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mmoner is doing a quest RAW novel - Chapter 124
제124화. 군기를 잡다(2)
한국대학교병원 입원실.
천무살제는 소환사와의 대련에서 철저하게 짓밟혔고 항복을 선언한 직후 기절했다.
소환사가 적절하게 조치를 취해 준 덕분에 이가 몽땅 털린 것 이외에 별다른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정신적으로 어마어마한 타격을 받았다.
트라우마.
다른 말로는 PTSD.
기절한 이후 끊임없이 악몽에 시달렸고 지금도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중이었다.
퍼버버벅!
‘아아아악! 살려 주세요!’
‘네가 감히 내게 다른 마음을 품어? 남자답게 도전을 할 것이지 음흉하게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니. 너는 더 맞아야겠다.’
‘잘못했습니다!’
도대체 이 악몽은 언제 끝나는 걸까.
아주 긴 시간 악몽에 시달리고 있던 천무검제는 사무장들의 목소리에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으아아아악!”
“길드장님?”
“으으. 으으으.”
충격이 가시지 않는다.
온몸이 떨려오고 있었으며 어디선가 주먹이 날아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에게 주먹질을 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꿈이었을 뿐.
“허억! 허억!”
막혀 있던 가슴이 뚫렸다.
“괜찮으십니까?”
“여긴……?”
“기억 안 나십니까? 항복이라는 말을 간신히 뱉어내시고는 기절해서 실려 왔습니다.”
“내가…… 살아 있는 건가?”
“예. 설마하니 소환사가 길드장님을 죽이기라도 했을까요.”
소환사라는 말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심장박동수가 증가하고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난다.
강렬한 트라우마가 생긴 것이 틀림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맞는 동안에 중간 중간 필름이 끊겼다.
이른바 블랙아웃 현상으로, 각성하고 난 이후에는 처음 겪는 일이었다.
나름 한국 랭킹 2위였는데 다른 누가 그를 이렇게 두들겨 팰 수 있었을까.
검제도 직접적으로 그와의 대결을 피해왔었다. 대결은 딱 한 번이었으나 간신히 검제가 승리하였고 서로 타격을 많이 받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예 상대조차 되지 않았다.
압도적인 강함.
소환사는 천무살제의 내심을 완전히 꿰뚫고 있었고, 도저히 용서가 안 돼 가혹할 정도로 몰아붙인 것이다.
벌컥!
문이 갑자기 열리고 길드원 한 명이 뛰어 들어왔다.
“깜짝이야!”
“기, 길드장님! 소환사가 오고 있습니다!”
“……!”
진정되어가던 천무살제의 심장이 벌렁거리기 시작했다.
***
저벅 저벅.
병원에 도착하고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내 뒤를 따르고 있었다.
독왕, 이하나, 박수철, 세실리아 등의 길드 내 랭커들은 물론이고 언론인들까지.
오늘 천무살제를 완전히 박살낸 일은 바로 대서특필되었다.
여러 기사들을 읽어보니 꽤 만족스럽다.
[천무살제, 단 한 번의 일격도 가하지 못해.] [소환사의 압승! 국내 전문가들, 소환사의 세계 랭킹을 조정해야 한다고 밝혀.] [아시아의 헌터들도 관심. 그 누구도 소환사와의 전투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어.]이번 대련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효과는 바로 아시아 전역에 내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전엔 소환사는 단순히 헌터 불모지였던 한국의 지존을 지칭하는 것뿐이었으나 이젠 대마법사가 직접 제휴를 청해 올 정도로 강해졌으며, 아시아의 별이 될 수 있을 만큼의 실력을 보유했다고 대서특필되었다.
단순히 국내에서만 이런 여론이 일어났다면 그냥 동네 골목대장밖에 되지 않겠지만, 아시아에서 주목을 했다는 점이 중요했다.
병원 앞에는 병원장을 비롯한 주요 의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존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영광입니다. 국내 최고 병원의 병원장님께서 나와 주시고요.”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이제 귀하는 국내 지존을 넘어 세계로 나아가시는 분인데 이렇게 인맥을 쌓을 수 있다면 영광이지요.”
