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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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 데요.”
“말씀하십시오.”
“겨, 결국 공작님께서는, 본인의 안위보다 영지를 우, 우선시하신 건가요?”
“저로서는 그렇다고밖에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영애.”
아멜리아는 레안드로스가 안고 있던 아렌하이트를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피와 상처가 낭자한 몸은 레안드로스와 아멜리아의 망토로 꽁꽁 감싸서 최대한 노출을 숨긴 채였다.
그도 그럴 게, 이만큼이나 다친 사람이 가만히 있는 모습은.
“자, 잠들어계신다고는, 생각하기가, 어, 어려워, 보이네요.”
꼭 죽은 것처럼 보였다.
지금 아렌하이트는 모든 신체 기관을 정지한 상태였다.
눈꺼풀이 움직이긴커녕 심장조차 뛰지 않고 있었다.
아멜리아는 두 사람이 아렌하이트를 위해 선택의 기로에 서야 했던 순간을 몇 번이고 곱씹었다.
이보다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얼리지 않고서 낫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당시, 아렌하이트의 모습은 처참했고 그녀는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이대로 두면 그는 죽는다.
의원에게 보이기 전에 상처가 썩어서 죽거나, 아니면 과다출혈로 이 자리에서 죽거나.
그러니까 그녀와 레안드로스에게 선택의 여지란 없었던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멜리아는 자꾸만 그 순간으로 되돌아갔다.
스스로에게 벌을 내리는 것처럼.
“개, 갤로에 간다면 가장 먼저 의, 의원을 찾아야 해요.”
“맞는 말씀이십니다.”
레안드로스가 수긍하며 자신이 안고 있는 검은 뭉치를 내려다보다가 덧붙였다.
“조금 걱정은 됩니다만.”
“네, 네?”
“……아닙니다. 귀담아듣지 마십시오.”
하지만 레안드로스는 아멜리아에게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았다.
아멜리아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레안드로스는 묵묵히 말을 몰기만 했다.
글리코에서 출발한 지 꼭 이틀째 아침.
최대한 빨리 말을 몬 덕분에 아멜리아와 레안드로스는 두 번째 목표지점인 갤로에 서둘러 도착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짐을 풀거나 여관을 잡을 새도 없이 마을에서 가장 실력이 좋다는 의원을 찾아갔다.
응급 상황을 겪어본 노련한 의원도 있겠다, 그를 거드는 조수도 많겠다.
이 정도라면 아렌하이트의 몸이 해동되었을 때를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은 기뻐하면서 서둘러 의원에게 아렌하이트를 보이려 했지만,
“이건…… 이건 죽은 사람이 아니오! 몸이 이렇게 싸늘한데 나에게 시체를 살려내란 말인가!”
“아,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에요! 이, 이건 마법으로 잠시 얼린 거예요!”
“죽은 사람을? 얼려서 데리고 왔다고? 그런 끔찍하고 무도한 짓이 있나!”
“엄연히 살아있는 분이시다. 잠시 진정하고 이야기를 끝까지,”
“나가! 당장 나가게, 내가 몇십 년 동안 의원 일을 하면서 이런 꼴은 듣도 보도 못했네!”
“자, 잠시만요!”
“내가 내릴 수 있는 진단은 당장 땅을 파서 그 사람을 묻어주는 것뿐이야! 재수 옴 붙게 하지 말고 당장 나가게!”
-쾅!
코앞에서 문이 부서질 만큼 거칠게 닫혔다.
레안드로스와 아멜리아는 벙찐 채로 문을 쳐다봤다.
아멜리아가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호, 혹시. 걱정된다는 말의 뜻이.”
“……죄송합니다, 영애. 미리 말씀을 드렸더라면 좋았을 것을.”
사정을 모르는 이들에게 아렌하이트는 싸늘한 시체로 보일 뿐이었다.
아멜리아는 머리가 다 아파왔다.
아렌하이트가 가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고 있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걸 어쩌지. 다른 의원도 분명 비슷한 반응일 것 같은데.
“……사, 사람을 차, 찾죠.”
“어떤 사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야, 시, 시체를 치료해달라고 해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 그런 사, 사람을요!”
그런 사람이 있다면 십중팔구 미친놈일 것 같습니다만.
레안드로스는 목 끝까지 올라온 말을 삼키고 가만히 잠든 아렌하이트를 내려다봤다.
