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mmoner is doing a quest RAW novel - Chapter 6
제6화. 신화 던전(2)
검은 대지.
인공적인 장소겠지만 그믐달이 어슴푸레하게 떠 있어 분위기가 자못 살벌하다.
내가 사신의 시야에 들어간 순간.
-죽은 자의 땅에 감히 산 자가 발을 들이는가. 네놈의 영혼은 죽음의 일부가 되리라!
쾅!
“큭!”
순식간이었다.
마력으로 강화된 육체가 아니었다면, 힘이 조금이라도 약했다면 사신의 낫에 순식간에 양단되었을 것이다.
팔이 저려왔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연속으로 들어오는 공격.
쾅! 쾅! 쾅!
사신은 무식하게 낫을 휘둘러 왔고 지독한 살의를 드러낸다.
낫이 직각으로, 45도로, 또한 180도로 휘둘러진다.
자연스럽게 연환계가 펼쳐졌고 나는 오랜 경험을 토대로 사신의 검을 빗겨 막았다.
이걸 정면으로 계속 막아댔다가는 관절이 다 작살났을 것이다.
사신의 낫은 그저 막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처음엔 일부 스탯을 민첩에 투자를 했어야 했나 싶었지만, 놈의 힘을 마주하니 전혀 그리 느껴지지 않는다.
최소한의 동작만으로 검을 움직였다.
조금이라도 모션이 크면 움직임을 쫓아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참 막다 보니 사신의 움직임에는 일정 패턴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바닥을 이리저리 구르며 오랜 기억을 떠올렸다.
20년 후, 세계 랭킹 2위의 천무검제가 인터뷰에서 분명히 사신의 결점에 대해 정보를 흘렸었다.
[사신의 약점이요? 같은 레벨 대에서 신화 급 보스인 사신을 잡으려면 답이 없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공략법은 있죠. 상위 랭커라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고 굳이 가축 놈들이 알아야 하나 싶지만……. 세계적으로 인구가 감소하고 있으니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천무검제 특유의 뇌까림.
정중한 태도였지만, 그 속에 담겨 있는 말은 비 마력 각성자들을 노예처럼 대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우리 같은 비 마력 각성자들이야 그런 랭커들의 말 한마디가 천금과 같았고 최대한 집중을 해서 들어야 했다.
[사신은 시야가 병신이라는 단점이 있습니다. 눈이 나쁘다 그 말입니다. 특히나 하체공격에 약하고 자세를 낮추고 잠깐이라도 은신할 수 있는 아이템이 있다면 충분히 공략이 가능합니다. 급소요? 명치 부근이죠. 설마 이렇게까지 알려드렸는데 사신에게 뒈지는 노예들은 없기를 바랍니다.]요지는 자세를 낮춘다는 것.
하체가 약하니 그곳을 공략하여 틈을 만들고 급소인 명치를 가격하라는 것이다.
천무검제의 말투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렇다고 적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지금은 사신의 공략법 자체가 나와 있지 않았고, 나왔다고 해도 혼자서 공략은 불가하다고 여겨질 것이다.
정신없이 흘러가는 사신의 패턴에서 변화를 만들어낸다.
후우웅!
머리 위로 아슬아슬하게 낫이 스쳐 간다.
머리칼이 조금 잘려 후드득 떨어졌다.
계산을 조금이라도 잘못했다면 바로 머리통이 갈라졌을 거라는 뜻.
자세를 낮추고 은신 스킬을 사용한다.
내가 굳이 매직 아이템이면서도 은신 스킬이 붙어 있는 대검만 남긴 것은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바닥에 넙죽 엎드릴 정도로 자세를 숙이고 스킬을 쓰자 사신은 몸을 좌우로 흔들며 내 궤적을 쫓기에 여념이 없었다.
대략 1초.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내게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바로 사신의 하체를 공격한다.
놈은 허공에 둥둥 떠 있었는데 하체를 대검으로 쓸어버리자 자세가 무너지며 좌측으로 몸이 기울었다.
이제 찌르기가 들어가야 한다.
강화 스켈레톤의 머리통을 박살낼 때 나는 일부러 찌르기만 사용했다.