병원장은 저자세로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이게 권력인가?’
지금까지는 알지 못했던 세계가 열리고 있었다.
단순히 국내 지존이 아니라 세계로 명성을 떨쳐 나가고 있었기에 알게 모르게 대우가 바뀌고 있음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대통령이 헌터관리국장을 보낼 정도였으니 병원장이야 오죽할까.
이사장 측에서 노발대발하며 병원장을 쪼았을 가능성도 있었다.
“이곳에 천무살제 선배께서 입원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어서 말이죠.”
“하하!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일개 군단이 움직이는 것 같은 대열이다.
박수철이 주변을 둘러보며 감탄했다.
“이햐, 오래 살고 볼 일이네요. 이렇게까지 대접을 받다니.”퍼억!
“아야! 왜 때려요!”
유설화가 박수철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그녀는 녹광을 번들거리며 혀를 찼다.
“새끼가, 가오 떨어지게. 그냥 닥치고 좀 있을래?”
“사실을 말하는 거잖아요?”
“더 맞고 싶어?”
박수철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바로 웃음이 터지려 하였지만, 나는 애써 억눌렀다.
지존은 지존다워야 한다는 조언이 아직도 귓가에 맴돌고 있었던 탓이다.
VIP실에는 천무살제 혼자 입원하고 있었다.
애초에 VIP 병실은 1인실로 만들어졌다.
웬만한 호텔 버금가는 인테리어에 개인 화장실과 푹신한 침대, 침구류, 고풍스러운 가구들로 채워져 있다.
천무살제의 병실로 들어가자 가만히 누워있던 그가 벌떡 일어난다.
머스크 길드의 길드원들도 모세의 기적처럼 갈라졌다.
“지존 오셨습니까!”
천무살제는 90도로 허리를 접었다.
뭐 이렇게까지 하냐고 말을 하려다가 레베카의 말이 떠올라서 참았다.
‘아셨죠? 반드시 군기를 잡으셔야 해요.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어요. 국내 길드조차 완전히 휘어잡지 못하면 그냥 죽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죠.’
시간이 얼마 없다는 그녀의 말에 지극히 공감이 되었다.
나는 평소의 습관처럼 자세를 낮추려다가 허리를 폈다.
친절하게, 그러나 비굴하지 않게 해야 한다.
워낙에 헌터계 밑바닥에서 살아왔기에 그런 자세가 몸에 배어 있었는데 상당히 좋지 않은 습관이라고 지적을 받았다.
세계에서 놀려면 나부터 세계에 걸맞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선배. 몸은 괜찮으십니까?”
“아이고. 지존께서 치료를 해 주신 덕분에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참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이건 보약입니다. 다친 곳이 아프실 텐데 먹고 힘내세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천무살제의 몸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보였다.
한마디로 내가 때린 곳이 쑤실 것이니 요양하라는 뜻.
예전 같았으면 천무살제는 내심 불만을 드러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행동들이 일체 사라졌다.
“뭘 이런 것까지. 잘 복용하도록 하겠습니다.”
“불편한 점은 없으시죠?”
“병원 측에서 특별히 신경을 써주셔서 괜찮습니다.”
“부길드장님.”
“네, 지존!”
이하나가 앞으로 나선다.
그녀 역시 내 분위기가 약간 변했다는 것을 인지한 것 같았다.
대마법사를 만나고 난 이후에 찾아온 긍정적인 변화.
그 전까지의 내 행동이 꽤 가벼워 보였던 것은 맞다. 사적인 자리에서라면 몰라도 공적인 자리에서는 어느 정도 무게를 잡아야 한다. 그걸 이하나도 인지했다.
“병원에 10억 기부하도록 하세요.”
“그럴게요.”
