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of a former idiot who became a top star RAW novel - Chapter (85)
전직 망돌이 탑스타 된 썰 푼다-85화(85/110)
85
혹시 잠자던 괴물을 깨운 게 아닐까?
저 맑은, 그러나 광기로 반짝거리는 눈이 왠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누가 섭외될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미안한데?’
왠지 모를 죄책감이 치솟았지만 로운은 슬그머니 외면했다.
아니, 누가 한 피디가 거기서 희열을 느낄 줄 알았겠냐고.
그는 다음 시즌 누가 출연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상대를 향해 미리 심심한 사과를 속으로 전했다.
맑은 눈의 광인이 그를 바라보며 눈을 반짝이는 것을 모르는 채로.
“다들 잘 지낸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자, 그러면 이제 영상회를 시작하려 합니다. 자, 박수!”
근황 토크를 어느 정도 나눈 뒤에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출연진들이 직접 방영분을 보고 비하인드 썰을 푸는, 일종의 후일담 형식이었다.
주가 된 것은 특집편으로 제작된 미방영분 모음집이었다.
“이런 것도 방송에 내보내도 돼요?”
“아, 당연히 되죠, 되고 말죠. 얼마나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그래서 말인데, 시즌 2 얘기도 있거든요?”
어쩌다 보니 그들은 지하 쿠킹 스튜디오로 이동한 상태가 되었다.
“이야, 봉근 씨 솜씨는 진짜 여전하네요!”
뭔가 얼레벌레 진행되는 것 같았지만 본래도 얼레벌레 돌아가던 숲식당이었다.
짧게 끝나겠다 싶었던 촬영인데 이래도 되는가 싶었지만, 뭐.
‘원래부터도 제정신이 아닌 방송이었으니까…….’
갑자기 스튜디오 방송에서 쿠킹 클래스가 된 것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우리 오랜만에 모였으니 회식이라도 할까요? 숲식당 반응이 아주 좋은데 이에 대해 건설적인 이야기를 더 나누어도 좋을 것 같은데…….”
한 피디가 은근슬쩍 운을 띄웠으나.
“괜찮습니다.”
“어우. 피디님. 오늘은 여기까지 해요.”
“오늘은 조금…….”
세 메인 출연진의 철벽에 가로막혀 버렸다.
“쓰읍. 아쉬운데.”
그게 마치 통통하게 살이 오른 가축을 바라보는 눈빛인지라 세 사람의 마음이 한마음 한뜻으로 모아졌다.
어서 이곳을 탈출해야겠다고 말이다.
“우리끼리라도 뭐 좀 먹었으면 좋겠는데 한 피디님 알면 분명 카메라 들고 쫓아올 거 같아서 다음에 날 잡아 보자.”
생명의 위협, 아니 계약서의 위협을 받은 김봉근이 제안했고 나머지가 동의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기 전.
“세 갈래로 찢어지는 거야. 알겠지?”
김봉근이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진짜 그렇게까지 해야 돼요?”
“어. 그렇게까지 해야 돼.”
“로운아, 우리를 믿어. 한 피디님은 좋은 분이지만 가끔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니까?”
행여 한 피디가 따라붙을 것을 대비한 조치였다.
그리고.
“아니, 여러분! 정말 이러기 있어요?”
언제 따라 내려왔는지 한 피디와 카메라 감독들이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세 사람이 각자 세 갈래로 찢어질 것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진짜 이게 통하네?’
동시에 소름이 돋았다.
하마터면 정말로 여기서 시즌 2의 발목이 잡힐 뻔했다.
특집에는 오늘 촬영 분량이 두 번에 걸쳐 나눠져 방영이 될 예정이었다.
남은 분량은 특집편을 위해 찍은 각 출연진의 브이로그와 오늘 모니터링하지 않은 추가 미방영분으로 채워질 예정이라고.
만약 여기서 잡혔다면 시즌 2 예고편도 함께 나갔겠지만, 다행히 그런 끔찍한 불상사가 일어나는 일은 없게 되었다.
이대로 무사히 사옥을 나가면 오늘의 스케줄은 끝이다.
‘TVX가 요새 지상파보다 더 잘나간다더니만.’
지하에 쿠킹 스튜디오가 있을 때부터 알아봤지만 크기가 정말 어마어마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로운이 종종걸음을 치고 있을 때.
“……?”
문득 마주 오던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이곳은 방송국이고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이다.
