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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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하하, 목이 마르진 않으십니까? 아니면 먼 길 오시느라 피로하실 텐데, 비록 누추한 집이지만 한동안 느긋하게 푹 쉬시다가 가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살아남은 사람들을 어찌저찌 수습한 후, 나와 레안드로스는 따로 에이슬링의 저택으로 안내받았다.
왕국 최대의 상단주 중 하나라더니, 저택도 웬만한 하급 귀족은 비비지도 못할 만큼 고상하고 화려했다.
우리는 커다랗고 우아한 응접실에 도착한 뒤에야 겨우 앉을 수 있었다.
그뿐이랴.
테이블을 꽉 채운 식사 거리며, 간식이며, 다양한 종류의 음료가 넘쳐흘렀다.
게다가 다른 사람도 아니라, 무려 상단주 자식인 아이든이 차를 따라주며 비위를 맞추고 있었다.
“공작님의 호위 기사가 보여주신 무용, 정말 대단합니다. 어떻게 이런 기사님을 영입하셨는지 공작님의 비결이 너무나도 궁금한데요. 역시 인재를 알아보는 타고난 눈이실까요? 아하하하핫!”
문제라면 아이든의 아부에 속이 니글거리기 시작한다는 것 정도.
덕분에 찻잔에 입도 대지 못하고 있었다.
그걸 본 레안드로스가 재빠르게 제지했다.
“할 이야기가 있어서 여기까지 온 게 아니었나? 공작님께서 마냥 한가하신 분은 아니시다.”
“아참, 그렇죠. 제정신이 또 다른 곳으로 갔네요. 이거 참 죄송합니다.”
쪼로로록.
상사에게 하듯 깍듯한 자세로 레안드로스의 빈 잔에 차를 채워주던 아이든이 슬쩍 입을 열었다.
“저희 일꾼들을 구해준 사례를 해드려야 마땅한 도리일 텐데, 사실 저는 동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공작님의 서신을 봤을 때는 깜짝 놀랐죠.”
“헛소리라고 생각했겠지.”
내가 작게 중얼거리자 레안드로스가 이상한 콜록거리는 소리를 냈다.
아이든은 헛기침으로 어떻게든 넘어가려고 했지만, 그의 이마에는 이미 식은땀이 나고 있었다.
“흠흠, 어쨌든, 공작님께서 그 구덩이에 대한 일을 어떻게 아셨는지 조금이라도 들려주실 수 있다면 영광이겠습니다.”
“알려주면, 진짜인지 캐보기라도 하려고?”
“제가 어떻게 감히 그러겠습니까. 단지 미천한 일개 상인의 궁금증이 너무나도 깊고 큰바람에 호기심이 생겼을 뿐입니다.”
아이든이 생글생글 웃었다.
하지만 나는 웃음 너머로 아이든의 머리가 치열하게 돌아가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아이든이 지난 회차에서도 여러 번 강조했듯, 이건 사업이었다.
앞으로 커질지도 모르는 마수 산업에 에이슬링을 비롯한 상단들이 거하게 투자한 상태.
그러니 이 사업이 망한다는 이야기는 예민한 소재일 수밖에 없었다.
아이든이 촉을 세우는 이유로는 충분했다.
하지만 어떡하냐.
나도 어떻게 알아냈는지는 알려줄 수가 없는데.
직접 겪어보면서 깨달았다고 해줄 수도 없고.
“사실 자네가 집중해야 할 문제는 내가 어떻게 알아냈느냐가 아니야. 자네는 앞으로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 가지.”
과거에 집중해봤자 의미는 없었다.
발을 빼려면 지금 당장 빼야 하지 않겠느냐고 돌려 말하자, 아이든은 미묘한 얼굴로 답했다.
“마치 앞으로 제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다 알고 계신다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공작님.”
“적어도 자네가 희생을 감수하고 이런 일에 동참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한 것뿐이야.”
“……물론 그렇겠지만, 상인은 손익에 집중하지 않습니까? 여기서 발을 뺀다면 치러야 하는 대가가 만만치 않을 겁니다.”
“지금 치르는 대가가 가장 싸지. 시간이 하루 흐를수록 점점 더 비싸지고. 나중에는 자네의 모든 것을 내놓아도 이전으로 되돌릴 수 없을 텐데.”
아이든은 침묵했다.
이번만큼은 내가 인위적으로 구덩이의 폭주를 부추겼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 맞다.
하지만, 앞으로 이런 일이 또 안 일어나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동부의 구덩이 속에 있던 별걸음쟁이는 걷어냈지만, 저 안에 뭐가 또 있을지 누가 아나.
한참 동안 착잡해하던 아이든을 구경하다가 툭 던졌다.