“아이고,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병원장이 쩔쩔매며 허리를 굽혔다.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제가 공적으로는 이 나라의 지존이지만 사적으로는 천무살제 선배의 후배죠. 후배가 선배를 생각하는 마음이니 병원 측에서도 배려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염려 마십시오. 최고의 간병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10억이면 서비스 비용으로는 차고 넘칠 것이다.
이제야 헌터계의 질서가 잡히는 느낌이었다.
내가 병문안을 온 이유가 그것이다. 정말로 천무살제의 몸이 걱정되어 온 것이 아니라 질서를 잡는 것이 목적이었다.
목적을 달성하였으니 이제 돌아가도 된다.
“선배. 몸조리 잘하시고 또 뵙겠습니다.”
“예! 그럼 또 찾아뵙겠습니다!”
소환사가 나가고 난 자리.
천무살제는 그대로 무너지듯 침대에 쓰러졌다.
“하! 죽는 줄 알았다.”
“와, 살벌하네요. 소환사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뀐 것 같죠?”
“대마법사에게 한소리 들은 것이 아닐까요?”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뭐가 어떻게 된 일이건 소환사의 분위기가 바뀌면서 대하기가 어려워진 것이 사실이었다.
예전에는 어느 정도 가벼운 느낌이 있었으나 이제는 그런 느낌이 사라진 것이다.
천무살제의 머릿속으로 소환사의 말이 울려 퍼지는 것 같다.
‘선배. 선배께서는 군기반장으로 있어 주시면 되는 겁니다. 제게 반기를 들 생각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군기반장의 역할.
다음에 도전할 때에는 목숨마저 걸어야 할 것 같았다.
어설프게 대련 따위를 하자고 덤볐다가는 개박살이 나는 것을 넘어 병신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가 대련을 시도한 것은 그게 목숨을 걸 필요 없이 지존에 도전하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지존에게 도전하려면 엄청난 리스크를 져야 했다.
“앞으로도 도저히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
“그건……. 저희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무장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저 괴물을 무슨 수로 이긴다는 말인가?
불가능한 일임이 자명한 일이었다. 그럴 바에는 심기를 거스르지 말고 순응하는 편이 좋다.
그러다가 소환사와의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에 도전해야 한다.
‘그래. 그 전까지는 군기반장의 역할을 똑바로 해야겠지.’
천무살제는 이번 대련으로 제정신(?)을 차렸다.
***
그날 저녁.
나는 출장뷔페를 불러 길드원들과 함께 식사했다.
“…….”
예전과는 다른 공기.
그건 모두 내가 괜히 분위기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거 다들 왜 그러세요?”
“그거야 형님께서 무게를 잡으니까 그렇죠.”
박수철이 즉답했다.
“아, 그거? 레베카가 시키더라고.”
“네에!? 그 누님이 시켰다고요!?”
“헌터는 가오가 생명인데 내게는 가오가 없다는 거야.”
“하! 우리 형님이 여자가 없지 가오가 없나!”
“뭐 새끼야?”
“하하하하!”
분위기가 어느 정도 돌아온다.
나는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뭐 어쩌겠어? 그 여자는 랭킹 5위인데. 그것도 다시 서열을 매기면 순위기 바뀔 수 있을 만큼의 괴물이야. 그런 여자가 조언을 해주는데 듣지 않을 도리가 있나. 그 정도면 조언이 아니라 협박이지.”
“세계무대에서 뛰려면 당연히 가오가 생명이죠.”
대다수의 헌터들이 긍정하고 있었다.
“그래도 형님은 형님이죠?”
“내가 밖에서나 무게 잡지, 길드에서도 그러겠냐. 편하게 해도 돼. 밖에서 그러는 건 그냥 레베카의 협박에 못 이겨서 하는 것뿐이니까.”
“믿습니다!”
당연한 일이다.
길드 안에서까지 무게를 잡을 필요는 없었다.
화기애애해지자 세실리아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천무살제도 깼겠다, 앞으로 계획은 뭔가요?”
“아, 우선은 각성부터 해야죠. 아직 2차 각성이 남아 있으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