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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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들은 아무것도 몰랐다.
그들은 여행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해서 꾀어내기 위해 마녀의 전설을 지어내고,
사람을 습격하고, 농가로 끌고 가는 것만을 생각했다.
그렇게 조달한 먹이를 돼지에게 주면, 그것들이 구렁텅이를 올라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큰 착각이었다.
돼지 인간들에게 먹이를 주는 것도,
이걸로 돼지 인간들이 돌아갈 거라고 생각한 것도,
전부 다.
“용병! 용병은 어디 있어! 왕실 대리인에게 빨리 연락해!”
“사람 살려, 도망가! 다들 빨리 도망가!”
“안돼, 제발, 한 번만 살려, 아아아악!”
마을 근처에 있을 용병들이 멀리 떨어진 이 농가에서 벌어지는 소란을 눈치채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용병들은 마을 사람들이 가끔 은밀히 농가로 향하는 걸 알고 있었지만 딱히 참견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마을 주민과 그들은 어떠한 관계도 아니었으니까.
덕분에 농가는 아수라장이었다.
먼저 발 빠르게 달려 나간 사람들이 집 안에 들어가 문을 닫아걸었다.
“문 열어, 열라고! 아직 못 들어간 사람들이 있어!”
“제발, 저것들이 제 다리를 할퀴었어요, 너무 아파요…….”
한발 늦은 사람들은 문을 두드리며 안에 들여보내 달라 소리 질렀지만 이미 집 안으로 피신한 사람들이 허락할 리가 없었다.
“무슨 소리야? 우리까지 전부 위험에 빠뜨리려고! 적당히 다른 곳으로 도망가면 되잖아!”
“빨리 의자나 다른 가구로 문을 막아. 어서! 이 문까지 부서지면 여기도 끝장이야!”
사방으로 퍼지는 핏내.
저 구렁텅이 아래에서 질 좋은 마력을 섭취했던 돼지 인간들은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달려들었다.
돼지 인간에게 낚아 채이거나 깔린 사람들은 퍼덕거리며 마지막까지 발악했다.
그러나 처절한 저항은 돼지들의 끝없는 식탐 앞에서 입맛을 돋우는 양념이 될 뿐이었다.
비명소리가, 구해달라는 애원이, 쓰러진 횃불이 태우는 짚단이, 매캐한 연기가, 돼지 인간이 기뻐 날뛰며 내지르는 함성이 밤을 장식했다.
그런 아비규환 속에서도 레안드로스와 아멜리아는 마을 사람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두 사람은 구렁텅이 아래로 내려갔다.
그들의 앞에 있는 건 한눈에 봐도 멀쩡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아멜리아는 헛구역질과 눈물을 참으면서 자신의 찢어진 망토를 그 위에 덮었다.
그녀의 품 안에서 동그란 얼음덩이가 데구르르 굴러 망토 자락 위에 안착했다.
레안드로스는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헛헛하면서도, 속은 조용히 끓어오르는 것 같고.
당장 저 마을 사람들을 죄다 쳐 죽이고 싶다가도 이 몸을 들고 신전으로 뛰어가고 싶었다.
이런 심정을 뭐라고 부르면 되지.
애초에 우리는 왜 여기 온 걸까.
아멜리아가 거의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어떡해요…….”
공작님을 어떡하죠.
이제 우리는 어떡하죠.
이대로 끝인가요? 이런 불행한 일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는 건가요?
레안드로스는 답을 해줄 수 없었다.
언제나 결정을 내려주던 사람이 입을 열지 않았으므로.
그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고작 하나뿐이었다.
“공작님의 시신을, 성으로.”
장례를 치를 수 있다면 성에서 치러야 했다.
그 사실만을 떠올린 레안드로스가 누워있는 아렌하이트에게로 손을 뻗을 때였다.
“내 신자. 살아있다.”
“……!”
“무, 무슨, 뭐라고요!”
“내 신자. 마력 느낀다. 죽은 것은 마력 없다. 하지만 내 신자 마력, 여전히 있다. 엄청 적다. 하지만 있다. 위대한 나, 틀리지 않는다.”
머리만 남은 눈사람이 말하는 광경은 심히 괴상했지만 두 사람에게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멜리아가 급하게 덮어주었던 망토를 벗기자 피비린내가 확 풍겼다.
도저히 살아있다고 생각되지 않는 참상이었지만, 레안드로스는 빠르게 아렌하이트의 호흡을 확인하고 피에 젖은 가슴 위로 귀를 댔다.
