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of a former idiot who became a top star RAW novel - Chapter (94)
전직 망돌이 탑스타 된 썰 푼다-94화(94/110)
94
“설마했는데 정말 제가 죽기 직전에야 간신히 그 얼굴을 보여 주시는군요.”
못 보던 사람이 달려와 대뜸 이름을 부르며 애절하게 로맨스를 찍어 대는 게 당황스러울 만도 하건만.
이정혜는 아무렇지도 않게 붉게 물든 입가를 슥 닦아 냈다.
“마, 말하지 마. 병원. 당장 병원부터 가자. 응?”
피를 토한 건 이정혜인데 누가 보면 환자는 이호인 줄 알 정도로 이호가 안절부절못했다.
“그럴 필요는 없어요.”
“뭐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거야! 안 그래도 몸도 안 좋아 보이더니만 이제 피까지 토했는데! 대체 그 몸으로 병원에 갈 필요는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당장이라도 자신을 달랑 들고 병원으로 내딜릴 기색인 이호를 향해 이정혜가 차분하게 말했다.
“피를 토한 게 아니니까요.”
“어엉……?”
분명 방금까지는 손바닥이며 입가며 붉은색 천지였건만.
눈 한번 깜빡하는 사이 언제 그랬었냐는 듯 붉은색이 사라졌다.
“……?”
남은 것은 상황파악을 못한 얼빠진 여우 한 마리였다.
“뭐지? 나 홀렸나?”
깨끗하기만 한 손과 입가를 본 이호가 중얼거린다.
“별거 아니라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냥 물이었답니다.”
그러고 보니 이 자리에는 물을 관장하는 존재가 함께 있었다.
물의 근원을 다스리는 이에게는 잠깐 색을 바꾸는 정도야 일도 아니었을 터.
그제야 돌아가는 상황을 알아챈 이호가 머리 위로 느낌표를 띄웠다.
“그, 저, 아니, 나, 그러니까 지금, 어…….”
고장이라도 난듯 버벅거리며 삐걱거리는 걸음으로 후퇴하려는 이호를 이정혜가 아무렇지도 않게 붙잡았다.
“어디 가시려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이게…….”
“이렇게 먼 시간을 돌아 만나게 되었는데, 여전히 도망만 치실 생각은 아니시겠지요?”
“그… 아니……!”
당황하면 말을 더듬는 건 인간이나 영물이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그러면서도 차마 자신을 잡은 이정혜의 손을 떨쳐 낼 생각은 하지 못한다.
행여 떼어 냈다가 다치기라도 할까 봐 염려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성공이네.’
작전명 ‘여우 사냥’.
고구마 답답이인 이 상황을 타개할 계획이었다.
당연하지만 이 작전을 짠 사람은 로운이다.
-이건 중간에서 어떻게 할 만한 수준이 아니야.
수십 년이나 묵은 얼키고설킨 감정들이다.
중간에서 말 몇 번 옮기는 것으로 해결될 것 같지는 않았다.
그게 됐으면 벌써 미련을 털어 내고도 남았을 터.
누차 말하지만 로운을 찾으려고 전국을 뒤지고 다니지도 않았으리라.
그러니 무언가 방법이 필요했다.
이 고답인 상황을 풀 방법.
그래서 로운은 한 가지 꾀를 내었다.
‘그럼 두 사람을 직접 만나게 하면 되지 않나?’
이 두 사람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솔직한 대화다.
로운이 이 생각에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은 바로 어제, 이정혜와 대화를 나누면서였다.
‘문제는 이호 님이 단기 예지력이 있다는 거란 말이지?’
미리 알아차린다면 이 덫은 무용지물이 된다.
‘하지만 여기에 청화 님의 힘이 섞이면 얘기가 달라지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호가 직접 잔재주라고 할 만큼 그의 단기 예지력에는 여러 가지 제약이 존재했다.
그중 하나가 동급 존재에게는 힘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간단히 말해 청화가 개입된 미래는 이호가 예측할 수 없다는 소리다.
그렇게 완성되었다.
도저히 뛰쳐나가고는 버티지 못할 자극적인 연출의 정수가.
“놀라게 해 드려 죄송해요.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저랑 다시 얼굴을 볼 생각도 없으셨잖아요. 그러니 피장파장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그사이, 이호를 단단히 얽어매는 데 성공한 이정혜가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설마하니 제가 이렇게 나이 들었다고 이제 얼굴도 보기 싫은 것은 아니시지요?”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 거야!”
