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mmoner is doing a quest RAW novel - Chapter 214
제214화. 순회공연(1)
전투는 끝났다.
성벽이 무너지기까지 하면서 대단히 위험한 상황에 빠질 뻔하였지만 다행히 그 전에 도착하여 적들을 모조리 쓸어냈다.
아그람을 죽이고 난 이후에는 일사천리.
마기가 현격하게 약해진 적들은 빠르게 무너졌으며, 신성한 축복까지 사용하자 골골하던 헌터들이 100% 몸이 회복되면서 더욱 빠르게 밀어붙였다.
물론 신성한 축복이 상식을 벗어난 스킬이기는 하였으나 죽은 자들까지 부활시킬 수는 없었다.
수도 없이 많은 주검들이 실려 나갔으며 성벽은 가능하면 빠르게 복원하기 위하여 중장비들이 동원되고 있는 중이었다.
사우디의 사태는 생각보다 싱겁게 끝이 났는데, 강원도 양국에서 지각변동이 일어났을 때보다 더 빨리 정리를 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지원을 나온 헌터들도 주변 정리를 지원하고 있는 가운데 저 멀리서 사우디 국왕 압둘이 달려왔다.
“지존, 오셨습니까?”
“국왕폐하를 뵙습니다.”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지존이 아니었다면 저희는 모두 죽었을 겁니다.”
사우디 국왕은 침통하다는 표정이었다.
이곳에는 벌써부터 기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우리들은 사우디 신임 국왕이 굉장한 정치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상황에서도 정치적으로 행동하다니.’
이해는 한다.
정치인이 정치적으로 행동하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특히나 국왕은 나와의 친분을 과시라도 하고 싶은 듯이 손을 잡고 함께 걷는 사진을 많이 찍도록 유도하였다.
이것이 세계정세에 유리하도록 하는 행위라는 것은 알았지만.
‘곧 그 모든 게 쓸모없어질 텐데.’
이제 세계정세라는 것이 필요할까?
지금이야 멸망 초기 단계였기에 이 정도로 끝이 난 것이지, 중반부에만 접어들어도 국가의 기능은 완전히 상실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세계정세라는 개념은 옛말이 될 것이었으며 오직 자국이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는 시대가 온다.
물론 그마저도 얼마 안 가 무너지겠지만.
“왕국을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이런 친분관계를 이어 나갔으면 합니다.”
“뭘요. 계약에 의해 도운 것인데.”
“아무리 계약이라고 해도 의리가 없었다면 가능했겠습니까?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각국의 요청이 쇄도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아니다.
사우디에서 통 크게 돈을 제시하였기에 여기부터 온 것이었지, 다른 곳에서 이만 한 돈을 먼저 제시하였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다.
국왕은 행동을 괜히 과장되게 했다.
“자자, 가시지요! 연회를 준비했습니다!”
“연회까지는 괜찮습니다. 그저 식사 정도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예, 예. 당연히 식사를 하셔야지요.”
국왕은 내게 쩔쩔매고 있었다.
새삼 달라진 위상을 실감한다.
아직까지는 세계 지존이라는 이름이 각국에 크게 작용할 것이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사우디 정부에서는 이 와중에도 연회를 크게 베풀었다.
무희들을 불러 춤을 추는가 하면 악사들이 연주를 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나와 한국에서 헌터들은 밥을 먹는데 집중했다.
어차피 정치는 정치인들이 하는 것이었고 우리들이야 한국 정부에서 요청을 하면 어디든 갈 것이다.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 순서대로 움직일 것이고, 그 중간 조율자 역할을 한국 정부에서 하는 것이다.
어디서 구한 것인지 한식까지도 거하게 차려져 있었다.
율법에 따라 돼지고기 종류를 제외하기는 하였지만 비빔밥이나 양고기 등으로 만든 불고기가 환상적이다.
심지어는 궁중떡볶이가 있기도 했다.
나와 헌터들은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을 먹어치웠다.
압둘 국왕은 슬슬 여기까지 우리들을 데려온 이유를 설명했다.
“지존! 부디 사우디와 동맹을 맺어 주실 수 없겠습니까? 그게 가능하기만 하다면 억만금을 지불할 생각도 있습니다.”
