운이 넌… 행여라도 절대 칼 잡을 생각은 하지 마. 알겠어?”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한 김봉근이 신신당부를 했다.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시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정신 나간 미친 소리는 그만하고.”
심지어 강차헌까지 거기에 가세했다.
강차헌 역시 칼질을 하다가 거침없이 손가락까지 썰 뻔했던 로운을 보고 기겁하며 빼앗아 든 이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로운이가 간은 정말 기가 막히게 잘 맞추기는 하더라.”
김봉근은 나름 공정한 심판이었다.
“차헌이는… 음…….”
칼질부터 모든 조리과정까지 완벽하던 강차헌.
그에게 모자란 게 하나 있다면.
“간은 로운이에게 보게 하는 걸로 하자. 알았지?”
모든 결과물이 애매하게 맛이 미묘했다는 것이다.
분명 똑같은 재료로 정량을 지켜 칼같이 맞춘 순서로 시간까지 정확히 지켜 조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뭐지?’
한 입을 뜨고 나면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반대로 로운은 조리 과정도 엉망에 재료 손질도 와장창 그 자체였지만 결과물은 상당히 준수했다.
“너네를 섞어서 반으로 나누면 딱일 텐데.”
어떻게 이렇게 능력치가 각기 다른 곳에 몰빵될 수 있냐며 김봉근이 혀를 찼다.
“무슨 그런 무서운 말씀을 하세요, 형.”
“그런 끔찍한 말 하시는 거 아닙니다.”
“…너네 묘하게, 아니, 대놓고 사이 좋아 보이는 거 알지?”
여하튼 로운이 조리에 소질이 없는 관계로 강차헌이 여차할 때 보조 셰프 역할을 하기로 했다.
로운의 재능은 다른 곳에서 빛이 났다.
“로운이 너, 손이 야무지다……?”
그것을 알게 된 것은 세기의 대결을 끝낸 후 뒷정리를 하는 과정이었다.
너저분하던 주방을 로운이 순식간에 깔끔하게 만든 것이다.
개수대에 얹어놓은 그릇은 뽀득뽀득했으며 바닥은 광이 났다.
조리대 또한 언제 지저분했냐는 듯 물 자국 하나 없이 번쩍거렸다.
“그럼 로운이 너는 시간 빌 때 주방 정리 좀 같이 도와줘.”
어느덧 각자의 역할까지 척척 정해졌다.
‘의외로… 괜찮은데?’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 강차헌까지 있어서 앞으로가 고달프리라 생각했건만.
한 피디의 인선 능력이 생각보다 더 뛰어난 모양이었다.
의외로 합이 잘 맞아 들어갔던 것.
생각보다 더 순조로운 진행이었다.
* * *
얼추 기틀이 잡혔다.
시간을 확인하자 어느덧 늦은 오후였다.
“얘들아. 뭐라도 먹고 하자.”
슬슬 마무리가 돼 가는 것 같자 김봉근이 피곤한 얼굴로 말했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어느새 제법 친근해진 덕인지 말투가 처음보다 훨씬 편해진 상태였다.
“이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나부터 잘 먹여 살려야지. 당 떨어지게 생겼다.”
“아. 그러네요. 언제 시간이 이렇게 됐지?”
“일단 오늘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들 했으니까 연습은 내일부터 하고 우선은 맛있는 거부터 먹자. 피디님, 저녁도 직접 해 먹어야 하는 거 맞죠?”
파업을 선언하며 거실에 널브러진 김봉근이 한 피디에게 물었다.
셋이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시작했을 때부터 슬그머니 찾아와 옆에서 자리 잡고 흥미롭게 지켜보던 한 피디.
혹시나 하고 묻자.
“네, 그렇습니다. 직접 재료를 조달하여 요리해서 드시면 됩니다!”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한다.
“…일단 가죠.”
밤샘 촬영을 해도 일절 피곤함을 못 느끼는 듯했던 강차헌마저도 어쩐지 피로한 얼굴이었다.
“앞으로 장을 보실 때는 이 카드를 쓰시면 됩니다!”
한 피디가 강차헌에게 카드 하나를 내밀었다.
지역 마스코트가 그려진 카드로, 해당 지역에서 사용할 수 있는 화폐가 충전된 결제 수단이었다.
