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mmoner is doing a quest RAW novel - Chapter 256
제256화. 예정된 결말(3)
독일의 상황과 영국의 상황은 좀 달랐다.
독일은 내성이라는 개념이 없었기에 급조한 성벽이었던 것에 반하여 영국은 오랜 시간 성벽의 역할을 해온 곳이 있다.
내가 영국이 아닌 독일부터 처리한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
동맹국 중에서도 급한 곳부터 도움을 주는 것이 당연한 일.
이곳 버킹엄 궁전은 오래 전에 남아 있던 성벽에 증축을 거듭하여 제법 튼튼했고, 내부에는 충분한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었다.
헌터와 시민들을 합하면 3만 정도가 살아남았으니 이만하면 선방한 셈이다.
이곳에 오자마자 버킹엄 궁전 주변을 휩쓸었고, 런던으로는 생존자 구출을 위하여 소환수들을 보냈다.
천사들이 런던을 헤집었으며 가끔 생존자가 구출되기는 하였으나 궁전을 제외하고는 런던도 손을 쓸 수가 없을 지경이 되었다.
그렇게 전투하길 30분.
조금씩 여유를 찾아간다.
“고생 많았습니다.”
“죽는 줄 알았어요.”
“미안합니다. 독일의 상황이 정말 심각해서 말이지요.”
천사들 중 상당수는 치유에 투입되어 있었다.
여기저기서 치료가 행해지고 있는 중이다.
“최대한 많이 구하려 했습니다만.”
“아니에요. 이만하길 다행이죠.”
“런던은 어느 정도 정화가 됐으니 며칠 정도는 버틸 수 있으실 겁니다.”
“며칠이나…….”
“오늘 이미 독일에서 포탈을 사용했습니다. 쿨타임이 돌아오려면 내일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아무래도 심각한 지역들부터 사람들을 이동시켜야 하니.”
“런던이 완전히 정화되면 조금 더 버틸 수 있어요.”
“주력은 격파를 하고 갈 것이니 가능할 겁니다.”
나는 일의 우선순위를 정했다.
1순위는 당연히 한국이고 2순위는 동맹국이었는데, 동맹국 중에서도 가장 피해가 심각한 지역부터 구조를 한다.
이곳 영국은 그나마 상황이 나은 수준이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천사들을 동원하여 무너진 성벽을 복원하고 있었다.
또한 성벽 뒤로는 클레이 월을 사용하여 흙벽을 세워주었으며 불에 그슬려 어느 정도 단단하게 다져 주기도 했다.
이만하면 영국은 버틸 것이다.
저벅 저벅.
우리들은 성벽 위를 걸었다.
영국의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나면 미국으로 날아갈 것이다.
미국은 땅덩어리가 넓었기에 지금껏 버티고 있었다.
바로 워싱턴으로 순간이동을 한 후에 레베카를 구할 것이다.
레베카나 레일라나 같은 신의 권속이었으므로 최대한 빠르게 구출을 할 필요가 있었다.
독일이야 상황이 워낙 급박했던 것이었고.
“앞으로 대체 어떻게 될까요?”
“승리해야지요.”
“승리를 하고 나면요?”
레일라 역시 여신의 선택을 받기는 하였지만, 게임을 클리어 할 우승후보로 거론되고 있지는 않았다.
오늘 이후로 처분이 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 모두 과거로 돌아갈 뿐이고 처벌은 없습니다.”
“과거로……?”
“지구 자체가 과거로 돌아갑니다. 이 때문에 제가 한국을 우선적으로 살리려 하는 것이죠.”
“그럼 우리들의 기억은 어떻게 되나요?”
“지워집니다.”
“……!”
그녀는 놀람을 감추지 못하였다.
이제 와서 이건 비밀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앞으로 두 번의 징조만 더 막아내면 게임은 클리어 된다.
그 이후에는 과거로 회귀를 하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의 기억은 지워질 것이니 이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지나갈 것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안타까운 일.