“억만금이라.”
허세일 것이다.
아무리 금을 잘 쟁여둔 국가라고 해도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있을 수는 없었다.
금이라는 금속은 전 우주적으로도 사실 희귀한 광물이었다. 그나마 지구가 운이 좋아 금이 많이 나는 것이지, 우주 어디에서도 쉽게 구할 수 없다.
당연히 각국의 금 보유량에는 한계가 있었고, 금 모으기라도 정말 하지 않는 이상은 한계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화폐는 곧 무용지물이 된다.
원자재는?
몬스터들이 더욱 활보를 하기 시작하면 수송을 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다.
“죄송합니다. 동맹은 더 이상 받지 않습니다.”
“어, 어째서 말입니까?”
“계약관계에 따라 움직일 수는 있지만 이제 각자도생의 시대가 아니겠습니까?”
“각자도생이라…….”
국왕의 얼굴은 매우 복잡했다.
사우디가 전통적으로 매우 부유하였지만, 어디까지나 현금이나 외화를 많이 쌓아두고 있을 뿐이었다.
이번만 해도 왕실과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금과 보석을 대부분 털어내야 할 것이다.
현 시가로 100조원 상당의 금과 보석, 그리고 현물을 받아낸다.
필요에 의해 온 것이지 동맹을 맺자고 온 것은 아니었다.
“앞으로 많은 국가들이 이런 기조를 유지할 겁니다. 헌터 강국은 더 이상 동맹을 맺으려 하지 않겠지요. 자국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만으로도 벅차기 때문입니다.”
“아, 예. 그렇다면.”
“한국 정부와 계약을 하신다면 언제라도 도울 수 있습니다.”
“그, 그거라도 어딘가 싶습니다.”
“식사가 끝나면 아무래도 다음 지역으로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때까지 좀 씻고 잠시만 쉴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암요. 그건 걱정 마십시오.”
사우디 국왕의 반응만 보아도 갑을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었다.
오늘 우리가 아니었다면 사우디는 완전히 무너졌을 것이다.
일국의 수도가 무너지고 주변 도시들까지 박살이 나고 나면 사우디는 어마어마한 손실을 입는다.
나중에야 어찌어찌 막기야 했겠지만 피해가 컸을 것은 자명한 사실.
그렇지만 우리가 구원을 와 주었고, 순식간에 막아냈다.
계약이라도 우리를 부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관계가 악화되어 아예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보다는 그게 나을 테니까.
연회장 테라스.
여기서 리야드를 내려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어 성벽 복원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더 멀리까지 보자 리야드 근처 유전은 다 터지거나 망가져서 복원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앞으로 수출길이 막히면 사우디에서도 굳이 원유를 뽑을 필요가 있을까 싶다.
“안타까운 일이야. 사우디의 유전들은 채산성이 대단하다고 하던데.”
부국 사우디의 몰락이 눈에 보인다.
아니, 비단 사우디뿐일까.
무역이 완전히 사라지면 모든 것을 자급자족해야 했는데, 한국도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그래도 내게는 하루에 한 번이라도 포탈을 열 수 있는 방법이 있었으니 많은 도움이 되기는 할 것이다.
“여기 계셨군요.”
“아, 라미드 헌터님.”
사우디 지존 라미드다.
그녀는 오늘 사태를 막은 일등공신이다.
비록 우리가 없었다면 그녀 역시 무너졌겠지만 나름 하루 이상 버티면서 시간을 벌었다.
나름대로 그녀의 리더십도 대단한 편이었고, 사우디가 남성중심 사회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놀라울 정도였다.
“무슨 생각을 그리 깊게 하시나요?”
“미래를 생각하면 암울하니 그렇지요.”
“아무래도 멸망론이 맞는 것 같죠?”
“네.”
나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부정하지 않았다.
미래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갈 것이다.
길어야 한 달 정도일까.
그 이후부터는 전 세계가 급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한다.
“만약에 말이에요. 사우디가 무너지고 나면 한국으로 가도 될까요?”
“진심이십니까?”
“물론 사우디를 지키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겠지만, 어쩐지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통찰력이 꽤 있는데.’