“아니면 나와 함께 사업을 해보는 건?”
“공작님과 함께 말인가요? 저희 상단과 함께?”
“그래. 이 구덩이에서 마수가 얼마나 잦은 빈도로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디켄터 산맥도 마수가 드문 장소는 아니지.”
“오랫동안 산맥의 마수들을 토벌하지 못하셨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나 되나요?”
“자네 입장에서는 완전히 노다지 땅이지. 공작가는 땅과 땅에 속한 마수를 내어주고, 자네는 거기서 마수 사업을 진행하면 돼.”
“그게 가능 할는지 잘 모르겠군요.”
“용병, 동부 마수 장인들, 웬만한 사업 기반은 다 갖추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 뭐가 그렇게 겁이 나지?”
아이든은 지지난 회차에서 아른트를 한 번 구해준 값을 톡톡히 받아 가고 있었다.
떠먹여 줄 때 받아 가는 게 좋을 거다.
그는 잠시 생각에 골몰하더니 입을 열었다.
“아까 구해주신 사람들은 전부 제가 고용한 이들은 아닙니다. 타 상단 소속도 일부 섞여 있죠.”
“그런데?”
“좋으나 싫으나 타 상단에게까지 이야기가 흘러갈 텐데, 차라리 그들 전부와 함께해보는 건 어떨까요?”
어?
갑작스럽게 커진 스케일에 잠시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지금 여기서 다른 상단들을 왜 불러? 에이슬링만 독점하면 더 좋은 거 아닌가?
“아니, 그건 좀.”
“하지만 다른 상단들도 각자 특기 분야가 있습니다. 재료 조달부터 시작해서 장인 수배까지 다양하죠. 힘을 더 다양하게 빌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들이 우리를 도와준다고 하던가?”
“세상에서는 상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돈이라고들 하죠. 하지만 공작님, 상인에게 가장 중요한 건 사람입니다.”
“사람?”
“사람이 없으면 물건을 생산할 수 없고, 옮길 수 없고, 알릴 수도 없으며, 소비할 수도 없죠. 상인들은 인재를 중요하게 여기는데 공작님의 호위 기사가 그 인재를 구해주셨다면 당연히 은혜를 갚으려 할 겁니다.”
“아니, 고작 몇 명일 뿐인데. 전부 자네 같은 생각을 하지는 않을 거야.”
“저와 안면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제가 설득해보겠습니다, 공작님. 공작님과 호위 기사가 살려주신 은혜라고 생각해주시면 안 되나요?”
이걸 어떡하지? 갑자기 골치가 아파지는데.
내가 레안드로스를 쳐다보자 그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어휴. 이놈이나 저놈이나.
“……한 번 해보게. 그런데 너무 일을 벌이지는 말고, 좀 자제해가면서.”
“저만 믿어주시죠, 공작님! 그리고 이쪽의 호위 기사님, 다시 한번 더 감사드립니다.”
아이든은 허리를 90도로 접어 인사를 했다.
왠지 패기가 넘치는 그 모습에 불안해졌다.
내가 괜한 요청을 수락한 건 아니겠지.
우리가 에이슬링 저택에 머무는 일주일 동안, 아이든은 발에 불이 나게 뛰어다녔다.
그리고 동부 사업에 참가한 열세 개의 상단 중, 에이슬링 상단을 제외하고 총 여덟 개 상단주의 동의를 받아오는 기함을 토해냈다.
아이든이 환하게 반짝반짝 웃으며 오는 모습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너희는 아홉 명이지만 이쪽은 한 명이라고!
밸런싱 몰라, 밸런싱?
쪽수 좀 맞추면서 살아!
* * *
“공작님, 갑자기 동부로 떠나신다고 하셨던 건 이해하고 있습니다. 제가 모르는 일이 있을 수도 있고요. 하지만…….”
“…….”
“이건 대체 어떤 상황이랍니까?”
“미안하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보수가 끝나지 않은 안뜰에 마차와 수레 여러 대가 주차한 걸로도 모자라 행렬은 성문 바깥까지 줄줄이 이어지고 있었다.
북적거리는 사람들은 안뜰을 둘러보거나 마차와 수레의 위치를 옮기며 소리치고 있었다.
“여기로 들어와, 여기 자리 남았어!”
“이건 다 어디에 두지? 말이 못 움직여!”
“여기 고랑에 바퀴가 빠질 것 같으니 다들 주의해!”
“뒤로, 뒤로! 조금만 더 뒤로…… 그렇지! 됐어!”
이렇게 성이 북적이는 건 나도 처음 봤다.
활기가 도는 건 나쁘지 않았지만, 아른트는 갑작스러운 손님들 때문에 갑자기 신경을 쓸 일이 확 늘어난 셈이었다.
