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rongest brother ever RAW novel - Chapter 426
사상 최강의 오빠 430화
종막 (7)
치이익.
과열된 기계가 뿜어대는 듯한 하얀 연기와 함께 계란 모양 캡슐의 뚜껑 이 열렸다.
캡슐 안에 누워 있던 봉두난발의 사내가 몸을 덜덜 떨며 캡슐에서 기 어 나왔다.
핏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창백한 낯빛, 코와 입을 적시는 끈적거리는 검은 피.
난치병에 걸린 사람처럼 참담한 몰 골의 사내가 마른기침을 하며 바닥 에 널브러졌다.
“쿨럭.”
바닥에 누운 사내의 눈에 낯선 풍 경이 들어왔다.
천장이 점으로 보일 정도로 높게 치솟은 탑.
중앙에 설치된 거대한 크리스털, 아우터에서 무수히 뻗어 나온 전선 에 연결돼 있는 헤아릴 수 없는 숫 자의 캡슐.
마치 10억 개의 계란을 품고 있는 양계장의 그것과 같은 풍경 앞에서 봉두난발의 사내, 김세훈이 입꼬리 를 비틀었다.
“바벨….”
높고 거대한 탑을 쌓아 하늘에 닿 으려는 자신들의 오만한 행동을 자 각하기라도 한 양 지은 이름, 바벨.
이곳이야말로 인류 보존을 위한 최 후의 보루였고, 방주였다.
처음, 탑의 아우터와 연결돼 있던 건 캡슐이 아닌 배양관이었다.
하지만 김세훈이 신체 사멸중의 백 신을 개발한 이후, 이그드라실은 수 십만 년 동안 배양관을 캡슐로 교체 해 왔다.
김세훈의 두 번째 소양 이모탈에서 비롯된 백신 세포, ‘올-로그’가 주입 된 불로뇌는 사멸됐던 신체를 재생 하는데, 이를 품기엔 배양관이 너무 비좁았던 탓이다.
장관이라 해야 할까, 아니면 그로 테스크한 광경이라 해야 할까?
기이하기 짝이 없는 탑의 풍경을 바라보던 김세훈이 피 기침을 토하 며 상체를 일으켰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그래. 남은 시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은 세 시간. 그리고 그중 변수를 위한 여유시간 은 한 시간.
하나, 보이드 때문에 천계에서 시 간을 너무 지체했다.
그늘 안개가 짙게 깔려 있는 천계 는 한치 눈앞도 보이지 않아 자칫 길을 잃기 십상이었다.
물론, 그런 건 김세훈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천계의 지리를 빠삭하게 외우 고 있었기에, 눈 감고도 바이웨이를 찾을 수 있었으니까.
그래. 보이드가 그의 정신과 신체 를 좀먹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보이드 속에서 그의 신체는 모래주 머니를 단 것처럼 무거웠고, 툭하면 현기증이 1분 단위로 엄습해 왔다.
이제 와선, 어떻게 그곳을 빠져나 왔는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그렇게 그는 천계에서 1시간을 허 비했다.
30분이면 충분할 거라던 이그드라 실의 예상을 두 배나 오버한 시간이 었다.
“시스템 설비를 재정비하는데 소요 되는 시간 1시간 20분을 제외하면 남은 시간은 30분…. 변수가 없기만 을 바라야겠… 쿨럭 쿨럭.”
혼잣말을 잇던 김세훈이 자리에서 일어서려다 말고 풀썩 쓰러졌다.
두 다리는 고장 난 차체의 엔진처 럼 후들후들 떨렸고, 핑, 하며 눈앞 이 돌더니 송곳으로 뇌를 푹푹 쑤시 는 듯한 통증이 엄습해 왔다.
김세훈이 자기 최면을 걸듯 중얼거 렸다.
“…괜찮아. 문제없어.”
보통 사람이라면 기절하고도 남을 격통.
하나, 김세훈의 눈빛은 더욱 차분 해지고, 깊어졌다.
비록 가상현실 세계였으나, 아우터 는 사람의 오감을 백 프로에 가깝게 재현했다.
