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mmoner is doing a quest RAW novel - Chapter 80
제80화. 폭풍전야
프랑스 직항 퍼스트 클래스.
인천국제공항에서 샤를드골국제공항까지 최소 12시간은 걸리는 노선이다.
시차는 8시간이므로 우리가 도착하면 자정은 될 것이다.
그 다음날 바로 장례식이 거행될 것이었으니 시차에 어느 정도는 고생할 각오를 해야 한다.
즉 가능하면 여기서 최대한 잠을 자고 파리에 도착을 해서도 약간은 숙면을 취해야 한다.
잠이 많은 이하나는 편안한 이륙을 하자마자 곯아 떨어져 버렸고 박수철은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말을 걸었다.
“형님. 한 가지 걱정이 있는데요.”
“무슨 걱정?”
머릿속으로 나름대로 계획을 세우고 있던 나는 박수철의 말에 반문한다.
우리 전력으로 놈들의 수뇌부를 장악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고 판단된다.
예전 같으면 모르겠지만 레벨 업과 아이템 파밍을 꾸준히 해온 우리들이라면 소수 정예로 쓸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지부장만 배후가 있을까요?”
“다른 놈들도 배후가 있을 거라는 뜻이냐?”
“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레몽의 수뇌부씩이나 되는 작자들이 그리 어설프게 일을 넘기려 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일리는 있어.”
분명히 배후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분도 사전에 이야기가 되어 있다.
“프랑스 10위 길드 아로운과 9위 길드 아처 길드가 그들의 배후라고 하던데.”
“10위와 9위라…….”
“프랑스는 헌터강국이 아니지. 굳이 따지면 우리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할까. 그런 허접한 놈들이 손을 잡는다고 우리가 당할까?”
“그건 아니죠.”
“그러니 쓸데없는 걱정이야.”
“와, 저희도 많이 발전했네요. 그래도 랭커 길드들인데 쓸어버릴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으니까.”
“장례식은 성당에서 거행돼. 성당의 수용력을 생각하면 충분하지.”
후계자들의 배후에 있는 길드의 모든 사람들이 참여하는 건 아니다.
성당 밖에 인원을 배치할 수는 있어도 결국 내부 수용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뜻.
그렇기에 이 정도 인원만 구성한 것이다.
“작전은 어떻게 되는데요?”
“작전이라고 할 것이 있나?”
사전에 오세춘과 이에 대해 논의한 적이 있었다.
결론을 말하면 속전속결이다.
프랑스가 놈들의 홈그라운드인 만큼 빠르게 적 수뇌부를 장악하면 어쩔 수 없이 항복을 택할 거라는 사실이다.
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만약 상위 길드가 나타난다면.”
“1위 길드가 아니고서야 우리를 당해낼 수는 없을 거야.”
“그럼 형님만 믿겠습니다.”
“그래. 이번에는 전력을 다할 작정이니까.”
내가 자신하는 이유는 충분히 있었다.
지금 내 마력은 3,000에 근접하였다.
앱솔루트 베리어도 얻었으며 반사가 가능한 거울의 방패도 있다.
버티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였으며 마나 포션을 입에 달고 있으면 10분은 무리 없이 버틸 수 있다.
그때 소환수가 움직일 것이다.
소환수는 미리 뽑아 두어야 하며, 소환과 캔슬을 반복하여 신화 급을 데리고 간다.
이 정도면 준비는 충분하다.
“그럼 거사는 언제 이루어질까요?”
“장례식이 끝난 직후.”
“성당 안에서 말인가요?”
“그래.”
“고인이 잠든 곳에서 거사라니……. 좀 그렇지 않아요?”
“뭔 상관이야? 마피아 보스 놈인데.”
“하긴.”
박수철도 더 이상 생각을 접었다.
장례식장에서 전투가 일어나는 것은 이 바닥에서 꽤 흔한(?) 일이다.
권력암투가 그 어느 곳보다 치열하다는 뜻이다.
이건 헌터들에 대한 법률이 매우 느슨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정부 입장에서 보면 헌터들이 일반인에게 피해만 끼치지 않으면 크게 개입할 이유가 없었다.
