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of a former idiot who became a top star RAW novel - Chapter (93)
전직 망돌이 탑스타 된 썰 푼다-93화(93/110)
93
“…뭔데. 왜 사람을 그렇게 쳐다보는데? 혹시 나 뭐 잘못했어? 아니면 무슨 일이라도 있어?”
무슨 일은.
‘있었지. 아주 많이.’
일단 둘 사이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는 게 가장 큰 수확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두 사람 사이에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그치만 냅다 질렀다가 이 겁 많은 여우가 도망쳐서는 곤란하다.
의뢰의 실패는 곧 그의 죽음이나 마찬가지니까.
“아뇨. 뭐 별일은 없었어요.”
“…아닌데, 뭔가 촉이 오는데?”
하여간 감도 좋다.
그러나 로운에게는 나름대로 혹독하게 다져진 연기력이 있었다.
“뭐가요? 괜한 소리 하지 마시고 집중하세요. 정혜 님 나오시니까.”
“이상한데. 분명 뭔가 있는데.”
이호는 뭔가 미심쩍은 모양이지만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당연했다.
‘알아낼 사람이었으면 진작 정혜 님이 눈치 깠다는 것도 알아챘겠지.’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 척하는 어설픈 가면극.
그러나 커튼이 내려오기 전까지는 이어져야만 한다.
‘갈 길이 머네.’
때마침 이정혜가 나오고 있었다.
로운의 상념이 멈추고, 또 다른 하루의 루틴이 시작되었다.
* * *
“약이 늘었나?”
이호가 중얼거렸다.
“그제까지는 분명 두 알이었는데? 종류도 바뀐 거 같고……?”
어제 로운과 헤어진 후 병원에 다녀온 모양이었다.
‘이호 님 없을 때를 일부러 노려 가셨네.’
그걸 또 이호가 귀신같이 캐치한다.
어지간히 신경을 쓰지 않으면 모를 만한 변화일 텐데 말이다.
‘이렇게 보면 이호 님도 아주 나쁜 사람은 아닌데.’
일단 이호의 걱정은 100퍼센트 진심이 틀림없다.
문제는.
‘방식이 글러먹었어, 방식이!’
그 진심이 드러나는 방법이 한없이 잘못된 방향이라는 거다.
그저 지켜보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역시 이렇게는 아무것도 안 돼.’
정작 병에 걸린 건 이정혜인데 이호가 더 환자 같다.
하루 스케줄을 다녀온 이호는 한층 더 그 피페함이 업그레이드되어 있었다.
“이호 님.”
“어어.”
“식사는 하셨어요?”
“먹었지?”
“언제 먹은 식사에요?”
“…그저께 저녁.”
여상하게 대답하던 이호가 뭔가 이상함을 감지한 듯 슬그머니 눈치를 본다.
“잠은요.”
“…자. 아니, 뭔데. 나 왜 갑자기 취조받는 건데?”
“일은 계속하시고 계시는 거고요?”
“내 질문은 무시하기냐.”
“또 밤새면서 해요?”
“아, 안 죽는다니까?”
왜기는.
정혜 님 앞에 데려다 놓으려면 일단 저 초췌한 꼴부터 어떻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로운이 이정혜와 작당모의를 한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이 사람들, 나 아니면 절대 백 년이 가도 둘이 만날 일 없다……!
그런 예감이 강력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비록 로운이 이호처럼 예지력을 가진것은 아니라지만.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던가.
‘이건 굳이 예지력이 없어도 딱 견적 나오지.’
제3자의 개입이 필요하다.
만약 두 사람 사이에서 해결될 일이었다면 벌써 해결되고도 남았을 터.
지금의 이호를 보면 도망갈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이정혜를 직접 만나러 갈 용기가 없는 것도 맞아 보였다.
“일단 밥부터 먹어요.”
“무슨 소리야? 가긴 어딜 가? 너 아까부터 자꾸 이상한 소리 한다? 자리 비운 사이에 우리 정혜한테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어떡하려고?”
아주 지극정성이다.
로운은 가늘어진 눈으로 이호를 쳐다보았다.
“있을 때나 그렇게 잘하지 그랬어요.”
“…너 아까부터 묘하게 말로 날 패는데?”
