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of a former idiot who became a top star RAW novel - Chapter (87)
전직 망돌이 탑스타 된 썰 푼다-87화(87/110)
87
[으응? 그게 무슨 소리냐?]“좋은 조건을 제시하지 못한 의뢰는 제게 오기 전부터 걸러진다는 이야기잖아요.”
[그렇다만…. 당연하지 않느냐? 네가 자원봉사자도 아니고. 간절한 만큼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도리이거늘.]그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
로운도 청화가 그에게, 그리고 그들에게 이득이 될 의뢰를 고르느라 고생하는 것을 안다.
하늘 위까지 다녀오기도 하고, 관조자들과의 사이에서 중재도 하고 바쁘게 움직인 것도 안다.
청화가 있기에 그가 살아날 수 있었고, 청화가 그를 살리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청화 님의 눈에 들지 못한 이들은 기회조차 박탈되는 거니까.’
어째서 이호가 피를 토하면서까지 그를 찾아나섰겠는가.
당연히 그 무엇을 제안해도 청화 선에서 제지될 것을 알았기 때문이리라.
예외나 다름없는 특이 존재라는 이유로 무조건적인 배제가 이뤄졌을 테니까.
그러나 이호가 예외적인 존재라고 해서 그의 간절함마저 예외인 것은 아니다.
피를 토하면서까지.
자신의 생명력을 쥐어짜면서까지.
허겁지겁 매달려 오지 않았던가.
‘아마도 그건 이호 님뿐만이 아닐 거야.’
지금도 로운이 모르는 곳에서 수많은 간절함이 닿아 보지도 못한 채로 외면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갑자기 그 얘기는 왜 꺼내는 것인지 모르겠구나.]“하지만 청화 님. 그럼 정말 도움이 필요한 존재가 곤란해질 수도 있지 않나요?”
가진 자건, 가지지 못한 자건.
누구에게나 절실함은 존재한다.
‘차이라면 가진 사람은 그 절실함을 채울 수 있는 방법과 수단이 다양하다는 거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기회조차 없다는 거지.’
마치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던, 박탈당한 삶을 살았던 이전 생의 로운 그 자신처럼 말이다.
[표정이 심각하더니만. 그게 마음에 걸렸던 게냐?]“조금요.”
물방울을 보그르르 피워올리며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했던 청화가 말했다.
[네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아라. 세상은 공평하지 않느니라. 모두가 공평한 세상은 아름다운 이상향이지. 하지만 존재하지 않기에 이상향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방금 전까지 쨍알쨍알대며 여우랑 다투던 이답지 않게 진중한 말이었다.
그 말도 옳았다.
모두가 평등한 사회체제는 이미 불가능하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기도 했으니까.
[게다가 너는 자선활동을 하는 게 아니지 않느냐. 잊지 말거라. 네가 이행한 의뢰가 너의 목숨이 된다는 것을.]그 말 또한 정답이었다.
따지고 보면 로운 역시 특혜를 입지 않았던가.
죽음 뒤에도 살아나 지난 과오를 청산할 수 있는 기회는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아주 특별한 것이니까.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기회만이라도 공평하게 주어졌으면 해요. 어떻게든 기회가 열려 있는 것과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니까요.”
이번 천이호의 의뢰를 받기 전부터.
좀 더 정확히는 경매 시스템이 업데이트되면서부터.
어렴풋이 생각해 왔었다.
그에게는 분명 이득이지만.
‘정말로 이득이 맞을까?’
이전 삶에서 그를 절망하게 만든 이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어 가는 것은 아닐까?
숨쉬며 살아 있다고 해서 정말로 사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하루를 살더라도 후회 없는.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아쉬움이 없는 삶.
그것이 삶이라는 것을 불과 얼마 전에 깨우치지 않았던가.
[끄응. 굳이 그리해야 할 필요가 있느냐? 네 존재만으로도 이미 영감탱이들에게는 황금 동앗줄이 내려온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모르는 척 눈 감고 있다 하더라도 아무도 너를 비난할 이는 없다.]“하지만 제가 알잖아요. 다른 누가 아닌 제가 다 알고 있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모르는 척을 할 수 있겠어요.”