“남작 영애까지 모시면서 이만한 사람들을 접대하려면 제 몸이 두 개라도 남아나지 않겠는데요.”
“……진짜, 진짜 미안해. 내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
“나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꼭 이야기해주셔야 합니다.”
그렇게 말한 아른트는 ‘앗, 그거 거기 두지 마세요! 안으로 옮겨드릴 테니까!’라고 소리치며 뛰어갔다.
그리고 바톤 터치를 하듯, 잔뜩 지친 레안드로스가 내 곁으로 와서 섰다.
“피신?”
“……예.”
“좀 쉬다 가.”
“예.”
에이슬링 저택에서 출발한 건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아이든이 끌어모은 여덟 상단의 대표자와 실무진들이 동행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자며, 새로운 사업을 체결해 손해를 최소화하자는 상단들의 의견이 일치했던 탓이었다.
공작저로 오는 내내 사람들은 서로를 탐색하며 조심스럽게 교류를 시작했다.
하지만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이에 일을 제외하고 공통 관심사가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레안드로스라는 사람은 일종의 치트키였다.
모두의 상단에 속한 이들을 구해준 사람이었으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스레 공통화제로 이야기를 나눌 겸, 레안드로스를 끼워다가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레안드로스도 그렇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멀뚱거리며 별말은 없긴 해도 대화에 참여하고 있다는 티는 내줬으니까.
하지만 총 아홉 개의 상단이 어울리는 자리에, 모든 사람이 ‘레안드로스’라는 인물을 화제로 말을 트려고 한다?
그런데 그 사람이 자기를 부르지 말라고 딱 잘라 말하지도 않았다?
당연히 여기저기 불려 다니게 되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많은 커뮤니케이션에 시달리던 레안드로스는 결국 탈진하고 말았다.
장담하는데 레안드로스는 내가 본 것 중 가장 지치고 넋이 나간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제가 이상한 겁니까?”
“……네가 화술이 부족해서 그래.”
“그것뿐입니까?”
나는 말없이 그의 등을 두드려줬다.
그동안 안뜰을 넘어서 뒷마당까지 짐수레와 마차가 꽉꽉 들어차고,
손님들 대부분은 무사히 성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 모습을 구경하던 내게 하인이 하나 다급히 뛰어와서 속삭였다.
“공작님, 손님들은 전 공작부인의 집무실에 계십니다. 아른트 님이 거기밖에 장소가 없었다며, 주제넘은 결정이었다면 다른 장소로 옮기겠다고도…….”
“아냐. 괜찮아. 나도 거기로 가지.”
이제 나도 내 할 일을 해야겠군.
레안드로스는 잠시 밖에서 쉬게 두고 나 홀로 성안으로 향했다.
몸이 피곤하고 다리가 둔해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공작부인의 집무실.
붉은색이 감도는 고풍스러운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천천히 밀어젖히자, 그 너머로 앉아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가 늦었군.”
다들 일어나 내게 짧은 목례를 해 보였다.
그들을 지나쳐 공작부인의 책상 앞에 자리를 잡자, 다들 다시 앉는 소리가 부산스레 들렸다.
그 짧은 순간에도 나는 사람들을 살피고 있었다.
아홉 상단의 서기, 상단 대표자, 보좌관을 합하면 총 스물한 명.
스물한 명이 이 방에 손님으로 앉아있었다.
“다들 적극적으로 나서주어 고맙네. 공작저까지 먼 길이었을 텐데, 흔쾌히 오겠다고 해서 그것 역시 고마운 일이고.”
지난 회차의 일이 떠올랐다.
아이든과 단둘이서 일대일 계약을 맺었을 때도 녹록지 않았는데, 지금은 어떨까.
아마 그때보다 훨씬 더 복잡한 이해관계를 맺어야 할 것이다.
“공작저의 환영 만찬을 누리기 전에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군. 다들 이미 알고 있겠지만, 디켄터 산맥에서 시작하게 될 새로운 사업에 대해서 말이지.”
내가 할 수 있을까, 없을까가 문제가 아니었다.
단순히 땅을 임대 해주는 것을 넘어서서,
내가 원하는 설계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
레안드로스를 중심으로 한 엔딩이 걸린 일이었다.
“그러니 부디 건설적인 대화를 나누게 되었으면 한다네. 먼저 에이슬링 상단부터 시작하면 좋겠군. 그가 동부 구덩이에 대한 최초의 목격자나 다름없으니.”
가까운 곳에 앉아있던 아이든이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났다.
잘하면 얻을 것이고,
삐끗하면 물어뜯길 것이다.
아군도 적군도 모호한 각개전투의 회담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