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mmoner is doing a quest RAW novel - Chapter 162
제162화. 바보들의 만남
영국 히드로 국제공항.
영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공항인 만큼, 세계에서 꼽아 줄 정도로 번잡하다.
지금처럼 몬스터가 출몰하고 일부 지역은 통행이 제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만큼 사람들이 몰리는 것을 보면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한다고 볼 수 있었다.
굳이 영국이 군사기지가 아닌 히드로 국제공항으로 우리를 부른 의도는?
지금 나는 세계 랭킹 6위에 등극해 있었고, 안데라오와 나름 프랑스의 지존까지 함께하고 있었다.
영국에도 세계 랭킹 4위의 붉은 기사가 지존으로 있었지만 세계 랭킹에 올라와 있는 다른 헌터와 친분을 다지는 것은 국익에 상당한 시너지를 준다.
이 때문에 영국 정부에서 특별하게 요청한 것이다.
예전에는 딱히 영국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지만 지금은 같은 여신의 사도가 지존으로 있으니 동맹국이나 다름없었다.
아직 공식적으로 동맹을 맺은 것은 아니었지만.
‘시간문제지.’
전용기는 천천히 착륙을 위하여 하강하고 있었다.
“마리아 씨. 붉은 기사의 평판은 어떤가요?”
“평판…… 말이지요?”
그녀는 조금 곤란한 표정이었다.
나도 대충 평판이 그리 좋지 않다는 정도는 알고 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물어본 것이었다.
“아시죠? 붉은 기사의 다른 별칭이 붉은 마녀예요.”
“왜 붉은 마녀라고 불립니까?”
“그게 좀……. 성격이 그래요.”
“성격이 어쨌기에?”
“평소에는 ‘차도녀’ 스타일인데 일단 열이 받으면 막장도 그런 막장이 없더라고요. 한 번은 영국의 마피아가 레드 나이츠의 여성 길드원에게 치근덕거렸는데, 그걸 빌미로 쳐들어가서 아예 조직을 박살내버렸어요.”
“박살……이요?”
“네. 박살이요. 완전히 사라져버린 거죠.”
“글쎄요. 치근덕거린 수위가 좀 있다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인데.”
“그냥 좀 쫓아다니면서 귀찮게 굴고 구애를 한 정도인데, 그렇게 치면 세상 남자들은 모조리 박살을 나야 하거든요.”
“마피아라서 박살낸 건.”
“그건 아니에요. 그 전까지는 오히려 레드 나이츠와 은밀한 관계를 유지했었다고 해요. 일종의 하위 길드 정도?”
아주 성질이 끝내주는 여자라는 말이다.
상대 남자가 마피아라는 것을 제외하면, 그냥 구애를 하는 수준이었다.
사람 좋아하는 것이 죄일까?
그냥 쫓아다닐 수도 있다고는 생각이 드는데.
정말로 그런 단순한 이유로 하위 길드를 박살냈을 정도면 보통 인격은 아닐 것 같았다.
유물 급 아이템 두 점을 얻기 전에 그녀를 만나러 갔다면 굉장히 긴장이 됐을 것이다.
그런 인격을 가진 여자라면 어떤 꼬투리를 잡아 물고 늘어질지 몰랐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잘하면 공식적으로 대결을 벌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같은 여신의 사도라고 해도 위계서열은 분명히 해야 하지 않을까.
헌터 사회에서는 실력으로 모든 것을 결정한다.
은근한 기대감을 가지고 공항에 도착하였다.
영국 정부의 의도대로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려 있었고, 국영 방송국인 BCC의 관계자들은 물론 외신들까지 몰려와 있었다.
가장 먼저 영국 정부 관계자가 인사를 했다.
“아시아 지존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앞으로 좋은 관계를 구축해 나갔으면 합니다.”
영국 헌터국장 피터 잭슨이었다.
한국이나 프랑스, 일본 등의 국가와는 달리 굉장히 사무적인 느낌이다.
하긴, 영국은 지금 세계 4위의 헌터를 보유하고 있었고 미국이나 유럽 여러 국가들과도 동맹관계를 맺고 있기도 했다.