그러니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너.”
그 사람이 마치 로운을 쫓아온 것처럼 어깨를 들썩이며 숨을 몰아쉬고 있다거나.
그를 죽일 것처럼 노려보듯 쳐다보며 다가오는 건 이상한 게 맞았다.
“…저요?”
“그래. 너.”
게다가 아예 대놓고 로운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다가서는 것은 아주 이상한 일이 맞았다!
혹시나 해서 주변을 휙휙 둘러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휴우. 널 찾기 위해 얼마나 힘들게 뒤지고 다녔는지 알아? 대체 발발거리며 어딜 그렇게 돌아다니는 건지. 너, 일단 따라와 봐.”
“네, 네?”
그사이, 성큼성큼 다가온 상대가 로운의 손목을 억세게 틀어잡았다.
어어, 하는 사이에 훅 끌어당겨졌다.
“저기, 죄송한데 사람 착각하신 거 같은데요……?”
“착각? 내가? 널? 그럴 리가 있겠어?”
상대가 코웃음을 쳤다.
절대 틀릴 리 없다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로운은 불안해졌다.
‘설마, 이거 또 본체의 업보는 아니겠지?’
대체 이놈의 업보.
어디까지 가는 것인가?
* * *
대체 이놈의 본체는 뭘 어떻게 했길래 방송국 한복판에서 멱살, 아니 팔을 잡혀 끌려가도 아무도 신경조차 쓰지 않는단 말인가?
‘아니, 그래도 나름대로 업보 수치를 많이 줄여 놓기는 했는데……!’
물론 아직도 마이너스에서 허우적거리고 있기는 했다.
“저기요, 잠깐만요. 대체 누구신지 말이라도…….”
일단 누구인지 파악부터 해야겠다.
그런데 돌아오는 답변이 까칠했다.
“조용히 좀 해 봐.”
“일단 그쪽이 누구신지 알아야 제가 뭐라고 말씀이라도 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상한 일은 그다음이었다.
“쉿. 조용히.”
상대의 눈동자가 문득 샛노랗게 빛난다 싶더니만.
“……?”
갑자기 입이 딱 붙은 듯이 막혀 버렸던 것이다.
“이제야 조용해지겠네.”
아까보다 한층 더 초췌해진 상대가 한숨을 쉬며 로운을 끌어당겼다.
‘맙소사.’
그제야 로운은 비로소 상대에게서 느껴지던 기묘한 위화감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아무도 이쪽에 신경을 안 쓰는 것부터가 좀 이상하기는 했는데.’
아무리 본체의 업보가 깊고도 깊다지만.
대한민국 공공치안의 수준이 그렇게까지 바닥일 리는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구경났다고 사진 찍는 사람도 없는 것은 분명 이상한 일이 맞았다.
그런데 설마하니 상대가 인외 존재였을 줄이야.
‘그나저나 대체 정체가 뭐지?’
이제 로운은 다른 의미로 걱정스러워졌다.
아무리 주변에 신비로운 존재들이 한가득이었으나 상대는 처음 보는 종류였다.
‘인간이 아닌 건 확실한데 사람처럼 생긴 거면… 귀신?’
설마 원한을 품고 죽은 귀신이 씌인 것이라던가?
그러던 때, 누군가가 로운을 불렀다.
“이로운?”
투명한 존재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지나가는 듯했던 로운의 발걸음이 멈춘 것도 그때였다.
어느새 다가온 강차헌이 로운의 반대쪽 팔뚝을 잡은 덕이었다.
세 갈래로 쪼개지기로 했던 것 같은데 언제 왔는지 모를 일이었다.
“뭐야. 너 왜 대답을 안 하는데? 저 사람은 또 뭐고?”
“이건 또 뭐야…….”
방해받은 상대가 몹시 신경질적인 태도로 몸을 돌렸다.
“…뭐야, 강차헌? 강차헌이 여기서 왜 나오는데.”
“나 압니까?”
모르는 게 이상한 거 아닐까?
로운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입이 막혀 있는 탓이었다.
“아, 이거 환장하겠네. 안 그래도 빡센데.”
순간 상대의 눈동자가 샛노랗게 변하는 듯싶더니만.
강차헌의 동공이 흐릿하게 풀렸다.
팔뚝을 잡은 손아귀의 힘마저 약해졌다.