“괜찮을까요? 설마 계산하는데 0원이고 그런 건 아니겠죠? 막 벌어서 채우라고 한다던가…….”
하도 뒤통수를 맞아서 그런가.
저절로 불신의 눈길이 간다.
“어? 그거 좋은 생각인데요? 로운 씨, 역시 아이디어가 아주…….”
“이로운. 입 다물어.”
“…….”
세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이 입을 다물었다.
“아니, 여러분? 저기요? 오디오가 비는데요?”
“…….”
그러거나 말거나.
‘틈을 주면 안 돼.’
이상하다.
분명 그가 촬영하는 건 예능인데.
어째 느낌은 생존 서바이벌을 촬영하는 것만 같다.
순조롭다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자칫하다가는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짓눌릴 것만 같은 위기감이 로운을 엄습했다.
사방이 빌런 천지였다.
* * *
다행히 제작진이 내준 카드는 한도가 따로 없었다.
“피디님. 진짜 이러시기에요?”
“아니, 여러분이 진짜 걱정하실 줄은 몰랐죠. 설마 제가 그렇게까지 악독하겠습니까?”
네…….
그러나 로운은 뇌에 힘을 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낄낄거리는 피디는 이미 악마 그 자체였다.
‘저 피디님이라면 분명 더 하고도 남으실 거야.’
이 짧은 시간 동안 로운이 제법 한 피디라는 인물을 파악한 덕분이었다.
그들이 장보기로 결정한 곳은 지역 농수산물을 도매가로 판매하는 식자재 마트였다.
각 농가에서 납품 받는 농작물들을 직유통하여 유통 수수료를 최소화하는 취지로 설립된 판매처였다.
덕분에 소비자 또한 합리적이고 저렴한 가격에 질 좋은 농작물을 구매할 수 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그야말로 일석이조인 곳인 셈.
그런 좋은 곳에서 세 사람 사이에는 기묘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장을 보고 계산을 코앞에 두었을 시점부터였다.
이유는 하나.
‘진짜 이 카드… 믿어도 되나?’
한 피디를 겪어본 김봉근이나 강차헌이 강력한 불신의 빛을 내비쳤기 때문이다.
-한 피디님이라면 실시간 미션으로 뭔가 조건을 걸지도 몰라.
-아니면 돈을 빌려주고 갚으라고 하던가.
심지어 강차헌은 여차하면 자기가 계산하겠다며 카드 하나를 빼두었다고 은밀하게 알려 주기까지 했다.
‘한 피디님… 당신이란 사람은 대체…….’
평소에는 참 좋은 사람이라지만.
프로그램이 관련돼 있다면 상상 그 이상을 보여 주는 사람이란다.
“에이이. 제가 그렇게까지 악독하진 않습니다. 그치만 좋은 아이디어니 다음번에 고려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무사히 결제된 것을 확인한 멤버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기가 무섭게.
싱글벙글 웃는 한 피디가 다가오며 멤버들을 놀렸다.
‘…한 피디님 그렇게 안 봤는데.’
얄밉다.
이렇게까지 사람이 얄미울 수가!
수더분한 인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마치 전생 같았다.
결제 직전 가슴 졸인 것을 제외한다면, 장보기는 나름대로 즐거웠다.
‘지역 살리기 캠페인의 일환이라더니. 이것도 컨텐츠가 될 수 있구나.’
저녁 식사용 쇼핑을 할 뿐인데 왜 개인 카메라 감독까지 따라붙었나 했더니만.
넓은 마트 내부를 세세히 촬영하려는 계획인 모양이었다.
멤버들이 쇼핑 카트에 집어넣는 항목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로운을 담당하는 카메라 감독은 로운이 담은 제품을 확인 후 꼭 따로 인서트를 따기도 했다.
“웬 거여?”
“연예인인가 본데?”
“유명한 사람이여?”
웬 큼직하고 훤칠한 남자들이 마트 안을 휘저으니 신기하게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몰렸다.
구경은 물론이요, 그 와중에 일행들을 알아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심지어 로운을 보고 깜짝 놀라며 다가오는 어르신도 계셨다.
“아니, 이게 누구야? 이젠 안 아픈 거여? 아이고 장해라!”
마치 죽었다 살아온 사람을 본 것처럼 깜짝 놀라시며 로운을 몹시 대견해하시기까지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