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mmoner is doing a quest RAW novel - Chapter 275
제275화. 리스타트
한때, 서울이었던 곳.
이곳에는 진정한 멸망이 자리하고 있었다.
성벽은 흉물스럽게 파괴되어 있었고 콘크리트 잔해들이 사방에 널려 있다.
어느 곳을 살펴보아도 도저히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저벅 저벅.
완전히 멸망해버린 지구를 걷는다.
쿠구구구!
여기저기서 지각이 끓어오르고 있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폭발을 일으킬 것이다.
대략 한 시간.
그 이후 지구는 우주의 먼지로 사라질 것이다.
이대로라면 지구는 역사조차 남기지 못할 운명이었다.
그렇지만 그 전에 내가 시간을 되돌릴 것이다.
태양계 전체의 시간을 되돌리는 것이 아니다. 오직 지구의 시간만 되돌리는 것이었으며, 그 안에 살아가던 모든 사람들이 부활한다.
시간은 대략 2010년도.
이 모든 사태가 시작되기 전이었으며 그 정도는 시간을 돌려야 한다.
그 자체는 간단한 일이다.
다만 나는 고민하고 있었다.
‘한 사람만이라도 기억을 가지게 할 수는 없나?’
잠시 후 성벽 위.
라이젠을 비롯하여 모든 헌터들이 죽어 있었다.
단 한 명도 예외가 있을 수는 없다.
심지어 연인이었던 이하나조차 심장이 꿰뚫린 채 죽어 있었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되살릴 수는 있다.
그녀의 머리에 손을 올리고 의지를 불어 넣었다.
“부활.”
스스슷
막대한 신성력이 스며든다.
아니, 신성력으로는 정의할 수가 없는 힘이다.
죽은 자의 시간을 되돌린다는 자체가 원래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건 신만이 가지고 있는 권능.
또한 어차피 지구 전체의 시간이 돌아갈 것이기에 잠시 되살리는 정도야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이하나가 눈을 떴다.
“으음…….”
“일어나셨군요.”
“어어? 제가 부활한 건가요?”
그녀는 몸을 일으켰다.
처음에는 자세를 잡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심장이 꿰뚫리고 모든 세포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는데 멀쩡할 리가 없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부활시켰습니다.”
“당신이요?”
그녀는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본다.
역시나 참혹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악마들은 이제 사라졌지만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죽었다.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악마들은 강력했고, 그들을 막아내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서울을 방어하던 사령관 격인 라이젠까지 이렇게 죽은 것을 보면 누구도 살아남지 못했다고 봐야 한다.
“하나 씨도 곧 죽게 되겠죠. 잠시 되살린 것이니.”
“어쩐지. 기억이 지워지지 않았더라고요. 저를 되살렸다는 건.”
“신위를 받았습니다.”
“축하드려요!”
이하나는 진정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우리들은 잠시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이건 일상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처음 만났던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인연은 상당히 오래 되었고 모든 고난을 함께 겪어왔다.
“하나 씨가 없었다면 결코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겁니다.”
“별말씀을 다 하세요. 제가 없었어도 한성 씨는 이 게임을 끝낼 수 있었어요.”
“불가능했을 거라니까요.”
서로를 향해 공치사한다.
쿠구구구!
점점 지구의 흔들림이 거세지고 있었다.
바닥이 쪼개지고 용암이 분출하기 시작하자 보호막을 쳐서 막기까지 해야 했다.
용암은 파도를 만들어냈고 이내 도시를 휩쓸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쓸려 나가자 오히려 아름답기까지 하였다.
그녀와 헤어질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녀는 이제 시간이 많지 않음을 깨달았다.
“제가 과거로 돌아가면 기억을 잃겠죠?”
“분명히 그럴 겁니다.”
“제 이야기 기억나죠? 오직 당신만이 저를 기억하니 찾아오세요.”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나하도 알고 있을 것이다.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지금처럼 살가운 사이는 아닐 거라는 사실을.
그 하나만으로도 이하나는 가슴이 시린 것 같았다.
우리들은 어깨를 감싸 쥐고 무너지고 있는 지구를 감상했다.
“하나 씨.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
“꿈이요?”
“네. 우리가 모두 잊고 살았던 꿈 말입니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하여 발버둥 쳤다.
그 전에는 강해지기 위하여,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 노력을 해왔다.
그러니 오래 전 잊혔던 꿈이 무엇인지 잊고 살았다.
“우리를 알지 못하는 전혀 새로운 세상에서 당신과 살아가는 것이요. 어디 산속에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요.”
“새로운 세상이라…….”
“그렇게 둘만의 행복을 추구하며 평생 살 수는 없겠죠?”
“가능할지도 모르죠.”
“꼭 그리 되었으면 좋겠어요.”
함께 모험을 하며 살아가고 싶다는 그녀.
그게 아니라면 산속에 처박혀서 농사나 지으며 살자는 것이었다.
‘그녀의 기억을 되살릴 수 있을까?’
거기까지는 나도 모르겠다.
지구를 되돌릴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엄청난 권능이었는데, 미래에 일어났던 기억을 그 사람에게 다시 줄 수 있을지는.
일반적인 신은 불가능하다.
거기까지는 신의 영역을 뛰어 넘는 행위였다.
하지만 나는 일반적인 신이 아니다.
운 좋게도 태초 신의 후계자가 되었기에 시도를 해볼 수는 있을 것 같다.
다만 이하나에게는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기로 하였다.
불가능할 수도 있었으니까.
꽈직! 꽈지지직!
콰르르릉!
하늘에서는 전류가 흘러나오고 내부에서 지구는 붕괴되고 있었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너무 졸리네요.”
그녀의 눈이 감겨간다.
천천히 이하나의 심장이 멈추었다.