“하여간 아무 일도 없을 거니까 일단 식사부터 해요.”
첫날을 제외한 그간의 자잘한 사고는 이정혜가 일부러 의도한 일이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으니 불필요한 사고는 없을 터.
“너 진짜 무슨 예지력이라도 생겼어?”
이호는 어리둥절하면서도 로운을 따라 얼떨결에 뜨끈한 콩나물 국밥 앞에 앉게 되었다.
그나마도 이정혜의 모습이 보이는 건너편의 가게였다.
일주일 넘게 아무것도 안 먹어도 산다던 여우는 정작 음식을 앞두자 크어 소리를 내며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배고프면 서러우니까 뭐라도 먹이고 시작해야지.’
로운이 낸 결론은 간단했다.
-두 사람 다 용기를 못 낸다면 내가 내면 되는 거 아냐?
그러라고 받은 의뢰일 터.
지금 두 사람에게 필요한 건 다름 아닌 대화다.
이정혜의 입장은 확인했으니 남은 것은 이호의 사연을 듣는 것이다.
이 대화가 앞으로 있을 계획의 흐름을 정할 것이다.
“그래서, 무슨 사연인 건데요?”
“뭐가?”
후식으로 나온 티백을 후룹 마시던 이호가 물었다.
“정혜 님은 왜 떠나셨던 건데요?”
“풉! 켁!”
콜록콜록!
사레가 들렀는지 기침소리가 요란했다.
간신히 기침을 멈춘 이호가 지진하는 동공을 들고 로운을 바라봤다.
“너, 너 그 얘기 어디서 들었어?”
이정혜에게서 직접 들었다.
‘물론 이렇게 말해 줄 수는 없지만.’
아직 계획의 실행 여부도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진실을 얘기할 수는 없으므로 로운은 약을 팔기로 했다.
“어떻게 몰라요? 딱 보이는데.”
“뭐, 뭐가 보인다는 건데?”
“핏줄도 아니야, 보은도 아니야. 원수도 아니고, 그럼 남은 게 뭐가 있겠어요? 그리고.”
“그리고……?”
몇 마디 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정신이 너덜거리는 듯한 이호가 물었다.
“이호 님이 내건 의뢰 내용. 그리고 이호 님이 그간 보여 주셨던 태도들. 모르면 바보 아니겠어요?”
일단 의뢰명부터가 그랬다.
[의뢰: 한 걸음 뒤에 항상 내가 있었는데]‘대체 의뢰명은 누가 짓는 건지 궁금하다니까. 설마 시스템이 짓나?’
의뢰명부터가 미련이 철철 넘친다.
그뿐인가?
“게다가 매일 청승이란 청승은 다 떨어 댔으면서. 모르기를 기대한 게 양심 불량이죠.”
“청승…….”
마지막 크리티컬이었는지 이호가 창백한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이대로 가면 의뢰는 평생 완료 못 해요. 이호 님의 미련을 청산해야 하는 게 의뢰 내용인데 지금 보면 불가능해 보이거든요.”
“뭐? 그 정도라고?”
“네. 그 정도예요. 저도 의뢰를 맡은 입장에서 그럼 곤란하다구요. 지금은 미련 청산은커녕 점점 더 심해지고 있으니까요.”
“…….”
뭔가 생각하는 듯 말없이 한숨만 쉬던 이호.
“긴 얘기가 될 텐데. 그래도 괜찮겠어?”
그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 * *
“겁쟁이네요.”
[겁쟁이네.]길다면 긴, 복잡하고 다단한 영물의 마음을 들은 소감은 이러했다.
“저기,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내가 겁쟁이인 거 잘 알거든?”
속내가 다 까발려진 이호가 한숨을 푹 쉬었다.
‘마음이 변할까 무서워 먼저 떠났다는 게 말이야 방구야.’
그러니까 대충 간략히 요약하자면 이런 얘기다.
그전까지는 자신만이 이정혜의 유일한 구원이자 세상이라고 생각했던 이호.
그런데 이정혜의 능력을 성공적으로 누르게 되자 상황이 달라졌던 것이다.
세상 이면의 존재들에게서 자유로워진 이정혜는 세상을 바르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그만큼 그녀의 세계는 넓어질 것이 분명했다.