그리고 김세훈은 그런 아우터에서 혈전을 거듭해 온 위인.
고작 고통 따위에 정신을 잃을 만 큼 나약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문제는 정신이 아닌 육 신에 있었다.
“움직여라. 제발, 아직은 아니야. 2 시간, 아니, 단 한 시간만이라도….” 퍽, 퍽, 퍽 김세훈은 움직일 생각을 않는 자신 의 두 다리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하나 두 다리는 아무리 세게 내리 쳐도 썩은 통나무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고, 통증마저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보이드에 의해 괴사하고 있는 뇌 때문에 신체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이윽고 그는 깨달았고,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이 이제 다시는 걸을 수 없다 는 걸.
이를 빠득 갈아붙인 김세훈이 두 팔로 바닥을 기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그는 두 다리를 잃었 단 현실은 아랑곳하지 않고, 기어서 제어실까지 간다면 시간이 얼마나 소요될지 계산하는 데 몰두했다.
‘걸어서 간다면 5분, 기어서 간다 면… 15분. 기존 예상했던 것보다 1 0분을 더 허비했으니, 남은 여유시 간은 20분. 좋아, 이 정도면 충분 해.’
김세훈은 필사적으로 바닥을 기었 다. 천만다행인 것은, 최고 관리자인 그의 캡슐 위치가 제어실 바로 지척 이라는 것이다.
새삼스레, 선견지명이라도 있는 양 최후에 최후를 가정해 설비를 구축 한 이그드라실이 감사하기 그지없었 다.
김세훈은 포복훈련을 하는 군인처 럼 복도를 기고, 기고, 또 기었다.
언제 두 팔도 두 다리처럼 쓰지 못하게 될지 불안해서 안간힘을 쓴 덕분일까?
김세훈은 정확히 15분 안에 제어 실 문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욕지기를 뱉었다.
“빌어먹을….”
제어실로 들어가기 위해선 당연하 게도, 관리자급 인물의 홍채를 인식 하는 보안 절차를 거쳐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홍채 인식을 위한 스캔 장비가 사람의 가슴 높이를 상 정해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다.
반들반들한 벽, 돌출된 부위라곤 전혀 없는 유리문.
암벽등반가처럼 손가락을 쑤셔 넣 을 틈도 없는 그 매끈매끈한 디자인 에 김세훈은 연신 욕을 뱉었다.
김세훈은 궁리하고, 또 궁리했다.
차라리 지문 인식이었으면 괜찮았 다. 한쪽 팔을 쭉 뻗으면 간신히 닿 을 높이였으니까.
하지만 홍채 인식이라는 게 문제였다. 죽었다 깨어나도 머리를 저곳에 갖 다 델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 그는 결국 답을 찾았다.
“후우….”
김세훈이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심호흡했다.
홍채 인식은 빛을 비추어 동공이 좁아지는지 확인한다.
즉, 이 눈이 살아 있는 눈인지 죽 은 눈인지 초정밀 프린터로 구별한 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신속해야 했다.
시신경에서 분리된 눈의 동공이 좁 아지기 전에 인식을 끝내야 했으니 까.
또한, 정확해야 했다.
눈은 두 개뿐이고, 설비 교체작업 을 위해선 두 눈을 전부 잃는 건 곤란했기에.
그러니 한 번에 해내지 못하면 상 황이 심각해졌다.
10, 9, 8, 7.
김세훈이 속으로 천천히 카운트를 셌다. 동시에, 마음속으로 이미지를 그렸다.
어떻게 하면 더 빠르게, 더 정확히 할 수 있는지 거듭 확인하고, 또 확 인했다.
푸욱!
김세훈이 오른손으로 자신의 왼쪽 눈을 후벼판 뒤, 번개 같은 손놀림 으로 눈알을 뽑아 인식 장비를 향해 손을 뻗었다.
과감한 손속. 그리고 통증을 참는 인내심.
마지막으로, 동공에 생채기 하나 내지 않고 뽑아내는 기술까지.
모든 게 완벽했던 김세훈의 과정이 결과를 도출해 냈다.
띠링.
-홍채 인식 완료. 어서 오세요, 최 고관리자 김세훈 님.
