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of a former idiot who became a top star RAW novel - Chapter (9)
전직 망돌이 탑스타 된 썰 푼다-9화(9/110)
9
보란 듯이 시작한 공개 오디션.
안 그래도 따갑게 눈총을 받는 와중에 이렇게 대놓고 크게 판을 벌인 이유가 있었다.
“와. 진짜 많이 왔네.”
“감독님이 좀 많이 뽑기는 하셨지만 솔직히 절반은 안 오지 않을까 싶었는데 말이에요.”
“남들이 아무리 이러니저러니 떠들어 대도 우리 감독님 아직 안 죽었다는 거지.”
슬쩍 바깥을 보고 온 스탭 하나가 말을 꺼내자 모여 있던 이들이 수군수군댄다.
과연 그들의 말대로 오디션장 바깥의 대기실에는 수많은 지원자들이 대기 중이었다.
“분명히 화제 되겠죠? 지원자 수가 역대급이라고 하던데.”
“그렇겠지. A매거진 알지? 거기로 빠진 내 동기가 나한테 연락하더라.”
“오. 그럼 진짜 우리 감독님 컴백 완전 성공적으로 되는 거 아니에요? 크. 벌써 타이틀 하나 나온다. 왕의 귀환.”
희망에 찬 말들이 오간다.
그러나 정작 그 말의 주인공인 김성하 감독은 여전히 속이 타들어 가는 중이었다.
‘일부러 보란 듯이 대놓고 어그로는 끌었고 반응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아. 적어도 이 김성하가 죽지 않고 이 악물고 돌아왔다는 건 성공적으로 알리긴 했으니까!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모자란데…….’
소문만 듣고 그를 손절한 업계에 이를 갈며 돌아온 것까지는 좋았다.
비록 그 어디도 그를 써 주려 하지 않아서 오디션을 열게 되었지만.
이게 도리어 이슈가 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 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오디션은 양날의 검이나 다름없었다.
‘만약 이 오디션이 망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의 이름은 다시 진창에 박힐 것이고 악의적으로 떠도는 소문은 몸집을 부풀려 김성하 그를 완전히 삼켜 버릴 것이다.
다시는 이쪽 업계에는 발도 못 들일 테지.
‘아니, 그전에 쪽팔려서 수치사 해버릴지도 몰라!’
그의 귀환이 성공적이기 위해서는 이 오디션이 중요했다.
단순히 화제 몰이로 끝나서는 곤란했다.
이 관심을 끌고 가서 흥행까지 성공해야만 한다.
그래야 그를 악의적으로 끌어내리는 거지 같은 소문들도, 소문만 듣고 그를 손절했던 사람들에게도 복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쓸만한 인재가 이렇게까지 없다고? 진짜로?’
이 수많은 지원자들에도 불구하고 눈에 들어오는 배우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아주 곤란했다.
흥행까지 가려면 대어의 입질이 필수인데, 그 입질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내로라하는 기라성 같은 유명 배우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하지만 중견급 배우마저도 이렇게까지 적다니!
‘이래서는… 제작이 제대로 되기는 할까? 캐스팅부터가 이렇게 난항이라면…….’
생각보다 업계의 눈치를 보는 배우들이 더 많았던 것이 패착이었다.
김성하 그의 인망이 여전히 박살 나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고.
‘쓸만한 배우가 없다면 정말로 곤란한데…….’
제작비야 사재를 털어서라도, 대출을 받아서라도 마련하면 된다.
하지만 배우는 다르다.
비록 영화가 감독 놀음이라는 얘기가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제대로 된 배우가 있어야만 뭔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편집으로 어떻게 그럴듯하게 커버한다 쳐도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낼 수는 없잖은가?
괜히 거창하게 오디션을 연 게 아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저는…….”
“지원자 29번! 인사드립니다!”
오디션이 시작되고 여러 지원자가 연기를 선보인 후 되돌아나가는 순간에도.
김성하 감독의 초조함은 계속되었다.
‘뭐든 싹이라도 보이면 내가 어떻게든 좀… 키워 낼 수 있는데.’
달달달달.
옆에 앉아 있는 조연출이 무슨 일 있냐고 물을 정도로 그의 초조함이 극에 달했을 때였다.
“……!”
김성하 감독의 눈이 번쩍 뜨였다.
이상할 만큼 귓가에 또렷하게 꽂히는 맑은 목소리를 들은 직후였다.
‘아니, 저건?’
기대감이 점점 사라지다 못해 체념에 가까워졌던 눈동자.
동태눈깔 같던 동공에 빛이 되살아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반개했던 눈이 번쩍 떠지고 멍했던 머리가 맑게 개었다.
그뿐만인가?
갑자기 온몸에 더운 피가 도는 것처럼 아드레날린이 미친 듯이 뿜어지는 것 같았다!
