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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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안드로스의 비호 아래에 무사히 돌아온 요나스와 막스는 디켄터 산맥 지도 초안을 깔끔하게 그려냈다.
나는 지도를 기반으로 지난 삶에서 겪었던 일, 원작에서 읽었던 마수 관련 정보, 그리고 서재 비밀방에 있던 공작부인의 일기장을 조합해서 임대하기 좋은 구역을 선정했다.
물론 상단 대리인들에게도 지도 사본을 전달했다.
지도 사본을 본 대리인 중 몇 사람은 직접 집무실로 찾아왔다.
왜 목이 좋은 자리는 다른 상단이 선점한 거냐고.
거기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두 가지로 나뉘어졌다.
해당 상단이 에이슬링과 우호적인 관계거나, 규모가 어느 정도 된다면 살살 달래면서 그다음으로 좋은 자리를 추천해줬고,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안됐다는 얼굴로 대꾸했다.
“다른 이들이 미리미리 발 빠르게 돈을 싸 들고 온 것을 어떡하나. 이쪽도 어느 정도 체면을 차리려고 했지만 워낙에 극성들이어서. 다음 해에 자리를 빼는 상단이 있다면 꼭 연락함세.”
하지만 상단 대리자들도 바보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예의상 해 주는 말일뿐, 진심이 담겨 있지 않다는 것쯤은 빠르게 눈치챌 수 있겠지.
그렇게 성에 온 아홉 상단 중 세 개 상단은 소득 없이 성을 떠났고, 다른 두 개 상단은 뒤늦게나마 땅을 골라 계약을 체결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긍정적인 결과였다.
게다가, 이번에는 단순히 땅을 빌려주는 것뿐이라 계약서도 복잡하지 않았다.
지난 삶에서 아이든과 며칠 동안 언쟁을 벌여서 체결한 계약에 비하면 누운 채로 떡 먹기지.
며칠 후, 만족스러워하는 여섯 상단을 환송하며 돌아온 내게 아른트가 슬쩍 물었다.
“장원을 여섯 상단의 전초지로 통째로 내어주시겠다고 하는 걸 들었습니다, 공작님.”
“인원이 많을 것 같기도 하고, 혹시나 만일을 대비해서 다들 모여 있는 게 합리적이니까. 왜?”
“그럼 당분간 영지를 확장할 계획은 없으신 겁니까?”
영지 확장이라.
장원을 내어주면 영지민들이 돌아올 장소가 없긴 하지.
“하르트만 공작령의 대부분은 왕성에서 반환 검토 중이라 알고 있는데. 그러면 영지민이 이주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거 아냐?”
“맞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큰 사업을 하시는데, 장원에 영지민들이 아니라 외지인이 들어앉아 버리면 좀 보기에도 그렇지 않을까요…….”
아른트는 최대한 돌려 말하고 있었지만, 그가 뭘 말하고 싶은지는 분명했다.
“그러니까 나도 영지를 경영해야 한다는 거지? 하지만 난 그런 걸 못 배웠어. 지금 와서 배운다고 해도 몇 년은 걸릴걸.”
그리고 나는 레안드로스를 주인공으로 만드는 데에 몇 년씩이나 쓸 생각은 없었다.
지금부터 배운다고 해도 영지 경영을 배우는 사이에 이야기가 끝날 거라고.
엔딩을 맞이한 후에도 영지를 경영하면서 공작으로서 고군분투하고 싶진 않단 말이지.
아른트는 황급히 변명했다.
“주제넘은 말이었다면 죄송합니다, 공작님. 다만 가문의 봉토를 경영하는 것은 가주의 권리이자 의무이고, 사람들이 아직 공작님께서 가문을 이어받으셨다는 사실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다고 들어서.”
“아냐, 이해해. 충분히 이해하지. 그런데 아직까지는 성만으로도 벅차서.”
“아놀드 영애도 있으니 성의 운영에 크게 문제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역시 괜한 말씀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렇기야 하겠지만, 지금은 그보다 중요한 일이 많아.”
가령 레안드로스를 어떻게 키우느냐 같은 거.