괜히 크게 개입을 했다가 해당 헌터들이 단체로 타국으로 귀화라도 해버리면 골치가 아팠기 때문이다.
헌터 업계가 형성되는 초기,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특히나 영국에서 이런 일이 많이 발생하였는데, 뒤늦게 정부에서 법을 느슨하게 풀었지만 그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영국계 헌터들이 미국에 많은 이유가 그래서다.
미국에서는 발 빠르게 그들을 흡수해 버렸고, 지금은 헌터강국으로 거듭났다.
전 세계 많은 헌터들을 흡수한 미국.
그 당시 미국에서는 자신들의 국가를 이민자들의 나라라고 광고를 하였다던가.
프랑스에서 보기에 범죄자 집단이나 마찬가지인 레몽에 크게 관심을 가질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오히려 이번의 전투를 우리들의 경지를 국제무대에서 시험해 볼 좋은 기회라고 보는데.”
“큭. 역시 형님은 포부가 크십니다.”
“이 정도 발전 가능성을 지녔으면 전 세계를 장악해 보겠다는 포부 정도는 있어야지.”
“지극히 옳은 말씀입니다.”
박수철은 그제야 안심하고 눈을 붙였다.
어둠이 내려앉은 샤를드골국제공항.
우리는 무려 12시간이나 비행을 하여 공항에 도착했다.
한산한 공항에는 기자들이 몰려와 있지 않았다.
아무리 신화 급 스킬을 얻었다고는 해도 한국은 헌터 불모지였고, 1위 길드도 아닌 이제 막 생긴 신생 길드에 관심을 가질 이유는 없었다.
물론 내 이름이 퍼지고 있다지만 광고를 하면서 입국한 것도 아니었고.
“오셨어요?”
“임 비서님. 여기서 뵈니 새롭군요.”
“제가 빠르게 모실게요.”
우리들은 그녀의 안내를 받아 차량에 올라탄다.
몇몇 헌터들만 대동한 그녀는 파리의 한 호텔로 안내하였다.
모든 과정은 비밀스럽게 이루어진다.
호텔로 향하는 와중에도 몇 바퀴나 빙빙 돌며 미행이 붙지 않았나 확인을 하였으며 호텔에 도착해서도 엘리베이터를 몇 번이나 갈아탔다.
그 후 스위트룸으로 안내되었는데 내부에 방이 3개로, 가능하면 우리들이 한 객실에 묵는 것을 권했다.
“여긴 용담호혈이에요.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붙어 있는 것이 좋아요.”
“상황이 많이 좋지 않나요?”
“네. 언제 칼을 들이대도 이상하지 않으니까요.”
그녀의 표정에서 긴장이 묻어난다.
원래 이 자리에는 오세춘도 나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오세춘은 지금 자신의 세력을 추스르기도 바쁘다고 한다.
“오 지부장님은 물밑작업 중이겠군요.”
“맞아요. 내일 있을 유혈사태에 대비를 하는 중이시죠.”
재프랑스 교포 오세춘.
최근에는 한국의 국적도 취득하여 이중국적자가 되었다.
일개 마피아로 시작을 하여 이 자리까지 올라온 오세춘은 상당한 능력자다.
이번 기회에 보스의 자리까지 올라가려 하였고, 지금은 준비에 만전을 기하는 중이다.
우리는 임서희와 내일의 거사에 대해 이야기 했다.
“내일 장례가 끝나면 저쪽에서 먼저 움직일 거예요.”
“우리가 아니라요?”
“그래서는 명분이 살지 않으니까요. 지부장님은 한국인 출신이잖아요? 그러니 명분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어요.”
“명분이라.”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이 바닥에서는 명분을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저쪽에서 먼저 후계자 후보인 지부장님을 치려 한다면 그때 움직이셔야 해요.”
“그들의 배후에 큰 변화는 없는지요?”
“지금까지는 그래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충분해요.”
“그래도 세 분이서 상대를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기도…….”
“문제없습니다. 제 직업이 소환사잖아요?”
“아, 소환사. 그렇죠.”
임서희도 요즘 정신이 없는 모양이다.
내 직업을 헷갈리다니.
