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of a former idiot who became a top star RAW novel - Chapter (84)
전직 망돌이 탑스타 된 썰 푼다-84화(84/110)
84
“이게 다 뭐예요?”
매니저가 가져온 서류를 보며 로운이 물었다.
입꼬리가 귀에 걸릴 만큼 싱글벙글한 매니저를 보면 분명 좋은 소식일 터.
“광고야.”
“…광고요?”
작품 제안서가 아니라?
“그래. 놀랍지? 다 널 꼭 쓰고 싶다고 연락 온 것들이야. 흐흐. 페이도 다 괜찮아. 물론 태운보다는 아쉽긴 한데 거기는 뭐 어나더 클래스고.”
텁!
호기심이 돋은 로운이 슬쩍 몇 개를 살펴봤다.
곧장 눈이 커다래졌다.
‘아니, 0이 다 몇 개야?’
괜찮은 수준이 아니었다.
몇 개만 골라잡아도 어마어마한 금액이 뚝딱 떨어지게 생겼다.
“코스메틱, 식품, 가전… 말만 해. 골라잡을 수 있으니까!”
맡은 연예인을 찾는 곳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매니저의 어깨도 함께 치솟는 법.
이전 회사에 갈 때마다 괜히 주눅 들었다면, 요즈음의 매니저는 아주 어깨가 활짝 피다 못해 하늘을 고공행진했다.
오늘도 그랬다.
‘우리 로운이가 이거 가져가면 엄청 좋아하겠지!’
매니저는 발걸음도 가볍게 회사에서 빠져나와 곧장 로운의 집으로 달려온 참이었다.
이제 우리 애도 슈스야!
광고 몇 개나 찍는 슈스라고!
그런데 로운의 반응이 의외였다.
“형, 광고 말고 작품 들어온 건 없어요?”
“…으응? 광고는 싫어?”
“싫은 건 아닌데… 전 배우니까 본업에 더 집중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그럼 저번에 들어온 예능 파일럿은 어때? 주말 황금시간대에 방영 예정이라는 그거.”
합류할 멤버들 면면이 아주 화려하게 구성된 예능이었다.
물론 강차헌처럼 일당백의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름만 대면 웬만한 사람들이 알 만한 수준은 되었다.
“그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굳이…….”
로운이 말끝을 흐렸다.
딱 봐도 내키지 않는 기색이었다.
“왜, 왜?”
매니저는 당황했다.
분명 좋아할 줄 알았는데?!
광고가 이만큼 들어왔다는 건 로운의 인지도가 그만큼 상승했으며 업계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보니까 캐릭터가 숲식당이랑 겹쳐서요. 굳이 지금 시기에 이미지 소모를 할 이유도 없을 것 같고…….”
“……!”
하늘까지 치솟은 어깨를 하고 왔던 매니저는 누군가 뒤통수를 뎅 하고 친 것만 같았다.
‘아니, 우리 로운이가 저렇게 신중하고 사려 깊은 생각을 하다니?’
맞는 말이었다.
더불어 자신의 실력에 자신감이 없으면 할 수 없는 말이기도 했다.
그만큼 어려운 길이기도 하고.
이유인즉슨, 다음 작품이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 작품이 뜨면 대부분은 최대한 그 이미지를 골수까지 이용하려고 든다.
이미 성공이 보장된 길 vs 모험하기.
라면.
누구든 전자를 고르지 않을까?
“로운아….”
그러나 로운은 다른 길을 택했다.
아주 손쉬운 길을 놔두고 험난할지도 모르는 정석 그 자체인 길을.
“…형 또 울어요?”
“또라니. 형이 언제 울었다고 그래.”
“그걸 기억 못 하는 것도 신기한데요, 형…….”
이제는 당황하지 않고 능숙하게 근처 티슈를 가져다준다.
“그래. 배우는 작품으로 승부해야지.”
비록 코를 푸느라 코맹맹이처럼 소리가 나갔지만 로운은 용케 그 말을 알아들었다.
“승부요……?”
대체 이 형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싶은 얼굴이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왜… 왜 또 울지? 내가 또 망나니 소리를 했나?’
승부니 뭐니 하는 얘기를 하는 거 보면 어디서 소년 만화를 감명 깊게 읽고 온 것 같기도 하고…….
로운은 깊게 생각하기를 그만두었다.
매니저는 지나가는 나뭇잎 하나에도 눈물을 글썽일 사람이었다.
“알았어. 그럼 일단 광고나 예능은 확실히 할 생각이 없다는 거지?”
“네. 적어도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행히 예능 방영 전보다는 퀄리티 있는 작품들의 숫자가 늘기는 했다.
이전까지는 귀로의 채유정 원툴 이미지였다면 숲식당 이후에는 다면적인 모습을 보여 줘서인지 그나마 제법 다양한 배역이 들어왔으니까.
