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of a former idiot who became a top star RAW novel - Chapter (88)
전직 망돌이 탑스타 된 썰 푼다-88화(88/110)
88
‘잠깐. 설마 의뢰를 잘못 받은 건 아니겠지?’
로운은 불안감이 엄습함을 느꼈다.
받고 보니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입구컷을 당했던 두 번째 의뢰의 악몽이 떠오른다.
그날 강차헌이 거기를 지나가는 게 아니었으면 로운은 이미 이 세상에서 하직했을지도 몰랐다.
그러고 보니 그 인간은 대체 거기에 왜 있던 거지?
[쯧쯧. 그러게 이 몸이 엄선한 의뢰를 받지 그랬느냐. 이래서 중계 플랫폼을 거치지 않은 직거래는 언제나 이런 위험성이 따른다는 것을 잊지 말도록 하거라.]뭔가 이상한 말이 끼어 있는 것 같지만.
어쨌든 이미 받아들인 이상 후회는 늦은 법이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의뢰를 수락한 이상 최선을 다해야 하는 상황.
“설마하니 영험한 신수씩이나 되셔서 진짜 인간을 스토킹하라는 추잡한 의뢰는 아니겠지? 피를 토할 만큼 간절한 건 알겠는데, 그 간절함이 스토킹이면 좀 많이 곤란한데…….”
[지금 네 속마음이 바깥으로 나오고 있단다.]“아. 죄송해요.”
이호가 둘을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아니, 내가 저 아이한테 이상한 일을 할 리가 없잖아? 꽃길만 걷게 해도 모자란데. 뭐? 범죄?”
“그러게 말이에요.”
“너, 지금 내 말 하나도 안 믿고 있지?”
들켰나?
“하아. 설명을 해도 들을 생각이 없으니 이해시키는 것부터가 불가능이네. 애초에 저 아이를 지켜보는 일에 너만 놔둘 리가 없잖아. 나도 함께한다고. 그리고 나는 법 없이도 사는 사람이라니까?!”
한숨을 쉰 이호가 말을 이었다.
“어쩔 수 없지. 이건 직접 해 봐야 알겠다. 일단 해 봐. 해 보고 결정해. 내가 진짜 이상한 일을 시키는 거면 의뢰를 무를 테니까.”
이렇게까지 나오는 걸 보면 정말 당당한 모양이었다.
[좋아, 그 말 무르기 없기다. 낙장불입이야!]“콜.”
순식간에 당사자를 제외한 딜이 성립되었다.
일단은 지켜보기로 한 뒤 몇 시간이 흐른 결과.
“그러니까… 일종의 호위 같은 거네요?”
다행히 예상했던 최악의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니까? 내가 말했지. 법 없이도 사는 사람이라고.”
몇 시간 동안 이호가 한 일이라고는 별거 없었다.
노부인이 앉아 있는 곳에 햇살이 잘 내리쬐도록 도력을 이용해 나뭇가지를 조금 움직인다든가.
살랑살랑 바람을 불게 한다든가 하는.
노부인의 편의에 최선을 다하는 그런 일 정도만이 간간이 지속되었다.
[너… 진짜 쓸데없는 곳에 도력을 낭비하는구나? 그것도 안 걸릴 정도로만 교묘하게 주변에 힘을 쓰는 데에 아주 도가 텄어.]오죽하면 의뢰를 무르려고 눈에 불을 켠 청화조차 그 소소하고 사소한 힘의 사용에 혀를 찼을까.
“그런데 이호 님.”
“잠깐만. 웬만하면 그 님이라는 호칭 좀 어떻게 하지 않을래?”
이호가 대답 대신 딴소리를 해 댔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은데 말이지.”
이 모든 상황이 이미 충분히 이상한데 뭘 걱정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뭐, 형이라고 불러도 좋고.”
“그건 좀…….”
그의 안에 잠들어 있는 K-유교보이의 영혼이 꿈틀거렸다.
몇 년도 아니고 몇백 년, 몇천 년 단위로 올라가는 분께 형이라니?
그런 개족보는 그의 영혼이 도저히 용납하지 못했다.