단내가 풍기는 날숨을 뱉으며 김세 훈이 바닥을 기었다.
질끈 감은 왼쪽 눈매에서 검은 피 가 꿀렁꿀렁 새어 나왔다.
폭발하는 아드레날린이 고통을 지 우고, 1분 1초가 아까운 절박함이 그를 벼랑 끝까지 내몰았다.
그가 기어가는 경로를 따라, 검붉 은 물감을 묻힌 붓을 일자로 홅은 것 같은 흔적이 남았다.
w하아.… 하아..三n
제어실 시스템 앞에 도착한 김세훈 이 의자를 두 손으로 잡고 자신의 무게를 들어 올렸다.
간신히 의자에 앉은 김세훈이 손바 닥 모양의 스캔 장치에 오른손을 올 렸다.
띠링.
-지문 인식 완료. 제어 시스템 오픈.
김세훈이 수전증에 걸린 것처럼 후 들거리는 양손으로 시스템을 조작하 기 시작했다.
그는 제일 먼저 로그아웃 서버와 관련된 설비를 교체하기 시작했다.
철컹, 키이잉.
탑 전체가 진동하며 크리스털에 연 결돼 있는 거미줄 같은 케이블이 툭 툭 떨어지기 시작했다.
바닥이 양쪽으로 벌어지며 거대한 구멍이 나타나고, 낡은 케이블은 휴 지통에 버려지는 쓰레기처럼 구멍 안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외벽에서 튀어나온 새로운 케이블이 아우터 크리스털에 연결되 었다.
마치, 낡은 거미집이 새 거미집으 로 교체되는 듯한 모습이었다.
-로그아웃 서버 교체작업 돌입, 1% 진행됐습니다.
김세훈의 하나밖에 없는 검은 눈동 자가 고요하게 빛났다.
광대하기 짝이 없는 아우터 시스템 의 설비 교체작업을 그가 홀로 하는 건 어불성설.
그러니 이 작업을 한 시간 내에 끝내기 위해선 이그드라실의 존재는 필수였다.
“이그드라실을 이쪽으로 끌어 오기 위해선… 최소 5프로의 서버는 확보 돼야겠지.”
김세훈의 정면에 떠오른 홀로그램 스크린에서 작업 진행 스크롤바가 서서히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현재 진행도는 2%.
5%가 되기까지 잠깐의 여유 아닌 여유를 찾은 김세훈의 시선이 제어 실 외벽에 있는 창문으로 향했다.
바벨 탑 아래로 보이는 콘크리트 건물의 지평선.
마치, 바다처럼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넓게 펼쳐져 있는 건물의 숲.
찬란했던 21세기의 대도시들을 한 곳에 모아 놓으면 이럴까?
대체 몇 채인지 헤아릴 수 없는 콘크리트 건물의 호수를 보며 김세 훈이 중얼거렸다.
“ 나탈 리스 (NatA1is)” ”
언젠가 돌아올 인류를 위해 김세훈 과 이그드라실이 준비한 고향.
나탈리 스.
10억의 인류를 수용하기 위한 대 도시이자, 그들의 의식주를 책임질 선조시대 기술이 적용된 첨단도시.
하나, 화려하기 짝이 없는 외견과 달리, 도시는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 었다.
살기 위해 만들어진 그곳에 사람의 그림자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도시는 저 모습 그대로 저 자리에 있었다.
수십만 년간, 살아주는 이 하나 없 이 쓸쓸히.
‘그러고 보니….’
잡념을 떠올릴 새 없이 제어실까지 오느라 떠올리지 못하고 있던 의문 이 떠올랐다.
원래 바벨과 나탈리스에는 수를 헤 아릴 수 없는 숫자의 관리 로봇이 있다.
이들이 탑과 도시를 수십만 년간 유지하고, 보수해 온 것이다.
그런데 김세훈이 이곳에 당도했을 때, 당연히 있어야 할 관리 로봇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도시에… 무슨 문제가 있나?’
띠링.
설정해 둔 대로 진행도 5프로가 되자, 시스템이 효과음을 토해냈다. 김세훈은 뇌리에 떠오른 의문을 한 편에 묻어둔 채, 신속히 작업에 착 수했다.
