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mmoner is doing a quest RAW novel - Chapter 25
제25화. 도발
힘든 전투였지만 돌아가는 길은 발걸음이 가볍다.
보스의 방을 제외한 구역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뱀파이어들의 사체를 수거하고 있었다.
그들은 레몽과 연결이 되어 있는 사람들로, 몬스터들이 리스폰 되기 전에 수거를 해야 했으므로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박수철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뱀파이어 사체들을 보며 감탄했다.
“우리가 이렇게 많이 죽였군요. 거의 학살을 한 수준인데.”
“몰랐어? 반쯤은 정신을 놓고 사냥했었는데.”
“하하! 새삼스러워서 그렇죠. 게다가 두 명이 이렇게까지 던전을 청소할 수 있다니…….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겁니다.”
“앞으로는 쭉 이럴 거다.”
“어쩐지 형님 옆에 있으면 세계를 제패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너는 갑작스럽게 중2병에 빠질 때가 있어. 세계제패는 무슨.”
“정말이요. 형님은 뭔가 달라요. 설명할 수는 없지만.”
“실없기는.”
말은 그렇게 해도 내심은 놀랐다.
박수철은 내가 일반인은 아니라고 짐작하고 있는 것이다.
둔하기 그지없는 박수철이 이렇게 생각할 정도면 다른 사람들도 별반 다르지는 않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도 같은 회귀자가 아니고서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지.’
회귀를 했다는 것.
바보가 아닌 이상 자신이 회귀자라고 떠벌리고 다닐 인간은 없었다.
우리가 지나갈 때마다 사체 수거 팀원들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했다.
일찍이 가져보지 못한 감정.
그렇다고 거만을 떨 생각은 없었다.
귀족이 귀족답게 빛나기 위해서는 겸손해야 했으므로. 오만을 떨어 내게 이익이 될 것은 하나도 없었다.
“수고 많으십니다.”
“아, 소환사님! 오늘 전투는 정말 대단하셨습니다! 두 분이 던전 하나를 통째로 공략하실 줄은.”
“운이 좋았던 것뿐입니다.”
“정말 겸손하시네요.”
“별말씀을.”
사람들이 말을 걸어올 때마다 하나하나 응대를 해주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박수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형님. 일개 사체 수거팀에게 친절할 필요 있나요?”
“누군 날 때부터 헌터였나. 나도 얼마 전까지는 사체 처리부였어. 수거팀보다 더 낮은 직위에 있었지. 헌터들이 거들먹거리는 거 말이야. 앞에서는 굽실거리겠지만 뒤에서는 얼마나 욕을 하겠냐? 어떤 일을 하건 초심이 중요한 거야.”
“이햐, 대단한 마인드이십니다.”
천천히 지옥의 땅을 가로지른다.
그리고 우리는 의외의 인물을 여기서 만날 수 있었다.
“아이고,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레몽의 간부 오세춘이다.
뒷세계의 간부답지 않게 친절함으로 일관하는 오세춘에게서는 뒷골목의 냄새를 전혀 맡을 수 없었다.
박수철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나는 그가 보조 길드로서는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단체의 간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 사실을 아는 사람 자체가 드물다.
오세춘이 합법을 가장한다면 나 역시 그를 일반적인 보조 길드의 간부로 대우해 줄 수 있었다.
그것이 처세술이니까.
“오 부장님. 안 그래도 찾아 뵐 생각이었는데 잘됐네요.”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을까요?”
오세춘은 공손하게 손을 모으고 있었다.
유령기사와 4급 A랭크 던전을 클리어 한 효과일까.
오세춘의 자세는 전에 보았을 때보다 더욱 공손해져 있었다.
“오늘의 수익과 이것들을 전부 처분해서 금괴로 바꾸어 주실 수 있으신지 해서요.”
“금괴요?”
“쓸 곳이 있어서.”
“허허허. 금괴만큼 재테크에 효과적인 현물은 없지요.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오늘 가능할까요?”
“오늘……이요?”
가능하면 오늘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저녁에 또 현질을 할 테니까.
무엇보다 무구가 급하다.
갑옷을 비롯한 모든 보호구들이 이번 전투에서 깨지는 바람에 코인을 구매하여 현질을 해야 할 것 같다.
가능하면 올 레어 아이템으로.
“가능할까요?”
