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of a former idiot who became a top star RAW novel - Chapter (90)
전직 망돌이 탑스타 된 썰 푼다-90화(90/110)
90
어쨌거나 의뢰 대상자가 이렇다 보니 로운도 소위 말하는 갓생을 살게 되었다.
미라클 모닝에 이어 제때 하는 식사.
식사 후 이어지는 산책까지.
‘건강할 수밖에 없는 일과인데?’
햇빛이 필요한 건 식물뿐만이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라더니.
‘역시 의뢰는 의무가 아니라 기회가 맞는 것 같아.’
의뢰라는 형식을 띤 강제 갓생 루틴이 아니었다면 이런 규칙적인 여유로움을 느껴볼 일도 없었을 것이 분명했다.
물론 약간의 복병은 존재했다.
바로 매니저였다.
“로운이 너… 요새 새벽같이 아침부터 어디 나가더라? 회사에는 휴가도 내놨던데, 혹시 나 몰래 무슨 일이라도 벌이는 건 아니지?”
로운이 생각해 보니 수상하기는 했다.
작품은 잘돼서 나름 인지도도 얻었는데 괜찮은 시나리오는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는 상태.
그 와중에 당사자는 휴가를 내고 갑자기 하루 종일 잠적을 탄다.
‘Ktx 타고 가면서 봐도 마상 세게 입고 낙담한 사람처럼 보이잖아?’
안 그래도 로운이 기억을 되찾고 비뚤어질까 봐 기도메타 들어간 매니저에게는 긴장할 일이 맞았다.
로운은 서둘러 매니저를 달래줘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아니, 딱히 별일이 있는 건 아니고요, 형. 저 요새 Re.D 만나고 있어서 그래요.”
반응은 금새 돌아왔다.
“레드? 혹시 프로듀서 Re.D 말하는거야?”
철만 되면 저작권료 걷으러 나오는 유명인이니 당연히 매니저도 이호를 알았다.
“Re.D가 너를 왜……? 아니, 네가 뭐 모자라다는 건 아니고 둘이 분야가 너무 다르잖아. 혹시 서로 아는 사이였어?”
“저 작곡에 관심이 있어서 어쩌다 보니 알게 되었어요.”
“작곡……?”
곤두섰던 매니저의 기색이 순식간에 누그러졌다.
“네가 작곡은 왜……. 아니, 잠깐만. 혹시 너 귀로 찍기 전에 고민 많이 하더니 그게 설마?”
“네?”
프로듀서인 이호를 만날 만한 일을 떠올리려니 반사적으로 이전 생에 곡이며 안무며 자급자족했던 때가 떠올라 핑계를 댔을 뿐인데.
그게 얼떨결에 제대로 얻어걸린 모양이었다.
“아예 연기 그만두고 전향할 생각까지했었던 거야? 하… 매니저나 되어서 그런 것도 모르고.”
“아니, 형. 그런 거 아니니까 울지 마시고요.”
“형이 울긴 왜 울어, 흑.”
“그래요. 형 안 우니까 여기 휴지 받고요.”
“킁. 형이 뭐 도와줄 건 없고?”
“네. 형 생각하는 것처럼 심각한 건 아니고 그냥 취미니까요.”
“그래. 형이 지금 작품 열심히 찾는 중이니까 너무 의기소침하지 말고! 기왕 가서 배우는 거 잘 배우고 와. 요즘은 연기 말고도 다양하게 할 줄 알면 플러스 요인이니까!”
아쉽게도 매니저의 응원이 이뤄질 일은 없었다.
그 뒤로도 로운은 계속 이호와 함께 이정혜의 루틴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으니까.
어쨌거나 무척이나 평온한 일상이었다.
적어도 로운이 보기에는 그랬다.
이호에게는 아닌 듯했지만.
“이호 님.”
늘 엇비슷하게 흘러가는 어느 날.
로운은 결국 입을 열고 말았다.
“왜 그렇게 초조해하세요?”
“…내가? 아닌데?”
무슨 소리를 하냐며 시치미를 뚝 떼는 이호.
‘그러려면 그 달달 떨리는 다리부터 어떻게 해야 하지 않을까?’
로운은 그리 생각했지만 따로 말하진 않았다.
그저 바라보기만 했을 뿐.
“…이건 그냥 습관 같은 거야.”
이호가 슬그머니 다리를 멈추면서 헛기침을 했다.
로운은 지적 대신 다른 쪽을 가리켰다.
“손톱, 너덜거리는 건 아시죠?”
“…너, 눈썰미가 꽤 좋구나?”
