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of a former idiot who became a top star RAW novel - Chapter (99)
전직 망돌이 탑스타 된 썰 푼다-99화(99/110)
99
‘곧이라더니, 그 곧이 진짜 곧이었네…….’
이정혜의 추진력은 어마어마했다.
곧 연락을 준다고 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아 매니저가 바로 소식을 들고 왔으니까.
“로운아, 놀라지 마? 형이 뭘 가져왔냐면, 너 환비록에서 캐스팅 연락 왔다?”
놀란 것도 잠시.
매니저에게 모든 이야기를 전해 듣고 나니 이해가 됐다.
‘작가님이 자신 있게 말씀하시더니만. 그럴 이유가 있었네.’
“로운이 너, 이 배역만 제대로 잘하면 이제 아무도 너한테 운이 좋았다는 얘기는 못 할걸?”
어째서인지 매니저가 더 의기양양해 보였다.
물론 매니저의 말이 아니더라도 로운은 이 배역을 사양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결코 매니저가 가져온 대본 초고에서 눈부신 황금빛이 넘실거려서는 아니었다.
판별안이 보여 주는 결과를 확인해서도 아니다.
그저.
‘재미있을 것 같아.’
연기 그 자체가 즐거워졌다고나 할까?
이전에는 살기 위해 연기를 했다면.
‘지금은… 하고 싶은 게 더 강한 느낌인가.’
죽기 전.
그가 후회했던 것은 하나다.
바로 다시 한번 무대에 서고 싶다는 것.
비록 그 사실을 죽기 직전에나 깨달아 후회와 미련을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룹이 대차게 망했을 때조차도 그는 아이돌을, 음악을, 무대를 놓지 못했다.
‘그래서 미련하게 이용이나 당했었지.’
할 줄 아는 일이 그것밖에 없어서라고 스스로에게 핑계를 댔었다지만.
죽음의 순간 로운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남은 후회와 미련을.
그런 로운에게 또 다른 무대가 주어졌다.
조금은 다른 형태라지만 모두가 그의 존재를 인지하고.
다른 누군가의 대신이 아닌 그를 향한 애정을 확인하게 해 주며.
그렇기에 그가 살아 숨쉬고 있음을 느끼게 해 주는.
그런 무대 말이다.
“로운이 너, 뭔가 달라진 것 같다?”
“네?”
“아니, 아니. 나쁜 의미가 아니라. 뭐랄까. 분위기가 좀… 바뀐 거 같아.”
고개를 갸웃거리던 매니저가 말을 이었다.
“사실 로운이 네가 기억을 잃은 뒤에는 너무 순해서 조금 걱정이었는데. 지금은 왠지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은 느낌이랄까?”
“잘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요. 여러모로요.”
후회가 남지 않는 삶.
로운은 비로소 어떤 길을 택해야 하는지를 알 것 같았다.
“그렇지. 바로 그 자세야. 로운아, 형 벌써부터 기대된다.”
아직 계약서에 사인도 하지 않았건만 대박이 난 것처럼 매니저가 설레는 눈을 했다.
무조건적인 그의 편.
이 역시 이전 삶에는 없던 존재다.
벌써 수많은 것들이 달라진 이번 삶이다.
하지만 아직은 고작해야 걸음마 수준인 단계.
그가 걸어야 할 길은 아직 수없이 많이 남아 있었다.
“저도요. 저도 기대가 돼요.”
무대 위에 선 그의 연기가 얼마나 인정받을 수 있을지.
그가 그려갈 수많은 인물들이 얼마나 많은 이들의 이해와 납득, 그리고 공감과 사랑을 받을 수 있을지.
로운은 벌써부터 기대되기 시작했다.
* * *
많은 사람이 고대하던 작품인 만큼.
모든 것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자고 일어나면 하루 만에도 소식이 쑥쑥 업데이트되는 수준이라고나 할까?
벌써 며칠 전에는 주인공 역할을 비롯해 각종 배역 물망에 오른 배우들이 합류를 확정 지었다는 기사가 나기도 했다.
[환세비원록 배우 ‘서우주’ 출연 확정 … 대박의 냄새 ‘솔솔’] [속속들이 모이는 별들의 잔치 ‘환세비원록’, 편성은 언제?] [거침없는 행보! ‘환비록’ 하반기 최고 기대작 등극!]이런 발 빠른 진행에는 다름 아닌 이정혜의 솜씨가 한몫했다.