‘반드시 잡아야만 한다!’
그의 감이 맹렬하게 외쳤다.
저 사람을 붙잡으라고.
저 사람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김성하는 이런 감각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의 손을 거쳐 가며 탑스타로 자리매김한 이들을 처음 봤을 때의 바로 그 감각이었으니까!
비록 그가 발굴한 그 사람들에게서 하나도 연락이 없던 것은 매우 속이 쓰린 일이지만…….
어쨌거나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감독님?”
“이름, 저 사람 이름 뭐야? 방금 들어온 그룹 파일 어딨어?”
시든 시금치처럼 늘어져 있던 김성하가 갑자기 생생하게 살아나 말을 하자 옆에 있던 조감독이 놀라 물었다.
“아니, 방금 소개도 다 했는데 안 들으셨어요?”
“잔말 말고. 파일 내놔 봐. 빨리!”
“파일은 여기 있는데… 아니, 왜요? 갑자기 뭐 있어요?”
김성하 감독은 대답 대신 빠르게 지원서류를 훑었다.
그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이로운?’
지원서류에 첨부되어 있는 프로필 사진.
정면을 보고 있는 얼굴은 수많은 미남 미녀를 봐왔던 김성하 감독이 보기에도 꽤나 멀끔했다.
그럭저럭 괜찮다는 느낌 정도? 그의 빅데이터에 의하면 이런 사람은 실물로는 별로일 확률이 높았다.
그런데.
‘뭐지? 뭔가 좀 다른데? 같은 사람인데 왜 이렇게 다른 느낌이 나지? 사진발이 안 받는 체질인가? 아니, 그러기엔 너무 다른 사람 같은데?’
사진 속의 인물이 그저 향기 없는 꽃에 불과한 느낌이라면 실물은 전혀 달랐던 것이다.
실물이 별로기는커녕, 사진이 실물의 1할도 제대로 담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바라보고만 있어도 느껴지는 이 존재감이라니!
‘어째서 내가 이런 사람을 놓쳤지?’
배우는 그저 연기만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같은 행동을 해도.
같은 대사를 해도.
뭔가 더 특별하고 다르게 느껴지는 이들이 있다.
‘그런 사람이 배우가 되어야 해.’
김성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것도 아닌 손짓 하나에도 눈길이 가고.
그저 바라보는 시선만으로도 상대의 감정을 진탕 시킬 수 있는 힘.
배우에게는 그런 특별한 아우라가 필요하다.
그 특별함이 사람을 매혹시키고 몰입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게 사람이건, 이야기건 말이다.
‘달리 말하자면… 스타성이라고도 할 수 있지.’
김성하가 초조함을 느꼈던 것도 그 많은 지원자 중에서 그런 느낌이 확 와닿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바라는 큰 그림에는 반드시 이런 스타가 필요했다.
‘아직 연기는 좀 서투르기는 하지만……. 그래. 내가 언제부터 배우 이름빨에 목숨 걸었다고. 싹수가 보이면 내가 직접 스타로 키워 내면 되는 거지!’
김성하는 자신 있었다.
그의 작품을 거쳐 가며 스타가 된 이들이 얼마나 많던가.
가능성만 존재한다면 얼마든지 직접 키워 내면 될 터.
그리고 눈앞에 있는 저 사람은 바로 그 원석이었다.
지금껏 수많은 원석을 봐왔던 김성하인 만큼 자신할 수 있었다.
“나를 써. 다른 사람 말고 나를 써서 그 자리에 올라가.”
“너 되게 이상한 말을 한다? 너를 쓰라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해?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면서!”
그가 정신없이 파일을 살펴보는 사이.
오디션은 어느새 쭉쭉 진행되는 중이었다.
때마침 이로운의 차례였는지 맑은 목소리가 김성하의 주의를 잡아끌었다.
익숙한 내용은 오디션 현장에서 나눠주었던 당일 대사 파트였다.
“왜 안 돼? 어차피 나 이용하려고 접근한 거잖아. 근데 왜 안 되는데?”
짧디짧은 대사.
그러나 김성하는 다시 한번 재차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거다……!’
고작 오디션이 몇 분도 채 흐르지 않았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성하가 확신을 가지는 데에는 충분하고도 넘쳤다.
사실 방금 본 데모 테이프로는 100퍼센트 탈락감이었지만…….
‘그래. 사람은 작은 계기만 있어도 번데기가 탈피하듯 바뀔 수 있으니까.’
본래대로라면 오디션 리스트에 올라오지도 못했을 실력.
그러나 지금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180도 달라져 있었다.
‘그놈이 괜히 나한테 보낸 게 아니었던 건가.’
기획사를 운영하는 한때 친하던 동생이 주었던 연락.