어떻게 하면 좀 더 주인공답게 세상에 선보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지금 같이 초야에 파묻힌 고수가 아니라 세상이 칭송하는 영웅으로 만들 수 있을까.
이거 은근히 어렵네.
레안드로스 자체가 어딘가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캐릭터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내가 등을 떠밀든, 운명이 이끌어주든 해야 하는데.
뭔가 확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탈 수 있는 거 없나.
역시 주인공이라면 마을 하나는 거뜬히 구해줘야지 소문이 퍼져서 명예로운 기사님이라고 소문이…….
어라.
“……영지 반환 독촉할까?”
“네?”
“아니, 어차피 하르트만에 속한 영지고. 내가 복권한 이후에 정당하게 취해야 할 재산이잖아. 그걸 왕실이 가지고 있으면 하르트만 가문의 선조님들을 뵐 면목이 없지 않아?”
“왜 갑자기 생각을 바꾸셨습니까?”
아른트가 의아하게 물었지만 내심 좋은 모양이었다.
눈은 무슨 꿍꿍이냐고 물으면서도 정작 입꼬리는 씰룩거리고 있었으니까.
“그냥, 자랑스러운 하르트만의 후손이 되어야겠다고 반성했을 뿐이야. 생각난 김에 왕성에 편지를 써야겠다.”
“예? 이렇게 갑자기요?”
“그래. 그리고만일 답장이 오거든 보류해둬. 내일모레쯤 레안드로스와 함께 성을 떠날 거거든.”
“아니, 어디로 가십니까?”
“북부로.”
“이렇게 갑자기요?”
“북부는 자치령이지?”
갑작스러운 질문에 아른트는 왜 또 이러시는지 모르겠다는 투로 답했다.
“그렇습니다. 지금으로 따지자면 거의 북부의 작은 독립 왕국이라고 해도 무방하겠죠. 산맥이라는 장벽 때문에 왕국과 융화될 리가 없으니. 그런데 그건 어째서 물으시는 겁니까?”
“그런 북부를 하르트만 공작이 거느릴 수 있게 된다면 어떨 것 같아?”
“얼토당토않은 추측이시네요. 당연히 농담이시죠?”
“하하하.”
“……농담 맞으시죠?”
아른트가 삐걱거리며 물었다.
얼굴에는 ‘그걸 어떻게, 가능하기나 하나, 혹시 계시에 나왔나, 북부라니 상상도 못 한 이야기가 나왔다’ 같은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조금 놀리고 싶었지만, 이러다가 애 하나 기절시키겠다 싶어 설명을 해줬다.
“미스릴 말이야. 마수의 부산물을 가공해서 뭐든 만들어내려면 필요하잖아. 그거에 대해 알아보다가 북부가 심상치 않다는 소식을 듣고 잊고 있던 계시의 일부분이 기억났거든.”
“그, 그 계시는 뭡니까? 어떤 부분이었죠?”
“북부에 사람이 하나도 없어.”
“……예?”
“말 그대로야. 사람이 하나도 없고, 있을 리 없는 마수만 돌아다녀.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어.”
사실 알고 있지만.
그래도 아른트에게 끔찍한 소리를 해서 일부러 광기를 가져다줄 필요는 없었다.
지난 삶에 미친 놈 두 명을 끌고 다녔더니 너무 힘들었거든.
“원인을 모르니 해결책도 알 수 없고. 그러니 내가 북부에 해 줄 수 있는 건 현재 상황을 파악하고 정상화를 위해 뭘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는 거야.”
“도련님…….”
“그러니까 가능하면 왕실에서 북부에게 내린 자치권을 거두게 만드는 게 좋겠지.”
지난 삶에서는 유릭이 했던 일을 인질 삼아 북부 임시 통제권을 얻어냈었다.
하지만 그때는 귀족과 왕가, 신전 사이에서 줄타기하기 위한 도구로만 생각했지.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임시 통제권 같은 걸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아른트는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아직 잘 이해는 가지 않지만, 그게 가능할까요?”
“그러니까 내가 직접 가보려고”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줘야지.
* * *
북부행 짐은 이상하게 단출했다.
나는 식사를 하지 않으니 내 식량은 가능한 한 적게 담은 데다가,
지난 삶에서 뼈저리게 느꼈던 추위에 대비해 미리부터 온몸에 방한복을 둘둘 둘렀기 때문이었다.