“그럼 왜 제 얼굴은 왜 보지 않으시는 건가요?”
“그거야…….”
지은 죄가 있는 이호가 말을 돌린다.
“그럼 정혜, 너. 어디 아픈 건 아닌 거지?”
“글쎄요……?”
“뭐? 왜 답이 그렇게 애매한데? 설마 어디 아픈 거야?”
“아프면 어떻고 안 아프면 어떤데요? 지금까지 얼굴 하나 안 비추던 양반이 지금 저 윽박지르는 거예요?”
“아니, 그건 아니고오…….”
두 사람의 대화를 보아하니 잘 풀릴 것 같다.
[좋을 때다, 좋을 때야.]천 년을 넘게 산 여우가 그 반의반의 반절도 채 살지 못한 인간에게 꽉 쥐여 잡힌 모습을 보며 청화가 중얼거렸다.
“그럼 우린 이만 갈까요?”
[어엉? 저러고 둘만 놔두고 간다고?]“어차피 이제는 두 분이 대화로 풀어 가실 일만 남았어요.”
분명 수십 년을 떨어져 있던 만큼 서로간 해야 할 말도, 들어야 할 말도 많으리라.
* * *
“이번 의뢰는 진짜 여러모로 특이했어요.”
갑자기 처음 만난 사람이 냅다 의뢰를 강제로 맡기지를 않나.
시스템이 버벅이지를 않나.
거기에 의뢰인도, 의뢰 내용 자체도 특이했다.
‘그 유명한 Re.D가 인간이 아니라는 건 아직도 신기하단 말이지. 게다가 이호 님 말고도 이호 님 같은 존재들이 더 있다는 것도 신기하고.’
놀랍게도 인간 사회에 제법 상당한 수의 영물들이 섞여 있단다.
-나처럼 선적에 오르지는 못했어도 나름 수양을 쌓아 인간으로 둔갑할 줄 아는 녀석들도 꽤 있지. 알아두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야.
대화를 하며 어쩌다 보니 알게 되었다.
이번 의뢰가 아니면 평생 몰랐을 사실이었다.
[두 번 특이했다가는 내 간이 남아나질 않겠구나. 그나저나 얼추 끝난 모양이지?]“네. 곧 완료될 것 같아요. 99퍼센트네요.”
푹신한 카우치에 드러누운 로운이 의뢰 달성률을 체크했다.
[현재 의뢰 달성률: 99%]완료까지 고작 1퍼센트만을 남긴 상황.
이 의뢰의 끝도 머지않았다.
‘특이한 의뢰지만 나쁘지는 않았어.’
그간 고생한 것은 사실이라지만.
누군가 평생 후회할 일을 막은 값이라 생각하면 그리 고생이라 할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뿌듯함이 더 크달까?
[그럼 이제 슬슬 다음 의뢰를 정해도 되겠구나.]“벌써요?”
[벌써라니! 그 여우 놈에게 새치기만 당하지 않았어도 벌써 네게 맡겼을 의뢰가 몇 개인데!]“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음 의뢰는 가만히 한자리에서 우두커니 있는 것만 아니면 좋겠네요.”
[하긴. 좀이 쑤시더구나.]모처럼 둘의 마음이 일치했다.
비록 몸은 힘들었다지만 이 주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인내한 보람이 넘치다 못해 아주 뿌듯했다.
로운은 그렇게 홀가분하고 상쾌한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그 생각이 바뀐 것은 다음 날 아침.
“……?”
여전히 99퍼센트에 고정되어 있는 의뢰 달성률을 보았을 때였다.
‘음. 그래. 아직 두 분이 풀 회포가 많은가 보다.’
실질적 의뢰 종료가 된 첫날.
로운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뭐지? 왜 아직도 99퍼센트인데?’
하루가 더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났을 무렵.
[현재 의뢰 달성률: 99%]의뢰 달성률을 보는 로운의 얼굴은 이보다 더 심각할 수 없었다.
‘아직도 회포를… 푸시나?’
벌써 사흘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안 되겠다. 내 이 여우 놈을 찾아가 봐야겠다!]“헤어진 시간이 수십 년이니까 길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 하던 찰나였다.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일면식도 없는 낯설게 생긴 호리호리한 미남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운은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이호 님?”
