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of a former idiot who became a top star RAW novel - Chapter (98)
전직 망돌이 탑스타 된 썰 푼다-98화(98/110)
98
“보시면 아셨겠지만, 이 해묵이라는 캐릭터는 이호 님을 모델로 쓰여졌답니다. 그만큼 제가 신경 쓰는 아이이기도 해요.”
처음 드라마화 제안을 받았을 때부터.
이정혜는 여러 배우들을 신경 써서 찾아보았단다.
다름 아닌 이호를 본떠 만든 캐릭터인 만큼 아무에게나 배역을 넘겨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우분들이야 워낙 다들 훤칠하시지만, 아쉽게도 제가 생각하는 이미지는 아니었어요.”
그렇기에 누구나 원하는 기회가 왔음에도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아무나 구색 맞춤으로 갖다 넣어 봤자 작품을 해치기만 할 뿐이라고 생각했었답니다. 제 건강 문제는 그다음 문제였어요.”
로운은 이호를 흘끗 바라보았다.
본래 모습인 그는 왜 사람들이 여우에 홀린다고 했는지 알 만큼 수려하기 짝이 없는 미남자였다.
‘하긴. 저 인간 같지 않은 외형을 닮은 배우가 있을 리가…….’
…있다.
생각해 보니 하나 있기는 했다.
바로 한 달여 전까지 24시간 붙어 있던 익숙한 얼굴이 하나 떠오른다.
물론 굳이 장르를 나누자면 강차헌은 이호보다는 선이 굵은 미남에 더 가깝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둘 다 인간같지 않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것 같기도 했다.
거기까지 생각하던 로운이 멈칫했다.
‘잠깐. 그럼 나도……?’
감탄할 때가 아니었다.
지금 저 인같 같지 않은 얼굴을 연기해야 하는 건 다름 아닌 로운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외형을 얘기하는 건 아니에요. 이호 님은 저와 다니실 때 별의별 오만가지 모습으로 다니셨거든요.”
참으로 다행스러운 말이었다.
이정혜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 배역의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분위기예요. 그리고 로운 씨는 제가 생각했던 그 느낌을 딱 가지고 있지요. 그렇기에 그동안 미뤄 왔던 계약에도 응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로운 씨를 만난 이후에 말이에요.”
“만약 저를 만나지 않으셨다면…….”
“계약서를 꺼내 볼 생각도 하지 않았을 거예요.”
힘주어 말하는 이정혜의 목소리엔 확신이 가득했다.
“뭘 고민해. 우리 정혜 눈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는 것도 아니고.”
안다.
천년을 산 이호마저 감탄하게 만들었던 것이 이정혜의 눈이라고 했었으니까.
그런 이정혜의 눈이 확신을 담고 로운을 향한다.
“저와 이호 님이 로운 씨께 갚지 못할 은혜를 입었습니다. 하지만 이 제안이 그 감사의 표시라고는 생각하지 말아 주세요. 실은 감사의 의미보다는 제 욕심에 더 가까운 일이니까요.”
따지고 보면 일을 해 달라고 부른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이정혜가 말했다.
그닥 틀린 말도 아니기는 했다.
그 일이라는 것이 로운과 다른 배우들에게는 아주 큰 기회라는 것을 제외한다면.
[뭘 고민하느냐? 저 아이가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옆에 있던 청화도 슬쩍 말을 보탠다.
“청화 님은 저 작품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하시는 거 아니었어요?”
의뢰할 시간도 부족한데 한 번 촬영 들어가면 몇 날 며칠이고 시간 내기가 애매해지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늘 탐탁치 않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니이. 생각해 보니 나쁘지는 않은 것 같더구나. 흠흠.]이 태세 전환은 뭐지?
‘업보 수치가 줄어드는 게 인상적이셨던 모양이네.’
[게다가 너도 요 몇 주 일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더냐! 크흠. 기왕이면 정혜 씨도 돕고, 업보도 청산하고! 이게 바로 일석이조가 아니겠느냐!]그러고 보니 환세비원록을 검색할 때 청화도 옆에 있었다.
심지어 책을 읽을 때도 함께 읽기까지 했다.
그러니 이 작품이 얼마나 유명하고 재미있는지 모르려야 모를 수 없을 터.
‘확실히 욕심이 나는 제안이야.’
그럴 수밖에 없다.
직접 읽었기에 로운은 확신했다.
이 작품은 무조건적으로 성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큰 기회인 것을 떠나, 이 작품은 재미가 있었다.
재미가 없었다면 십여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주욱 베스트셀러를 지킬 수 있을 리가 없다.
‘내게는 행운이기도 하고.’
