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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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병님, 뭔가 이상한 점이라도?”
“……소리가.”
“무슨 소리요? 무섭게 그러지 마세요! 저는 아무것도 안 들렸는걸요.”
레안드로스가 주변을 둘러봤지만, 이 근방에 있는 사람이라곤 젠과 자신뿐이었다.
잘못 들은 건가.
젠은 레안드로스가 걸음을 멈추자 호들갑을 떨었다.
“이러다가 더 늦어지면 저희도 내려가야 할 판이라고요. 어서요!”
“가지.”
레안드로스는 찝찝한 기분을 떨쳐내며 재촉하는 젠을 따라갔다.
아멜리아와 마을 주민과 헤어진 지 꽤 된 것 같은데,
아렌하이트는 고사하고 그 두 사람에게서도 영 소식이 없었다.
아렌하이트를 몇 번이고 불러봐도 대답은 없었고.
혹시 정말로 위험한 짐승에게 잡아먹힌 건 아니시겠지.
레안드로스가 어둠 속을 노려보고 있을 때 젠이 분위기라도 환기시키려는 듯 말을 건넸다.
“산을 잘 오르시네요. 용병은 원래 그렇게 체력이 좋아요?”
“수색 말고 다른 이야기를 할 여유가 남아 있었나 보군.”
“그, 그런 의미는 아니었어요. 그냥 너무 조용한 것 같아서.”
“그런 걸 신경 쓸 바에야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가 없는지 주의를 기울이는 편이 낫지 않겠나?”
젠은 민망한지 ‘그렇군요, 그렇죠.’라는 소리 따위를 지껄이며 어색함을 떨쳐내려 했다.
레안드로스는 젠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수다스럽고, 경쾌하고, 유쾌한 청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
“게다가, 아까부터 주변을 빙글빙글 돌고 있더군.”
“…….”
“떠들 기운이 있다면 제대로 된 길을 찾아보는 게 좋겠지.”
그러나 그런 인상으로도 이 ‘어색함’을 사라지게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젠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알고 계셨어요? 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잘 모르던데.”
“유감스럽게도 산골짜기 출신이라.”
“그런가요? 그 점을 미리 알아냈어야 했는데. 상단주 따님을 호위해서 그런가? 특이한 출신의 용병을 고용했네요.”
“이런 짓을 하는 이유는?”
“다른 의도는 없었어요, 아시잖아요, 저는 그저…….”
태평스럽게 말하던 청년의 품에서 단도가 튀어나왔다.
날에 반사되어 번득이는 주황색 불빛이 눈을 찔렀다.
번개처럼 빠르게 날아드는 단검.
레안드로스가 검을 뽑아 들지도 않자, 젠은 이 용병이 놀라서 반응도 못 한 거라고 생각했다.
잠시 후면 눈앞의 용병은 피를 흩뿌리며 쓰러질 것이다.
그게 아니면 피하려다가 발을 헛디뎌 굴러떨어지거나!
하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틀린 추측이었다.
레안드로스는 맨손으로 젠의 단검을 잡아챘다.
그는 날카롭게 벼린 단검에 베여 피가 뚝뚝 흘러내리는 것도 개의치 않고 물었다.
“이유가 뭐지?”
“큭, 이거 놔!”
“놓아줄 수는 없겠군. 그리고 나는 분명히 물었다. 이유가 뭐냐고.”
“이 자식이!”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손아귀에 들어간 단검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단검의 자루를 쥐고 뺏지도, 찌르지도 못한 채 진땀을 흘리던 젠은 레안드로스의 뒤를 향해 외쳤다.
“그렇게 보고만 있지 말고 도와줘요, 아저씨!”
젠이 악을 쓰는 목소리가 밤의 산중에 울려 퍼졌다.
레안드로스는 자신의 등 뒤에서 낙엽이 부서지는 소리와 제 딴에는 기합이라 넣은 듯한 고함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어째서 사람은 기회를 주면 그걸 감사히 받아 챙길 줄을 모르는 건지.
그를 뒤에서 습격하려 드는 마을 주민은 일순 서늘한 감각에 움직임이 멎었다.
이 감각의 근원을 찾으려 고개를 내리자 자신의 배를 꿰뚫은 하얀 고드름이 보였다.
아니, 칼인가?
분명 칼 같은 건 뽑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러나 그에게 길게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하얀 서리와 얼음으로 이루어진 칼이 배에 꽂힌 그대로 솟구쳐 올라갔기 때문이었다.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죽은 마을 주민을 보는 젠의 입이 벌어졌다.