오세춘은 잠시 머뭇거렸다.
수거한 사체들에서 마석을 뽑고 하루 만에 처리하여 현금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길드는 이 세상에 몇 되지 않았다.
보통은 일주일 이상 걸리기 마련.
다만 몇몇 대형 길드들은 던전에 입장하여 사냥을 하고 나면 그 돈은 던전을 관리하는 길드에서 수수료를 떼고 미리 지급하기도 했다.
“가능합니다.”
“오, 자금력이 뛰어난가 보네요.”
박수철이 레몽의 자금력에 대해 칭찬을 늘어놓는다.
어쩐지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는 오세춘.
나름대로는 레몽과 연결된 것이 나에게는 행운이라고 여기는 모양이니,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어야겠다.
“가능하면 이 아이템들도 부탁드립니다.”
나는 인벤토리에 저장되어 있는 수많은 강화 아이템들을 쏟아냈다.
최소한 2강. 많게는 3강, 심하면 4강까지 되어 있는 매직 아이템들이었다.
그런 아이템들이 열 점이 넘었다.
하루에 한 번은 무료로 강화석을 습득할 수 있고, 또한 하급 강화석은 그리 비싸지 않았으므로 이만한 물량이 쏟아진 것이다.
“허어. 이건 대체.”
그제야 박수철의 표정이 흐트러졌다.
당연한 일이다.
오세춘도 살면서 이 정도로 많은 강화 아이템을 한 번에 보유하고 있는 경우는 보지 못했을 것이다.
4강화 아이템은 그야말로 부르는 것이 값일 정도.
옵션에 따라서는 레어 아이템보다 좋을 수도 있었다.
내구도가 흠이라면 흠이겠지만.
“가능할까요?”
“허허. 제가 졌습니다. 이만한 아이템들을 한꺼번에 구매하여 처분하려면 본사를 한 번 거쳐야 합니다. 그쪽에서 자금을 받아야 해서 말이죠. 최소한 하루는 걸립니다.”
“그러시군요. 그렇다면 아이템들은 내일 처분해 주시고 나머지는 오늘 부탁드립니다.”
“예. 오늘 저녁까지 금괴를 길드로 배달해 드리겠습니다.”
“그럼 수고해주세요.”
“아, 그리고 길드장님.”
“말씀하시죠.”
“귀하께서 전투를 벌이시는 동안 던전 입구에서 약간의 소란이 있었습니다.”
“소란이요?”
“암제 아십니까? 한국 랭킹 5위에 올라와 있는 랭커인데…….”
“그런데요?”
“그 암제가 길드장님께서 어렵사리 점령하신 길드를 강탈하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하더군요.”
“암제라…….”
암살자 계열의 헌터.
랭킹 5위였으나 탑 랭커들이 그와의 시비를 꺼리는 것은 단연 암제가 보유하고 있는 은신 스킬 때문이었다.
이미 몇 번이나 암제와 마찰을 빚었던 이들이 중상을 입거나 마나 홀이 파괴된 경우가 있었으므로 오세춘의 걱정은 전혀 과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걱정을 해야 할 일일까?
“걱정 마세요. 적이라고 규정되면 밟아버리면 그뿐이니.”
지옥의 땅 던전 입구.
던전은 수익을 창출하고, 얼마나 많은 던전을 보유했는지는 길드의 자금력과 직결되는 문제였으므로 던전 소유권을 둘러싼 논쟁은 끊이지를 않았다.
그리고 오늘.
상위 던전에 속하는 4급 A랭크 던전을 신생 길드가 발견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며칠 전까지 각성 레벨 20대에 불과하였던 소환사 강한성이 이끄는 ‘을들의 반란’은 아직 길드 선언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지금까지 알려진 길드원은 길드장을 포함하여 총 세 명.
하필이면 길드장 강한성은 헌터사회 취약계층에 불과한 사람들을 끌어들이기로 결정하면서 많은 논란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런 길드가 만만해 보였기 때문일까.
여러 길드에서 침을 흘리며 강한성이 던전 공략에 실패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이걸 성공해버렸다는 거지.”
“다들 헛물만 들이켠 꼴이 됐습니다.”
검제와 오진수가 혀를 찼다.
결국 이곳까지 와서 강한성의 데뷔를 축하해 주는 하객 꼴이 되었다.