재미있게 읽은 작품의 등장인물을 맡을 수 있는 기회가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
이건 큰 기회가 맞았다.
오히려 이런 제안을 해 준 이정혜에게 이쪽이 감사함을 표해도 모자랄지도 모를 정도로 말이다.
만약 이게 여우 구슬에 대한 보답이라면 기필코 거절했겠지만.
두 영물들이 확언하지 않았던가.
그런 이유가 아니라고 말이다.
“정말 제가 맡아도 괜찮으시겠어요?”
로운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내내 온화한 미소만 짓던 이정혜의 얼굴에 비로소 안심 어린 웃음이 꽃피었다.
“그럼요. 괜찮고말고요. 로운 씨가 아니면 어차피 드라마를 해 볼 생각도 하지 않았는걸요. 그러고 보면 로운 씨가 이 드라마의 은인이겠네요. 덕분에 제가 계약서에 사인을 할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까.”
대체 자신의 어디에서 이정혜가 가능성을 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놓치고 아쉬움만 삼킬 바에는 조금 뻔뻔해지는 게 더 낫겠지.’
언제부터 연기를 하는 것이 이렇게 설레고 재미있어졌는지 모르겠다.
마치 무대에 서는 것과 같은 것과 같으면서도 조금 다른 듯한 감각이라고나 할까.
아이돌 시절의 무대가 그리웠던 이유는 하나다.
그가 살아 있음을 증명할 수 있는.
그 수단이 바로 무대였으니까.
다른 누군가의 대타가 아닌 그의 이름으로 오르는 무대 말이다.
‘지금은… 다른 이름의 무대에 오르는 셈이라고 해야 하나.’
그가 있기에 무대가 완성되었듯이.
그가 있기에 작품이 완성되었다.
그렇기에 로운은 이 연기라는 세상에, 또 다른 이름의 무대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과거와 다른 것은 또 있었다.
연기 역시 다른 이의 이름을 뒤집어쓰는 것은 과거와 비슷할지는 몰라도.
‘따지고 보면 오히려 반대니까.’
타인을 연기함으로서 그 결과물로 인정받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로운이라는 점이 결정적인 차이였다.
로운이 완벽히 배역에 녹아들면 녹아들수록.
완벽한 타인이 될수록.
모두에게 로운은 더 확실하게 각인될 뿐이다.
‘물론 연기가 즐거운 건 그뿐만은 아니지만.’
로운은 생각을 갈무리하고 이정혜를 향해 감사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작가님. 이런 기회를 제게 주셔서요.”
“천만에요. 감사는 제가 드려야죠. 로운 씨 덕에 결심을 하게 된 거니까요.”
이정혜가 웃으며 말했다.
“이제 로운 씨도 허락해 주셨으니 저도 마음 놓고 계약서에 사인해도 되겠네요. 곧 연락드릴게요.”
정말로 로운의 허락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이정혜가 덧붙였다.
그리고 며칠 뒤.
로운은 소식 하나를 받았다.
이정혜가 자신하던 바로 그 연락이었다.
* * *
요즘 매일같이 여러 제작 업체에 프로필을 돌리고 괜찮다 싶은 작품이면 직접 찾아가기까지 마다하지 않으며 분골쇄신하던 매니저, 박형우는 오랜만에 사장을 대면했다.
그리고 눈이 튀어나올 만한 소식을 들었다.
“예에? 환비록이요? 그거 완전 유명한 베스트셀러 아니에요? 그게 로운이한테 오퍼가 들어왔다고요?”
갑자기 사장이 왜 불렀나 했더니만.
엄청난 소식이 기달리고 있었다.
놀랄 만한 일은 더 있었다.
“그래. 그 완전 유명한 환세비원록의 작가가 직접 이로운을 콕 짚어서 요청했어. 요새 걔, 대체 뭐 하고 다닌대니?”
무려 수많은 쟁쟁한 배우들을 제치고 로운에게 오퍼가 들어온 것이었다!
환세비원록.
업계인들 사이에서는 긁지 않은 복권이라고 불리는 보장된 흥행 수표나 다름없는 작품이었다.
안 그래도 얼마 전부터 알음알음 소문이 돌았다.
워낙 대박 ip인지라 작가에게 여러 제의가 갔어도 그전까지는 모조리 거절이었지만.
작가가 마음을 돌려 계약을 진행할 것 같다는 그런 소문이 말이다.
‘그걸 우리 로운이가 잡다니!’
이러려고 일이 안 풀렸었나 보다.
