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of a former idiot who became a top star RAW novel - Chapter (91)
전직 망돌이 탑스타 된 썰 푼다-91화(91/110)
91
처음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아니, 그렇잖은가.
지금의 로운은 몸을 숨긴 상태.
게다가 그에게는 이호가 주고 간 인식장애 효과가 있는 기물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나무 뒤는 오래 있기에 편한 곳은 아니지요. 그러지 마시고 오늘은 편히 앉으시는 게 어떤가요?”
혼잣말 같지만 혼잣말 같지 않다.
설마, 하고 긴장하자 청화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네게 한 말은 아닐게다. 아무리 그 여우가 괴짜라 하더라도 실력이 없는 것은 아니니 우연의 일치에 불과할 것이니라.]역시 그렇겠지?
로운이 막 안심하려는 찰나였다.
“그쪽에 계신 분께 드린 말씀이 맞으니 염려 마시고 와서 편히 앉으세요.”
그와 동시에 이정혜와 눈이 정통으로 마주쳐 버렸다.
“…….”
갑자기 주변 온도가 10도는 내려간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이상하다?
분명 이호는 들킬 일이 없다고 자신했었는데?
[잠, 잠깐만. 지금 저 인간이 내 말을 알아들은 것이냐?]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것은 청화도 마찬가지인 듯, 정신없이 물거품을 피워올렸다.
‘이호 님……! 안 들킬 자신 있다면서요……!’
암담함은 잠시였다.
‘잠깐만. 이거 심각한 거 아냐?’
마치 주마등처럼 지난 일주일 조금 넘는 시간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갑자기 눈앞이 아찔해졌다.
비록 일주일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로운의 역할은 실시간 물리력 제공자와 24시간 노동력 대기조에 지나지 않았다지만.
‘어떻게 봐도 수상한 사람인데?’
제3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수상하게 보여도 할 말이 없다고나 할까?
이럴 때 필요한 건 하나.
“죄송합니다.”
바로 신속하고 빠른 인정과 사과다.
그런데 이정혜의 반응이 의외였다.
“이로운 씨가 사과를 할 필요는 없지요. 잘못은 다른 쪽이 했는걸요. 게다가, 사과라면 오히려 제가 해야 되는걸요?”
“네?”
별일 없을 거라 생각했던 하루가 스펙타클하게 변했다.
석고대죄까지 고려하던 로운이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웠다.
“일단 이거부터 드세요. 좋아하실 것 같아서 사 봤어요.”
“감, 감사합니다.”
갑자기 왜 커피를 두 잔이나 사는가 했는데.
받아보니 민트초코였다.
“왠지 그걸 좋아할 것 같더라고요.”
정답이었다.
대체 어떻게 알아차렸는지 모를 일이었다.
‘잠깐만. 지금 상황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그런 로운을 알아챈 듯이 이정혜가 말했다.
“머리가 복잡해 보이네요. 일단 마시면서 진정해 보는 건 어떤가요?”
나란히 앉아 음료를 들이켜는 두 사람 사이에 잠시간의 침묵이 감돌았다.
“일단 고맙다는 말부터 해야겠네요. 그동안 여러 번 도움을 받고서 제대로 인사 한 번을 하지 못했었어요.”
“인사요……?”
“네. 저를 여러 번 도와주셨었지요?”
“…설마 저인 걸 다 알고 계셨어요?”
설마설마하며 묻자.
“그럼요. 한 번 보면 잊기 어려운 얼굴이니 당연히 기억하지요.”
이번에도 설마가 로운을 잡았다.
“그, 죄송합니다. 일부러 제가 따라다니려던 건 아니고요……!”
“탓하려는 게 아니니 걱정 말아요. 애초에 이로운 씨가 나서게 된 것부터 모두 제 탓인걸요. 사과는 이쪽이 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네? 그게 무슨…….”
“이로운 씨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일부러 소소한 사고를 좀 일으켰다는 얘기예요. 그래야 할 필요가 있었거든요.”
“네……?”
기분 탓일까?
‘뭔가 아까부터 계속 네? 만 반복하는 기분인데?’
안 되겠다.
로운은 상황을 정리할 필요성을 느꼈다.