대한민국 랭커 1위 체면에 신규 던전을 강탈하는 행위는 스스로 규율을 무너뜨리는 격이므로 검제는 그저 한탄을 하고 말았지만, 암제는 달랐다.
길드의 성향이 선과 악, 중립으로 나뉜다면 암제의 다이어 울프는 명백히 악을 지향하고 있는 길드였다.
상위 길드를 건드린다는 것은 자신의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일이었으므로 암제도 지양을 하였지만, 신생 길드는 다르다.
을들의 반란은 명백히 소환사 강한성을 중심으로 돌아갈 것이 뻔했고, 그만 넘어뜨릴 수 있다면 던전을 강탈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쯧쯧. 저걸 봐. 먹이를 노리는 승냥이의 눈빛인데.”
“소환사가 명백하게 불리한 것이 아닌지요? 오늘 전투는 압도적이었지만 암제의 특성을 생각하면…….”
“그래. 문제가 있지.”
암제의 은신술.
막상 전투가 벌어지면 눈앞에서도 암제를 놓치는 경우가 발생할 것이다.
일대일 전투이건 길드전이건 강한성이 불리하다는 것은 어린아이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소환사다!”
웅성웅성.
그런 복잡한 상황에서 오늘의 주인공인 소환사가 던전 입구로 나왔다.
수많은 관계자들이 소환사에게 관심을 표했다.
하지만 대놓고 뭔가를 물을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암제가 눈에 불을 켜고 있었기 때문이다.
짝! 짝! 짝!
암제가 손뼉을 끊어서 쳤다.
사람들의 시선은 소환사에게서 암제로 옮겨간다.
“던전 강탈자께서 납시고 있군. 그래, 감히 우리 다이어 울프가 관리해야 하는 던전을 강탈하고 클리어 보상까지 받은 심정은 어때? 달달했어?”
“암제시군요. 저에게 볼일이 있으신가요?”
“새끼. 같잖은 가면은 쓰고 지랄이야. 너, 내가 딱 보면 알지. 속은 시커먼데 착한 척하는 놈들 말이야. 여기도 몇 명 있지? 그런 인간들. 너도 그 길을 따라서 가려고? 가면을 벗으면 얼마나 편한지 모르는구나?”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군요. 괜한 시비를 거시는 거라면 이만 가보겠습니다. 피곤하군요.”
“어허. 뭔 개소리야? 계산은 정확하게 해야지.”
암제는 소환사를 보낼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대놓고 시비를 걸고 있는 암제.
물론 그 이유는 던전의 소유권과 관련되어 있었다.
4급 A랭크 던전이라면 상당한 수익을 보장해 줄 것이었으므로.
“계산이라……. 도대체 제가 어째서 귀하의 길드에서 소유할 것이었던 던전을 강탈했다는 건지 여쭤 봐도 될까요?”
“하, 새끼. 속은 시커먼 놈이 착한 척을 한다고 착한 인간이 되나? 여기, 증인이 있다. 우리길드 산하에 있는 수색꾼들이 찾아서 보고를 하는 동안 네놈이 먼저 강탈을 해버린 거야. 오준상!”
“예, 길드장님.”
머쓱한 표정으로 나오는 한 남자.
머리는 깍두기처럼 깎아 올리고 검은 정장을 입은 모습은 도저히 수색꾼으로 보이지 않았다.
다이어 울프 길드는 세력을 넓히기 위하여 손을 대지 않는 분야가 없었다.
이제는 길드에 묻혀 빛을 내지 못하는 암흑가 세력들과도 긴밀하게 얽혀 있었고 사건사고도 길드 내에서 끊이지 않는다.
한눈에 보아도 건달의 포스를 풍기는 덩치가 머리를 긁적였다.
“이거 정말 황당한 일이군요. 제가 던전 입구를 발견해서 보고를 하는 동안 던전을 강탈해 버리시네요. 신화 급 스킬을 보유하고 있으면 그래도 되는 건가요?”
“…….”
막무가내였다.
증거 따위는 내세우지 못하고 있었으니 우리 길드를 우습게보고 이런 짓을 꾸몄을 거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을 정도.
다만 암제의 은신술 때문에 누구도 개입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친절한 설명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이거 어쩌지요? 그런 개소리에는 결코 응할 생각이 없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