“과거로 돌아가면 저는 당신을 기억하지 못하겠네요.”
“아마 그렇겠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모두 꿈이라고 치부를 해도 될까요?”
“꿈이라.”
조금은 철학적인 질문이었다.
일어났던 사실이지만 그걸 기억하지 못한다면 단순한 꿈이 되지 않을까?
“그 비슷하겠죠.”
“어서 클리어가 됐으면 좋겠군요. 만약 클리어를 하지 못한다면?”
“그때에는 지구가 멸망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
“정확한 계획은 모르겠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겠죠. 그것이 클리어 보상 중 하나였으니.”
“클리어 해 주세요.”
“반드시 그리 될 겁니다.”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어떤 역경이 있더라도 반드시 이 빌어먹을 게임을 클리어 하고 말 것이라고 말이다.
***
며칠이 지나는 동안 강한성은 정말 동분서주하게 움직였다.
독일과 영국을 구한 것은 시작일 뿐이었고, 세계 여러 나라들을 돌아다니며 헌터들과 생존자들을 구조하였다.
그러나 그 한계선은 분명히 있었다.
강한성도 시간을 무한정으로 쓸 수 있는 건 아니었고, 실시간으로 세상은 무너져가고 있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우선순위에서 제외가 된다고 생각하면 과감하게 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강한성의 선택을 이해하였다.
모든 사람들을 구할 수가 없다면 선택을 해야 한다.
헌터 강국일수록 구원을 받을 수 있는 확률이 증가한다.
또한 한국과 동맹관계부터 구한다는 우선순위를 두었다.
강한성과 인연이 있는 국가들도 구함을 받았다.
총 80개의 국가들이 구원됐고, 그 숫자는 300만에 달하였다.
이 중에서 헌터들의 숫자는 20만이 넘었다.
이만하면 한국 전역을 방어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레일라와 레베카는 알고 있었다.
강한성조차 5차 징조는 힘겹게 막아낼 것이라고.
그때가 되면 다 죽고 강한성 혼자 남을 수도 있었다.
“이 아름다운 도시가 무너진다니.”
영국과 미국은 강릉에 배치되었다.
강릉이라면 강원 지역에서는 가장 발달한 도시다.
도심도 잘 형성되어 있었으며 아파트도 많았다.
자연경관도 살아 있었으며 동해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으면 전망도 상당히 좋았다.
그들은 철책으로 막혀 있는 해안가를 걸었다.
레베카가 레일라에게 묻는다.
“정말 우리 기억이 지워진대요?”
“네.”
“이 모든 일들이 없었던 일이 된다니.”
지금까지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물론 고통스러운 기억들이었지만.
알고 있던 사람들을 모르게 된다는 것은 꽤나 안타까운 일이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가 되겠네요.”
“모르죠. 신들의 권속은 기억을 일부라도 가지고 돌아갈지.”
“그리 되면 사회적인 혼란이 엄청난 것이니 불가능할 것 같네요.”
레일라와 레베카는 상당한 친분을 자랑했다.
오히려 지존 강한성과는 자주 만나지 못하였지만, 그녀들끼리는 만나기도 자주 만났고 평소에 연락도 하면서 지냈다.
그런 지인이 모르는 사이가 되는 것이다.
촤아!
평화롭게 치는 파도.
레베카는 그런 파도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쩌면 기억을 잃는다는 것이 가장 큰 저주일지도 모르겠어요.”
***
서울 한강 최전방지역.
지난 보름 정도는 세계 전역을 돌아다니며 인명을 추가로 구조하였다.
이 덕분에 인구가 100만 명 정도 늘어났으나 이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애초에 대한민국은 인구 5천만이 자급자족을 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 난리가 일어나기 전의 인구는 4천만 정도.
지금은 총 4400만이었으니 물자는 부족함이 없었다.
각 발전소도 잘 돌아가고 있었으며, 그에 따라 기반시설을 돌리는 것도 무리가 없었다.