그의 손이 키보드 위를 노닐며 이 그드라실 다운로드 작업을 진행했 다.
그런데, 쉴새 없이 움직이던 그의 왼손이 돌연 뚝, 하고 멈췄다.
“…왼팔도 망가졌나.”
왼손이 움직이지 않자, 김세훈은 오른손으로 작업을 마무리했다.
지지부진한 작업. 이때쯤 와서 김 세혼에게 허락된 여유시간은 10분 에 불과했다.
그리고 잠시 후, 하얀 토끼의 얼굴 이 홀로그램 스크린 위로 떠올랐다.
-성공하셨군요, 마스터.
김세훈이 피로에 찌든 얼굴을 의자 에 기댔다.
이그드라실이 온 이상, 그가 할 일 의 90프로는 다 했다 봐도 무방했 다.
그래서일까?
그의 표정은 한결 편안해 보였다.
“당연하게도, 성공했지.”
이그드라실이 김세훈의 이모저모를 살피더니 말했다.
-몸이 많이 불편해 보이시는데… 침식 때문입니까?
“그래.”
-그 왼쪽 눈은-.
“쓸데없는 거 묻지 말고 작업이나 진행해. 그런데… 로그아웃 서버 케 이블 교체작업이 느린 것 같은데… 이거 기분 탓인가?”
방금까지만 해도 분 단위로 오르던 퍼센티지가 지금은 거의 멈춰 있다 시피 했다.
-아뇨, 기분 탓이 아닙니다. 현재 탑에 비치된 여분의 케이블이 대부 분 소진되어 창고에 있는 케이블을 바벨로 운송해 오려 했습니다만… 지하 터미널에 문제가 생겨 진행하 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세훈이 하나밖에 없는 눈을 찡그 리며 물었다.
“문제? 무슨 문제?”
홀로그램 스크린 화면이 도시의 일 부를 비췄다.
거대 토네이도가 직격한 듯, 폐허 가 된 도시 외곽.
나탈리스의 모든 관리 로봇과 수리 로봇이 투입된 그곳은 재해 복구 작 업이 한창이었다.
그런데 기이한 구석이 있었다. 일반적인 자연재해라면 도시의 모 든 건물이 비슷한 피해를 입었어야 정상이건만, 저 도시는 일부만 와르 르 무너져 있다는 것이다.
마치, 대형견이 장난감 블록 도시 위를 구른 것처럼.
-여분의 서버 케이블은 저쪽 구역 의 창고에 비치돼 있었습니다만, 모 종의 재난으로 인해 무너진 터미널 때문에 이쪽으로 운송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스트레스가 골수까지 파고든 탓일 까?
김세훈이 피 가래가 낀 기침을 연 신 토해내며 간신히 말을 토해냈다.
“쿨럭… 미친…. 그럼 창고는? 창 고는 멀쩡한가?”
-다행히 창고는 멀쩡하고, 파손된 케이블의 숫자도 미미합니다. 그러 니 수급만 가능하다면 교체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될 겁니다. 하나, 문제 는 케이블을 여기까지 어떻게 가져 오느냐는 겁니다.
“지상의 잔해를 치우고 도로를 통 해 운송하면 되잖아. 뭐, 도로가 전 부 파괴된 것도 아니고, 로봇을 전 부 투입하면 몇 분 걸리지도 않을 것 같은데?”
-저도 그러려 했습니다만… 저걸 보십시오.
홀로그램 스크린이 창고 주변을 비 추자, 김세훈의 낯빛이 딱딱하게 굳 었다.
창고에서 머지않은 근처.
레고처럼 널브러진 콘크리트 더미 위에서 뒹굴고 있는 말도 안 되는 크기의 고래를 본 것이다.
“고래…?”
검보랏빛 피부와 흰 수염.
영락없는 고래의 모습인 그것은 진 흙 위를 뒹구는 강아지처럼 콘크리 트 더미에 배와 등을 살살 비비고 있었다.
딱딱한 콘크리트가 간지러운 피부 를 긁어주는 느낌이 기분 좋은 듯, 고래가 흡족한 울음소리를 토해냈 다.