프랑스 파리 생트 샤펠 성당.
1,200년대에 완성된 고딕 성당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한 이곳 대형 홀에는 긴장이 흐르고 있었다.
오전 9시.
이제 한 시간 정도만 있으면 장례식이 거행될 것이다.
레몽에서는 오늘의 장례식을 위하여 성당을 통째로 임대했다.
관광지로 유명한 이 성당을 통째로 빌리는 데에는 실로 막대한 비용이 소모되었지만, 레몽은 그런 비용 따위는 문제가 아닐 만큼 자금력이 대단했다.
14미터 높이에 구약성서의 여러 장면들을 장식하여 넣은 이곳에서는 곧 유혈사태가 벌어질 예정이다.
오세춘은 묘한 배덕감을 느끼며 손님들을 맞이했다.
레몽의 세 후계자 후보 중 한 명인 그는 정신이 없을 지경이다.
여기에 더하여 오늘 전투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분명히 사망한 보스는 오세춘을 후계자로 세우겠다는 유언서를 발표할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 출신의 두 후계자들이 반발하여 유혈사태를 일으킬 것이 뻔히 예상된다.
만약 보스와 사전에 이야기가 되지 않았다면 그 지위를 포기했을지도 모르겠다.
‘명분은 내게 있지.’
명분과 힘을 고루 갖추는 것이 바로 후계자의 덕목.
프랑스 국적자라고 하지만 검은 머리의 검은 눈동자를 가진 외국인이었기에 조직원들이 반발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간부 드팽께서 오십니다!”
성당 앞에 검은 리무진이 내려선다.
그 뒤를 쫓아 우르르 사람들이 내렸다.
한때 유력한 후계자 후보로 거론됐었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상당히 세력이 약화되어 있는 인물이었다.
40대 초반의 비교적 젊은 야심가.
드팽은 조직원들을 이끌고는 오세춘 앞에 섰다.
오세춘을 따르는 조직원들과 드팽을 따르는 조직원들 사이에서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권총 한 자루씩은 가지고 왔겠지.’
오늘 전투를 위하여 오세춘도 나름 무장을 단단히 했다.
권력에 미친 이놈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선배. 오늘은 양보를 하셔야겠습니다.”
“무슨 뜻인가.”
“한국인이 후계자가 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보스께서 계시는 자리네. 말조심 하게.”
“보스는 죽었죠.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 아니겠습니까.”
“쓸데없는 소리 말고 들어가게.”
호전적인 성향의 드팽답게 숨김없이 의도를 드러낸다.
도대체 뭔 자신감인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
그때, 오세춘과 함께 후계자로 거론되던 샤몽이 나타났다.
50대 초반의 장년이며 전대 보스의 왼팔이었던 자.
오세춘과 쌍벽을 이루는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역시 수많은 조직원들을 이끌고 온다.
놈은 오세춘 앞에 서더니 드팽과 서슴없이 악수를 나누었다.
“동생도 일찍 왔군!”
“형님도 일찍 오셨습니다. 아직 시간이 좀 남았는데요.”
“보스께서 가시는 자리인데 당연한 일이지 않나.”
“음.”
오세춘의 입에서 침음이 흘렀다.
돌아가는 상황으로 보건대 그 둘이 손을 잡은 것이 분명했다.
그들은 씩 미소를 지으며 오세춘을 조롱한다.
“한국에서 어디 개뼈다귀 같은 용병들을 몇 고용한 모양이지만, 가능하면 오늘 이빨을 드러내지 마시지요. 이제 노년을 즐기셔야지 권력을 탐하다가 죽는 수가 있습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노골적인 협박이다.
‘확실히. 저 둘이 손을 잡았다면 드팽 놈이 저리 기고만장한 것이 이해가 돼.’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었다.
그들은 오세춘을 찍어 누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무엇보다.
양측의 후계자 후보들은 그들을 후원하는 길드의 실력자들을 데려왔다.
각각 프랑스에서 나름 랭커로 활동하는 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뿐이다.
더 이상의 세력은 보이지 않는다.
‘이 새끼들. 장례식이 끝나도 그렇게 웃을 수 있는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