“겨, 경, 어떻게, 어떻게……!”
“……미약하십니다.”
“그, 그래도 살아는 이, 있으시다는 거죠?”
“피를 너무 많이 흘리셨습니다. 지금도 충분히 기적입니다.”
한쪽 팔이 뜯겨나간 데다가 멀쩡히 남아 있는 피부라고는 거의 없었다.
이 지경이 되면 살아있는 게 이상한 수준이었다.
눈사람의 머리가 말했다.
“내 신자 죽는다. 위대한 나는 반대한다. 신자를 낫게 한다. 신자, 휴식 필요하다.”
“지금 당장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가능한 한 빨리 가까운 마을에서 의원을 찾아야 해.”
“그동안 내 신자 죽는다. 마력이 사라진다. 계속해서 사라진다. 나에게 좋은 방법 하나 있다.”
“좋은 방법이 뭐지?”
“신자 재운다. 그냥 잔다? 아니다. 몸을 얼린다. 신체 기능 정지한다. 낫지 않는다. 더 다치지도 않는다. 좋은 방법. 위대한 이 몸은 천재.”
얼리고 재운다고?
상상도 못 한 해결책에 아멜리아가 소리를 질렀다.
“그, 그건 잠시 주, 죽는 거잖아요!”
“이보다 좋은 방법 있다? 없다. 이대로 두면 죽는다.”
“그, 그건 그렇, 겠지만, 그래도 다른 방법은.”
아멜리아는 레안드로스에게 말려달라는 눈빛을 보냈다.
레안드로스는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영애의 말씀이 맞다. 잠시 신체 기능을 정지시키고 재운다고 해도, 일시적인 죽음이나 다름이 없지. 공작님께서 깨어나셔도 부작용은 없나?”
“부작용 없다. 위대한 나의 힘을 빌린다. 내 신자, 불경하지만 축복받는다.”
“정신적으로는? 잠시 심장이 뛰지 않는다면 단순히 꿈을 꾸는 게 아니지 않겠나.”
.”내 신자의 정신. 다른 곳으로 대피시킨다. 안전한 곳으로 대피한다. 나도 함께한다. 내 마력, 신자 기능 정지 돕는다. 나도 함께 수면한다.“
“자, 잠시만요. 경. 이게 다, 무, 무슨 소리, 인가요?”
아멜리아가 순식간에 진행되는 대화를 따라잡지 못해 물었다.
레안드로스는 천천히, 침착한 어조로 답했다.
“공작님께서 지금 이대로 두면 목숨이 위태로우십니다. 그러니 이 눈사람이 공작님을 일시적으로 얼려 신체 활동을 정지시키고, 그 사이에 저희는 공작님을 모시고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을 찾으면 될 것 같습니다.”
“하, 하지만. 이 누, 눈사람이 사실 치료 목적의 아티팩트였나요? 마, 마력이라는 단어가 나오던데.”
“……일단은 그런 것 같습니다.”
레안드로스는 대충 둘러댔다.
북부의 광산에서 일어난 일은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눈사람은 아멜리아에게 굴러갔다.
“인간 여자. 내 신자 위로 올라간다. 나를 올려둔다.”
“이, 이렇게?”
아멜리아가 눈사람 머리를 아렌하이트 위에 올려두자, 살과 맞닿은 부분부터 순백색 얼음이 피로 물들기 시작했다.
“나, 축복한다. 불경한 신자 놈. 조심성 없는 나의 신자에게 가호를.”
아렌하이트의 몸 위로 한기가 퍼져나갔다.
피가 얼고, 살과 근육이 단단하게 굳어버린다.
그 모든 과정을 시선 하나 떼지 않고 지켜보던 레안드로스와 아멜리아는 아렌하이트의 피에 젖은 눈꺼풀이 꿈틀거리는 모습을 목격했다.
간신히 뜨인 갈색 눈은 초점도 잡지 못한 채로 두 사람이 있는 방향으로 돌아갔다.
“레안…….”
“상처에 좋지 않으니 말씀하시지 마십시오. 주제넘게 공작님의 처우를 저희가 결정했습니다. 용서해주시길.”
“마, 맞아요, 고, 공작님. 움직이지 말고, 말하지도 마, 말고.”
눈이 한 번 더 굴러갔다.
비명과 소란이 난무한 아비규환이 아래쪽까지 들렸다.