“저 인간은 신경 쓰지 마. 몇 분 후면 알아서 정신 차릴 테니까.”
그사이, 상대는 다시 로운을 끌고 움직였다.
아까보다 훨씬 힘겨워 보였다.
아니, 그보다.
“저기, 그쪽 지금 피 토했는데요……? 음? 말이 나오네?”
“이건 신경 쓰지 마. 내가 필요 이상의 간섭을 하는 바람에 제약이 발동한 것뿐이니까.”
그러기엔 턱을 타고 흐르는 새빨간 선혈이 심상치 않다.
상대는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라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턱을 슥 훔치고는 로운을 끌고 마침내 인적이 드문 회의실로 들어와 문을 걸어 잠갔다.
그제야 로운의 몸도 자유로워졌다.
“아, 죽겠네.”
의자를 빼 털썩 쓰러지듯 앉은 상대가 쿨럭쿨럭 죽을 것처럼 기침을 해 댔다.
“그, 괜찮은 거 맞아요?”
“너 하나 못 나가게 할 정도로는 괜찮으니까 괜히 문 열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괜히 서로 힘빼지 말자고.”
충분히 협박으로 들릴 만한 말이건만 상대의 상태가 영 초췌 그 자체라 그런지 별로 위협적이지 않았다.
방금의 기침으로 터져 나온 피를 슥 닦는 모습이 영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강차헌 씨한테 별일 없는 건 확실한 거죠?”
“…제일 먼저 궁금한 게 그거야?”
의외네.
상대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다른 거 물어봐 봤자 안 알려 줄 것 같아서요.”
다른 사람들은 인식 자체를 못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강차헌은 그들을 볼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강차헌이 로운을 도우려 했다는 점이었다.
“그래. 강차헌은 별일 없을 거야. 나와 대화했던 것도 기억 못 할걸?”
“그럼 됐어요.”
“널 왜 여기까지 데려오게 됐는지는 안 궁금하고?”
“일단 그 피부터 좀 어떻게 하시는 게…….”
로운이 혀를 차며 겉옷을 벗어 건넸다.
이거 뭐 전설의 고향도 아니고.
입가를 뻘겋게 물들인 상대랑 대화를 할 필요는 없잖은가.
“아, 진짜… 모양 빠지게 이게 뭐야…….”
자기 꼴을 아는지 상대가 순순히 겉옷을 받아들었다.
침착하게 입가를 닦고 얼룩덜룩한 손까지 꼼꼼하게 닦더니 한숨을 푹 쉰다.
“일단 사과할게. 내가 좀 우아하지 못한 방법으로 데려왔지? 원래 내 방식은 이런 게 아닌데 급해서 어쩔 수가 없었어.”
어째 협박도 비실비실하더라니만.
상대가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술술 풀어 놓기 시작했다.
“너도 눈치챘겠지만 나는 인간이 아니야.”
그거야 눈이 노랗게 되었을 때부터 모르는 게 바보였다.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우리 같은 존재들은 인간에게 함부로 힘을 쓸 수 없어. 좋은 방향이든 아닌 방향이든 간에. 개입 자체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거든.”
방금 신명 나게 각혈을 한 것도 그 제약의 일종이란다.
만약 더 큰 힘을 써서 강제하려 했다면 그만큼 더 큰 제약이 가해졌을 거라고.
“사실 몇 달 전부터 너를 찾아 헤맸어. 정확한 단서는 없었지만 영감탱이들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았거든. 들리는 소문도 그랬고.”
영감탱이들. 익숙한 단어 선정이었다.
“그런데 이 치사한 영감들이 자기들만 독식하려고 네 정보를 꼭꼭 숨겨 놨단 말이지? 그래서 별수 있나. 직접 두 발로 뛰는 수밖에.”
문제는 단서가 없어도 너무 없다는 것이었다.
들어보니 강제로 초청되어 왔다는 유감이 싹 사라질 정도로 상대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그런데 갑자기 오늘 추척술을 걸어 뒀던 시계가 움직인 거야. 평소엔 미동도 없던 게 말이지. 그러니 내가 눈이 안 돌고 배겨? 어쩔 수 없이 방송도 내팽개치고 달려오는 수밖에.”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저를 왜 그렇게까지 찾으셨는데요?”
어째서 인간이 아닌 존재가 그를 그렇게까지 애타게 찾게 되었는지를.
상대의 눈이 로운을 직시했다.
“네게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