이호는 그것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아무것도 자신할 수 없었다.
이정혜의 맹세마저도.
“그 말을 직접 정혜 님한테 하시지 그랬어요.”
“어떻게 그래? 내가 세상에서 제일 대단하다고 여기는 아이한테.”
축 처진 어조로 이호가 대답했다.
“게다가 말야, 나중 가서 그 아이가 더 이상 날 예전처럼 바라보지 않는다 생각하면… 심장이 내려앉는단 말야. 무서워. 어쩔 수 없었다고.”
“잘 모르겠지만 일단 알겠어요.”
너무나 자신만만하게 살아온 나머지 두려움에 대한 내성이 전혀 없었던 여우.
그렇기에 그 두려움이 무서워 차라리 내던지는 것을 택해 버렸다. 그 선택이 수십 년을 후회하게 만들 줄도 모르는 채로.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만큼 너무나 소중하기에 두려움 또한 생겨났을 테니 이해를 못 할 바는 아니었다.
“내 얘기도 다 들었겠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어떻게 하긴요. 밥 다 드셨으면 일어나죠.”
“…엥? 그게 끝이야?”
“일단 가죠. 정혜 님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해요?”
“뭐지? 여우는 난데 왜 내가 홀린 거 같지?”
이호가 어리둥절하면서도 로운을 따라 식당을 나선다.
다시 이정혜 근처에 자리잡으면서도 이호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좀 느낌이 쎄한데…….”
타고난 감 덕분인지 뭔지.
하여간 눈치는 빠르다.
‘그래도 이 상황은 예측하지 못한 것 같은데?’
무언가 알아챘다면 지금 이렇게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만 갸웃거릴 리가 없다.
로운은 안심한 채로 청화를 향해 미리 약속된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콜록콜록!”
이정혜가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환절기엔 감기 걸리기 쉬우니까 그렇게 목 좀 싸매고 다니랬더니만 말 정말 더럽게 안 듣지.”
안 그래도 일교차가 심한 날씨다.
투덜대면서도 걱정됐는지 이호가 손끝으로 훈풍을 불러낸다.
따뜻한 햇볕 아래 데워진 훈훈한 공기가 곧 기침을 멈추리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콜록, 콜록콜록!”
이정혜의 기침은 더 격렬해졌다.
아예 등을 둥글게 말고 몸을 웅크린다.
기침을 할 때마다 들썩거리는 등이 예사롭지 않다.
“아니, 뭐지? 감기인가? 감기 기운은 없어 보였는데?”
그러는 사이 이정혜의 기침 소리는 더욱 크고 격렬해졌다.
공교롭게도 이윤서 또한 자리를 비운 상태.
“아, 왜 하필이면……!”
이호가 초조하게 중얼거린다.
‘왜기는. 미리 얘기되어 있으니까 그렇지.’
로운은 한 발짝 떨어진 제3자의 시선으로 이 계획의 피날레가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콜록!
곧이어 이어지던 격한 기침소리가 멈췄다.
이정혜가 입을 가렸던 손을 천천히 떼어냈다.
나이가 들어도 고운 손바닥과 입가를 물들인 선명한 색상을 보는 순간.
[어이구, 저거. 드디어 튀어나가는구만. 이게 진짜 되네?]안절부절 못하며 초조하게 손톱만 물어뜯던 이호가 어느새 이정혜 앞에 서 있었다.
몇십 년을 주저하며 맴돌던 사람답지 않은 머뭇거림 하나 없는 날랜 몸놀림이었다.
“제가 될 거라고 했잖아요.”
[어떻게 알았느냐? 저 엉덩이 무거운 여우 놈이 움직이리라는 걸. 내 보기엔 저건 아무리 천 년이 지난다 해도 망부석처럼 움직일 놈이 아니었는데 말이다.]“후회도 해 본 사람이 잘 아는 법이거든요.”
로운이 어깨를 으쓱했다.
후회에 한 일가견 있는 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정혜야, 정혜야!”
그런 둘의 눈에 후회 드라마 남주의 정석을 찍고 있는 이호가 보였다.
다행이라면 이 이야기의 끝은 새드 엔딩이 아니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