돼지의 울음소리에 사람들은 살려달라고 빌거나 욕을 하고 울부짖었다.
희망은 없었다. 절망도 없었다.
그들을 기다리는 건 죽음뿐이었다.
아렌하이트는 그것을 듣고 있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사람…… 구해…….”
“그것만은 거부하겠습니다, 공작님.”
“시, 싫어요. 그건 싫어요.”
아멜리아와 레안드로스가 동시에 뱉었다.
레안드로스는 아렌하이트의 명령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렌하이트를 속여서 이 구렁텅이에 빠뜨린 게 누군데, 그런 사람들을 구하라는 소리가 나오나?
아멜리아도 레안드로스와 같은 심정이었다.
산에서 습격을 당했을 때,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분명 그대로 목이 부러졌을 것이다.
“저, 저 사람들은 저, 저희를 제물로 사, 삼으려고 해, 했어, 요! 이, 이건 죗값을 치르는, 거, 거고!”
“다른 때 같았으면 명령에 순응했겠지만, 이들은 공작님께 위해를 가했습니다. 그런데도 공작님께서는 함부로 그들을 구하라 하십니까?”
아멜리아는 드물게 큰 소리로 성을 냈다.
“여, 영지는 조금 이, 잃어도 괜찮아요! 지, 지금 완벽하게 보, 복구하지 않아도, 아니! 설령 와, 왕세자 전하의 조건을 다 채, 채우지 못해도! 언젠가, 공작가가 건재하면, 돌려받을 시간은 추, 추, 충분히 있어요! 하지만, 고, 공작님은 여기 한 사람뿐이잖아요!”
이건 더 이상 영지를 되돌려 받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적어도 레안드로스와 아멜리아 두 사람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아렌하이트는 아닌 모양이었다.
아렌하이트의 색 없는 입술이 달싹였다.
“……이번, 에, 겨우…… 레안, 드로…… 부탁…….”
짧은 단어만 띄엄띄엄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두 사람은 아렌하이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빼앗긴 것들을 이번에야 겨우 되찾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제발 부탁해.
레안드로스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른트에게 전해 들은 바로는, 그의 공작님은 영지에 대한 것을 꽤 오래전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선조들에게 면이 서질 않는다고 투정처럼 말씀하셨다지만, 레안드로스는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가문이 몰락하고 아렌하이트가 느꼈을 치욕, 수치, 절망.
그 모든 원인은 유릭 왕세자에게 있었다.
그렇기에 아렌하이트는 과거의 모든 것을 거머쥐고,
그 끝에는 유릭 왕세자를…….
“……알겠습니다. 마을에 대해서는 안심해주십시오.”
“레, 레안드로스 경!”
아멜리아가 소리를 질렀지만 레안드로스는 꿋꿋했다.
그는 도로 아렌하이트와 눈사람에게 망토를 덮어주었다.
“대신 다음에는 이런 식으로 내리시는 명령은 듣지 않겠습니다. 누가 듣는다면 잠꼬대로 착각할 수 있으니.”
“…….”
아렌하이트의 입꼬리가 움찔거렸다.
기운이 있었다면 분명 실없이 웃는 소리가 나왔을 것이다.
냉기가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그렇게 미약하게 떨리는 근육의 움직임도 멎어가고, 아렌하이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걸로 끝이었다.
레안드로스는 아렌하이트의 팔을 만져 몸이 성공적으로 굳은 걸 확인하고 몸을 돌렸다.
“어, 어디 가시나요?”
“공작님께서 내리신 명령을 수행하러 가겠습니다.”
“하, 하지만, 저렇게 마, 많은데. 괘, 괜찮으시겠어요? 저, 저라도.”
“아닙니다. 영애께서는 공작님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밖이 다소 소란할 듯합니다. 안전을 위해 여기 계시는 게 좋겠습니다.”
“겨, 경은 저, 저 사람들에게 화가 나지, 아, 않으세요?”
“영애께서는 화가 나서 오장육부가 뒤틀린다는 말을 직접 느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네, 네?”
아멜리아가 되물었다.
레안드로스는 검을 뽑아 들며 말했다.
“지금 제가 꼭 그렇습니다. 이 마을의 사정 따위, 제가 헤아릴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제 내장이 아무리 뒤틀린대도, 공작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라면.”
아멜리아는 레안드로스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차갑고 딱딱한 아렌하이트의 몸을 끌어안으며,
언젠가는 이 마을 사람들을 모조리 죽여버리고 싶다고 생각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