‘괜히 어중간한 작품에 들어갔으면 스케줄이 꼬여서 놓쳤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전화위복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아닌 게 아니라, 불과 오늘 오전까지만 해도 매니저 박형우는 심란하기 그지없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아무리 찾아봐도 쓸만한 배역이 없다는 것이다.
‘좀 괜찮다 싶으면 너무 노골적으로 귀로 이미지를 가져가려는 게 보이지를 않나. 휴우. 아무리 영화랑 예능이 대박 나면 뭐해.’
기나긴 무명 시절을 지나 비로소 이제야 빛을 보기 시작했다.
문제는 해를 받은 새싹이 쑥쑥 자라는 것처럼 커리어가 술술 풀리고 있는 것에 비해 들어오는 대본의 양이라던가 퀄리티가 정말이지 형편없는 수준이라는 것.
‘우리 로운이가 얼마나 열심히 하는데. 다들 눈알이 어떻게 되기라도 했나? 연기 보면 딱 감 오지 않냐고. 이 알못들 같으니라고!’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매니저 박형우는 누가 봐도 고슴도치 부모 같은 생각을 했다.
“대체 이로운 걔는 뭘 하고 다니길래 다른 것도 아니고 환세비원록 오퍼가 들어온대니? 형우 너, 걔한테 뭐 들은 거 없어?”
“아니, 사장님. 저 요새 프로필 돌리고 다니느라 바쁜 거 아시잖아요.”
매니저는 약간의 원망을 담아 사장에게 대꾸했다.
본래도 로운에게 무심한 사장이었다지만.
그거야 망나니 때였으니 이해는 한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않은가?
‘우리 로운이 정도면 소속사 차원에서 밀어줄 만도 하지 않나?’
비록 이 바닥에 널리고 널린 것이 원히트원더라지만.
그렇기에 사람들의 눈에 로운의 성공이 어쩌다 운 좋게 걸린 성공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때문에 입증되지 않은 배우를 위험 부담까지 감당하며 쓰고 싶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 애가 지금 얼마나 열심히 하고 있는데!’
매니저는 몹시 억울했다.
어느모로 보나 훌륭하게 안으로 굽은 팔의 모습이었다.
“뭘 억울하다고 눈을 그렇게 떠?”
“제가 뭘요!”
“하여간……. 너는 매니저라는 녀석이 담당 연예인이 뭘 하는지도 모르고. 걔 그러다가 또 이전처럼 허튼짓하고 다니면 어떡하려고 그러니?”
“아, 아니! 사장님! 무슨 말씀을 그리 섭히 하세요? 우리 로운이가 요새 얼마나 순하고 얌전하고 착실하고 열심히인데 허튼짓이라니요!”
사장이 짜게 식은 눈으로 매니저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작년까지만 해도 보직 변경해 달라고 그렇게 찡찡거리더니만. 언제 또 그렇게 됐니? 아무튼 됐고. 걔 진짜 뭐 하는지 정말 몰라?”
혹시라도 이상한 짓 한 거면 미리 알려 줘야 대응하기가 수월하다는 사장의 말에 매니저가 이번에도 펄쩍 뛰었다.
“로운이 요새 Re.D랑 만나는데 무슨 소리세요?”
“Re.D? 프로듀서? 그 망나니가 Re.D를 왜 만나? 이제 연기는 때려친대니?”
“이제 로운이 망나니 아니라니까요, 사장님. 그리고 우리 애가 다른 도전을 할 수도 있죠. 요새 만능엔터테이너, 육각형식 인재가 얼마나 전도유망한지 아시잖아요? 배역의 다양성도 추구할 수 있고요.”
“누가 보면 아주 이로운이 네 자식인 줄 알겠다야. 알았으니 이만 가 봐.”
더 이상 말 섞기도 싫다는 듯 사장이 휘적거리며 손을 휘젓는다.
사장의 핀잔에도 불구하고 매니저는 꼼꼼히 들어온 오퍼를 챙겼다.
소문이 돈 것이 엊그제 같은데 진행이 상당히 빨랐다.
‘벌써 초반 회차 대본도 나왔다고?’
연출을 맡은 피디가 오래전부터 계약에 공을 들였다더니만.
불과 얼마 전 원작자와 사인을 끝마친 것치고는 행보가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그 짧은 사이에 투자자를 유치하고 로케이션 선정도 끝이 났단다.
캐스팅 또한 빠르게 진행과 동시에 마무리되고 있다니.
거기에 초반 회차의 대본이 이렇게 빨리 나오는 건 아주 드문 일이었다.
‘좋아. 이 작품을 하고 나면 더 이상 아무도 우리 애 보고 운 좋게 떴다고는 말 못 하겠지!’
어서 가서 알려 줘야겠다.
매니저의 마음이 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