사람들은 다가오는 미래를 애써 부정하려 했다.
분명히 멸망이 코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부정하고 괜찮다고 떠들고 다닐 뿐이었다.
그러나 라미드는 그러지 않았다.
“훌륭한 헌터가 와주신다면 저희로서는 대환영입니다.”
“감사합니다.”
라미드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사실 사우디가 무너질 정도의 상황이 되면 고립이 되어 죽음만 기다릴 뿐인데 내가 포탈을 사용한다면 최후의 상황에서 구조가 가능할 것이었다.
그때가 되면 일반인들은 굳이 구조하지 않겠지만, 라미드 같은 고급인력은 달랐다.
그래도 일국의 지존이었던 여자라면 충분히 구할 가치가 있었다.
나와 라미드는 테라스에서 나와 연회장으로 돌아왔다.
점심식사도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
대한민국 청와대.
현재 청와대에서는 각국에서 밀려드는 요청들을 처리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물론 모든 요청들을 처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가장 많은 비용을 제시하는 쪽부터 처리를 해야 한다.
청와대에서도 도움을 주지 않겠다는 입장은 아니었고 그에 따른 비용을 받아야겠다는 기조였다.
정치인들은 직감적으로 각자도생의 시대가 왔음을 알았다.
한국의 정치인들이 그러한 사실을 알았을 정도라면 전 세계 모든 정치인들이 그리 생각을 했다는 뜻과 다름없었다.
이한진은 여기저기에 계약이라는 말을 하며 공짜는 없다는 것을 못 박았다.
“대통령님. 러시아에서 30조를 제시했습니다.”
“너무 적지 않습니까?”
“중국에서는 40조를 제시했는데, 그쪽으로 타진을 할까요?”
“일본은 어떻습니까?”
“그쪽도 40조를 동일하게 제시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군요.”
물론 단위를 원화로 거론하는 것은 기준점일 뿐이었고 현 시가의 금과 보석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었다.
주변국에서는 비교적 적은 돈을 제시하였고, 그 정도라면 딱히 강한성에게 의사를 타진할 매력을 느끼지 못하였다.
사우디에서 100조를 제시하였는데 최소한 그 근접한 수치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벌컥!
비서실장이 뛰어 들어왔다.
“이란에서 80조를 제시했습니다!”
“오호, 그 정도면 될 것 같군요. 바로 타진합시다.”
대통령은 바로 외교부에 지시를 내려 세부협상에 들어가라고 지시하였다.
다만 이란에서는 빠르게 도착을 해줄 것을 조건으로 달았다. 다행이 사우디에서 이란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으니 반나절이면 갈 수 있을 것이다.
굉장한 금액을 제시함과 동시에 거리도 가깝다.
그렇다면 이란부터 처리해야 한다.
털썩.
이한진은 주저앉아 넥타이를 풀었다.
어제부터 퇴근을 하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워낙에 막대한 돈이 오가고 있었고 금과 보석이 있어야 강한성이 더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이 기회에 타국에서 막대한 양의 원자재를 받으려는 의도도 있었다.
원자재를 받아야 공사를 할 수 있다. 지금 상태로는 모든 공사가 스톱되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잠깐 짬을 내서 쉬는 동안에는 사우디의 상황이 도대체 어떻게 종료되었는지 보기로 했다.
강한성으로부터 전화를 받아 사우디 상황이 처리됐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실로 어마어마한 속도가 아닐 수 없었다.
이렇게까지 빠르게 처리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
TV를 틀자 포탈에 대한 이야기가 줄줄이 흘러나왔다.
[……그러니까 포탈이 열리자 사방 200m 내의 모든 것이 증발했다는 것이군요?] [맞습니다. 도대체 어느 정도의 파괴력인지는 모르겠지만 잘만 이용한다면 위급한 상황에서 전세가 역전될 수도 있어 보입니다.] [포탈을 이용한 공격이라니. 굉장히 신선해 보입니다.] [이미 지존께서는 알고 계실 겁니다. 그게 아니라면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 한복판에 포탈을 열지는 않았을 테니 말입니다.]그 소리를 들은 대통령은 혀를 내둘렀다.
“도대체 포탈의 공격력은 어느 정도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