어어, 어어 하는 멍청한 소리만 나오는 입에서는 살려달라는 애원도 나오지 않았다.
레안드로스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조직적이군,”
“이, 이…….”
“하지만 허술하고. 사람을 찾으러 산을 오르는 게 아니라는 말이 맞겠어.”
여관을 떠나기 전.
정비를 하겠다는 핑계로 객실에서 단둘이 있었던 시간을 확보한 아멜리아.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한 그녀는 입을 열었다.
-뭔가 이, 이상해요. 경, 공작님이 무, 무모한 행동을 하셨다는 건 그, 렇다 쳐도.
-무언가 마음에 걸리시는 점이 있습니까?
-제, 젠이 마, 마구간 청소를 하, 하다가 왔다고 해, 했는데. 시, 신발에는 지, 진흙이 잔뜩, 이, 있었고. 바, 반대로 빗자루에는 물기가 어, 없었어요. 야, 양동이 입구는 젖고 텅 비어있었는데도.
-젠이 마구간에 가지 않았다는 말씀이십니까?
-마, 마구간에만 갔다면 신발이 그 정도로 흐, 흙투성이가 되진 않았을 거예요. 물로 바닥을 씨, 씻었다고 한다면 빗자루까지 저, 젖어있어야 해요.
-그렇다면 마구간 외의 다른 장소에 들렀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게 공작님의 실종과 관련이 있다 보십니까?
-오, 옷의 셔, 셔츠 자락에 다, 달라붙어 있던 푸, 풀잎이라던가. 먼지 냄새가 별로 나지 않는 저, 점이라던가.
아멜리아의 주장은 논리적이었다.
사실 레안드로스도 마을에서 사람들에게 말 사체에 대해 정보를 캐러 다니며 미묘한 위화감을 느끼고 있던 터였다.
저마다 이런 사건이 일어났다는 점에는 놀라는 듯했지만,
말의 사체에서 드러난 이질감이나 잔혹성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고작해야 ‘어머나, 큰일이에요. 그런 끔찍한 일이 있다니.’ 정도에서 그쳤다.
물론 기절하고 겁을 먹고 도망치는 것보다야 나았지만.
너무…… 대범했다.
마을 사람들 전부가 전체적으로 감각이 무뎌져 있었다.
이런 상황을 주기적으로 본다는 듯이.
범인이 누군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오로지 너무 괴상하고 잔인한 일이라고만 언급하고 떠났다.
레안드로스는 계속 위화감을 느꼈다.
객실을 나와서도,
두 개 조로 나뉘었을 때도,
산에 올라갈 때도,
계속해서, 계속, 계속.
그리고 단검의 자루를 쥔 애송이의 눈을 바라봤을 때, 그는 위화감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대답을 하고 싶지 않나?”
“이, 이 자식이!”
“답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답하고 싶도록 만들어 줄 테니까.”
레안드로스는 여기서 실랑이할 생각은 없었다.
아멜리아도 기습을 당했을 게 분명한 상황에서 더 이상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
상대는 고작 덜 자란 애송이.
기세가 매섭고 재빠르긴 하지만 그뿐.
지금도 단검을 놓지도, 그렇다고 덤벼들지도 못하고 얼쩡대고 있지 않나.
레안드로스는 본인이 알고 있는 한 가장 효율적이고 빠른 방법을 떠올리며, 멀쩡한 한쪽 손을 다부지게 쥐었다.
* * *
-지익, 지익, 지이이익…….
무거운 게 바닥을 훑으며 끌려가는 소리.
차갑고 딱딱한 감촉.
먼지 냄새, 풀냄새, 그리고 형용할 수 없는 악취.
몸 위로 두꺼운 덮개가 씌워진 것처럼 모든 감각이 한결 무디게 느껴졌다.
머리가 이리저리 꺾이면서 목이 뻐근하게 아파왔다.
그런데도 머리를 바로 세울 수가 없었다.
어딘가 고장 난 것 같아.
슬레이는 어디 있지?
젠과 함께 산을 올라왔었는데.
그러고 보니 여기는 또 어디지?
나는 누구에게 끌려가고 있는 거지?
수많은 의문 가운데 해결된 것은 하나도 없는 채로, 끌려가던 내 몸은 어딘가에서 갑자기 멈추었다.