“그냥 이호 님이라고 부를게요.”
“…너 묘하게 단호한 구석이 있는 애구나?”
“아무튼 이호 님. 있어 보니까 이상한 일은 아닌 거 알겠어요.”
“그치? 내가 말했잖아.”
“근데 저는 대체 왜 필요하신 거예요? 지켜보니 저는 아무런 도움도 안 될 것 같은데. 이호 님처럼 대단한 힘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불법적인 일이 아니어서 다행이기는 하지만.
이래서야 왠지 날로 먹는 듯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시간 제약이 좀 빡세긴 하지만 이 정도면 거의 거저 아닌가?’
로운의 양심이 따끔거렸다.
이전 삶의 영향으로 로운은 프리라이더라면 치를 떨었는데, 그런 당사자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무슨 소리야?”
“그, 이 정도는 이호 님도 혼자 충분하실 것 같아서요.”
“내가 혼자 가능했으면 널 찾아서 그렇게 방방곡곡을 뒤지고 다녔겠어? 네가 반드시 있어야 해. 필요할 때 부르면 늦거든.”
“네?”
청화도 그렇고, 신비한 존재들은 너무 신비한 나머지 가끔 하는 말을 알아듣기 어려울 때가 종종 있었다.
로운이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이호가 로운을 툭, 쳤다.
“지금.”
“네?”
“지금이야. 얼른 빨리 가 봐.”
“네?”
나지막하고 다급한 재촉이었다.
“지금 갔다 오라고. 저기에. 빨리!”
뭐라고 더 물어보기도 전, 로운이 등을 떠밀렸다.
얼떨결에 한 발자국 내디디는 순간.
로운은 그를 감싸고 있는 공기의 밀도가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이호가 만들어 낸 특수한 장막에서 벗어난 듯했다.
‘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
로운은 엉거주춤하던 몸을 바로 세웠다.
그러고는 원래부터 공원에 숨돌리러 나온 사람처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연기 몇 번 했다고 어색하지는 않은 것 같아 다행이었다.
‘이대로라면 저분이랑 마주칠 텐데.’
처음 이호는 들키면 곤란하다며 특별한 재주를 부려 그들을 사람들의 이목으로부터 감추었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이렇게 경호 대상자와 마주치게 하다니.
‘무슨 생각인지 도무지 모르겠네.’
로운이 천천히 걷는 사이, 맞은편에서 노부인이 몸을 일으켰다.
햇빛을 받으며 읽던 책을 덮는 것이 이제 되돌아갈 생각인 모양이었다.
‘지금 이분이 떠난다는 얘기인 건가? 그렇다 해도 나를 왜 보내신 건지 모르겠네.’
의아하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로운이 표정을 가다듬은 채 막 노부인의 옆을 지나칠 때였다.
툭!
무언가 아주 작고 거슬리는 소리가 로운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잘 깔린 보도블럭 사이로 미세한 틈이 있었다.
그 틈에 노부인의 지팡이 끝이 부딪치며 난 소리였다.
별거 아닐 수도 있는 일이지만, 지팡를 짚을 만큼 몸이 불편한 이에게는 달랐다.
아주 잠깐 흐트러진 균형은 곧 큰 사고와 부상으로 이어졌다.
아니, 이어질 뻔했다.
‘이런!’
로운이 반사적으로 내민 손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심지어 안면부터 고꾸라질 뻔했던 터라 하마터면 정말로 큰일이 일어났을 상황이었다.
“괜찮으세요?”
깜짝 놀란 로운이 노부인을 바로 부축하며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제때 붙잡은 터라 넘어지거나 어디 부딪친 것 같지는 않았다.
가슴을 쓸어내리던 로운이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설마 이걸 예측하고?’
이 노부인을 끔찍이 여기던 이호가 그를 괜히 보낼 리가 없었다.
‘…그러고 보면 이호 님이 힘을 사용한 대상은 전부 이분이 아니라 이분의 주변이었지.’
하다못해 노부인의 겉옷이 조금 허술하게 여며져 추워 보이는 것 또한 그랬다.
