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rongest He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76
◈ 에필로그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장례식장에는 많은 사람이 모이진 않았다.
애초에 연 없는 이들뿐인 세상이었다.
이매와 삼아.
그리고 신교의 몇 명이 전부였다.
“처음부터 문주님을 위해서 그런 걸까?”
“모르지. 그의 마음이 어땠는지 지금 와서 물어볼 수도 없고.”
비석에는 ‘능운백 검과 함께 묻히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마지막 싸움에서 죽은 두 사람 중 하나.
장렬히 산화한 한 남자의 이름이었다.
“바보 같아. 큰형도 작은형도. 아버지라고 따르던 우리도.”
“우리는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그 앞에서 슬퍼하는 건 이매와 삼아였다.
둘은 한때 천부의 수하였으나, 전향 이후로는 과거의 잘못을 용서받았다.
둘 역시 이용당한 아이에 불과했으니까.
“너희는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냐?”
둘 옆으로 안기남이 다가와 물었다.
“조금 더 세상을 보고 싶어. 우리가 아는 세상은 너무나 좁고 작았으니까.”
“직접 보고 경험한 뒤, 삶을 정하겠어. 적어도 그때는 아버지가 아닌 우리의 결정이 될 테니까.”
“그래. 쉽진 않겠지만, 그것이 인생이겠지. 필요한 것이 있다면 연락해라.”
툭, 던진 명함에는 신교의 이름이 박혀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 신교를 책임지는 건 그였다.
“너는. 신교는 어떻게 할 거야?”
“우리의 일을 걱정하는 거냐?”
“아무래도 그렇잖아. 그가 그렇게 된 이상……주변에서 가만둘 것 같진 않은데.”
압축된 질문에 안기남이 가볍게 웃었다.
이미 수도 없이 받은 질문이었다.
신교라는 나무는 가만히 있는데 주변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왜 이렇게 세찬 건지.
“우리는 변하지 않는다. 믿고, 기다릴 뿐이다. 그분께서 돌아오시는 날. 신교가 다시금 날개를 펼 테니까.”
“……어딘가 부럽네. 그렇게 믿을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이.”
“다른 누구도 아닌……그분은 천마니까.”
이번엔 이매와 삼아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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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휘가 바닥을 더듬어 술병을 찾았다.
도르륵, 밀려오는 술병 안에서 찰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 술이 남아 있는 모양이다.
냉큼 한 모금 넘기고는 입맛을 다셨다.
“술꾼이 다 돼 가는군.”
“하하. 벌써 돌아왔나?”
가볍게 옆으로 다가오는 건 안기남.
한서휘가 귀를 쫑긋하며, 그의 걸음을 읽었다.
그의 눈은 그날의 전투 이후로 기능을 상실했다.
지금은 보는 것이 아닌, 듣는 것으로 사물을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짐을 덜어내니, 이렇게 가벼울 수가 없지. 요즘은 술 한 잔을 낙으로 살아간다고.”
“조만간 취권이라도 창시하겠군.”
“그것도 좋지. 갔던 일은 잘 해결됐나?”
“하아.”
짧게 한숨 쉬며 안기남이 마루에 앉았다.
신교의 대소사를 떠맡은 이후로, 쉴 틈이 없었다.
국제공조, 사후처리, 대외적인 압박 등.
당면한 문제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천마가 멀쩡했을 때는 그 압도적인 힘으로 눌러왔던 것들이 지금은 쉼 없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그 한숨만 들어도 알겠군.”
“손이 백 개라도 모자랄 판이야. 다들 뭐라도 한 발 걸치고 싶은데, 확실하지는 않으니까.”
“후후. 죽은 공명이 산 사마의를 제압하는 수인가.”
“천부가 죽고 산이 몰락한 이상, 절대자의 위치는 오직 하나니까.”
“아슬아슬한 줄타기로군.”
“크게 걱정은 안 한다. 언제나처럼 돌아오실 테니까.”
“그건 그렇지.”
한서휘가 휙 던진 술병을 안기남이 낚아챘다.
바닥만 남은 술을 혀끝으로 핥고는 작게 웃었다.
한서휘가 술, 술 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아. 그러고 보니 지아는?”
“평소와 같지. 여전히 침소를 지키고 있다.”
“후우, 지극정성이군.”
“거의 안방마님이지. 문주님께서 깨어나시면 그간의 정성 때문이라도 내치기 어려울 거야.”
“휴우. 나도 지아에게 잘 보여야겠군.”
“하하. 그편이 좋을 거다. 여리게 보여도 아주 독하거든.”
누군가 귀를 벅벅 긁을 것 같은 얘기를 하며 나란히 웃었다.
술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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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상태.
지금의 천마를 표현하자면 딱 그랬다.
마지막 천부와의 싸움에서 천마는 천마신공 십단공을 사용했고, 그 여파를 정면에서 맞았다.
게다가 이는 천마 자신이 자신을 살해하는 격.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그가 가사에 빠진 지 한 달이 지난 지금에도.