눈을 뜨자 흐린 시야 안으로 신발만 들어왔다.
“이, 이걸로 끝이지? 정말이지?”
“그래. 그래야만 저 돼지들이 못 올라오지.”
겁에 질려 묻는 여자의 목소리에 숨이 차서 씨근대는 목소리가 답했다.
“젠도 어지간히 귀찮은 짓을 하네. 그냥 지금까지 그래왔던 대로 자던 중에 덮쳐서 끌고 오면 될걸.”
“그랬다가는 애저녁에 다 들켜서 우린 전부 사형대로 끌려갔을 거야. 차라리 시간이 걸려도 이렇게 하는 게 나아.”
“왜 그렇게 나서줘? 그 새끼 덕이라도 좀 봤어? 매일 와서 대신 돼지들에게 먹이 주고 하니까 정이 붙디?”
“적당히 해!”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가 일갈을 날렸다.
“지금 같이 급할 때 꼭 싸워야겠니! 소피, 거기서 나와라. 그동안 고생했다. 그리고 호프, 너도 와서 나르는 것 좀 도와!”
“아주머니, 뭐가 급하다고 그러세요? 젠이랑 야곱 아저씨가 갔잖아요. 어련히 잘 처리하고 올 텐데.”
“둘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으니 그러지!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선 급한 건 돼지 놈들에게 마지막으로 먹이를 주는 거야.”
“아주머니, 아주머니. 이게 마지막 먹이죠? 이제 돼지들은 전부 땅속으로 돌아가는 거죠? 저도 이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거죠?”
“그래, 당연하지.”
으샤, 으합-!
두런거리는 소리가 멈추고 사지가 들렸다.
몸이 허공을 둥둥 떠올라서 움직였다.
어디선가 돼지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꿀꿀, 꾸웨에엑, 꾸엑, 꾸에엑.
흥분한 듯한 비명소리가 점차 가까워졌다.
그게 바로 내 귀 옆에서 들릴 만큼 커졌을 때.
몸이 쑥 아래로 빠졌다.
엉망진창으로 굴러떨어졌다가 고개를 들자 활활 타오르는 횃불을 들고 이쪽을 내려다보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리고 내 옆에는 나를 응시하는 몇 쌍의 눈이 보였다.
돼지.
돼지.
모든 곳에 돼지의 머리.
근육과 비계가 뒤엉킨 몸, 진흙과 고약한 냄새를 뒤집어쓴 채 불쑥 솟아난 송곳니를 달고 있는 괴상한 사람들. 아니, 돼지들.
얼굴에 닿은 동물의 발굽과 뿔.
가죽만 멀쩡한 소의 썩어가는 백골.
닭의 창자와 개의 꼬리가 너저분하게 뒤엉켜서 썩어가는 이 구렁텅이에서 눈에 익은 형태를 발견했다.
검고, 아름답고, 아무리 어려운 길이라도 바람처럼 걸을 수 있는 다리.
언제나 그림자 속에 숨어서 나를 기다려주는 생물.
언젠가 한 번, 먼 외계의 별에서 나를 태우고 와줬던 괴물.
나의 아름다운 말이 반쯤 뜯겨나간 몸으로 이 더러운 장소에 누워있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게 바로 조연의 숙명이라고.
사이드킥이나 주인공이 아닌 단순한 조연으로 남기로 결심한 이상,
이 세상의 신비를 가질 권리를 박탈당할 수밖에 없다고.
그게 이 세상이 세고 빠진 조연들을 취급하는 방식이라고.
돼지들은 나를 보고 광란의 함성을 내질렀다.
흥분한 돼지의 타액이 튀고, 몸에서 가장 쥐기 쉬운 연약한 부분부터 움켜잡았다.
저들끼리 차지하기 쉬운 조각 하나라도 얻기 위한 싸움이 벌어졌다.
싸움의 한복판에서, 탐욕스러운 돼지들이 내 사지를 나누어 가지려고 할 때 문득 생각했다.
진짜 조연인 아렌하이트가 여기 있었다면,
그 애는 어떻게 했을까.
어깨가 뜯기기 시작하면서 핏빛 고통이 눈앞을 물들였다.
밖에 있는 이들은 하나같이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렸다.
위대하신 신이시여, 오늘 저희의 죄를 눈감아주시옵고, 부디 이 마수들이 땅으로 물러나 저희들이 온전한 삶으로 돌아가길 바라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