그걸 어떻게 알았냐면.
“우리 정혜 대본 본 배우들이 바로 그 자리에서 오케이 하더라고. 처음에는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도 있기는 했는데, 일단 읽어 보라고 쥐여 주면 백이면 백 다들 하겠다 하더라니까?”
입꼬리가 귀에 걸린 듯한 이호가 늘어놓는 자랑 덕분에 알게 되었다.
“이호 님. 그만하세요. 로운 씨 앞에서 사람 부끄럽게 정말…….”
“없던 일을 지어 내는 것도 아니고 진실을 말하는 게 왜? 이제까지 솔직하지 못하게 살았으니 앞으로는 정혜 네 앞에서는 언제나 진실만을 말하겠다고 약속했잖아.”
옆에서 이정혜가 이호를 말렸지만 이호는 꿋꿋했다.
부끄러움은 이정혜의 몫이었다.
두 분이 잘 지낸 것 같아 다행이었다.
“저도 정말 재미있던데요. 소설이랑은 또 다른 재미가 있더라고요.”
아닌 게 아니라 로운도 이호의 말에 백분 동의했다.
어째서 처음엔 출연 여부를 고민하던 배우들이 대본을 본 뒤 합류하기로 결정했는지 너무나도 이해가 잘되었던 것.
그도 그럴 것이.
‘원작이 있는 작품은 어떻게 보면 양날의 검이니까.’
이미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IP인 만큼, 웬만큼의 흥행은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리스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박 난 원작이 있는 작품도 망하는 경우는 있으니까.’
시청자의 눈은 냉정하다.
재료가 아무리 좋다 하더라 결과물이 별로라면 얄짤없이 외면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노잼 유죄, 유잼 노죄라는 말이 왜 있겠는가?
‘잘된 작품인 만큼 그 리스크는 더 커지기도 하고.’
기대가 높은 만큼 그 반작용 역시 클 터.
도리어 안 하느니 못하다며 욕을 먹을 가능성도 크다.
특히 소설로서는 재미있다지만 드라마로 옮겼을 때는 호흡이 너무 길어져 지루하다던가.
혹은 느슨함을 방지하겠다고 이것저것 다 쳐내는 바람에 이야기가 구멍 뚫린 것처럼 밍숭맹숭해진다던가.
도처에 여러 위험이 도사렸다.
원작 팬들의 실망은 당연한 수순이고 말이다.
‘그치만 환비록은 다르지.’
원작자인 이정혜가 각본 작업에 참여했다는 것이 가장 큰 포인트였다.
그게 뭔 차이야, 싶겠지만 이게 의외로 아주 큰 격차를 불러왔다.
“솔직히 저도 이호 님 말씀에 동의해요. 작가님이 아니셨으면 아마 다들 그렇게 빨리 결정하지는 못했을 것 같습니다.”
출연 제의를 받은 뒤.
여러 원작들과 드라마화된 작품을 보며 분석하며 로운은 그 차이를 체감했다.
이정혜의 대본은 소설이나 웹툰을 영상으로 제작하면서 발생하는 괴리감이 거의 없다시피 했던 것이다.
캐릭터들이 맛깔나게 살아 있는 것은 물론이요.
각색을 거친 스토리나 캐릭터의 설정과 내용이 추가되면서 극이 더욱 풍부해지는 한편.
동시에 원작 팬도, 처음 보는 사람도 잡을 탄탄한 재미까지 갖추었던 것.
“그치? 이로운 너는 바로 알아볼 줄 알았다니까? 괜히 우리 정혜가 직접 하겠다고 나선 게 아니라고. 괜히 어쭙잖은 인간이 건드리면 망치기나 할 텐데 말야.”
역시 보는 눈이 있다며 이호가 로운을 칭찬했다.
“정말 두 사람… 너무 사람 부끄럽게 하네요. 자자. 그 얘긴 그만하지요. 이 얘기 하려고 만난 건 아니잖아요.”
계속되는 팔불출 자랑이 민망했는지 이정혜가 서둘러 화제를 바꿨다.