“……그래서 기남 오라버니가 크게 엄포를 놓고 왔데요. 감히 신교가 버젓이 있는데, 독점권을 사용하냐고. 배짱 한 번 대단하죠?”
가사에 빠진 천마 옆은 이지아가 지켰다.
그녀는 한 달 내내 한 번도 옆을 떠나지 않았다.
밥도 옆에서 먹고 잠도 칸막이만 치고 곁에서 잤다.
교대를 자원해도 그녀가 거부했다.
그녀는 이것을 자신의 과업으로 청했다.
그 시간이 벌써 한 달이었다.
“오늘은 태상문주님 손톱하고 발톱을 정리할까 봐요. 한 달 만에 많이 자랐어요.”
침상 속, 가지런히 놓인 손을 잡으며 이지아가 중얼거렸다.
돌아오는 답은 없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벌써 한 달 동안 꾸준하게 해 오는 일이었다.
천마는 반드시 돌아올 테니까.
그날에 단정하지 않은 모습으로 두고 싶진 않았다.
“아참, 그거 아세요? 영왕이 죽고 괴이가 전부 사라지면서 능력자들의 역할이 사라졌잖아요. 해서 요즘은 재건 사업에 능력자들이 동원되나 봐요. 염동력으로 공사를 돕거나 초인적인 능력으로 기계가 하기 어려운 일을 하는 거죠. 이런 거 보면 사람은 결국 살길을 찾아가나 봐요.”
두런두런 밀린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손톱과 발톱을 정리했다.
죽은 듯 미동 없는 천마였지만, 생체 징후는 있었다.
자라는 머리카락이나 손톱 등이 그것이었다.
“다 깎았다. 음음. 역시 단정한 게 최고죠. 태상문주님도 일어나시면 제 노고를 알아주시려나?”
깔끔해진 손을 보며 이지아가 가볍게 웃었다.
“다음번에는 네일아트도 한 번 해볼까 해요. 깨어나시면 화낼지도 모르지만, 이때 아니면 또 언제 해보겠어요. 그래도 되겠죠?”
당연히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이지아가 잠시 천마를 물끄러미 보다, 그 옆에 고개를 살며시 묻었다.
심장 뛰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언젠가 돌아오시라는 건 믿고 있어요. 근데, 조금만 빨리 돌아오면 안 될까요? 가끔은 무심하게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그 손길이 그리워요.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천하를 오시하던 그 눈빛이 그리워요.”
믿는다고 그리움이 없는 건 아니다.
한 달의 공백은 큰 멍울이었다.
특히, 현장에서 시체와 같은 천마를 받았을 때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더더욱.
그를 잃는다는 건 생각도 해 본 적 없기에, 이 그리움이 훨씬 컸다.
“깨어나면 우리끼리 세계 유람이나 한 번 해요. 그동안 싸움만 주야장천 하느라고 제대로 쉬지도 못했잖아요. 역용술 기가 막힌 게 하나 있던데. 그걸로 얼굴 속이면 되겠네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키득키득 웃었다.
그때가 오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아주 깊은 바람이었다.
“……그러니까 빨리 일어나세요. 태상문주님 없는 신교는 팥 없는 팥빵보다 맛이 없어요. 다들 아무렇지 않게 지내려 하지만 빈자리를 크게 느낀다고요.”
푹. 다시 한번 고개를 천마의 가슴에 묻었다.
바람이 큰 만큼 상실도 크고, 그리움이 많은 만큼 이어지는 공백도 컸다.
참고 참아도 가끔은 터질 것 같았다.
혹시나 그가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지, 라는 불안감에.
“그리 울상 지으면 어여쁜 얼굴이 망가지지 않더냐?”
“……어?”
순간, 농담처럼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지아가 고개를 바짝 들고 소리를 돌아봤다.
반쯤 뜬 눈과 흐릿하게 그려진 미소.
머리를 푸르르 털고 눈을 거칠게 비볐다.
잠깐 잠들어 꿈을 꾼 거라면 너무 가혹한 이야기였다.
“태, 태상문주님?”
하지만 아니었다.
눈을 뜬 것은 천마였고, 가벼운 웃음은 그의 것이었다.
손을 뻗어 머리를 다독이는 손도 마찬가지.
눈물이 주르륵 흘러서 옷자락을 적셨다.
“어이, 우느냐.”
“흐윽. 흑. 태상문주님이 돌아오셔서……그것이 기뻐서 울고 있어요.”
“내가 오래 자리를 비웠더냐?”
“네. 아주 오래 자리를 비우셨어요. 다시는 그러면 안 돼요.”
칭얼거림에 가까운 말에 천마가 웃었다.
손으로는 이지아의 등을 다독이며 천천히 몸을 세웠다.
많은 것이 비어 있지만, 괜찮았다.
“약속하마.”
“약속하시는 거죠?”
“그래. 내 이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명료했다.
“천마의 이름으로 약속하마.”
이지아가 왕, 하며 안겨들었다.
기쁨이 섞인 우스꽝스러운 울음이었다.
천마도 하하, 라며 짧게 웃었다.
[ 完 ] [ 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