“어어.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
이호였다.
* * *
“연락도 없이 웬일이세요?”
“어어.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왔지? 미안. 여기가 제일 안전할 것 같아서 일단 무턱대고 왔는데 미안하다.”
뜬금없는 손님이었지만 손님은 손님.
로운은 일단 이호를 안으로 들였다.
“아니, 그보다 그 모습 뭐예요?”
“이거 내 본모습이야. 지금 힘 조절이 잘 안 돼서 둔갑술 유지하기가 좀 힘들어 가지고……. 너라면 바로 알아볼 것 같아서 그냥 왔어.”
그건 그랬다.
물론 이전의 Re.D도 준수하게 생기긴 했다지만.
지금의 모습에 비하면 한참이나 다운그레이드된 모습이나 다름없다고나 할까?
그래도 이호라는 걸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어째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무슨 일 있어요? 둔갑은 왜 갑자기 풀었어요?”
“일이 있는 건 아니고… 약속을 이행하러 왔어.”
로운은 의아했다.
[현재 의뢰 달성률: 99%]여전히 99퍼센트에서 머무르는 저 달성률을 보라.
“벌써요?”
“벌써라니. 정신차려 보니 나흘이나 지나서 놀라서 바로 튀어왔는데.”
그건 그랬다.
아직도 회포를 푸나 생각했었으니까.
‘그럼 본인도 아직 완료가 안 된 걸 모른다는 건가?’
본인도 모르는 저 애매한 1퍼센트의 정체는 대체 뭐란 말인가.
심지어 이호 본인은 순도 100퍼센트의 진심이었다.
아예 대놓고 로운에게 고마움을 진지하게 전하기까지 했던 것.
“저번에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인사도 못 한 거 같아서 말야. 저기, 진짜로 고마워. 네가 아니었으면 정혜와 다시 대화를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거야. 그리고… 또다시 뒤늦게 후회하면서 수십, 수백 년을 살아갔을지도 몰라.”
그렇게 말하는 이호의 눈빛은 진심 그 자체였다.
“정말이지, 네가 아니었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그 말을 들으니 짐작가는 구석이 있다.
“혹시 알게 되셨어요?”
“암 말기인 거?”
“네.”
“응. 말해 주더라. 근데 사실은 말할 생각 없었다더라고. 굳이 몰라도 되는 걸 알아서 속상한 게 싫었다나…….”
훌쩍.
이호가 한번 코를 킁, 훌쩍인다.
“네 덕이야. 네가 아니었다면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눈뜬 장님처럼 놓쳐 버리고 말았을 거야. 얼마 남지 않은 그 소중한 시간을 허투루 날릴 뻔했다고 생각하면 진짜 눈앞이 깜깜하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코를 훌쩍였다.
아까부터 신경 쓰이던 발갛게 짓무른 눈가며 벌건 코끝하며.
‘그래서 울었구만. 울었어.’
뭐.
이상한 일은 아니다.
기껏 몇십 년 만에 오해를 풀었는데 병으로 다시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 마음은 얼마나 고통스러울 것인가.
“생각해 보면 뜬금없이 찾아가서 놀랐을 텐데도 거절하지 않고 이렇게 도와줘서 정말 네게는 고맙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진짜로 고마워. 정말로.”
큰 은혜를 입었다며 이호가 연신 고개를 숙였다.
그러더니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크기에 동글동글한 구슬이었다.
“네게 무엇으로 이 은혜를 보답해야 할지 고민했는데, 생각나는 게 이것밖에 없더라고.”
그걸 보고 가장 먼저 놀란 것은 청화였다.
[에엥? 여우 너, 진심이냐?]딱 봐도 범상치 않아 보이기는 했다.
크기는 보통의 구슬보다 조금 더 큰 정도인데 그 안에서 뭔가 이리저리 휘몰아쳤으니까.
그러니 뭔가 대단한 것이겠거니 예상은 했지만.
청화가 저렇게 나서서 놀랄 정도라고?
“저게 뭔데요?”
“이거 내 여우 구슬이야.”
답은 이호에게서 나왔다.
“여우 구슬이요?”
[간단히 말해 저 녀석의 내단이라고 보면 되느니라.]“…내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