최전방을 제외한 지역들은 늘어난 헌터들로 인하여 예전보다 관리가 더 잘되고 있었다.
콰과과광!
서울 최전방 성벽 위에서는 연신 마공포가 발사된다.
굳이 헌터들은 성벽을 넘어 예방전쟁을 벌이지는 않았다. 이곳으로 몰려드는 적들은 마공포 만으로도 충분히 해결됐기 때문이다.
전 세계가 멸망한 상황.
한강 이북 지역을 보면 완전한 지옥이 따로 없었지만, 이남 지역을 보면 손상되지 않은 대도시가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차량들도 돌아다녔고 사람들은 일상생활을 영위한다.
이만하면 세상이 멸망했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지경이었다.
다만 나는 성벽 위를 걸으며 걱정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앞으로 두 번.’
멸망의 징조 3차까지는 어떻게든 막아냈다.
특히나 한국 내부에 별다른 타격이 없이 막아냈다는 것이 중요했다.
이로 인하여 살아남은 사람들은 별다른 불편함 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물론 불안감은 남아 있었다.
언제 세상이 망할지 알 수조차 없다는 데에서 오는 불안감이다.
나 역시도 세상이 괜찮아질 것이라고는 이야기 하지 않았다.
그건 거짓말이었으니까.
‘4차에 이르게 되면 서울을 제외한 모든 지역들이 망할지도 모르지.’
반드시 그리 될 것이라고 여겨졌다.
다만 전 세계 모든 헌터들을 모아 놓은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좀 더 버티기가 수월할 것이라 생각될 뿐이었다.
5차에 이르게 된다면?
마지막 공격은 매우 격렬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도대체 4차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걱정이에요.”
나와 이하나는 천천히 성벽 위를 거닐고 있었다.
그녀의 걱정도 충분히 이해는 되었다.
나 역시 같은 걱정을 하고 있었으니까.
“힘들 겁니다. 지금과 같지는 않을 테죠.”
“반드시 그리 되겠죠?”
“네.”
“그럼 발표를 하지 않을까요? 지금 보면 너무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이, 멸망 이전으로 돌아간 것 같다고 할까요.”
묘하게 들고 있는 기시감이 이것이었다.
헌터들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걱정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러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마치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을 억지로 지우려는 것처럼 일상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 일이라는 것이 이제는 사무직이 아닌, 성벽을 보강하고 각 구역과 주택들을 보강하는 것이었지만 일상이 크게 바뀐 것은 아니었다.
바짝 긴장을 하고 있어야 한다는 이하나의 말에는 나도 동감이었다.
“홍보부장을 부르세요.”
“네, 지존.”
KBC 방송국 본사.
이곳에서는 방송이 준비되고 있었다.
지존의 이름으로 중대발표가 되는 것이었고 이 때문에 긴장감마저 흐르고 있었다.
“도대체 지존이 무슨 발표를 하려는 걸까요?”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이 사태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겠지.”
강소라의 이마에서도 식은땀이 흐른다.
나름대로 한국 내부는 잘 돌아가고 있었다.
세계 각국에서 외국인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지만 최소한 보급의 문제나 생활의 불편함을 호소하지는 않았다.
각자 맡은 역할이 있었으며 그 일에 충실하고 있었다.
평화로워 보이는 한국.
그러나 이미 한국은 세계 최후의 국가이다.
한국이라고 해서 앞으로 무사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지존이 발표를 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
잠시 후, 굳은 얼굴의 강한성이 촬영장에 도착했다.
“준비는 됐습니까?”
“바로 카메라 돌리겠습니다.”
카메라에 빨간 불이 들어온다.
모든 사람들이 긴장을 하고 있는 순간.
강한성은 정면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여러분. 지금까지 많은 아픔을 겪어왔고 지옥과 같은 시간을 견뎌냈으나 어디가 끝인지 몰라 불안해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것이 천기누설이 될 수도 있으나 언제 모든 사태가 끝날지 발표하겠습니다.”
“……!”
이 사태의 끝.
모든 사람들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