‘그치만 문제는 영 괜찮아 보이는 게 없다는 거지.’
굳이 판별안이 아니더라도 썩 괜찮아 보이는 작품의 수가 현저히 적었다.
그나마 몇 개는 괜찮아 보였지만…….
‘판별안과 만석꾼의 혜안이 어긋날 수도 있는 건가?’
예상치 못한 결과에 멈칫하게 되었다.
만석꾼의 혜안으로는 값어치 있는 작품이 맞았지만, 판별안으로 확인했을 때의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던 것이다.
‘나를 대입했을 때의 결과값이 안 좋게 나온 거라면 이렇게 다른 결과도 납득은 가.’
태운의 CF가 그 예다.
물론 광고 자체의 반응도 좋고 태운 쪽의 매출이 급상승하는 결과를 낳았다지만.
업보 수치만 놓고 보자면 플러스가 되는 만큼 마이너스가 되었다고나 할까.
‘완성도나 작품성 외에 결과값에 개입할 수 있는 수치들이 여러 가지 존재할 수 있다는 거겠지.’
이를테면 떠도는 소문 같은 것들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고려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러니 아무거나 무턱대고 고를 수도 없었다.
기껏 황금빛 찬란한 성공을 자신했는데 오히려 자칫하다가 자충수를 두게 될 수도 있으니까.
‘독이 든 성배 같네.’
다행히 매니저는 로운의 생각을 지지해 주었다.
대체 뭘 어떻게 생각했는지.
“로운아. 형은 널 응원한다. 네가 걷는 그 진정한 배우로의 길, 형이 뒤에서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힘들 땐 얼마든지 형한테 말하고!”
이런 알 수 없는 말을 하기는 했지만.
아무튼 좋은 게 좋은 거였다.
* * *
좋은 일은 또 있었다.
[그동안 잘 있었느냐!]“청화 님!”
바로 오래도록 자리를 비웠던 청화가 돌아온 것이다.
[으응?]뿔과 꼬리가 달린 물방울이 멈칫했다.
[그간 무얼 했길래 업보 수치가 그리 줄어들었느냐……? 혹시 시간이 10년이라도 흐른 것이냐?]숲식당에서 자주 본 물음표 이펙트가 청화의 머리 위로 뜨는 것 같았다.
[아닌데. 얼굴이 아직 앳된 걸 보아하니 10년까지는 아닌데? 설마 그 반절이라던가……?]“네? 아니에요. 아직 반년도 안 지났어요. 갑자기 10년은 무슨 소리세요?”
[왜. 너도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니라. 신선놀음에 도끼 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얘기 말이다.]“아. 들어본 적 있어요.”
[그거, 실화니라.]“네?”
띠링!
[별빛 486이 그 말이 맞다며 근엄하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별빛 783이 그렇게 될 줄 몰랐다며 참회의 눈물을 흘립니다!] [별빛 486이 옆 관조자를 향해 부주의했다며 상대를 나무랍니다!] [아니, 이 영감들. 고새 또 신나 가지고는! 예전에 한 번 말한 적 있었던 것 같은데, 인계와는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고.]“네. 기억나요.”
[영감탱이들 말이 워낙 많았던 탓도 있지만, 시간의 흐름이 여엉 제멋대로 달라져서 말이야. 그래서 몇 년이나 흐른 줄 알고 깜짝 놀랐지 뭐냐.]하마터면 큰일 난 줄 알았다며 청화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나저나 정말 무슨 일이느냐. 나라까지는 아니고… 마을 하나를 구하기라도 했느냐? 아니면 그새 고 영화라는 것을 또 찍기라도 하였어?]귀로가 개봉함과 동시에 미친 듯이 감소하던 업보 수치가 떠올랐는지 은근하게 물어온다.
“아뇨. 영화는 아니고 예능을 하나 찍었어요.”
대충 설명을 들은 청화가 혀를 내둘렀다.
[정말이지 놀랍구나. 놀라워. 그때도 생각했던 것이지만 정말 신기한 일이야. 그런 일로 업보를 상쇄시킬 수 있다니 말이야. 하긴. 세상의 일을 내가 다 알았다면 이러고 있지도 않았겠지만.]자그마한 물방울이 추욱 쳐진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맞다. 이 몸에게도 좋은 소식이 있느니라! 내 말도 안 되는 의뢰를 내거는 영감탱이들과 푸닥거리를 하고 온다지 않았더냐? 이 몸이 이겼느니라!]언제 처졌냐는 듯 다시 의기양양하게 돌아와 반짝거리며 존재감을 뽐냈다.
[세 번째 의뢰는 두 번째 의뢰 같은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맞다. 세 번째 의뢰는 혹시 정해졌나요?”
