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of a former idiot who became a top star RAW novel - Chapter (86)
전직 망돌이 탑스타 된 썰 푼다-86화(86/110)
86
예상했던 대로였다.
“무슨 부탁이요?”
“일단… 들어준다고 해 줘.”
“네?”
“보은은 반드시 할게. 내 이름을 걸고.”
그건 좀 곤란하다.
무슨 일을 시킬 줄 알고 약속한단 말인가?
‘보증이라도 서게 하면 어떡하냐고.’
로운은 약속의 무서움을 잘 알았다.
잘못된 약속이 사람을 얼마나 괴롭게 얽매는지도.
“너만 할 수 있는 일이야. 너에게 해가 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거야. 내 존재를 걸고 맹세할게.”
“그치만 당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응? 진짜 몰라?”
애절함 한가운데에 미묘한 침묵이 끼어들었다.
“…네? 알아야 해요?”
“아니, 나 정도면 그래도 꽤 유명한데……?”
“그, 죄송합니다……?”
“아니. 죄송할 일은 아니지. 와. 나도 한참 멀었네. 자만하지 말아야겠어.”
상대가 한숨을 푹 쉬더니 자기소개를 했다.
“Re.D라고. 작곡이랑 음악 프로듀싱을 주로 하는데…….”
“네? Re.D요?”
“알아?”
알다마다.
“혹시 꽃이 피다랑 여름 밤바다 그리고 still I do를 만든 사람이 당신이라고요?”
계절마다 돌아오는 연금곡들과 노래방에서 특정 연령대 선작 1위를 당당히 기록하는 대표적인 곡들을 떠올리며 묻자.
“뭐, 엄밀히 말하면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 맞아.”
맞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더니 조금 의기소침해 보이더니 슬그머니 어깨가 펴진다.
“그치만 그건 인간들 사이에서 쓰는 이름일 뿐이고. 진짜 이름은 달라. 내 진명은 천이호. 오랫동안 이 땅에 터전을 잡고 살아온 천호지.”
그와 동시에 작은 회의실에 빛이 터졌다.
그 빛이 지나간 자리에는…….
“꼬리?”
작은 회의실을 꽉 채우고도 남을 거대한 꼬리가 있었다.
그것도 무려 열 개나 되는 꼬리가.
로운은 생각했다.
‘전설의 고향이냐 했더니 그게 진짜였네……?’
라고.
* * *
Re.D.
살아 있는 레전설로 불리는 프로듀서다.
오죽하면 로운조차 그 이름을 알고 있을까.
‘작곡 좀 끼적인다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저 이름을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는 사람이지.’
로운도 한때 어설프게나마 작곡을 해 봐서 안다.
Re.D는 올타임 레전드나 다름없는 히트곡 제조기인 유명 프로듀서였으니까.
길을 걷다 듣는 음악 중 절반은 Re.D의 손을 거쳤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에서 손꼽히는 저작권 부자를 대라면 탑티어 3 안에는 반드시 들어갈 사람 중 하나가 바로 Re.D이었다.
어떤 이는 Re.D의 음악을 듣고서는.
-인간의 솜씨가 아니다
라고 평가한 적이 있기도 했다.
물론 일종의 밈이다.
음악의 아버지, 음악의 어머니라고 해도 정말 음악을 탄생시키지는 않았잖은가?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는다고, 그게 진짜라니.’
그 밈을 처음 생각해 낸 사람은 알까?
정말로 Re.D가 인간이 아니라 하늘 위의 존재라는 것을?
‘근데 그런 대단한 사람, 아니 존재가 나는 대체 왜?’
어느모로 보나 피를 토해 가면서까지 로운에게 도움을 요청할 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제게 부탁을 할 게 있다고요?”
미심쩍게 묻자.
“말했잖아. 나같이 선계의 율법에 매인 몸은 인간사에 관여할 수 없다고.”
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치만 Re.D잖아요……?”
“그거야 취미활동이고. 요즘 말로 하자면 그거지. 부캐. 취미활동까지 제재하지는 않거든.”
“……?”
천년 묵은 여우가 트랜드를 논했다.
“아무튼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절대 네게 해가 될 일도 없고.”
자신의 모든 패를 까 보인 상대, 천이호가 어설픈 웃음을 지어 보였다.