어쨌거나 의뢰가 진행 중인 상황.
비록 예상치 못한 문제가 터졌지만 이 또한 로운이 감당해야 할 몫이자 책임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이리저리 휘둘리다 실패로 끝날 위험이 있다.
그러나.
[현재 의뢰 달성률: 57%]‘계속 지켜보기만 하는 게 정답은 아니었다는 거지.’
며칠간 답보상태였던 달성률이 이 어리둥절한 대화로 몇 퍼센트나 쑥 올랐던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이 상황 자체는 당황스럽지만 어쨌거나 정답에 가깝다는 뜻.
로운이 비장하게 입을 열었다.
“정혜 님? 제가 몇 가지 확인 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 * *
[허어어! 정말 나쁜 놈이로구나. 어쩜 그렇게 매몰차고 매정할 수가 있느냐?]청화가 혀를 차며 울분을 토했다.
언제 들켜서 당황했었냐는 듯, 아주 자연스러운 추임새였다.
아예 대놓고 이정혜의 무릎 위에 자리 잡고 앉아 있는 것이 퍽 자연스러워 보였다.
[난 이해된다. 이해되고말고. 정혜 씨가 일부러 모르는 척한 것도 다 그 여우 놈이 뿌린 씨앗이 아니더냐?]“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안심이 되네요.”
호칭마저도 언제 ‘정혜 씨’가 되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퍽 정다운 모습이었다.
‘이거 참……. 일이 이런 식으로도 풀리네.’
시작은 이 의뢰를 어떻게든 잘 끝내기 위해 수습하고자 하는 로운의 질문이었다.
이정혜가 어디서부터 알고 있는지.
정확히는 어디서부터 이 의뢰가 꼬였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질문을 던졌더랬다.
‘그게 몇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줄은 몰랐지.’
십 년 이십 년도 아니다.
무려 반백 년에 가까운 시간이 튀어나왔다.
그런데 그게 또 정답이었다.
[현재 의뢰 달성률: 73%]이정혜의 얼키고설킨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달성률이 쑥 오른 것이다.
‘이호 님 당신은 대체…….’
로운이 들은 두 사람의 이야기는 대충 이러했다.
* * *
‘그러니까… 이호 님이 정혜 님을 주웠다는 거지?’
외형을 따져 봤을 때는 전혀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이호의 정체가 천년 묵은 여우라는 것을 생각하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어렸을 적, 저는 부모님조차 꺼려 하는 아이였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정혜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아이였던 것이다.
부모님을 비롯해 마을에서조차 불길한 아이로 불렸었으니 그대로였다면 밥 한 끼조차 제대로 먹지 못하고 굶어 죽었을지도 몰랐다.
국토를 가르는 커다란 전쟁이 간신히 임시적으로나마 봉합된 직후였고, 모두가 그 여파로 고되고 궁핍했을 때였으니 말이다.
그런 이정혜를 주운 것이 바로 이호였다.
“뾰족하게 서 있는 귀를 보고 깜짝 놀란 것이 이호 님의 흥미를 끌었던 모양이에요. 영안이 트여 있는 이들은 더러 있지만, 자신의 둔갑까지 꿰뚫어 보는 사람은 여태껏 없다고 했었으니까요.”
배가 고파 나물이라도 뜯어 먹으려 들어간 곳에서 이호를 만났다.
이호는 이정혜의 특별함을 대번에 알아보았다.
-너, 아주 귀하고 값진 눈을 가지고 있구나.
불길하고 모두가 기피하는 아이는 이호의 앞에서는 특별함으로 바뀌었던 순간이었다.
이정혜는 난생처음 느꼈던 그 기분을 잊지 못했다.
처음으로 그녀의 인생을 긍정해 주는 이를 만난 것이었으니까.
그래서였다.
-인간은 무리 지어 사는 동물이라지만 너의 그 눈이 너를 외롭게 만들겠구나. 어찌한담. 아. 이러면 되겠구나. 너, 나를 따라가겠느냐?
이호가 선택지를 내밀었을 때 이정혜가 주저 없이 그를 따라가기로 한 것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었다.
어차피 그녀를 반기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호 님 옆에 있으면 언제나 안전했답니다. 불길한 아이였던 제가 늘 꿈에도 그리던 평범한 사람이 된 것 같았어요.”
