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mmoner is doing a quest RAW novel - Chapter 4
제4화. 철원행
시간은 금이다.
신들의 게임이 본격화되기까지 3년.
기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그 안에 내가 무엇을 얼마나 선점하느냐에 따라서 얼마나 남들보다 남서 나갈 수 있는지 결정된다.
이것은 기회였고, 기회란 왔을 때 잡아야 한다는 것은 지난 45년의 인생을 통하여 절감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차량부터 구입했다.
캐쉬상점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금이나 보석류가 필요할 것이라고 예상되었지만, 차량 구매는 미룰 수가 없다.
이유는 기동력 때문.
한국에 널려 있는 기연을 차지하려면 기동력이 필수다.
통 크게 천만 원을 들여 험지에서도 충분히 달릴 수 있는 SUV를 한 대 구입하였고 깊은 산속을 탐사할 수 있는 장비들도 구입했다.
방한장비나 등급이 높은 텐트, 침낭, 전투식량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리고는 바로 계획을 세웠다.
대한민국 전도를 구입하여 탐사지역에 우선순위를 두고 동그라미를 쳤다.
슥. 슥.
그 어떤 던전보다 먼저 철원을 탐사해야 한다.
지금보다 더 과거로 이동하였다면 좋았겠지만, 지금도 늦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최고 등급의 던전 레벨이 30~40대인 이상 하급 던전들은 지금 내 실력만으로도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철원은 검성을 아시아의 지존의 자리까지 올려 주었던 ‘캐쉬상점’의 권한이 잠들어 있었다.
오래 전 일이었지만, 검성이 술에 취하여 주저리주저리 떠들었던 소리가 내 머릿속에 완전히 박혀 있다.
[백마고지라고 들어봤냐? 내가 백마부대에서 근무를 할 때였거든. 그때가 25년 5월인가 그랬어. 말년에 근처 산에서 산삼을 캔답시고 돌아다녔던 적이 있었지. 그래. 기념비 부근이었을 거야. 군사통제구역이었으니 일반인은 돌아다닐 수가 없거든. 군필이면 잘 알 거야. 괜히 절벽 끝에 박힌 더덕을 캐려다가 굴러 떨어진 적이 있었지. 재수 옴 붙었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그때가 내 인생의 전환기였던 거야. 흐흐흐.]5월이면 앞으로 2개월 후의 이야기다.
시간이 남았다고 해도 방심할 수는 없다. 지혜의 현자였던 이하나는 베타테스터가 아니었지만, 검성도 그러리라는 법은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빠르게 움직여 선점을 하는 편이 좋다.
그 이후에는 여러 지역에서 산발적으로 나타나는 기연들을 탐사한다.
과거의 나는 S급 스킬조차 감지덕지했지만 이제 그런 허접한(?) 능력은 뒤로 미루어 놓았다.
얻으면 좋고, 얻지 못하면 할 수 없고.
배낭에 여러 생존물품들을 쑤셔 넣었다.
침낭을 비롯하여 1인용 텐트와 전투식량, 웃돈을 주고 구입한 장도까지.
준비를 끝낸 후에 물건들을 트렁크에 실었다.
“그럼 기연을 사냥해 보실까?”
울창한 삼림.
3월 초였지만, 뼛속까지 시린 날씨다.
장도를 휘둘러 가지를 쳐내며 나아간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땀은 비 오듯 흘렀다.
조금이라도 쉬면 바로 감기에 걸릴 환경이었다.
“체력단련이 시급하다.”
내가 업계에 뛰어든 것이 2023년이다.
2년 동안 그럭저럭 체력을 기르고 노동도 해왔지만 20년 후에 비해서는 부족함이 많았다.
지금의 체력을 고찰하지 않은 것이 실책.
하루 종일 장도를 휘두르며 걸었더니 팔은 저리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그렇다고 해도.
무조건 앞으로 나아간다.
내 정신은 나약하지 않았다. 고작 육체적인 고난 때문에 무너질 수는 없다.
다만 이런 생각은 들었다.
만약 검성이 헛소리를 늘어놓은 것이라면?
나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세상이 멸망지경에 이른 상태에서 회귀할 것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면 과거의 비밀 따위야 마음대로 지껄여도 되는 것 아닌가.
검성이 허풍을 떨 이유도 없었고 그 당시 천민 계급이었던 내게 거짓말을 할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
기연을 얻은 과정 따위야 과거의 일이었으니.
잠시 쉬고 싶을 때마다, 그리고 담배가 간절할 때마다 미래의 거지같은 인생을 생각했다.
회귀까지 하는 기연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회를 날려버릴 것인가?하루라도 시간을 헛되이 허비해서는 안 된다.
아니, 하루가 아니라 1분 1초도 내게는 귀중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불굴의 의지가 발현되었다. 없던 힘이 샘솟으며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은 것이다.
촤악!
지도를 편다.
아직 해는 좀 남아 있다.
위성지도를 출력해서 가져왔고 최대한 이 부근의 지형이 나오도록 선명화 작업도 해두었다.
“여긴 아니로군.”
탐사를 마칠 때마다 검은 부분으로 능선을 칠한다.
