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mmoner is doing a quest RAW novel - Chapter 1
제1화. 베타테스터
검성이 나를 볼 때마다 했던 말이 있다.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
법적 구속에 의하여 주류 인구와 분리 및 격리되는 집단.
일명 노예나 노비라고도 한다.
인류가 멸망을 향해감에 따라 각성자이되 마나를 가지지 못한 자들, 짐꾼이나 사체 청소를 하며 살아가는 자들이 이에 해당된다.
내가 겨우 서큐버스에게 머리가 깨지고 정기가 쪽쪽 빨리며 소멸해가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
그저 살고 싶었다.
이 빌어먹을 신들의 게임이 세상에 강림하여 그 끝을 향해갈수록 우리 같은 사체 처리부는 고기방패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으니까.
“쿨럭! 쿨럭!”
피가 사발로 토해진다.
이미 공략이 끝난 던전을 뒤지며 마나를 생성시킬 수 있는 아이템이나 영약, 혹은 스킬을 찾기 위하여 홀로 돌아다녔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태생의 한계는 극복할 수 없었으니까.
육체를 극한으로 단련해도, 이제는 거리에 지천으로 널린 S급 스킬들로 무장을 해도 마나가 없다면 결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었다.
이런 노력을 하는 나를 검성은 비웃었었다.
[너는 태생조차 하찮은 가축 같은 인간이다. 그에 걸맞게 우리가 던져주는 여물이나 받아먹으며 살아라. 기연이 쉽게 오는 것인 줄 아냐? 혼자 돌아다니다가 뒈지면 시체조차 남지 않을 거야.]놈의 말에 더욱 울컥하여 기연을 찾아다녔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결과는?
꽈득! 꽈드드득!
온몸의 생기가 빨려 나간다.
레벨 50대의 서큐버스.
지금의 헌터들이라면 손가락 하나로도 찍어 눌러 죽일 수 있는 몬스터였지만 내게는 무리다.
겨우 30~40레벨 대의 몬스터들을 사냥하는 거면 몰라도 역시 육체의 발전만으로는 그 위를 바라볼 수가 없었다.
빛이 명멸해간다.
이렇게 허무한 죽음을 맞이해야 하나 싶은 순간.
해체가로 각성하여 사체들을 처리할 때마다 들었던 익숙한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베타테스트를 종료합니다.] [불굴의 의지를 가진 당신을 본게임에 초대합니다.] [태초의 약속에 따라 당신은 회귀할 수 있습니다.] [본게임에 응하시겠습니까?] [Y/N]“……!”
베타테스트?
본게임이라니.
이해가 안 되는 메시지였지만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의식은 빠르게 꺼져가고 있었고 이 기회를 잡지 못하면 이대로 소멸할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젖 먹던 힘을 낸다.
머리가 터져서 뇌수가 흘러나가고 있는 판국에 어디서 그런 힘이 났을까.
Y를 누르자 눈앞에 모래시계가 나타났다.
모래시계의 모래는 거의 다 떨어져 있었고 주변의 시간은 멈추어 있는 듯했다.
다음 순간, 쏟아졌던 뇌수가 거꾸로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머리통을 내리치던 서큐버스의 손톱은 빠르게 되감아졌고 던전을 찾아 헤매던 내 모습이 뒷걸음질하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사체를 해체하던 모습, 똥 군기를 잡던 조장의 모습도 거꾸로 돌아가며 이 세상이, 온 우주가 거꾸로 뒤집혀 되감아졌다.
영혼까지 과거로 뒤집혀 흘러가는 그 순간.
[본게임 진입 중…….] [당신의 적성을 평가합니다.]{집착S} {근성S} {욕심S} {인성A} {절약S} {대인관계B} {선구안B}……
[소리 없는 어둠이 당신에게 관심을 보입니다.] [탐욕의 근원이 당신의 평가를 유의 깊게 들여다봅니다.] [명멸하는 빛이 먼 곳에서 당신에 대한 소문을 듣습니다.] [지옥의 권좌가 당신에게 전령을 파견합니다.]……
[베타테스터 보상이 지급되었습니다.]***
다소 몸이 무겁다.
물 먹은 솜을 지고 걷는 낙타처럼 몸을 찍어 누르는 중력이 느껴졌다.
눈을 뜨자 피범벅이 된 몬스터의 사체를 헤집고 있었다.