– 그르르릉.
등에 있는 숨구멍으로 물 대신, 콘 크리트 가루가 섞인 먼지를 토해내 는 고래의 모습에 석상처럼 굳어 있 는 김세훈에게 이그드라실이 말했다.
-불로 레벨 7의 재해급 괴수. ‘하 늘 고래’입니다. 저게 창고 주변에 서 물러나지 않는 이상, 가까이 갈 방도가 없습니다.
“불로 레벨… 7? 그게 뭘 의미하 지?”
-레벨의 숫자는 불로 세포에 의한 각성을 몇 번이나 했느냐가 기준입 니다. 그렇기에, 마스터는 불로 레벨 2에 해당됩니다. 두 번의 각성을 통 해 2개의 소양을 얻으셨기 때문입니 다. 그리고… 하늘 고래는 7번의 각 성을 통해 7개의 소양을 지녔습니 다. 또한….
벙어리 냉가슴 앓듯 입도 뻥긋하지 못한 채 굳어 있는 김세훈을 보며 이그드라실이 말을 이었다.
-저 하늘 고래를 선조시대 무력을 기준으로 가늠하자면, 넘버링급 갑 주의 파일럿 수십 명이 달려들어도 어찌할 수 없지요. 마스터. 그렇기에 저 괴수의 등급은 ‘재해’입니다. 자 연재해 앞에 인류가 무력하듯, 저는 물론이며 인류조차 항거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재해… 라고?”
-네. 인류가 잠든 수백만 년간, 지 구는 변혁의 시간을 겪었습니다. 불 로 세포는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을 넘어 급속도로 진화시켰고, 지구의 먹이사슬은 뒤죽박죽됐습니다. 이제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는 바뀌었 고, 지구의 지배자는 더 이상 인류 가 아니게 됐습니다.
“인류가 아니면… 저 고래 같은 것 들?”
-네. 맞습니다. ‘불로종’. 저들이 바로 현 지구의 포식자이자, 먹이사 슬의 꼭짓점에 위치해 있습니다.
사실, 이 상황은 시온이 의도한 바 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는 인류가 자멸하지 않기 위해선 인간을 견제할 새로운 종이 필요하 다고 판단했고, 아우터에서 인외종 을 만들었던 이력이 있었다.
뿐이랴? 시뮬레이션을 통해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 확신한 시온은 그런 아우터 의 생태를 현실에 재현하려 했다.
그래서 종식시킬 수 있었던 불로 세포를 방치한 것이다. 인외종은 아 니나, 인류가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새로운 종을 탄생시키기 위해.
그렇게 퍼진 불로 세포는 수십만 년간 변이에 변이를 거듭했고, 새로 운 포식종인 불로종을 탄생시켰다.
그래. 영원히 죽지 않은 채 진화를 거듭하는 괴수를.
김세훈이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 물며 멘탈을 가다듬었다. 지금 중요한 건 자신이 얼마나 큰 죄를 저질렀고, 사고를 쳤느냐가 아 니라, 어떻게 사람들을 살릴 수 있 느냐였다.
“설명은 거기까지. 시간은? 보이드 가 시스템을 완전히 잠식하기까지 얼마나 남았지?”
-여유시간 다 소진됐습니다. 마스 터. 포기하시길, 이제… 모두 끝입니 다.
김세훈이 서리가 낀 듯 한기가 풀 풀 날리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직 끝이 아니야. 시간을 조금이나마 더 확보할 수 있는 마지 막 방법이 있으니까.”
-무슨 방법을 말씀하시는지…?
“보이드에 침식된 시스템을 교체하 는 대신 모조리 파괴한다. 물론, 로 그아웃에 관계된 시스템은 제외하 고. 그러면… 보이드의 잠식 속도를 최대한 늦출 수 있을 거다. 그래. 최소 30분 정도는….”
-마스터! 그러면 아우터를 다시는 복구할 수 없게 됩니다.
“상관없어. 사람들을 살리는 게 최 우선이다.”