[끄으응. 정말이지…….]어쩔 수 없다는 듯 청화가 고개를 저었다.
[너는 인간이 선해도 너무 선해서 탈이다. 지나가며 보는 풀 한 포기조차 빛을 받지 못하면 양지바른 곳으로 옮겨 심어 줄 인간이 바로 너이지 않느냐.]네?
아니, 그렇게까지요?
“그건… 청화 님이 저를 너무 잘 봐주시는 게 아닐까요?”
[그렇지 않다. 네 선함의 산증인이 바로 나이니까.]청화가 단언했다.
그러더니 휴우, 하고 숨을 몰아쉬었다.
[하긴. 네가 그런 인간이니 그때의 내가 네게 은혜를 입은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어쨌든 네가 걱정하는 것 같아 알려 주자면, 마음이 어질지 못한 이는 하늘길에 오르지 못한다.]로운은 청화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혼란하고 어지러운 생각과 감정을 다스려 결국 선을 품기로 택하였으니. 고로 누구에게나 사단칠정이 존재한다.]문제는 반밖에 알아듣지 못했다는 거였지만.
사단, 뭐?
[측은지심을 알고 시비지심을 알며 사양지심을 갖추었으니. 하늘에 닿는 간절함이 있는 이에게는 길이 열린다는 뜻이다.]여전히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였다.
로운이 못 알아듣는 기색이자 옆에 있던 이호가 끼어들었다.
“쉽게 말하자면 네가 걱정할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얘기야. 애초에 남의 기회까지 앗아가려는 탐욕스러운 자는 공덕을 쌓아 선적에 오르지도 못하니까.”
[끄응. 여우 네놈은 왜 끼어드는 게냐?]“요즘 애들한테 사자성어를 쓰면 어떡해? 요즘 애들한테는 영어가 대세야. 업데이트 좀 해. 그렇게 허술하니까 나한테 뚫리지.”
[…뒷목. 내 뒷목.]“거 보니까 목도 없는데 뒷목이 어딨어?”
[이 녀석 의뢰를 꼭 들어줘야 하겠느냐?]잘 나가다가 갑자기 삐끗한다.
로운이 뭐라 하기도 전 또다시 두 존재가 아웅다웅거리기 시작했다.
설명을 듣고 로운은 안도하는 한편, 조금은 민망해졌다.
“죄송해요. 그러고 보면 다 생각이 있으실 텐데. 제가 아무것도 모르고 괜한 말을 했나 봐요…….”
대답은 다른 곳에서 들렸다.
띠링!
[별빛 83이 당신에게 아니라고 합니다!] [별빛 394가 당신의 선량한 마음에 깊은 감명을 받습니다!] [별빛 955가 요즘 보기 드문 젊은이라며 당신을 향해 감탄을…….]관조자들의 말대로 청화 역시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기색이었다.
[아니다. 애초에 네가 이렇게 나오리라는 걸 내 먼저 예상했어야 하는데. 끄응. 네 성격에 신경을 안 쓸 리가 없는데 말이다.]“영감탱이들이 고리타분하기는 해도, 사람 보는 눈은 정확하지.”
툭, 이호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나도 급하니 찾아 헤매기는 했지만 영감탱이들이 노망났나 생각해 본 적이 있거든.”
“아니, 그렇잖아. 영감탱이들이 말하는 온갖 삿됨이 이 속세에 가득한데. 여기에 있는 인간이라고 다들 멀쩡하겠어?”
아직 완전하지 않은 영혼이기에 물들기 쉽고 영향받기 쉽다.
“그런데 멀쩡해. 하늘에서 내리는 보상에 욕심이 날 만도 하거든? 왜. 얼마나 많은 인간들이 욕심으로 망했어. 영감들도 알 거야. 놀부도 그랬고 나무꾼도 그랬잖아.”
설마 저게 흥부와 놀부의 그 놀부, 그리고 선녀와 나무꾼의 나무꾼 얘기는 아니겠지?
“근데 그걸 마다하고 오히려 형편없을지도 모르는 보상을 택하려 하다니. 이러니 그 깐깐한 하늘의 규율이 허락한 거겠지? 괜히 하늘의 살아 움직이는 소원수리함이자 하늘과 땅을 잇는 통로로 선택된 게 아닌 모양이야.”