[아직 조율 중이다. 흠흠. 불가능한 의뢰도 가능하게 만드는 걸 똑똑히 보았으니 다들 눈치가 있으면 어지간한 공덕으론 택도 없는 걸 알겠지!]뭔지는 몰라도 뭔가 그들 사이에 오가는 이야기가 있는 모양이었다.
“지금이 딱 좋은 시기인데. 조금 아쉽네요.”
작품도 없고 강제 휴식기나 다름없는 지금.
의뢰를 이행하기 딱 좋은 타이밍이다.
[조급해하지 말거라. 마음이 급하면 될 것도 안 되느니라.]청화가 평소답지 않게 연륜이 묻어나는 조언을 건넸다.
그러고 보니 평소에 분노한 치와와처럼 굴어서 잊고 있었다.
청화가 몇백 년이나 묵은 존재라는 것을.
[마음을 편하게 먹으면 모두 다 순리대로 될 것이야.]“…일이 없으면 자꾸 예전 기억이 나서요. 그때처럼 될까 봐 저도 모르게 불안했었나 봐요.”
[본래 네 것이 아닌 운명이었다. 그러니 그때의 삶이 기구한 것도 당연했던 일이니라. 이제는 이 몸이 함께 있으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느니.]오랜만의 해후를 나눈 다음 날.
“내일모레요? 원래 다음 주 주말 아니었어요?”
오랜만에 공식 스케줄이 잡혔다.
“어어. 그랬지. 숲식당 특집 편성 얘기 기억하지? 그게 생각보다 빨리 잡혔나 봐. 그래서 좀 급하게 연락이 왔어.”
다름 아닌 숲식당의 특별편용 촬영이었다.
예전 한 피디에게 듣기로는 정규 편성 회차가 모두 마무리된 다음 시기를 조정한다고 들었는데.
‘그래야 인기를 은근히 오래 끌고 갈 수 있댔었나?’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당겨진 것을 보면 숲식당에 대한 반응이 방송국의 생각보다 더 좋았던 모양이었다.
아예 화제를 이어서 가져갈 생각을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괜찮지? 아니면 지금 연락해서 바꿔 보자고 말해도 되니까 편하게 말해도 돼.”
“아뇨. 괜찮아요. 갈게요. 안 그래도 할 일이 없어서 심심하던 참이었거든요.”
마음을 편히 먹으면 모든 게 순리대로 풀린다는 청화의 조언이 바로 어제의 일인데.
‘이게 이렇게 된다고?’
물론 특별 편성용 추가 촬영은 얘기가 되어 있던 일이기는 했지만.
이렇게 당장 시기가 앞당겨질 줄은 몰랐다.
‘그러고 보니 정화수 출신이니까 말이 되는 것 같기도……?’
이틀이란 시간은 순식간이었다.
촬영은 TVX 사옥의 스튜디오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다.
스태프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장소에서 로운은 몇 주 만에 보는 낯익은 얼굴들을 오랜만에 마주하게 되었다.
“아이고! 로운 씨! 오랜만이에요. 얼굴 좀 봐. 신수가 아주 훤해졌네!”
“오랜만에 봬요, 피디님. 그런데 지금 카메라 돌아가는 거예요……?”
스튜디오에 들어서기도 전.
엘레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카메라가 따라와 어리둥절하게 묻자 저 멀리서 김봉근이 파하핫 웃음을 터트리는 소리가 들렸다.
“거봐요, 피디님. 나만 이상하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니까요? 무슨 프로그램이 오프닝도 없이 이래 막무가내로 시작하는데?”
“지금 카메라 돌아가는 거 맞으니까 얼빠진 얼굴 그만하고, 이로운. 이거나 들어봐.”
“어, 네?”
옆에서 양손 가득 음료 캐리어를 든 강차헌이 불쑥 튀어나와 한 손에 있던 것을 건넸다.
마침 옆에 있던 엘레베이터가 동시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얼떨결에 받아든 로운이 물음표를 띄운 사이.
한 피디가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를 이어 갔다.
“요새 트렌드가 이런 자연스러운, 내추럴한 방송이 대세잖아요.”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사방이 투명한 유리벽으로 된 스튜디오에 앉은 채였다.
주제는 주변 반응을 지나 최근 근황 토크로 이어진 상태였다.
“그날 눈을 뜬 거 같다니까요? 아니, 그게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다니까. 온갖 잡생각이 다 사라지는데, 정신수양이 되는 것도 같고?”
이게 다 로운의 덕이라며 한 피디가 말했다.
“피디님, 그러다 귀농하시겠는데?”
“진짜 보람차다니까요? 나만 이런 보람을 느끼기는 너무 아쉬워서 다음 시즌에는 농사를 메인으로 가 볼까 싶다니까요?”
오소소.
갑자기 소름이 돋는 것 같다.
왠지 안경 너머 맑게 반짝이는 한 피디의 눈에 광기가 도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