사체를 해체하는 것이야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나는 헌터계의 하이에나.
사체 처리부는 썩은 고기를 탐하며 아프리카 초원을 배회하는 하이에나처럼 헌터들이 남긴 찌꺼기들을 해체하며 살아간다.
헌터가 귀족이 된 사회에서 생겨난 새로운 공인 흙수저.
일반인들은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이 구현되었고 능력 없는 자들은 도태되고 몬스터들에게 뜯어 먹혀 사라졌다.
오직 각성자들만 살아갈 수 있는 세상.
나 역시 각성자였지만 불행하게도 검성이나 마제, 대현자 등으로 불리는 영웅들과는 태생 자체가 달랐다.
몬스터 해체가(D)로 각성한 순간 내 인생은 잘나가는 헌터들의 밑바닥이나 닦아주는 신세로 전락했다.
헌터계에서는 멸시받는 존재이지만 새로운 화폐로 등장한 마석을 최대한 손실 없이 뽑아내고 몬스터의 부산물을 분리하여 무구로 탄생시킬 수 있는 존재는 꼭 필요하기 마련이었다.
새롭게 조성된 생태계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들이면서 멸시를 당하는 자들.
내게 몬스터 해체는 천직과 같았으며 그것이 하루의 일과였다.
그런데 고블린이라니?
“내가 왜 고블린 따위를 해체하고 있지?”
“한성 씨. 왜 그래요?”
눈앞에서 ‘지혜의 현자’라고 불리던 이하나가 불안한 듯이 눈을 깜빡거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히…….
이하나는 죽었다.
내가 어떻게든 신체에 마력을 주입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 중 하나가 바로 그녀의 죽음이었다.
그 인연은 세상이 본격적으로 멸망하기 한참 전부터 이어져 왔다.
가난했던 대학생 시절, 그녀는 아르바이트로 몬스터 사체를 해체했다.
하루 일당 15만 원은, 적다면 적을 수도 있는 돈이었지만 대학생에게는 큰돈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그때 만난 인연이다.
몬스터 사체 해체는 2인 1조가 원칙이다. 그녀는 가죽을 벗기는 전문가였고 나는 마석을 뽑아내는 전문가였다.
“하나 씨……? 정말 하나 씨 맞아요?”
“쉿. 조용히 해요. 반장이 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급작스러운 상황이기는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충분히 침착할 수 있을 정도로 정신이 단련되어 있었다.
세상이 개판이 된 이후, 패닉에 빠진 자들은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언제 어디서나 냉철한 판단력과 행동을 필요로 한다.
굉장히 놀라웠지만 나는 빠르게 상황을 파악해 나갔다.
음침한 동굴 입구, 몬스터의 비릿한 피 냄새 말고도 매캐한 공기가 훅 치밀고 들어왔다.
이건 아직 세상이 망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하늘을 뒤덮고 있는 누런 황사와 매연에 절어 있는 공기에서나 느낄 수 있는 갑갑함. 동굴 안이었지만 바깥의 공기가 좋지 않다는 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나는 장갑을 벗고 휴대폰부터 꺼냈다.
[2025년 3월 18일]‘20년 전이라니. 그렇다면 멸망의 전조가 시작되기까지 최소한 3년은 남았다는 뜻이다.’
상황파악을 빨리 끝마쳤다.
죽기 전에 분명히 ‘베타테스트’라는 시스템 메시지를 받았고 ‘본게임’에 참여를 하겠냐는 권유까지 받았다.
그 이후 적성검사가 시작됐고 오직 선택된 자들만이 누릴 수 있다는 별들의 관심까지 받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잠시 작업장에서 벗어나 바위에 걸터앉아 상황을 정리했다.
불안한 듯한 표정의 이하나가 내 곁으로 다가와 안절부절못했다.
회귀를 했다고 날뛰거나 이게 현실인지 고민을 하느라 시간을 허비하기에는 너무 험난한 세월을 살아왔다.
이미 말도 안 되는 상황들을 20년이나 겪다 보니 회귀하였다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건 그토록 바랐던 기회였다.
기연?
베타테스트로 선정된 사람이 나 혼자인지, 또 다른 사람들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미래를 알고 있고 아직 기회가 있다.
인류의 네임드들이 어디에서 기연을 얻어 그 자리까지 올라갔는지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으니까.