다들 모르는 척하기 바쁜 때에 직접 연락까지 준 게 고마워 일단 받기는 했지만.
너무 형편없는 바람에 잊어버렸던 것이 떠올랐다.
그 동생을 봐서 오디션까지 부르기는 했지만 그야말로 인사치레에 가까운 구색맞춤이었는데…….
‘역시 이 사람을 잡아야만 해!’
어째서인지 지금 그의 감이 맹렬하게 외치고 있었다.
저 사람을 붙잡으라고.
“이로운 씨?”
“몰라, 모르겠어. 그러니까… 네?”
대사를 치던 로운이 깜짝 놀라 말을 멈췄다.
크고 동그란 눈동자가 의문을 가득 담고 김성하를 쳐다본다.
‘표정도 풍부하고 다양해. 전달력이 뛰어나.’
보내온 프로필 사진이나 데모 테입에서는 어떻게 봐도 치명적인 척하는 원툴 표정이었는데.
이렇게까지 사람이 달라질 수가 있나?
하지만 그 달라진 사람을 앞에 놓고 있으려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로운 씨, 이로운 씨 본인 맞죠? 뭐 대리로 보는 거나 그런 거 아니죠?”
“네? 아뇨, 아니, 네. 그, 저 맞는데요…….”
뜬금없는 질문에 어리둥절하게 눈을 깜빡이는 이로운.
그를 보며 김성하가 생각했다.
‘찾았다. 내 뮤즈.’
* * *
“이름이? 네? 이로운 씨라고요?”
로운의 이름을 들은 스태프가 잠깐 미간을 구겼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로운의 얼굴을 한 번, 리스트를 한 번 확인하며 고개를 갸웃한다.
“혹시 무슨 문제라도…….”
듣기로는 접수가 좀 늦기는 했지만 그래도 문제는 없다고 했었는데.
“아, 아니에요. 문제없습니다. 이로운 님, 확인되셨어요.”
다행히 스태프가 확인을 마치고 로운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우선은 이쪽에서 기다리시면 되고요, 순서 되시면 저쪽 방으로 가시면 됩니다. 거기서 잠시 대기하시다가 오디션 장소로 입장하실 거예요.”
“네. 감사합니다.”
로운이 얌전히 인사하자 이번엔 고개를 갸웃거린다.
“뭐지……? 좀 비슷하게 생긴 사람인가? 아니, 근데 이름이 똑같았는데…….”
돌아서는 스태프가 뭐라고 중얼거린 것도 같았으나, 오디션을 코앞에 둔 지금.
로운의 신경은 온통 다른 곳에 쏠려 있었다.
달칵.
문을 열고 들어가자 사방에서 시선이 날아 들어왔다.
날이 선 눈길부터.
견제 어린 눈초리와 슬그머니 이쪽을 훑고 살펴보는 은근한 관심까지.
‘생각보다… 사람이 많네?’
업계 퇴출된 감독의 복귀작이라 다들 꺼리지 않을까 했는데.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걸 보면 오산이었나보다.
로운은 얌전히 빈자리를 찾아 적당히 앉았다.
개중에는 끈질기게 염탐하듯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으나 로운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음. 생각보다 더 괜찮은데?’
매니저에게 듣자 하니 능력도 없는 주제에 온갖 갑질을 다 하고 다녀서 더 반응이 쎄할 줄 알았는데.
‘이 정도면 우리 애들이 사고 쳤을 때 받았던 압박에 비해서 새 발의 피 같네.’
대충 신경을 꺼도 될 것 같다
로운의 뒤로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제법 들어왔다.
들어온 만큼 호명되어 다른 방으로 먼저 건너간 사람들의 수도 꽤 늘어났다.
“이로운 씨. 김정률 씨. 심새로 씨. 이동하시겠습니다.”
차례가 왔나 보다.
로운은 같이 일어서는 두 명과 함께 작은 대기실로 자리를 옮겼다.
“세 분이 함께 오디션장으로 들어가실 겁니다. 여기 종이들 받으시고요. 앞선 지원자분들 차례 끝나면 호명할 테니 바로 이동하시면 되세요.”
사람이 많다 보니 그룹 오디션 형태로 진행되는 모양이었다.
로운은 얌전히 나눠 주는 종이를 받아 들었다.
몇 개의 각기 다른 대화 장면이 나열되어 있는 짧은 대본이었다.
“아, 씨. 하필이면 재수 없게.”
대본을 나눠 준 스태프가 문을 닫고 나가자마자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로운은 그 소리에 무심코 쳐다보다가 한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김정률이라고 불렸던 왜소한 어깨를 가진 지원자가 이쪽을 못마땅하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작은 소리였지만 하필이면 숨 막힐듯한 정적 속이었던 것이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