“공작님, 산맥을 다 넘어가신 후에 걸치셔도 될 텐데요.”
“아냐. 이게 편해.”
아른트는 반쯤 눈사람이 된 내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여러 번 옷을 벗길 권유했다.
하지만 나는 아른트의 권유를 뿌리치고 레안드로스를 봤다.
레안드로스는 거의 1.5인분 분량이 담긴 식량 자루를 보다가 묘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문제없지?”
“일단은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럼 우리 진짜 갈게. 아른트, 나 없는 사이에 성을 잘 부탁해. 아놀드 영애, 아른트를 부탁드립니다.”
“서, 성의 기강은, 제, 제가 잡아둘 테니까요.”
“……적당히 잡아주세요. 적당히.”
전 공작부인이 살아있던 시절의 하르트만 성은 대체 어떤 분위기였기에 기강을 잡아두겠다는 거지.
하지만 그건 굳이 묻지 않기로 하고, 나는 두꺼운 옷을 입은 채 뒤뚱거리며 레안드로스와 성문을 나섰다.
내 뒤로 배웅하는 그림자가 옅어지고, 아무도 없는 장원에 도착했을 때.
레안드로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여기서는 안 보일 듯합니다.”
“그래?”
검은 호각을 불자, 슬레이는 거의 다 무너져가는 폐가의 그림자 속에서 투레질하며 나왔다.
언제나 그랬듯이 반갑게 머리를 비비던 슬레이는 레안드로스를 가만히 응시했다.
레안드로스도 지지 않고 눈싸움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 말은.”
“?”
“귀가 좋더군요.”
“어어. 고맙다.”
왜 갑자기?
하지만 슬레이는 그게 맘에 든 듯 의기양양하게 몇 걸음 주변을 돌아다녔다.
우리는 동부로 떠날 때처럼 슬레이에 함께 올라탔다.
레안드로스가 내 뒤에 자리를 잡으며 물었다.
“한 가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북부에 어떤 용건이 있으신지.”
“미스릴 때문이야.”
“그건 북부 자치령에서 독점하고 있는 광물이 아닙니까. 북부와 직접 거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시는 겁니까?”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설명하기가 좀 애매하네. 직접 가서 보는 게 낫겠지.”
어디로 가야 할까.
슬레이의 갈기를 쓰다듬으며 고민하다가 무어라 속삭이자, 슬레이는 힘차게 울며 앞으로 내달렸다.
익숙하게 불쾌한 감각이 몸을 감쌌고,
다음 순간 내 얼굴을 후려갈기는 찬바람에 눈을 뜨자 언젠가 봤던 익숙한 풍경이 펼쳐졌다.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회백색 하늘 아래에 세워진 앙상한 울타리.
그 너머로 보이는 천막이 거친 눈보라에 흔들리고 있었다.
사람 한 명 돌아다니지 않는 작은 촌락.
오직 마을 한가운데에 삐죽 솟아있는 수상한 장대만이 흰 천을 나부끼고 있을 뿐이었다.
“이건…….”
“북부의 이동식 촌락이지. 북부는 한곳에 정착하기가 어려운 환경이거든. 사람은 없을 테니까, 아무 데나 들어가자. 옷을 갈아입어야 해.”
“확실히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습니다만. 옷을 갈아입어야 합니까?”
“지금 입은 겨울옷은 어디까지나 북부 밖에서 입는 옷이잖아. 추위에 나약한 사람들이 만든 옷이라고. 금세 얼어 죽을걸.”
내가 채근하자 레안드로스는 마지못해 가장 가까운 천막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멋대로 북부식 옷을 강탈한 다음, 우리는 곧장 마을을 떠났다.
레안드로스는 말 위에서도 연신 주변을 둘러봤다.
“낮인지 밤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환경이로군요.”
“언제나 이런 환경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해. 북부는 다른 지역과는 좀 다르지. 산맥으로 가로막혀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으니까.”