그 지옥과 같은 지구에서 20년이나 살아남았다는 것은 상황판단이 그만큼이나 뛰어났다는 방증이다.
마지막에는 그릇된 판단으로 죽음을 맞이하기도 했지만……. 결국 이렇게 회귀를 하지 않았던가.
평화로운 지구.
지금이야 몬스터들이 던전에나 존재하며 밖으로 튀어나와 난동을 부리는 일이 적지만 앞으로 3년만 흐르면 멸망의 전조가 시작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인간이 재단할 수 없는 불가해의 존재가 지구 자체를 하나의 ‘게임장’으로 만들었으며 우리 인류는 체스판 위의 말이 된다.
지금은 준비기간이라고 보면 된다.
인류의 영웅으로 거듭난 자들은 대부분 이런 준비기간에 기연을 얻었다.
미래의 영웅들이 얻은 기연 중 하나라도 먼저 선점할 수 있다면?
가슴이 뛰었다.
나 역시 한 명의 영웅으로 거듭날 수 있다.
어쩌면 시작된 본게임을 클리어 하여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한성 씨! 이제 돌아가야 해요. 저기 반장이 오고 있어요!”
다급한 이하나의 목소리.
그녀는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한때 지혜의 현자라고 불리며 인류의 머리로 진두지휘를 했던 그녀가 겨우 시체청소부 반장이 무서워 이렇게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진정시켰다.
“괜찮아요. 걱정 마세요. 별일 없을 테니까.”
지금 이 시대의 사체 처리부는 일종의 하청업체였다.
각 길드가 사냥을 마치고 나면 그 뒤를 청소하여 부산물을 추출하여 실어 나른다.
반장은 하청업체의 간부로 나름 D급의 헌터였다.
우리 청소부들은 F급으로, 각성은 하였으나 마나를 다룰 수 없는 자들이다.
다만 마나를 느낄 수는 있었기에 사체에서 핵도 뽑아낼 수 있었고 마력이 스며들어 있는 도구들도 다룰 수 있는 것이다.
반장은 청소부들이 갖지 못한 마나를 다루었기에 기본적으로 강했다.
고블린 한 마리 정도는 상대할 수 있었으니까.
“3조. 지금 다들 일하는 것 안 보이냐?”
하청업체 크레온의 작업반장 김철수가 크게 다그쳤다.
괜히 여기서 들이받을 필요는 없다.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인재 수집(?)도 필수적이었다. 그러니 애초에 수집 가능한 인재인 이하나를 위해서라도 고개 한 번은 숙여 줄 수 있다.
미래의 경험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데다 지금까지 운동을 열심히 하였기에 작업반장 따위야 손쉽게 뭉개버릴 수 있었지만, 굳이 문제를 일으킬 필요는 없다.
“쉬고 있었습니다. 다시 일하겠습니다.”
“하……. 저 뺀질이 새끼. 말투는 또 왜 그래? 개기냐?”
우리는 자리로 돌아왔다.
이하나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성 씨. 오늘따라 이상해요. 도대체 왜 그래요?”
“피 냄새를 하도 맡았더니 순간적으로 어떻게 된 모양이네요.”
“요즘 무리를 하셨잖아요. 우리 같은 사람들은 마나에 너무 노출이 되면 병에 걸려요. 그러니까 좀 쉬면서 해요.”
“그럴 수야 있나요.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그보다 하나 씨. 오늘 저녁에 시간 있으신가요?”
“시간이요?”
이미 이하나와의 친분은 충분하다.
거의 1년 이상 같은 조에 배속되어 이 짓거리를 하고 있다 보니 정이 들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네. 시간.”
“그거야 무슨 시간이냐에 따라 다른데.”
“제가 오늘 밥 쏩니다. 반주도 한 잔 곁들여서.”
“콜.”
이하나는 아무런 저항 없이 약속을 받아들였다.
눈앞에 떡하니 황금 같은 인재가 있는데 수집하지 않을 이유가 있나.
그렇게 기분 좋게 일을 끝마쳤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강한성.”
“저요?”
“그래, 이 새끼야. 후딱 튀어와.”
반장의 목소리다.
갑의 위치에 있는 자가 갑의 소리를 내려 한다.
“웬만하면 그냥 조용하게 넘어가고 싶은데.”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제 비굴하게 살아가야 할 필요가 전혀 없었기에 반장의 갑질을 그대로 받아 줄 자신이 전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