다리를 멈춘 이호가 슬그머니 손도 감추었다.
‘그보다는 너무 대놓고 초조하게 구는데 알아채지 못하는 쪽이 이상한 게 아닐까요……?’
평온한 일상이 지속되는 것과는 달리.
이정혜의 상태는 로운이 보기에도 썩 좋지 않아 보이긴 했다.
산책을 할 때마다 쉬어 가는 횟수가 늘어나고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이 점점 더 늘어났다.
종류는 알 수 없지만 이정혜가 복용하는 약의 숫자도 늘어났다.
이정혜의 상태가 이러하니 이호가 걱정하는 것도 이해는 된다지만.
‘알뜰살뜰하게 보살피는 보호자도 있는데.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나?’
더구나 이호는 타의적 백수인 로운과는 달리 지금 이 순간에도 여기저기서 찾아대는 사람들이 한가득인 능력 있는 프로듀서다.
그의 곡을 받기 위해 몇 년 전부터 예약을 해 둔다는 이야기도 전설처럼 내려오는 실화 중 하나였다.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초조해하는 이호를 제외하면 언제나와 같은 일상이 흘러갔다.
“네? 저 혼자요?”
그 일상에 변화가 생긴 것은 이 주를 며칠 앞둔 어느 날이었다.
* * *
이 일주일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지내면서 이미지가 와장창 박살 나서 그렇지, 이호는 잘나가는 유명 프로듀서였다.
사실 그동안 아무 일정 없는 것처럼 이정혜 곁에 붙어 있었던 게 오히려 기적에 더 가까웠다.
그랬던 이호가 로운에게 믿을 수 없는 말을 건넸다.
어쩐 일인지 로운에게 이정혜의 단독 보호를 부탁한 것이다.
“괜찮으시겠어요?”
과보호의 화신인 이호가 자신만 이정혜에게 붙이고 간다고?
로운이 묻자 골치가 아프다는 듯, 이호가 미간을 문질렀다.
“뺄 수 없는 스케줄이 생겼어. 하필이면 생방이라.”
“아. 생방이면 어쩔 수 없죠.”
“…그냥 쨀까?”
이 양반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람?
이호가 한술 더 떴다.
“하차하면 될 것 같은데…….”
“이호 님? 거기 심사위원이 이호 님이시잖아요?”
로운은 침착하게 급발진하려는 이호를 말렸다.
“나 하나 빠진다고 프로그램이 망할까?”
“망할걸요……?”
이호는 현재 리바이벌 싱어라는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이자 멘토로 출연 중이었다.
리바이벌 싱어는 벌써 몇 시즌째 이어지고 있는 화제의 중심인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매 시즌마다 온갖 이슈와 유명세로 화제가 되는 방송이기도 했다.
매 시즌마다 참가하려는 출연자의 수가 몇천 명을 넘을 만큼 어마어마한 인지도를 자랑했다.
“이호 님.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시고 갈 건 가셔야죠. 이호 님이 안 가셔서 그 프로그램이 망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고 속상해하겠어요?”
한때 아주 작은 기회조차 얻지 못했던 로운에게는 프로그램 펑크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물러터진 줄 알았는데 이런 때 보면 또 아닌 거 같단 말이지.”
[얘가 네 녀석처럼 책임감이 없는 줄 아느냐? 어째 나이도 먹을만치 먹은 놈이 이렇게 철딱서니가 없어서야. 쯧쯔.]“아, 본체도 못 갖춘 모질이에겐 듣고싶지 않은데.”
[이, 이 무엄한!]정말 때려치겠다고 하기 전에 로운은 이호를 달래기로 했다.
“괜찮으니까 일단 가 보세요. 빨리 끝내고 오시면 되잖아요.”
“빨리 못 끝내. 파이널이라 자정까지 진행되는 생방이라. 하필이면 지금 이런 때에 스케줄이라니.”
“제가 잘 지켜보고 있을게요. 요 일주일 동안 별일도 없었잖아요.”
“…그 별일이 없는 게 이상한 거라니까? 별일이 벌써 있어도 이상한 상황이 아니니까 그렇지!”
본래도 날이 갈수록 초조해했던 이호지만 오늘은 더 상태가 심각했다.
“이호 님, 설마 별일이 있기를 바라는건 아니신 거죠?”
“야, 넌 사람을 뭘로 보고! 당연히 아니길 바라지!”
“그럼 왜 그러시는데요? 이유를 알아야 저도 대비를 하죠.”
“그건…….”
분명 뭔가 있기는 한데 말하기가 조심스러운 모양이었다.