나뭇가지를 움직였던 것처럼 옷자락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햇빛을 더 잘 내리쬐게 하는 식으로 에두른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나를 보냈다고? 이 상황을 예상하고?’
“이런. 신세를 지고 말았네요. 덕분에 괜찮아요. 고맙습니다.”
틈새에 걸렸던 지팡이를 바로 하며 노부인이 로운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그때, 저 멀리서 뛰어오는 여자가 있었다.
“할머니! 진짜! 혼자 나가지 말라니까! 전화는 왜 안 돼! 내가 핸드폰 켜놓으라고 했었잖아!”
금세 다가온 여자가 노부인을 부축하며 밉지 않은 어조로 상대를 나무랐다.
“어디 나갈 때는 꼭 나랑 같이 나가자니까! 방금도 큰일 날 뻔했잖아. 이분 아니셨으면 어쩔 뻔했어?”
“우리 윤서 바쁜 거 아는데 이 할미가 어떻게 그래.”
“그러다 다치면 내가 더 힘들어지거든?”
타박하는 것 같지만 상대를 향한 관심과 애정이 철철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어느모로 봐도 사이좋은 조손지간이었다.
노부인의 상태를 꼼꼼하게 확인을 끝낸 뒤에야 여자가 로운에게로 몸을 돌렸다.
“그나저나 정말 감사합니다. 도와주신 덕에 저희 할머니께서 다치지 않으실 수 있……. …어?”
꾸벅 인사를 하던 상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어어?”
그러더니 말끝이 흐려지고 대신 요상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로운을 알아본 기색이 역력했다.
“아는 분이니, 윤서야?”
“아니, 그, 그건 아니고. 할머니! 이 사람 몰라?”
“으응?”
“우리 얘기했었던 사람이잖아! 내가 해묵 역할로 어울리겠다고 했던 그 사람!”
“으응? 이분이 그분이시라고?”
노부인이 눈을 깜빡이며 로운을 바라보았다.
똑 닮은 얼굴 한 쌍이 로운을 빤히 응시했다.
‘해묵이라니, 그건 또 뭐지?’
도무지 무슨 소리가 오가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치? 닮았지? 딱이지?”
“그러게. 네 말이 맞다, 윤서야.”
“거봐. 그럼 드라마화되면 내 말대로 하기다?”
“그건 아직 모르는 일이라니까. 제대로 마무리 지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노릇인데……. 그렇게는 부끄러워서 어디 내놓을 수도 없잖니.”
“왜 마무리를 못 지어? 할머닌 백이십 살까지 살 텐데?”
소곤소곤 빠르게 오가던 이야기는 윤서라고 불리는 손녀가 왈칵 화를 내며 끝이 났다.
‘…저런 말을 화내면서 하다니. 효심이 깊다고 해야 할지.’
어쨌거나 사이가 좋아 보이는 것은 확실했다.
로운은 조금 부러운 기분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저기, 괜찮으시면 식사라도 대접해 드리고 싶은데… 아! 사심이 있는 건 전혀 아니고요!”
손녀가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사심이 없음을 피력했다.
“저는 바라만 보자는 주의라 절대 다른 의미는 없고요! 저희 할머니를 구해 주셔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괜찮습니다.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걸요.”
이 노부인을 도운 것은 정확히 말하자면 로운이 아니라 이호였다.
‘나야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니까.’
남의 선의를 가로채는 양심리스 같은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똑같은 한 쌍의 얼굴이 흐뭇한 것 같으면서도 기특해하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다행히 두 사람은 로운을 더 붙잡지 않았다.
“그래도 이렇게 보내면 내가 너무 미안한데.”
아쉽다는 노부인의 옆에서,
“할머니. 이럴 때는 보내주는 게 맞아. 천연기념물한테 함부로 가까이 가는 거 아니라잖아.”
손녀가 해석하기 어려운 말을 하며 로운을 보내준 것이다.
두 사람에게 감사 인사로 배웅받은 로운이 처음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걸어 공원을 벗어났다.
그리고.
“잘했어.”
어느새 이호가 눈앞에서 미소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