기념비 부근이면서 군사 통제구역.
몰래 들어와 산 속을 이 잡듯이 뒤지고 있었지만, 그 절벽이라는 것은 나타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지질학자라도 구해서 데려왔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분명히 나는 기연을 독식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괜한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
배가 고프면 전투식량을 먹었고 목이 마르면 생수를 마셨다.
해가 슬슬 떨어지기 시작할 무렵.
스스스슷.
수풀이 스치는 소리가 들린다.
장도를 앞세운다.
지금 시점에서도 가끔 몬스터가 던전을 탈출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미개척 던전이라면 더더욱 그런 현상이 심했다.
인적이 드문 야산에, 그것도 군사통제구역에서 몬스터가 나타나는 일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곧 드러난 한 인영.
“…….”
“…….”
우리는 서로를 마주봤다.
초췌한 얼굴의 군인이 살짝 불안한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일과시간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혼자 군사통제구역을 돌아다니고 있는 군인.
탈영병이 아니면 무엇일까.
물론 나라를 지켜야 할 군인이 탈영했다고 해도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어련히 헌병들이 알아서 체포를 할까.
우리나라 군 체계가 생각보다 허술하지는 않다.
그렇게 돌아서려는데 어쩐지 낯이 익어 보인다.
명찰을 본다.
[백승후]‘검성이다. 확실해.’
어째서 미래의 검성은 탈영까지 해서 깊은 산속을 헤매고 있는 건가.
지금 놈은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어야 한다.
단 한 번도 검성은 자신이 탈영을 했었다는 이야기는 한 적이 없었다. 애초에 탈영이 그리 쉽게 일어나는 일이던가.
일반적인 개념을 조금이라도 탑재하고 있는 인간이라면 결코 탈영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생각했다고 해도 실천하지는 않았다.
검성이 악랄한 인간이기는 했어도 군 시절에 탈영까지 할 머저리는 아니었다. 오히려 누구보다 이성적이었다고 봐야지.
그렇다면.
검성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러더니 놈의 눈동자에서 불꽃이 튀었다.
“너, 이 새끼! 혹시……. 그 새끼냐?”
‘뭐야. 어떻게 나를 알아보지? 역시 기억을 가지고 회귀한 놈이 또 있었나?’
이하나는 인류의 영웅이었음에도 회귀자가 아니었다.
운이 좋다면 나 혼자 회귀를 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여겼었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굳이 검성에게 내가 회귀자라는 것을 알릴 필요가 있을까?
“어……. 저는 약초꾼인데요. 통제구역에 발을 들인 건 잘못이지만 한 번 봐주시죠.”
“약초꾼? 아니야. 너는 그 불가촉천민이잖아?”
“아니, 듣자하니 말씀이 심하신 것 같습니다?”
“천민새끼가 어디서 기연을 가로채려고!”
“아, 자꾸 뭔 헛소리를 하는 거예요? 내가 약초꾼이라고 해서 만만하냐? 그러는 댁은 탈영병 아니야!”
순간적으로 위축될 뻔했지만, 그건 바보 같은 짓임을 깨달았다.
마력이 없는 검성이 과연 검성일까.
서로 마력이 전혀 없는 상태라면 내가 우위에 있다. 나는 20년 내내 마력 없이 싸우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며 통달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제 내게는 마력도 있었다.
과연 상대가 될까?
“하, 씨발. 아닌가? 그런데 대체 여기서 뭘 하는 거냐? 하긴 네놈 새끼가 과거에 뭘 하고 살았는지 내가 속속들이 알 필요는 없었지. 그런데 말이야. 네놈 말대로 나는 탈영병이거든? 좀 중요한 일이 있어서 나왔지. 미안하지만 여기서 죽어줘야겠다.”
“그, 그거 살인이야.”
“큭. 살인? 사람 목숨 따위, 개돼지만도 못하게 될 텐데 여기서 한 놈 죽는다고 뭐가 달라지나. 그저 하늘을 원망해라.”
팟!
검성이 달려들었다.
원래부터 다혈질에 막나가던 놈이었다. 사람 목숨 알기를 가축보다 못하게 여겼던 진짜 미친놈.
아시아 지존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었기에 그 누구도 제제를 가하지 못하였던 것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검성은 군용대검을 휘두르며 쇄도했다.
분명히 검성의 보법이나 검을 휘두르는 자세는 미래의 그것과 비슷했지만, 어쩐지 힘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아니, 애초에 저게 미래의 검성이 사용하던 검술이 맞나 의심이 될 지경이었다.
나는 가볍게 발을 놀려 피했다.
축 늘어져 있던 몸이었지만 마력을 한 바퀴 순환시키자 가벼워졌다.
‘마력이란 이런 초자연적인 힘이었지.’
만족스럽다.
어두워지고 있었지만, 전혀 어둡게 보이지 않았고 개미가 나뭇잎을 바스락거리는 소리까지 들렸다.
극도로 예민해진 오감과 신체 능력이 1.5배는 강해진 것 같은 그런 기분.
“놈! 운이 또 통하지는 않을 거야.”
검성은 방향을 틀었다.