“내 예상으로는 벌써 뭔가 나와야 하는데 아직 아무 소식도 없어서 더 미치고 팔짝 뛰겠다는 거라고. 아무것도 모르니까 더 불안해지고. 무슨 느낌인지 알겠어?”
“그치만 요 일주일 넘는 시간 동안 아무일도 없었는데 하루 자리 비운다고 무슨 일이라도 생기겠어요?”
일단 로운은 불안에 떠는 여우를 잘 달래주기로 했다.
‘진짜 프로그램 때려치기라도 하면 참가자고 제작진이고 다 무슨 죄인데.’
한때 프로그램이 폭파되고 나가려던 코너가 엎어진 기억이 있는 전 망돌 입장에서 이입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 기분 알아? 태풍이 몰아치기 전의 그 고요함 같은 느낌이거든?”
“제가 잘 지켜보고 문제가 있으면 연락 드릴게요.”
“꼭 연락해. 바로 튀어올 테니까.”
예지력이 있는 이호가 이렇게 말할 정도면 뭔가 확실히 있는 것 같기는 하다.
‘에이. 그래도 딱 하루 비는데 설마 무슨 일이라도 있으려고.’
로운은 그때까지도 알지 못했다.
늘 그랬듯 설마는 사람을 잡는 법이고.
이번에도 그 설마가 그를 잡으리라고는.
* * *
로운이 처음 이변을 느낀 것은 이정혜의 기상 때였다.
“오늘은 기상이 좀 늦으시는데?”
일주일 넘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늘 같은 시간에 칼같이 기상하는 이정혜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기침을 좀 심하게 하는데?]숨을 힘겹게 몰아쉬기도 하고 어째 평소보다 더 힘겨워 보였던 것.
[끄응. 내가 가서 완화시켜 주면 좋을 텐데. 쓰읍.]하지만 지나친 간섭은 하늘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
이상한 일은 더 있었다.
늘 연한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이정혜지만 오늘은 그것마저도 건너뛰었다.
‘…연락을 드려야 하나?’
일단은 지켜보기로 했다.
어쩌다가 커피가 땡기지 않은 날도 있을 수 있으니까.
그러나 곧 두 번째 이변이 발생하였다.
“나 진짜 가라고?”
점심 즈음에 찾아온 조카손녀인 이윤서와 함께 식사를 한 뒤, 산책을 즐겨야 하는 이정혜.
하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늘상 하는 식사 후의 산책도 건너뛰더니 조카손녀까지 보내버린 것이다.
“웬일이야, 할머니가?”
“맨날 다 늙은 할머니랑 있느라 심심할 텐데 오늘은 친구들이랑 놀러라도 가.”
“갑자기 이렇게 용돈을 준다고? 나야 땡큐기는 한데. 아니, 근데 나 할머니랑 있는 게 제일 재밌다니까? 뒷권만 빨리 써주면 더 재밌을 텐데.”
“아이고. 내가 우리 집에 편집부 스파이를 키웠어. 스파이를. 아무튼 얼른 가. 할머니도 볼일 좀 보자.”
“흐음. 분명 뭐가 있는 것 같은데?”
이윤서의 의미심장한 말에 이정혜가 비밀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우리 윤서, 누굴 닮아서 이리 감이 좋은지 모르겠네. 은혜는 아무것도 모르던 아이였는데.”
“엄마는 할머니 닮았다던데? 자기 건너뛰고 나한테 온 거 같다고 하더라. 아무튼 알았어. 다음에 꼭 무슨 일인지 알려 줘야 돼?”
“그래, 그래.”
로운은 고민했다.
‘…하루 정도는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 하루가 어째서 이호가 없는 오늘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정혜가 그다음으로 향한 곳은 늘 가던 공원이 아닌 산책 이후에나 가던 커피샵이었다.
벌써 루틴이 두 개나 깨진 셈이다.
거기서 이정혜는 또 다른 기행을 보였다.
늘 마시던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과 또 한 잔의 음료 한잔을 하여 총 두 잔의 음료를 샀던 것.
‘괜찮은 거 맞아……?’
오늘의 이정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대상 그 자체였다.
하필이면 이호가 없는 날에 일어난 일이라 로운은 몹시 당혹스러웠다.
‘이러면 앞으로의 대비가 불가능해지는데.’
미래 예측이 가능한 이호도 없으니 행여 문제라도 생기면 대응이 느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연락을 해야 하나?’
하지만 전직 망돌의 자아가 자꾸만 튀어나오려고 한다.
로운이 고민하던 중.
“거기 있으면 불편할 텐데 그러지 말고 이리 와서 앉아요.”
온화한 목소리가 그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