어떤 시련이 있어도 잘 해결해주었던 공작님이 슬슬 그리워지고 있었다.
* * *
“아른트 님. 실례합니다.”
“급한 용무인가? 그런 게 아니라면 지금은 바쁘니 나중에 보고하도록 해.”
아른트는 최근 새로 배정받은 방에서 두문불출했다.
아놀드 남작 영애, 기사 레안드로스, 그리고 성의 주인인 아렌하이트가 하르트만 성을 비운 이후로 아른트는 눈코 뜰 새가 없었다.
기본적인 성의 관리며, 고용인 감시며, 늘 올라오는 비품 결재며 식재료 구입 내역까지 살펴봐야 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아렌하이트가 여행을 떠나기 전에 부탁했던 토지 임대 관련 업무까지.
아른트는 자신이 머리가 두 개고 손이 네 개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분명 재산이 바닥나는 것보다는 돈이 들어올 구석이 있는 게 좋지만 이건 좀 심한 게 아닌가.
아른트는 침침한 눈을 비비면서도 고개 한 번을 들지 않았다.
문가에서 고용인이 서성대는 기척이 느껴졌다.
“왜? 급한 일이야?”
“다른 게 아니라, 손님이.”
고용인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익숙한 음성이 불쑥 끼어들었다.
“여기는 공작님의 집무실이 아니잖아? 우리 공작님께서는 또 어디 가셨나?”
“에이슬링님!”
아른트가 벌떡 일어나자 그 바람에 위태롭게 쌓아둔 종이가 몇 장 떨어졌다.
아이든 에이슬링은 아른트의 반응에 움찔했다가 방 안을 둘러봤다.
“미리 연락하지 못하고 방문하게 되어서 면목이 없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은 대체.”
“별거 아닙니다. 공작님께서는 잠시 부재중이신데, 어쩐 일로 오셨어요?”
“공작께서? 멀리 가셨나? 임대 관련 계약서를 가져왔어. 이런 건 전서를 보내도 되겠지만 상대가 공작님이 아니신가. 그러니 내가 얼굴을 비출 수밖에.”
“곧 돌아오실 겁니다. 혹시 동부에서 여기까지 다시 오신 겁니까?”
“나온 김에 지부 관리 차원에서 돌아다녔지. 동부까진 가지 않았어. 그래도 계약서는 확실히 상단주인 아버님의 인가를 받았으니 안심하게.”
“제게 주시면 공작님이 귀환하셨을 때 바로 전달하겠습니다. 아, 그 전에 차라도 드시겠습니까?”
아른트는 허둥지둥하면서도 고용인에게 응접실에 다과를 준비하라고 명령했다.
그 사이에 아이든은 방을 둘러봤다.
있는 거라고는 손님용 의자, 책걸상, 작은 책장뿐인 단출한 방이었다.
하지만 책상에는 일감이 그득 쌓여 있었고, 책장에는 지금까지 완료한 일들이 잘 묶여서 정리되어 있었다.
분류를 위해 종잇조각에 메모를 해서 끼워 넣은 것까지.
능숙하지는 않지만 제법 노력한 티가 났다.
그걸 보던 아이든은 은근히 물었다.
“일이 많은 모양인데, 바쁘지 않겠나?”
“그렇다고 제가 방문객을 소홀히 대한다면 공작가의 명예가 실추될 겁니다. 게다가 에이슬링님은 공작님께서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이시니까요.”
“공작님께서?”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 남들보다 헐한 값으로 좋은 땅만 골라서 빌리도록 허락하셨겠습니까?”
빈틈없는 성실한 태도에 제 주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눈치까지.
아이든은 처음 동부에서 레안드로스를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구덩이에서 기어 나온 무시무시한 마수를 물리치고서도 보상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무심한 태도.
그런 힘을 가졌으면서도 욕심이 없는 태도에 한 번 반했고, 모든 영광을 제 주인에게로 돌리는 겸허함에 두 번 반했다.
그런데 이 시종도.
“글을 읽을 줄 아나 봐?”
“네……? 그야 이만큼이나 일을 했으니 당연히 읽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다소 복잡한 셈도 할 줄 알고?”
“성을 꾸려나가려면 당연한 소양이지요.”
“밤을 좀 새도 멀쩡하고?”
“그런 건 익숙합니다.”