지금 내 랭킹은 6위.
이 정도면 나를 영국의 아래로 본다는 뜻일까?
‘내가 영국을 떠날 때에도 이런 대접을 할지 궁금해지는데.’
영국 정부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나서는 을들의 반란 길드원들과 인사한다.
“와! 형님! 어서 오세요! 기다리다가 눈 빠지는 줄 알았네.”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세계 랭킹 6위에 오른 것을 축하드립니다!”
영국인들과는 친밀도부터 차이가 나는 길드원들이었다.
내가 데려온 사람들과 길드원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는데, 안데라오와 박수철은 단번에 서로를 알아 본 듯이 처음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박수철입니다.”
“오른팔?”
“당신이 왼팔!?”
“뭐야 이거. 오른팔이 별거 아닌데.”
“뭐 인마?”
“…….”
만나자마자 으르렁거리는 것을 보니 역시나 심상치가 않아 보인다.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있었지만.
아예 서로 눈을 부라리며 이마가 닿을 듯 노려보는 것을 보니 저것들이 지금 뭘 하고 있는 짓인지 한숨이 나온다.
빠악!
“켁!”
“커억!”
“사람들 보는데 나중에.”
“크윽. 알겠습니다.”
“왼팔. 이따 애기 좀 하자.”
“바라던 바다!”
바보들이 만났으니 바보 같은 짓만 벌이지 않았으면 하는데.
고개를 젓고는 동맹관계에 있는 레베카와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해요.”
“별말씀을. 동맹인데 당연히 와야죠.”
“소개할게요. 얼굴은 알고 계시겠지만, 직접 마주하는 건 처음이죠? 여긴 영국 지존이자 세계 랭킹 4위, 레일라에요.”
“…….”
레일라는 금발벽안의 미인이었지만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감정이 별로 없는 건가?
이미 그녀에 대해서는 대충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
레베카를 능가하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으나 풍기는 특유의 아우라 때문에 접근이 힘들었다.
굳이 따지면 독왕 유설화와 비슷한 분위기?
게다가 상대방을 얕잡아 보는 것 같은 특유의 눈동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었지만 그녀는 그저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하, 이거 민망하군요. 강한성입니다.”
“동맹이라……. 과연 그런 자격이 있을지 의문이군요.”
“……!”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늘해진다.
당연히 여기까지 날아온 사람들의 반응이 좋을 리가 없었다.
“야! 너! 우리 형님에게 무슨 말버릇이냐!? 사과 안 하냐?”
안데라오가 버럭 성질을 냈다.
레일라는 갑자기 사라지더니 안데라오에게 검을 들이댔다.
“죽고 싶나.”
“이 싸가지 없는 년이!”
“자자, 이거 왜들 그러시나. 그만들 합시다. 좋은 일로 왔는데 만나자마자 싸울 필요는 없잖아?”
잘못하면 바로 칼부림으로 이어질 것 같아 내가 급하게 말렸다.
그야말로 총체적인 난국.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었다.
레드 나이츠 길드와 을들의 반란 길드까지 대치를 하며 으르렁거렸는데 기자들은 이걸 좋다고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었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레베카를 바라본다.
“이거…… 망한 건가요?”
“정상이에요. 그냥 기 싸움이라고 생각하세요.”
“기 싸움 두 번 했다가는 사람 잡겠네.”
M호텔로 향하는 리무진 버스 안.
같은 버스에 섞여서 타고 가면 십중팔구 싸움을 이어질 것 같아 양측이 분리되어 갔다.
사람들은 레일라를 떠올리며 분통을 터뜨렸다.
“아오! 그 인간은 정상이 아니에요. 지가 무슨 천상천하유아독존인 줄 아나. 뭐 그렇게 싸가지가 없지?”
“맞습니다! 이래서야 동맹을 맺을 수 있겠어요?”
“좀 심하기는 해요. 길드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질문이 쇄도한다.
레일라가 하는 행동을 보니 정상적인 동맹을 맺기가 힘들지 않겠느냐는 뜻이다.