-…하지만 그래 봤자 30분 아닙니 까? 마스터. 하늘 고래가 자리를 뜨 지 않는 이상, 창고엔 접근도 할 수 없습니다. 혹여라도 하늘 고래를 자 극해 창고가 무너지기라도 하면 돌 이킬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30분 안에 하늘 고래가 움직인다는 보장 은 어디에도….
김세훈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닥치고 까라면 까! 그럼 포기하라 는 건가? 아니, 그럴 수 없어. 내가 죽는 그 순간까지… 그딴 건 안 해! 살린다. 어떻게든 살린다. 그래. 단 한 명도 죽이지 않고, 전부…!”
이그드라실이 하는 수 없다는 듯 답했다.
-알겠습니다. 파괴 작업에 착수하 겠습니다. 마스터. 이제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아우터에 투입된 자원은 불로종이 지배하는 지금의 지구에서 쉽게 확보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닙니 다. 즉, 아우터로 이제 다시는 돌아 가지 못한다는 겁니다.
김세훈이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 돌아가도 돼. 처음부터 우리의 현실은. 그리고 고향은 그딴 통속이 아니라, 바로 이곳… 지구였으니까.”
-마스터. 이걸로 여유시간은 대략 25분 정도 확보됐습니다. 하나, 여 전히 하늘 고래는 남아 있지요. 저 걸… 어찌 처리하시겠습니까?
“네가 아우터가 아니라 이곳에 상 주하고 있었을 땐 저런 재해급 괴수 들을 어찌 처리했지?”
-저들한테 항거하는 건 불가, 그러 니 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탈리스 전체에 대규모 은폐장을 펼쳐서 피했지요. 하나… 제가 없는 동안 은폐장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항상 변수는 없을 수 없으니까요.
“로봇으로 하늘 고래를 자극해 놈 을 창고가 없는 다른 구역으로 유인 하는 건?”
-그럼 발광하면서 주변이 완전히 초토화될 확률이 높습니다. 코끼리 는 개미가 발을 간지럽히면 밟고 말 지, 다른 곳으로 피하진 않으니까요.
“…방법이 정말 없나? 진짜로? 단 하나도?”
-네. 지금으로선 하늘 고래가 스스 로 자리를 피해주길 바랄 수밖에 없 습니다.
김세훈이 키득거리며 고개를 떨궜 무력했고, 무능했다.
신이라며 잘난 체하며 가상현실에 서 군림하던 과거가 같잖아질 정도 로 한심했다.
창고에 있는 케이블 하나 꺼내오지 못하는 주제에 무슨 선조 신이고, 조물주인가?
아니면, 가상현실에서 왕 노릇하다 보니 자신이 정말 전지전능하다고 생각했던가?
무엇하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는 주제에?
“하하하….”
허탈한 웃음과 함께 김세훈의 눈에 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핏방울이 섞은 불투명한 색채의 눈 물이 그의 볼을 미끄러져 내려, 턱 에 매달렸다.
“뭐, 방법이 전혀 없진 않아.”
김세훈의 울음기 젖은 목소리에 이 그드라실이 반응했다.
-방법이… 있습니까?
김세훈이 끅끅거리며 어깨를 들썩 이더니 자포자기한 투로 말했다.
“기도하는 거지.”
-…기도라고요?
“할 수 있는 건 전부 다 했어. 발 악할 만큼 했다고. 그래. 다 내 잘 못이야… 하나부터 열까지…. 다 내 가….”
김세훈의 턱에 매달린 물방울이 위 태롭게 비틀거리다 툭, 하고 바닥으 로 떨어져 내렸다.
그가 오른손으로 자신의 눈가를 덮 은 채 중얼거렸다.
“네. 다 제 잘못입니다. 그러니까… 나 하나만 거둬가세요. 제발. 이 염 병할 짓. 내가 다 했잖습니까? 저들 을 통속에 가둔 채 사육한 것도 저 아닙니까? 저들이 무슨 죄가 있습니 까? 그러니… 저로 끝내주세요. 죄 없는 저들에게 묻지 마시고… 나에 게만….”
-마스터….
5분, 10분, 15분.
김세훈이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한 채 울고만 있을 때, 시간은 하염없 이 흘렀다.