“다 공작가를 위해서지?”
“당연한 말씀을요.”
공작은 이런 인재들을 어떻게 손에 넣은 걸까.
공작 본인도 나이에 비해 처세술이 뛰어나고 구렁이 담 넘어가는 듯한 언변과 화술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본인이 뛰어난 것과, 뛰어난 주변 인물이 모이게 하는 건 전혀 별개의 일이었다.
전자는 본인에 한정되어 있지만, 후자는 인간적인 매력과 사회성, 그리고 타인이 흠모할 만한 구석이 있다는 뜻이니까.
물론 자신도 아렌하이트 공작에게 호의를 품고 있기는 하지만.
“혹시 만약에 공작님께서 널 성에서 쫓아내시거든, 꼭 에이슬링 상단에 지원하게.”
“일어나지 않을 일인데도요?”
“응. 꼭 지원해. 임금은 확실히 챙겨줄 테니까.”
“농담도 잘하십니다. 그보다 공작님께 하실 말씀이 있지 않으신가요?”
“왜 그렇게 생각했지?”
“아무리 거래 상대가 공작님이라도 계약서 전달 같은 소소한 일로 직접 오실 리가 없잖습니까. 에이슬링님이 상단의 차기 후계자나 다름없다는 사실은 다들 알고 있습니다.”
“으음. 난감하군. 사실 공작님께 먼저 말씀드리려고 했지만.”
아이든은 작은 의자에 풀썩 앉았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임을 직감한 아른트가 그 앞에 섰다.
“좋지 않은…… 소식입니까?”
“왕세자 전하께서 황무지에 오셨어.”
“!”
“늦든 빠르든 일어나야 할 일이었지. 왕실에 투자하기로 한 상단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으니. 하지만 고작 그런 소식을 전하자고 다시 공작님을 뵈러 온 게 아니야.”
“그렇다면 왕세자 전하께서 무언가 다른 일을 하시기라도.”
“황무지를 통째로 사들이셨다.”
통째로? 쓸모없는 땅덩어리를?
아른트는 순간 이해가 가지 않아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되짚었다.
하지만 아이든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선명하고 명확했다.
“엄연히 말하면 그곳의 권리를 구입하신 것이지만.”
“왕세자 전하께서 왜? 아니, 그 전에. 왕실에서 땅을 매매할 수 있는 겁니까?”
“그곳 역시 왕국령이니 이상하게 들리긴 하겠지. 왕국법으로 따지면 소유주가 없는 땅은 왕실의 것이니까.”
“하지만 권리를 구입하셨다는 말은, 그러니까.”
“땅 이외에도 황무지 위에서 생겨나는 모든 것을 왕세자 전하께서 합법적으로 소유하시겠다는 뜻이지.”
확실히 이상했다.
아른트가 들은 바로는 동부의 구덩이에서 나오던 마수의 근원이 되는 놈을 레안드로스 경이 처리했다고 했다.
그 후로 구덩이의 위험성을 깨달은 투자자 역할을 하던 상단들이 디켄터 산맥으로 눈을 돌렸고,
동부의 구덩이에서는 마수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을 터였다.
다시 말하자면 현재 동부의 구덩이는 알이 모조리 깨진 새 둥지 같은 것.
설령 마수가 있다고 해도, 사업에 충분할 만큼 나오지는 않을 텐데.
유릭 왕세자는 왜 황무지를 통째로 사들였지?
빈 황무지에서 뭘 하려고?
“공작님께 바로 연락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임의로 판단할 문제는 아니군요.”
“디켄터 산맥에 대형 상단들이 몰리긴 했지만, 우리보다 규모는 작더라도 상단은 얼마든지 있어. 그쪽에서 뭘 하든 우리가 먼저 앞서나가야 해.”
“걱정 마세요. 공작님께서는 어느 정도 예상하고 계셨을 겁니다.”
“허어? 공작님을 너무 신뢰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그만큼 현명하신 분이시고.”
또 미래를 보셨으니까요. 무슨 수라도 있으시겠죠.
아른트는 그 말은 하지 않은 채 자리에 앉아 아렌하이트에게 보낼 편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편지를 받은 아렌하이트가 묘책을 내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시간,
아렌하이트의 몸을 입은 유예성은 드림랜드의 숲에서 도망치고, 또 도망치다가 낯선 도시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