어떻게든 미소를 지으려는 듯했지만 초조함이 그걸 방해하는 듯 어색하기만 했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듯한 처절한 절실함.
“…….”
미심쩍은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로운은 저런 눈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한때 거울을 마주할 때마다 보고는 했던 눈이었으니까.
결국 한숨을 쉬며 물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막 이상한 거 시키는 건 아니죠? 보증을 서라든가. 죽은 사람을 살리라든가. 10억을 내놓으라든가. 뭐 그런 말도 안 되는 거요.”
“너, 나를 대체 뭐로 보는…….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거야. 내 이름을 걸고 맹세할게.”
이호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래.
이렇게까지 나오는 걸 보면 얼마나 절박한지도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로운은 그 절박함이 얼마나 간절한지도 아주 잘 아는 사람이었다.
이럴 때 내밀어지는 도움이 얼마나 사무치게 간절한지도.
“좋아요. 무슨 부탁인데요?”
“……! 들어주는 거야?”
“제게 하신 말들이 모두 진실이라면, 네. 들어드릴게요.”
“전부, 전부 다 진실이야. 진실이 아니라면 이 자리에서 벼락 맞아 죽어도 돼! 너도 알지? 나 같은 존재의 말에는 힘이 있다는 거. 필요하면 맹세도 할게!”
맹세가 없어도 저건 진실이다.
저런 눈을 보고서도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놀랍게도 그 순간.
띠링!
낯익은 알림음이 떴다.
그 뒤에 뜬 메시지는 낯설었지만.
[시스템 $에#러가 발$생%] [시스템#$오%류]뭔가 지지직거리며 눈앞을 스쳐 지나간 것도 잠시.
[당신에게 의뢰가 도착하였습니다!] [의뢰를 받아들이시겠습니까?]늘 보던 알림이 떠올랐다.
[의뢰: 한 걸음 뒤에 항상 내가 있었는데] [불쌍한 여우를 도와 남은 미련을 청산하도록 도와주자!] [보상: ????]‘어째 의뢰명이 익숙한데……?’
어디서 많이 들어본 구절 같다.
로운은 주저 없이 ‘예’를 눌러 수락을 완료했다.
그리고 동시에.
[잠깐! 잠까아아안!]천이호와 로운 사이에 어디서 많이 본 물방울이 보그르르 물거품을 피워 올리며 나타났다.
청화였다.
* * *
“청화 님?”
[설마 지금 생각하는 상황이 내가 생각하는 그런 상황은 아니겠지?]답은 다른 곳에서 들렸다.
[별빛 454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먼 하늘을 바라봅니다!] [별빛 834가 땅을 치며 아쉬움을 드러냅니다!] [별빛 347이 이마를 짚고 뒷목을…….]“그… 뭔가 잘못됐나요?”
갑자기 화살이 이호에게로 돌아갔다.
[이이이! 누가 여우 아니랄까 봐 순진한 애를 홀려서는!]일단 청화의 말에는 몇 가지 어폐가 있다.
첫째. 우선 로운은 애가 아니었고.
둘째. 로운은 순진하지도 홀리지도 않았다.
“아. 너구나.”
그때.
이 상황을 지켜보며 팔짱을 끼고 있던 이호가 입을 열었다.
“천계에 은혜도 제때 못 갚는 덜떨어진 모질이가 있다더니만. 그게 바로 너였구나?”
반응은 격렬했다.
[뭐, 뭐엇? 누구 보고 모질이라고 하느냐!]“본체 유지도 못 하는 건 모질이 맞지 않나……?”
[아니거든? 사정이 있거든? 내, 내가 절대 실수해서 그런 거 아니거든!]“대상을 헷갈렸다는 얘기가 얼핏 들리던데…….”
[…아, 아, 아, 아니다! 그런 모, 모, 모, 모, 몹쓸 거, 거, 거짓말은 하면 아, 아, 안 되느니라!]“그래? 그럼 그렇다고 하지, 뭐. 내가 잘못 알았다면 미안하다.”
[어?]선뜻 건네지는 사과에 파르르 떨던 청화가 멈칫했다.
[그, 그래. 나도 여우라고 해서 미안하다.]“고마워.”
지켜보던 로운이 물었다.
“저, 두 분 아는 사이에요?”