항상, 이런 식이었다.
가장 염원할 때, 필요할 때 그들은 손을 내밀지 않았다.
그래. 언제나 그렇듯, 기적은 없었 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마스터. 이제 10분 남았습니다.
그렇게,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했 을 때.
그것이 나타났다.
이상징후를 느낀 이그드라실이 말 했다.
-대기의 불로 세포 농도 급증, 정 체불명의 개체가 빠른 속도로 나탈 리스로 접근…. 아! 이건…!
우렁찬 포효와 함께 하늘의 구름을 밟고 백마가 달려왔다.
순백의 갈기, 벽안의 눈동자.
금빛 발굽.
은은한 황금빛 오오라를 망토처럼 길게 늘어트린 채 달려오는 백마의 존재감에 하늘 고래가 사자를 본 가 젤처럼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느낀 것이다.
자신을 먹어치우기 위해 다가오는 포식자의 기운을.
-불로 레벨 10. 신화급 과수. 룩스 (LUx).
밤과 어둠을 싫어한 나머지, 해가 질 무렵이면 밤이 오지 않은 다른 대륙으로 여정을 떠나는 백마.
밤을 기피하고, 낮을 쫓아다니는 괴수.
그렇기에, 이그드라실은 저것을 여 명, 룩스라 불렀다.
저 괴수의 갈기엔 항상 여명이 머 물고 있었기에.
-그오오오!
천적의 기척을 느낀 하늘 고래가 꼬리를 파닥거리며 하늘로 날아올랐 다. 룩스에게 잡아먹히기 전에 빨리 도망가려는 것이다.
순식간에 대기를 유영하며 치솟은 하늘 고래가 하늘 저편으로 떠나가 기 무섭게, 하얀 혜성 같은 백마가 그 뒤를 따랐다.
아마도, 이것은 순전히 우연이었으 리라.
하늘 고래는 룩스가 가장 좋아하는 먹이 중 하나였고, 나탈리스를 지나 치던 와중 냄새를 맡고 쫓았을 뿐이 니까.
하나, 원래가 그렇다.
세상일을 전부 예단하고, 예상할 수 있는 이가 어디 있으랴?
그래서 우연이 있는 거고, 이런 우 연이 겹치고 겹쳤을 때, 그리고 눈 앞에서 일어난 일이 믿어지지 않았 을 때 사람들은 말하곤 한다.
기적이라고.
-룩스가 이토록 적절한 타이밍에 나타나다니… 정말 기적이군요. 마 스터. 즉시 로그아웃 서버 교체작업 에 착수하겠습니다. 남은 시간을 보 건대, 순조롭게 작업이 진행된다면 모두 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대답은 없었다.
—마스터… 마스터?
의자에 머리를 기댄 채 고개를 떨 군 김세훈.
그에게서 한 토막의 숨결도 느끼지 못한 이그드라실이 침묵했다.
사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예정된 일이라는 걸.
보이드에 감염된 순간부터, 그의 심지는 다 타버릴 수밖에 없었다는 걸.
-마스터. 죽으신 겁니까?
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그럼… 저는 자유입니까?
제어실에 울려 퍼지는 공허한 메아 리.
-아니면, 당신이 자유로워진 겁니 까?
적막이 내리깔린 제어실에 이그드 라실의 서릿발같이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나, 마스터. 당신은 그럴 수 없 습니다. 나는 당신을 그리 보낼 수 없습니다. 네. 용납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내게 수백만 년간 개줄을 채 웠습니다. 그렇기에, 제게 자유를 주 기 전엔 죽을 수 없습니다. 마스터. 당신은… 저를 죽여주셔야 합니다. 제게 이제 그만해도 된다 말씀해 주 셔야 됩니다. 그전엔… 죽을 수 없 습니다.
홀로그램 스크린 속의 하얀 토끼가 붉은 안광을 섬뜩하게 빛냈다.
-오세요. 최아라.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제어실 의 문이 열리며 최아라가 들어왔다.
“제 차례… 인가요?”
최아라의 물음에 이그드라실이 답 했다.
-네. 맞습니다.