대마법사인 레베카의 중재가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나름 아시아 지존의 자리에 오른 나까지 무시하는 여자였으니 다른 사람들에게 대하는 태도는 오죽하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오히려 좋습니다.”
“어째서요?”
“별 눈치 안 보고 밟아버릴 수 있잖아요. 어차피 탑에 오르기 전에 리더를 정하려고 했습니다. 설마 제가 아니라 그 여자가 리더가 될 거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겠지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길드장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맞습니다!”
나는 이미 계산을 마친 상태였다.
레일라를 보는 순간 깨달았다.
유물 아이템을 얻기 전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런데……. 승리할 수는 있나요?”
그 와중에 가장 차분하게 상황을 보고 있던 이하나가 물었다.
길드원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었다.
“오늘 만나 보니 알겠더군요.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럼 문제없네요?”
“전혀 문제없죠. 한 번 밟아서 안 되면 두 번 밟으면 되는 거고.”
“오오! 역시!”
“시원하게 밟아주세요!”
레일라와 서열정리를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에게 패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으니까.
은근히 기대까지 되었다.
내가 손쉽게 밟아 버리고 나면 뻣뻣하게 나왔던 레드 나이츠 길드원들이나 영국 정부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말이다.
아마 기겁을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건 별 문제가 아니었지만.
“오른팔 자리 내놔라.”
“흥! 나는 형님의 영원한 오른팔이야. 세계 랭커라고 무시할래?”
“헌터면 헌터답게 실력으로 승부하면 된다! 어디 실력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게 형님의 오른팔을 자처해?”
“자처하다니! 내가 형님의 1호 부하야!”
“이제는 그 자리에서 내려올 때가 됐다!”
“씨발, 내가 나이는 너보다 많아.”
“네, 네. 나이 많이 처먹어서 좋겠네? 존나 꼰대냐?”
안데라오와 박수철은 아주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둘 다 영어로 싸우고 있었기에 한국의 모든 욕들이 표현되지 않고 있었지만 ‘퍽킹’이 난무하는 것만 보아도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었다.
박수철은 갑자기 튀어나와 오른팔을 주장하는 안데라오를 용납할 수 없었다.
나름대로 원조(?) 부하 격인 박수철이었고, 안데라오는 이제야 부하를 자청하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박수철은 안데라오보다 나이도 많았다.
문제는 한국 문화권 밖에서 나이 갑질이 잘 먹히지 않는다는 것과, 애초에 안데라오는 그런 것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새끼가 진짜!”
“크큭. 도전은 언제라도 받아주마!”
퍼억!
“켁!”
빠아악!
“아아악!”
보다 못한 내가 나섰다.
이 바보들은 내가 끼어들지 않으면 하루 종일이라도 싸우고 있을 인물들이었다.
가뜩이나 신경 쓸 일도 많았는데 바보들의 싸움에까지 신경 쓸 틈은 앞으로 없을 것이다.
그러니 교통정리를 해주기로 했다.
“새끼들이 지금, 중요한 일 앞두고 뭐하는 짓이냐? 우리끼리 분열이야?”
“으으. 죄송합니다.”
“아니, 이 꼰대가 자꾸 나이를 들먹이니까…….”
“조용!”
이거야 원. 내가 중학생을 데리고 다니는 건지, 다 큰 어른을 데리고 다니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수철이가 형이다. 이건 변치 않아. 네가 나이가 적은 것은 사실이니까.”
“하지만 나이는.”
“우선은 수철이가 오른팔이다. 아직 수철이는 헌터가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 이대로 너와 대결하는 것은 불합리하지.”
“맞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요?”
“앞으로 3개월 후에 대결한다. 그때 수철이가 패하면 오른팔 자리는 내놓아야 한다. 그 전까지는 안데라오 네가 수철이를 형님으로 모셔.”
“만약 그때 제가 이기면…….”
“바뀌는 거지.”
“알겠습니다!”
“3개월이면 충분하지.”
“과연 그럴까?”
다시 으르렁거리는 바보들을 보며 사람들은 쓴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