그렇게 말하며 바라보는 이호의 눈빛이 깊다.
오랜 시간을 보낸 자 특유의 연륜과 지혜가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그것도 잠시.
[흠… 흠흠. 그쪽도 보는 눈이 없진 않군?]로운보다 먼저 청화가 뿌듯하게 헛기침을 했다.
“그래. 좋은 인간이야.”
[그렇지. 흠흠. 그러니 이 몸에게 은혜를 입히게 된 거겠지.]“이젠 나도 은혜를 입게 될 테니 좋은 인간이 틀림없어.”
언제 으르렁거렸냐는 듯.
또다시 둘의 사이가 좋아 보인다.
[어쩔 수 없구나. 네 고민도 있고 하니 이번 일은 저 여우의 일을 돕는 수밖에.]“현명한 결정이야.”
[흠흠. 내가 좀 그렇지.]보아하니 둘이 또 다투지는 않을 모양이었다.
로운으로서는 다행인 일이었다.
모든 의문이 해결되고 마음이 편해진 지금.
남은 것은 하나였다.
“그래서 말인데요, 이호 님. 그 의뢰가 정확히 어떤 건가요?”
* * *
보통 의뢰명과 의뢰 내용을 보면 잡히는 감이라는 게 있다.
그러나 이번 의뢰에는 그런 게 전혀 없었다.
‘의뢰명은 유명 노래 가사고, 의뢰 내용은 너무 두루뭉술해.’
첫 번째 의뢰도 애매모호하기는 마찬가지였으나 거긴 적어도 힌트라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 의뢰는 그런 것조차 없었다.
‘남은 미련이 뭐고 뭘 어떻게 청산하고 싶은 건데?’
피를 토할 정도로 간절한 미련이 대체 무엇일지 궁금해졌던 것.
그리고 그 의문은 곧 풀렸다.
“저기 저 아이, 보여?”
“아이요?”
로운은 이호가 가리키는 곳을 확인했다.
“안 보이는데요? 무슨 애요?”
“아니, 너는 젊은 애가 왜 눈이 그렇게 안 좋냐. 저기 의자에 앉아 있는 저 아이 말이다.”
사방이 뚫려 있는 너른 공원에 놓여 있는 한 벤치.
그곳에 앉아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우아한 노부인 한 명뿐이었다.
‘설마?’
로운은 혹시 하는 마음으로 이호에게 물었다.
“혹시 저분 말씀하시는 거예요? 저기 지팡이 짚고 앉아 계시는 저분?”
“맞아. 딱 눈에 띄지? 모를 수가 없다니까.”
그야 당연했다.
저곳에는 한 명만 있으니까.
그런데…….
“아이라면서요…?”
“그래. 어여쁘지 않아?”
“……?”
잊고 있었지만 이 여우도 천년은 더 묵은 존재였다.
‘청화 님이 걸핏하면 나보고 애라고 하더니만.’
이런 존재들의 종특인 것일까?
“네가 할 일은 하나야. 저 아이를 지켜봐 주면 돼.”
일견 허술해 보이는 요구.
그러나 뒤를 잇는 말에 로운의 표정이 달라졌다.
“24시간을… 요……?”
“음. 그러고 보니 인간은 잠을 자야 하니까 24시간은 어렵겠지?”
“아니, 잠깐만요. 잠은 둘째치고. 이거… 스토킹 아니에요?”
이호가 펄쩍 뛰었다.
“야! 무슨 그런 무서운 말을 해? 나는 법 없이도 사는 사람이라고!”
그건 그랬다. 정확히 이호는 인간의 법도에 구애받지 않는 신적 존재였으니까.
“얘가 순하게 생겨서는 무서운 말을 하네? 그런 범죄를 저지르라는 소리가 아냐. 그냥 지켜봐 주기만 하면 된다니까?”
“…그게 그거 아니에요?”
“아니야. 완전 달라. 완전 다르거든?”
자신을 바라보는 로운의 눈빛을 느꼈는지 이호가 기겁을 하며 자신의 결백함을 피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