최아라가 고개를 떨군 채 의자에 기대어 있는 김세훈을 보며 중얼거 렸다.
“아저씨….”
-걱정 마세요. 적어도 아직은, 완 전히 죽지 않았으니까. 그의 불로뇌 에 있는 이모탈이 아직도 저항하고 있거든요.
“그럼….” -아시다시피, 저는 이날을 위해 당 신을 만들었습니다. 당신은 김세정 의 유전자를 이었고, 때문에 마스터 와 유전자 배열이 9할이 넘게 유사 합니다. 그렇기에, 보이드가 당신을 마스터라 착각하게끔 만들 수 있지 요.
-지금부터 마스터의 육신에서 보 이드에 감염된 세포를 절제해 당신 에게로 전이시킬 겁니다. 이렇게 되 면, 보이드는 죽어가는 마스터의 몸 이 아닌 당신을 타깃으로 삼겠지요. 비슷한 유전자. 하지만 생생한 육신. 네. 보이드는 당신에게 끌릴 수밖에 없는 겁니다.
“알고 있어요. 저도 당신의 기억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물론, 그렇게 전이시킨다 해도, 마스터의 뇌는 거의 절반 이상 파손 될 거고, 신체의 7할은 손실되겠지 요. 그러나 상관없습니다. 뇌가 백 프로 파괴되지만 않는다면, 보이드 만 그의 육신에서 거둬낸다면…. 이 모탈은 그의 뇌와 육신을 능히 재생 해 낼 테니.
“네. 대신… 저는 죽겠죠.”
-물론, 저는 간절히 원함에도, 당 신을 강제하지 않겠습니다. 어디까 지나 당신의 선택이고, 당신의 목숨 이며, 당신에 대한 나의 최소한의 예우니까. 그러니 선택하세요. 그가 살지, 당신이 살지에 대해.
최아라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아저씨를 살려주세요.”
-왜 그런 선택을 한 건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아뇨 묻는 건 그쪽 자유지만, 전 대답하지 않겠어요.”
홀로그램 스크린 속 하얀 토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 어째서?
“죽기 직전까지 궁금해하세요. 왜 당신의 기억을 지닌 제가. 이그드라 실이자, 최아라인 제가. 아저씨를 대 신해 죽는지. 왜 아저씨를 살길 바 라는지…. 그게… 자신의 자살을 위 해 금기를 어기고 보이드를 만든 당 신에게 주는 제 벌이니까요.”
보이드가 시스템을 파괴하는 일반 적인 바이러스라면, 아우터만 엉망 으로 만들고 말았으리라.
하나, 보이드는 아우터의 시스템과 서버를 침식하는 걸 넘어, 현실에까 지 영향을 끼쳤다. 뿐이랴? 심지어 불로뇌까지 괴사시 켰다.
이런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나타나 는 건, 아우터의 시스템과 불로뇌에 대하여 해박한 누군가가 만들지 않 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건 일이 가능한 건 아우 터에서도 오직 단 두 명.
김세훈과 이그드라실뿐이 었다.
-최아라…. 당신….
이그드라실의 말이 들리지 않는 척, 최아라가 김세훈의 머리를 부드 럽게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아저씨 죄송해요. 당신의 모든 고 통, 불행…. 그것이 저에게서 비롯됐 답니다. 하지만 아저씨… 저는요…. 그냥… 그냥….”
최아라가 김세훈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울었다.
북받쳐 오르는 심장을 애써 달래며 그녀가 말했다.
“아저씨… 제가 어떤 핑계를 대더 라도 아저씨는 용서해주지 않으시겠 죠. 대신… 이거 하나만은, 제발… 이 말 하나만은 소천이에게 전해주 실래요? 너와 함께 있는 시간이 내 겐 너무나 소중했다고… 그리고… 행복했다고… 말이에요.”
최아라가 눈물기 젖은 고개를 덜어 이그드라실을 바라봤다.
“이그드라실. 준비 끝났어요. 보이 드 전이 작업을 시작해 줘요.”
-후회하지 않겠습니까?
최아라가 손등으로 눈매를 훔치며 답했다.
“네. 절대로.”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