이하나는 눈을 감는 순간, 내 손을 잡았다.
“당신을 만나 행복했어요.”
작별인사였다.
자신을 찾아오라고 이야기를 하였지만, 지금처럼 깊은 사이가 될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는 것이다.
마침내 이하나의 숨이 끊어졌다.
용암의 파도가 사방에서 휘몰아쳤다.
나는 이제 의지를 일으켰다.
“리스타트.”
***
서울 강북구.
한 허름한 방에서 소녀가 깨어났다.
띠디딕! 띠디디딕!
“으으으.”
중학생 이하나는 냉골같이 차가운 방 안에서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혼자였다.
어머니는 어린 시절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어느 날 홀연히 사라졌다.
호적상으로는 아버지의 아래에 있었지만 실질적으로는 혼자 살아가는 소녀가장이다.
그나마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었는지, 아버지는 집을 나가기 전에 어느 정도의 돈을 남겼다.
그마저도 곧 있으면 떨어질 것이고 그녀는 선택을 해야 한다.
어떻게든 돈을 벌거나, 그것도 아니면 고아원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학교 가기 싫다.”
아침은 대충 식빵 한 조각으로 때운다.
어제 학교에서 가져온 우유 한 잔을 마시고 등교 준비를 했다.
이를 닦다가 그녀는 뭔가 이상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데자뷰?”
언젠가 겪었던 일 같다.
그러다가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등교는 매일 같이 하는 것이었는데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가방을 매고 집을 나선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다들 어제와 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여러 가게들도 문을 열었고, 바쁜 직장인을 위하여 노점에서 김밥을 파는 아주머니도 보였다.
다를 것이 없는 일상.
그러다가 괴리감이 든다.
“오늘, 이상하네.”
어젯밤에는 긴 꿈을 꾸었다.
정확하게 무슨 내용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매우 긴 시간 동안 한 사람의 인생을 살았던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지하철의 표를 끊고 전철을 탔다.
어제와 같았지만 뭔가 다른 모습.
사람들은 이상할 정도로 차분했다. 다들 뭔가 고민에 잠겨 있었다.
“몸에 안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아.”
“그게 무슨 말이야?”
“현실이 현실 같지 않다고 해야 하나.”
“어? 너도 그랬어? 나도 오늘 일어났는데 뭔가 이상하더라고.”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그런가?”
“그럴지도 모르겠네.”
급작스럽게 한파가 몰아치기는 했다.
그 때문에 이하나도 자다가 입이 돌아갈 뻔하지 않았던가.
두 정거장을 간 후에 내렸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지금은 출근시간이었고 지옥철이 따로 없었다.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였으나 그마저도 걸음에 절도가 있었다.
‘언제부터 사람들이 저렇게 걸었지?’
모든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지금도 꿈을 꾸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뺨을 스스로 때려보면 정신이 번쩍 든다.
이 모든 일이 꿈은 아닌 것이다.
“하나야!”
“어? 유나야!”
반에서 가장 친한 유나였다.
그들은 반갑게 서로를 맞이하였는데, 문득 유나와도 오랜만에 만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오랜만이야.”
“그러게 말이야. 이게 몇 년 만이니?”
“…….”
그들은 이야기를 하다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 어제 만나지 않았어?”
“어…… 그러게?”
어제가 아니라 느낌상으로는 10년 이상 지난 것 같았다.
그들뿐만이 아니다.
등교를 하다가 만나는 친구들은 하나같이 어색해 했다.
그러다가도 어제와 별 다를 바 없이 이야기를 하기는 했는데, 확실히 이상한 감각이었다.
학교 앞.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교문 앞에 서 있었다.
평범한 얼굴이었기에 학생들은 전부 남자들을 지나쳤지만 이하나는 그 자리에서 우뚝 멈추었다.
“하나야, 왜 그래?”
“아니, 당신은…….”
“아는 사람이야?”
“먼저 들어가.”
평범함 그 자체인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익숙했다.
“으윽!”
동시에 가슴이 저려온다.
마치 오랜 연인처럼 가슴이 설레기도 한다.
뭔가 형용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오묘한 느낌.
“안녕하세요?”
남자는 이하나에게 인사를 했다.
이하나도 얼떨결에 인사를 하고 말았다.
“네, 안녕하세요.”
“오늘은 날씨가 꽤 좋군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렇게 갑자기 한파가 불고 있는데.”
“그래도 구름 한 점 없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문득 이하나는 자신이 남자의 뒤를 쫓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음속으로는 뒤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지금 이 남자를 쫓아가지 않으면 인생의 중요한 무언가를 놓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학교 앞 커피숍.
“주문하세요.”
“저는 그냥 아메리카노 할게요.”
“따듯하게 드시죠?”
“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한다.
남자와 마주앉는다.
가만히 커피를 마시는데 머릿속이 매우 복잡해진다.
생각이 날 듯 말 듯.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 기억.
“우리, 만난 적이 있었던가요?”
“그럼요. 당신이 그러더군요. 당신이 저를 잊더라도 반드시 찾아오라고. 그리 하면 당신의 영혼이 기억할 것이라고.”
“……!”
이하나의 전신이 뒤흔들렸다.
형용할 수 없는 갑갑함이 밀려든다.
“당신……, 누구세요?”
“기억을 찾고 싶은가요?”
“제가 기억을 잃었다면……. 찾고 싶어요.”
톡.
남자는 이하나의 이마에 손가락을 댔다.
“웨이크 업 메모리.”
스아아아!
“아아!”
물밀듯이 밀려드는 기억.
이하나는 강한성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정말로 저를 찾아왔어요!?”
“이것 참. 돌아와 보니 하나 씨는 중학생이네요? 이걸 대체 어쩐다.”
이하나는 강한성을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