썩어도 준치라 했던가.
놈의 몸은 다채롭게 변화를 거듭하며 이동을 해왔지만 움직임이 좀 단순해 보였다.
가볍게 피하자 대검이 나무에 틀어박혔다.
“뭐지, 이 병신 탈영병은? 사람 죽일 것처럼 달려들더니만.”
“어, 어떻게?”
‘이거 검성 맞나? 상점에서 스킬 보정 뭐 이런 거라도 썼나? 거의 확실해 보이네.’
“하기야, 얼마나 병신새끼면 탈영을 진지하게 현실로 옮길까마는.”
“다, 닥쳐라!”
놈은 대검을 나무에서 빼지 못한 채로 낑낑거렸고 그 사이에 내가 옆구리에 주먹을 박아 주었다.
쐐애애액!
빠아악!
“커억!”
마력이 실린 주먹이다.
아직 마력을 갖지 못한 검성은 몸을 구부리며 꺽꺽거렸다.
“우웩!”
“그러니까 그냥 두지 그랬어. 그냥 약초만 캔다잖아! 니가 약초꾼의 비애를 알아?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어디 병신 같은 새끼가 굴러 와서는 사람 속을 긁고 있어?”
“천민새끼가 어디서……. 너는 귀족의 똥구멍이나 핥는 천민새끼였다. 천민은 천민다워야 하는 거야!”
나는 발경의 자세를 잡았다.
검성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체술의 기본기를 사용했지만, 가볍게 피한 후에 놈의 가슴을 타격했다.
쾅!
“끄아아악!”
퍽!
놈은 나무에 부딪쳐 숨조차 쉬지 못하고 있었다.
미래의 검성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너무 쉽게 높은 자리에 오르다 보니 기본기가 부족했다. 하긴, 나는 검성이 수련하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저벅 저벅.
천천히 검성에게 다가갔다.
기왕 이렇게 된 것, 처리를 해야 한다.
탈영까지 한 놈이었으니 어디서 뒈진다고 해도 알아서 은폐를 해줄 것이다.
이제 곧 검성은 죽을 것이다.
결심이 섰다면 연기는 집어 치워도 되겠지.
“검성. 너는 오늘 나를 잘못 만났다.”
“……!”
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네 말대로 나는 불가촉천민이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미래에 그런 식으로 살아남은 것에 감사하고 있어. 왜냐고? 사실상 내가 경험했던 20년은 기본기를 다지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었거든. 그때에도 나는 40레벨 정도 되는 몬스터를 마력도 없이 죽이고 다녔다. 네놈이 마력 없이 그런 성과를 이룰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보는데. 그럼 다시 물을게.”
짜악!
검성의 뺨을 후려쳤다.
속이 후련했다.
“새롭게 열린 세상에서 네 기연을 빼앗긴다면 도대체 누가 불가촉천민일까?”
짝! 짝!
“씨, 씨발! 역시! 네놈도 베타테스터였어!”
“이제 처분을 내려 볼까? 너 같은 쓰레기는 도대체 어떻게 처분을 해야 좋을까. 미래에 네가 저지를 일을 생각하면 그냥 죽여 없애는 것이 인류의 발전을 위해 좋을 것 같은데.”장도를 놈의 목에 댔다.
힘만 주면 검성의 목이 떨어질 것이다.
잠깐 동안 지금 살인을 하면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후환은 그냥 없애버리는 것이 나았다.
검성도 미래인이었으니 어떻게든 기연을 차지하려 들 테니까.
결정을 내리려는 순간이었다.
삐익!
“탈영병을 뒤쫓고 있다. 흔적이 북쪽으로 이어진다.”
-입감. 그쪽으로 포위망을 좁히겠다.
먼 곳에서 군인들이 놈을 뒤쫓고 있었다.
“아, 씨발. 일이 좀 꼬이는데.”
진심으로 아쉬웠다.
여기서 후환을 없애버리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나는 생각을 조금 달리했다.
“기연은커녕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군인이 탈영을 했지. 어라? 총기까지 휴대를 하고 있네. 꼴을 보니 총알까지는 없는 것 같지만. 단검을 벼려서 휴대했으니 사형, 무기징역, 5년 이상 징역인데.”
“……!”
검성의 눈동자가 미친 듯이 흔들렸다.
총알이 없는 이상 사형이나 무기징역까지는 나오지 않겠지만, 놈의 대검은 날카롭게 갈려 있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충분히 3년 이상 징역살이를 해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이렇게 황금과 같은 시간에 3년이나 징역살이를 한다면?
헌터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미래의 검성 백승후. 네놈에게 명예로운 사형을 선고한다.”빠악!
검성 백승후는 이제 없다.
놈은 절망의 시대가 열리기 직전까지 감방에 처박혀 있어야 할 테니까.
그렇게 미래의 검성을 거세하고 떠나려는 순간.
[소리 없는 어둠이 당신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명멸하는 빛이 당신에게 실망하여 떠납니다.] [지옥의 권좌의 전령이 한국에 당도합니다.] [홀로서는 별이 당신에 대한 소문을 듣습니다.]하늘의 별들이 내게 관심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