손목을 보고 시간을 확인하더니 말했던 것.
“이제 곧 오실 시간이네요.”
그렇다.
이 자리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은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로운이 이 한갓진 서울의 외곽까지 나온 이유.
그것은 다름 아닌 환세비원록의 연출 총괄을 맡은 피디와의 약속이 있기 때문이었다.
갑작스럽게 일이 이렇게 진행된 이유는 이랬다.
-그러고 보니 로운 씨, 피디님 한 번 뵙겠어요?
며칠 전.
이정혜가 이런 연락을 한 까닭이다.
이미 소속사를 통해 정식으로 계약서에 서명까지 완료하기는 했지만.
피디와의 안면은 전무했다.
로운의 캐스팅이 정석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배우들의 캐스팅은 제작사나 피디의 재량이나 혹은 오디션을 통해 진행되고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로운은 이례적으로 이정혜의 픽을 받아 다이렉트로 캐스팅이 확정되었던 것.
‘어차피 앞으로 촬영 들어가면 계속 보게 되기는 하겠지만 미리 인사해 두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안 그래도 피디를 거치지 않고 캐스팅된 바람에 미운털이 박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로운이 이전 생에서 배운 몇 가지 중 하나는 피디들 중에는 권위주의적인 인물들이 많다는 사실이었다.
어떻게 알았냐면, 굳이 알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음방 몇 번 뛰다 보면 자연히 알게 된다.
무대를 마치고도 인사를 하기 위해 몇 시간을 기다리다 보면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다.
‘확실히 이번 기회로 안면을 터 두는 것이 나을 수도 있겠어.’
앞으로 몇 달 동안 동고동락할 사람이다.
기왕이면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좋을 터.
때마침 이정혜가 좋은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좋아요. 그럼 내일모레 어떤가요?
불도저 같은 이정혜는 로운이 좋다고 하기가 무섭게 이번에도 거침없이 약속을 잡았다.
오늘이 바로 그 번갯불에 콩 볶아먹는 속도로 잡힌 약속 날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이고. 제가 늦었나요? 벌써들 와 계시네요.”
시간이 되기가 무섭게 문이 드르륵 열리며 왜소한 체격의 남자가 들어섰다.
바로 환세비원록의 총괄 연출을 맡은 조준철 피디였다.
* * *
피디 조준철.
과거 여러 히트작을 내며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단점이라면 근래 들어 요 몇 년 동안 그가 제작 총괄을 맡은 작품들의 성적이 저조하다는 정도?
그러나 하던 가락이 어디 갈 리가 없었다.
일단 환세비원록을 예전부터 미리 침 발라 놨다는 것만 봐도 안목이 상당한 수준이라는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경력도 있겠다, 인지도도 있겠다. 목에 힘주고 거드름을 피울 수도 있건만.
“만나서 반갑습니다! 작가님께서 자랑을 얼마나 하시던지. 아주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니까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의외로 조준철 피디는 싹싹하게 로운에게 인사를 건넸다.
‘다행이네. 별로 기분이 상한 것 같지는 않아.’
로운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피디가 내민 손을 붙잡으며 악수했다.
그런데.
[거짓]‘…응?’
뭔가 이상한 것이 눈앞에 떴다.
그러나 곧 스르륵 흩어지듯 사라졌다.
‘잘못… 봤나?’
로운이 의아해하는 사이.
피디가 대화를 주도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끌었다.
그러나 로운은 그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도무지 섞여들어 갈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나저나 정말 작가님의 안목은 언제 봐도 탁월하시네요. 해묵 역할로 생각해 둔 분이 있다고 하셨을 때 어떤 사람인가 했는데. 이로운 씨가 맡는다면 걱정이 없겠습니다.”
[거짓]“하하하! 기분이 상하기는요. 배역에 잘 맞는 사람을 쓰는 게 기본 아니겠습니까?”
[거짓]“아이고, 그럼요. 믿고 맡겨 주신 만큼 제가 잘해 봐야죠. 걱정 마십쇼. 작가님께서 직접 대본까지 집필해 주시는데, 그래서 제가 한시름 놨지 뭡니까! 하하!”
[거짓]조준철 피디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계속해서 뾰롱거리며 떠 오르는 저 ‘거짓’이라는 알림창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