[아니?]“전혀.”
대답이 동시에 튀어나왔다.
아니라는 것치고는 참 정다워 보였다.
[크, 크흠. 뭐. 지겹다고 뛰쳐 내려간 거치고는 제법 통찰력 있어 보이는구나. 흐, 흥! 그치만 이건 얘기가 다르다!]“아, 왜. 아직 선적은 여전한데. 나도 자격이라면 충분하지 않아? 선계의 계율은 꼬박꼬박 따르고 있는데?”
분명 방금까진 분위기가 좋았던 것 같은데.
서로 말실수를 사과하던 훈훈한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다시 흉흉해진 기운만 오갔다.
[옳지 않은 방법으로 자격을 취득하였잖느냐!]“아. 서로 상충되는 제약이 있길래 끼어들어 볼 만해서 끼어들어 봤는데. 그게 왜 옳지 않은 거지? 그쪽이 일처리를 허술하게 해서가 아니고?”
[허, 허술? 이 몸이 얼마나 신경 써서 만든 시스템인데 허수우울?]“뭣하면 내가 좀 도와줄 수도 있어. 법률 쪽 싸움을 좀 해 봐서 그런 거 파고드는 거 웬만큼 할 줄 알거든.”
[아니. 지금 누가 도움 받고자 이러는 거 같더냐! 네 녀석이 없는 예외를 만들어 냈다는 게 문제라고!]“그러면 애초에 예외를 존재할 수 없게 했어야지. 있는 걸 이용하는 게 무슨 문제라도?”
번쩍!
착시겠지만 왠지 눈앞에 파지직 번개가 치는 것 같다.
둘의 뒤로 각각 용과 꼬리 열 개 달린 여우가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저.”
그 사이로, 로운이 끼어들었다.
팽팽하고 첨예하게 대립하던 분위기가 조금 누그러들었다.
“응, 왜?”
이호가 언제 웃으며 청화를 구박했냐는 듯, 활짝 웃으며 로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 저, 저! 저 요오망한 여우 같으니라고! 언제 봤다고 저리 친한 척이야!]“친한 척이라니. 나를 위해 움직여 줄 은인이라면 친한 척이 아니라 친한 거지.”
용호상박.
왠지 그 단어가 떠올랐다.
“의뢰는 문제없는 거 맞는 거죠? 두 분 대화를 들어보니 이호 님이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하신 건 아닌 것 같던데요.”
[끄으응. 엄밀히 말하자면 그렇기는 하다. 하지만! 네게는 좋지 않을 수도 있어. 저 여우는 예외 중의 예외인 존재니까.]“그 선적이라는 것과 관련이 있는 거예요?”
[그렇느니라. 지상에서 오랜 세월 지내면서 용케 선적에서 지워지지 않은 모양이다만, 아무래도 위험하지.]“내 순백의 꼬리들에게 너무하네.”
작은 회의실을 가득 메울 듯이 살랑거리는 열 개의 꼬리가 감정을 가진 것처럼 추욱 쳐졌다.
“지상에 지내는 게 문제인 거예요?”
[아무래도 그렇지. 지상에는 온갖 유혹과 악의가 넘치지 않더냐. 지상의 오염에 본신이 물들기라도 하면 어떡한단 말이냐? 기껏 힘들게 하늘에 오른 수련과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데!]그런 의미에서 저건 괴짜라며 청화가 이호를 가리켰다.
정작 당사자인 이호는 손톱을 들여다보며 모르는 척을 하고 있었다.
[그게 네게도 어떤 영향을 어떻게 미칠지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저런 예외인 양반과는 상종을 하지 않는 것이 최고이거늘.]“거, 듣는 예외 섭섭하게 말씀하시네.”
[하아아……. 그래.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이미 의뢰를 받아 버린 것을. 내가 널 위해 얼마나 의뢰를 고르고 또 고르고 있었건만.]청화의 한탄이 이번에는 로운을 향했다.
모 관조자가 공덕 얼마를 약속했다느니.
모 관조자는 어떤 보상을 기약하기도 했다.
하나같이 듣기만 해도 눈이 튀어나오는 보상과 수치들이었다.
그렇지만.
“그런데 청화 님.”
[응? 왜 그러느냐?]“그럼 가진 자만 기회를 가지게 되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