지금 이 순간, 일격필살을 사용하기 위해서.
대검이 그대로 사신의 명치에 틀어박힌다.
[크리티컬!] [일시적으로 보스 사신이 행동불능에 빠집니다.]‘됐다!’
천무검제의 인터뷰를 주의 깊게 본 보람이 있었다.
꽈드득!
강제로 대검을 회수하자 관절이 비명을 질러댄다.
사신은 잠시 경직상태에 빠졌지만, 다시금 움직이려 버둥거렸다.
여기에 다시금 대검을 찔러 넣는다.
온 힘을 다해, 체중을 힘껏 실어서.
꽈직!
[크리티컬!] [일시적으로 보스 사신이 광폭화 상태에 접어듭니다.]-죽음이 강림하리라.
사신의 몸에서 붉은 기운이 줄기줄기 뿜어져 나온다.
내리치는 낫을 막지 못했다. 아니, 막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붉은 기운이 사방으로 뻗치자 바로 압살을 당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보스가 광폭화 상태가 되었다는 것은 단 한 방의 데미지만 들어가도 허물어진다는 뜻이다.
헌터들은 보스가 최후의 발악을 한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 때문에 항상 자신의 레벨보다 낮은 던전을 공략했다.
콰광!
“커억!”
[HP가 위험수준에 근접했습니다.] [포션 사용을 권장합니다.]포션을 마실 시간 따위는 없다.
던전을 공략하면서 모은 칼츠로 일반상점에서 포션 몇 병을 구매하기는 하였지만 그걸 꺼내 마시다가는 그대로 몸이 분리될 것이다.
나는 그대로 몸을 넙죽 엎드렸다.
바로 은신 스킬을 사용하자 놈은 미친 듯이 날뛰며 낫을 휘둘렀다.
놈이 가슴을 훤하게 드러내는 순간.
“죽어!”
퍼어어억!
-끼에에에에엑!
스아아아!
붉은 기운들이 뻥 뚫린 사신의 가슴으로 모여들었다.
바닥에 깔려 있던 기운들이 걷혔고 찬란하게 태양이 떴다.
한눈에도 살벌해 보였던 묘지는 사라지고 평범한 숲으로 돌아왔다.
“허억! 허억!”
나는 대(大)자로 뻗어 버렸다.
[업적! 한국 서버에서 세 번째로 신화 던전을 클리어 하였습니다.] [업적으로 100,000 칼츠를 획득합니다.] [전투평가 집계 중…….] [완벽(SSS)! 보상이 증가합니다.]눈앞에 나타난 붉은 상자 세 점.
이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 분명했다.
손가락 하나 까딱거릴 힘도 없어 포션 한 병을 원샷하고 가운데 상자를 찍었다.
상자에서 강렬한 빛이 일렁거렸다.
드디어 검성의 스킬을 습득할 수 있는 건가?
하지만 막상 스킬을 얻은 나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신화 급 스킬 소환의 서를 획득하였습니다.] [흡혈의 지팡이(레어)를 획득하였습니다.] [업적! 한국 서버에서 세 번째로 신화 급 스킬을 획득하였습니다.] [업적으로 50,000 칼츠를 획득합니다.]“…….”
꽤 충격적인 결과다.
“뭐야 이건?”
당연히 결과가 같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검성은 이 던전에서 신화 급 스킬을 얻었고, 그것은 당연히 놈이 사용하던 뇌전검결이었어야 한다.
백승후를 검성의 자리에 올려놓은 일등공신.
마검사처럼 화려한 뇌전을 뿜어내며 싸우는 모습은 그를 모든 헌터들에게 닿을 수 없는 존재로 만들었다.
철원의 신화 던전은 백승후의 모든 것이었다.
게다가 아이템은?
흡혈의 지팡이가 아니라 뇌검이 나왔어야 하는 것 아닌가?
머릿속이 백지가 되었지만, 나는 곧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을 해봤다.
이 바닥은 운이 대략 80%는 먹고 들어가는 게임.