보고 싶지 않아도 보이던 것들이 이호 옆에서는 모두 사라졌다.
비로소 컴컴했던 굴속을 빠져나온 듯한 해방감이 들었다.
그렇게 이호는 이정혜의 구원이자 인생의 빛이 되었다.
-아깝지는 않느냐? 그 눈만 있다면 너는 팔도강산을 주름잡을 대단한 이가 될 텐데. 모두가 네 발밑에서 너의 말 한 자락이라도 얻기 위해 고개를 조아릴 것이다.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태어난 직후 살아 있되 산 것 같지 않은 삶을 살던 이정혜에게라면 더욱더.
그러나.
-그럼 이호 님은요? 이호 님도 같이 계셔 주시나요?
-우리의 동행은 네 눈이 감길 때까지가 아니더냐. 도리어 활짝 개안하는데 내가 무에 필요한고?
-그럼 필요 없어요. 다른 사람은 필요 없어요. 누군가는 그걸 원할지도 모르지만, 저는 아니에요. 저는 이호 님만 있으면 돼요.
-인간의 마음은 변덕스럽지. 네가 아직 어려 세상 물정을 모르는구나. 나중에 후회나 하지 말려무나.
웃음기를 담은 목소리와 함께 눈가를 만지던 손이 떨어졌다.
두 사람의 동행은 계절이 수십, 수백 번이 바뀌는 동안 계속해서 이어졌다.
계절이 바뀌는 만큼, 이정혜 또한 자라났다.
한 사람을 향한 맹목적인 마음이 다른 색채를 띠게 될 만큼.
어느 날 이호가 불쑥 말했다.
-슬슬 너도 인간들 세상에 적응해야지.
아이가 자라 성인이 되고도 몇 년이 지날 때까지 반복돼 왔던 주제였다.
-전 싫다니까요? 이호 님만 있으면 돼요.
늘 같은 대답으로 끝나는 이야기였지만 그때만큼은 달랐다.
-이제 눈도 많이 흐려지지 않았더냐.
이정혜가 ‘평범’에 성큼 다가선 때이기도 했다.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하지만 너는 아무것도 보고 싶어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나와 함께 있으면 그게 무슨 소용이야. 나야말로 네가 피해야 할 가장 큰 존재일 텐데. 나와 계속 있으면 너의 눈은 영원히 닫히지 않을 것이다.
-이호 님만 있으면 괜찮아요.
-인간의 마음은 변덕스럽지. 나중이 되어도 그 마음이 굳건하다고 자신할 수 있느냐?
날이 갈수록 이호의 말수가 줄어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정혜의 눈이 온전히 이승의 것만을 담게 되었을 무렵.
이호는 이정혜의 앞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처음엔 믿을 수 없었지요. 그다음에는 믿고 싶지 않았어요.”
이정혜는 오랜 시간 이호를 찾아 헤맸다.
그 시간이 이호와 함께했던 시간을 넘어서 그 배가 될 때까지도.
그동안 이정혜의 일상은 평온해졌지만, 동시에 평온하지 못했다.
이미 누군가에게 줘 버린 마음의 빈자리가 너무나 커서 결핍에 시달린 탓이었다.
“그때부터 책을 쓰게 되었지요. 그분과의 일을 잊고 싶지 않았거든요. 나 홀로 긴 꿈을 꾼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었어요.”
그것은 잊지 않고자 스스로에게 되뇌는 주문과도 같았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이정혜는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정혜는 침착하게 기다렸다.
그가 또다시 달아나지 않기를 바라며, 언젠가 다가오기를 바라며.
“그런데… 이제야 떠날 날을 코앞에 나타나 주시네요. 그래도 이제는 믿어 주시겠지요. 제 마음은 변덕스럽지 않고 굳건했다는 것을.”
여기까지 듣던 로운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저기, 죄송하지만 아까부터 계속 신경 쓰이는 게 있는데요.”
“네, 말씀하세요.”
“그…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게 어떤 말씀이신지……?”
아까부터 아주 중요한 걸 놓치고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던 것.
다행히 이정혜는 로운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언짢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녀가 곧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저, 암 말기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