“역사서에서는 왕국이 영토를 넓히며 여러 지역을 규합하는 과정에서 북부 토착민들이 특히 거세게 반발했다고 합니다. 건국왕은 북부를 점령하려 했으나, 산맥과 기후 때문에 포기하고 대신 자치령을 보장하는 식으로 규합했다고 나와 있었습니다.”
아이구. 똑똑한 내 새끼.
아니, 내 새끼는 아니고 엄밀히 말하자면 동생의 새끼지만.
“외부에서 들어오기도 어렵지만 북부에서 밖으로 나가기도 어려운 구조지. 그러니 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해도 밖에서는 잘 모를 수밖에.”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뜻이십니까?”
“생각해봐. 네가 여기를 다스리는 북부 변경백이라고.”
희게 펼쳐진 설원.
무수히 내리는 눈송이와 버석거리며 밟히는 얼어붙은 눈덩이.
여기도 저기도 얼음, 서리, 얼음.
“절망적이지 않겠어?”
“이해는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설명해주시지 않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것과 대체 무슨 상관이…….”
레안드로스의 말 사이에 이질적인 소리가 끼어들었다.
곰의 울음소리와 흡사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소름 끼치는 소리.
잠시 말을 멈춰 주변을 둘러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공기만이 이상하게 경직되어 있었다.
레안드로스는 말에서 내려서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그렇게 멀지 않은 곳, 하얀 설원의 바닥에서 미약한 움직임이 눈에 띄었다.
들썩거리던 눈바닥에서 혼탁한 붉은빛이 한 쌍 나타났다.
그것을 눈이라고 인식하자 그제야 전체적인 윤곽이 보였다.
미약한 푸른 기운이 도는 앞발 네 개는 눈처럼 하얀색의 털로 덮여 있었고,
눈 사이에는 마치 일각수처럼 불쑥 솟은 뿔이 자리하고 있었다.
두 개의 뒷다리는 튼튼하고 두꺼운데다가 털로 덮여 있었다.
마치 일각수와 북극곰, 그리고 벼룩을 섞어둔 것같이 역겨운 생김새.
여섯 개의 다리로 눈밭을 휘저으며 다가오는 것은 생쥐 수천 마리가 함께 찍찍거리는 듯한 기묘한 소리를 냈다.
레안드로스가 낮게 신음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수입니까?”
“원래부터 북부에 있던 놈은 아니었지. 마수가 산맥을 타고 올라서 일부러 여기에 자리 잡았을 리도 없고.”
“그렇다면 인위적으로 생성되었다는 말씀이신데, 대체 어떻게 하면 이런 곳에서 마수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겁니까.”
“어떻게 하긴.”
나는 무감하게 그에게 대답했다.
“여기에서 원래 살고 있던 것들이 있었잖아.”
“하지만 여기에는.”
레안드로스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지만, 나는 레안드로스가 하고 싶은 말을 알 것 같았다.
원래 이렇게 추운 땅에는 아무것도 살지 않는다.
사슴도, 곰도, 늑대도 없다.
닭, 돼지, 소와 같은 가축류도 이런 극한 기후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여기에 있는 것은 인간, 인간, 오로지 인간뿐.
원래부터 인간밖에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인간이었던 존재들밖에 없을 것이다.
레안드로스의 까만 눈이 커졌다.
“원래부터 사람…….”
곰을 닮은 역겨운 생명체가 맹렬하게 뛰어왔다.
날카로운 뿔에는 흐려졌지만 희미한 다갈색 자국이 남아있었다.
나는 마수가 돌진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에게 마지막 쐐기를 박아 넣었다.
“북부를 보면 왕실이 하르트만 공작가를 겨냥하고 몰락시킨 것도 이해가 가지. 유릭 왕세자는 마수의 통제에 관해 관심이 많았으니까.”
레안드로스의 얼굴이 미약하게나마 일그러졌다.
사람이 멸종한 북부와 왕실, 그리고 하르트만 공작가.
레안드로스를 거두어주었던 전 공작부인의 처형.
평화로운 일상의 종말.
그 아들을 거두고, 싸우고, 도망치고, 숨어다니던 나날.
그 모든 것의 원인이 정말로 그였냐고 묻는 눈길.
나는 그에게 입만 웃어줄 수 있었다.
레안드로스의 고함이 광막한 설원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