같은 사람이 고른 상자가 아니었고 애초에 랜덤이었으니 다른 결과가 도출되는 것이 당연했다.
그래도 신화 급 스킬이 아닌가?
지금은 한국에 몇 자루 되지도 않는 레어 급 아이템을 습득하기도 했다.
아이템이야 어차피 내구도 때문에 영구적인 것도 아니었으니 논외로 칠 수 있다.
“좋게 생각하자. 팔자에도 없는 소환사로 전직이지만 그게 어디냐. 신화 급 스킬이니 효율은 비슷할 거야.”
무엇보다.
소환 스킬로 영웅의 좌를 차지했던 유명인이 있었다.
세계랭킹 5위에 랭크되었던 일인군단 에르넬이 소환사로 명성을 날렸다.
소환수가 죽는다고 해도 마력만 남아 있다면 다시 소환수를 소환하여 불멸의 군단을 이끌었던 존재.
내가 그리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나는 바로 소환의 서를 태웠다.
[소환(신화)을 습득했습니다.]머릿속으로 어마어마한 지식이 밀려들어온다.
지난 20년 동안 검술이나 마법을 연구해 왔고 여러 스킬들을 배우기도 했었다.
마력 때문에 사용은 못했지만 나름 여러 가지 지식이 쌓여 있었다.
소환 역시 마법 계열이었기에 연구를 했다.
그러나 막상 소환에 대한 지식들이 밀려오자 지금까지 연구해 왔던 모든 소환술은 쓰레기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소환이란 불가해의 존재를 인연의 끈으로 연결하여 지상계에 강림시키는 술법이다.
마법의 아류였으나 ‘인연의 끈’이라는 자체가 강제성을 가지고 있었다.
태고의 약속에 따른 강림술.
소환사는 여러 가지 분야에 능통을 해야만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오히려 내게는 검술보다 나을 수 있었다.
쓸 만한 검술은 기연을 찾아다니다 보면 반드시 구할 수 있을 것이지만 내가 알기로 소환사라는 직업은 매우 희귀했다. 신화 급 소환사는 들어본 적도 없을 정도.
머리가 조금 맑아지는 기분이다.
소환사로의 운명을 받아들이자 인연의 끈을 어떤 식으로 형성하고 어떻게 운용하며, 타 차원의 존재를 어떤 식으로 소환시켜야 하는지가 단번에 각인되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한국에서 세 번째로 신화 스킬을 습득한 헌터가 되었으며 미래의 영웅으로 부상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기연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샅샅이 동굴을 뒤지기 시작했다.
철원의 던전이 검성 백승후를 만들어낸 전무후무한 기연의 장소라면 반드시 이곳에 캐쉬상점 권한이 있을 것이다.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동굴 구석에서 어떤 강렬한 힘이 느껴졌으니까.
나는 천천히 그곳을 향해 걸어갔다.
세계수(世界樹)라고 봐도 무방한 거대한 나무 아래, 힘의 근원이 느껴진다.
밑동에 새겨진 정수.
그곳에 손을 댔다.
파아아앙!
어마어마한 빛이 몸을 휘감았다.
이것은 마력인가?
그렇지 않다.
마력이나 신성력, 마기 정도는 나도 구분할 줄 알았다.
그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차원이 높은 힘이다.
오른손에 육망성이 문신으로 새겨졌고 시스템 메시지가 울려 퍼졌다.
[플레이어 권한을 습득합니다.] [지구의 유일무이한 권한을 얻었습니다.] [수많은 별들이 당신에 대한 소문을 듣고 관심을 표합니다.] [별들이 당신의 환심을 사기 위해 고심합니다.] [소리 없는 어둠이 당신과 계약하고 싶어 합니다.] [탐욕의 근원이 소리 없는 어둠을 탓합니다.] [명멸하는 빛이 슬쩍 고개를 들었습니다.] [지옥의 권좌가 보낸 전령이 며칠 내로 당도합니다.]오직 선택받은 자만이 간신히 계약할 수 있다는 별.
그런 별들이 나를 두고 경쟁한다?
입꼬리가 슬쩍 치켜 올라갔다.
“일타쌍피가 여기 있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