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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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 처음 보는 집의 침실, 뒷마당, 창문, 지하실, 다시 골목길.
온갖 장소를 이동하면서도 사람은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점점 여기가 더미 세트장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저기 바깥, 마을의 중심부가 얼마나 멀어졌는지도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열 개도 넘는 문을 넘나들면서, 점점 내 쥐가 길을 잘못 들어선 게 아닐까 생각할 무렵.
열네 번째 문인 창문을 통해 다음 장소로 이동했을 때.
우리는 난생처음으로 북적거리는 길가에 내려왔다.
“여긴 뭐야? 왜 이렇게 많아? 혹시 우리, 다시 중심부로 돌아온 겁니까?”
아슬아슬하게 창문에서 내려온 베르데가 옷을 털다가 물었다.
처음에는 나도 그런 줄로만 알았다.
이제까지 사람이라고는 하나도 보지 못했는데 갑자기 번화가로 나오게 되다니.
하지만 레안드로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기에는 다른 점이 많군.”
“다르다고요? 아니, 대체 어디가?”
“사람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은 전부 밝고 행복해 보였다.
중심부의 광장이나 길목에 있던 사람들은 느긋하고 여유로워 보였지만, 여기의 사람들은 활기에 넘치는 발걸음으로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다들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하지만 한참을 자세히 보니 이상하게 어색했다.
그냥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아가기 때문에 만족을 느껴서 웃는다기보다는, 뭔가.
“왜 다들 기분 나쁘게 웃고 있죠? 왜 꼭 전염병이 도는데 자기 옆집이 걸려가지고 아이고 우리 집 아니라 다행이다, 하는 표정이냐고요?”
“베르데, 그렇게 느꼈어? 나도 뭔가 기분이 안 좋기는 한데.”
큰 재액을 피한 안도감에서 나오는 웃음이랄까.
다들 그런 미소를 띤 채로 지나다니고 있어서 기묘한 풍경을 만들어냈다.
다들 선뜻 나설 수 없던 차에 마침 앞을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 붙들었다.
“저기 실례합니다. 말씀 좀 여쭈어도 될까요?”
“저 말하는 건가요?”
여자가 이쪽을 향해 돌아섰다.
그녀는 상냥한 인상이었지만 얼굴을 본 우리는 다들 굳어버렸다.
“그, 죄송합니다만 그 얼굴은.”
“이거요? 최근이 되어서야 꼬투리를 달게 되었거든요. 운이 좋게도 옆집에서 부화에 성공해서요, 저한테까지 꼬투리를 나눠주시더라고요.”
“부화? 꼬투리?”
그녀의 반대쪽 얼굴 광대뼈 근처에는 달걀만한 회색 혹이 매달려 있었다.
하지만 여자는 자랑스럽다는 듯 그 혹을 쓰다듬다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꼬투리를 모르시나요? 대체 어디서 오신 거죠? 저 안쪽에서 온 게 아닌가요? 궁상맞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질려서 여기까지 온 줄 알았는데요.”
아니, 당신이야말로 어디 사람인 거야.
내가 쩔쩔매자 아멜리아가 나를 뒤로 당겼다.
“저, 저희가 마을에 정착한 지 어, 얼마 되지 않아서요. 그, 그래서, 이야기를 들려주시면 좋을 것 같, 아요.”
“그래요? 아직도 사람들이 이주를 하긴 하는군요. 어디부터 이야기해야 하지……. 아참, 꼬투리가 뭐냐고 물었죠.”
그녀는 자신의 회색 혹을 가리켰다.
“이게 꼬투리라고 하는 거랍니다. 이렇게 몸과 한 번 융합을 시켜두면, 이 꼬투리는 점점 자라서 부화하게 되죠.”
“부, 부화라고 하, 하신다면?”
“꼬투리 안에 있는 게 움직일 수 있게 되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우리의 정신과 자아는 부화한 것으로 옮겨가게 되거든요. 부화를 겪으면 지금의 빈 껍데기를 버리고 새로 태어날 수 있어요.”
빈 껍데기?
레안드로스가 물었다.
“빈껍데기는 육체를 말하는 거요?”
“맞아요. 이 몸은 너무 연약하지 않나요? 더 강하고 오래 살 수 있는 몸이 있다면 옮겨가는 게 당연하죠.”
“하지만 저 바깥의, 그러니까 중심부 사람들은 이런 혹을 달고 있지 않았는데.”
“그게 정말 안타까운 점이죠.”
여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마을이 이렇게 갈라진 건 오래되지 않았어요. 이 꼬투리가 마을에 나타나고, 꼬투리를 부화시킨 사람이 하나둘씩 생기면서 몸을 옮기는 것에 대해서 논란이 생겼거든요.”
“그쪽은 꼬투리를 옹호하는 쪽이겠군.”
“맞아요. 바보 같은 사람들. 아무것도 모르고 꼬투리를 몸에 옮겨 심는 게 무섭다면서 우리를 바깥으로 몰아냈죠. 그런 식으로 사는 건 인간답지 않다고요.”
베르데와 내 눈이 마주쳤다.
베르데는 완전히 광인을 보는 눈으로 여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레안드로스가 다시 물었다.
“우리가 마을에서 왔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가끔씩 생각이 변한 사람들이 어떻게든 여기로 넘어오긴 하더라고요. 그리고 길 가던 사람을 붙들고 꼭 꼬투리를 받을 수 있겠냐고 물어요. 이걸 보면 바깥의 사람들이 부화를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거 같아 안타까워요.”
그녀의 말에는 진득한 아쉬움과 가엾음, 동정이 배어 있었다.
부화가 이렇게 좋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대체 부화라는 건 뭐지?
내가 막 입을 열려고 했을 때 여자는 반색하더니 손뼉을 치며 한 곳을 가리켰다.
“저거 보세요, 저기 부화를 하네요! 길에서 하다니 좀 힘들긴 하겠지만 축하해줄 사람들이 많아서 좋겠어요.”
그녀가 가리킨 손끝에는 길가에서 엎어진 한 사람이 보였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컥컥거리는 소리를 내던 사람은 등에 셔츠나 조끼로도 다 가려지지 않는 거대한 혹이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금세 그 남자 주변으로 모여들어서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혹시 의원에 데려가기 전에 의식을 확인하는 건가 싶었지만, 언뜻 들리는 목소리는 전혀 아니었다.
“힘내! 조금만 버텨. 부화는 정말 한순간이니까 말이야!”
“그래. 별거 아니야! 이것만 참으면 영원히 살 수 있어. 조금만 힘내라고!”
웅성거리는 격려의 손길 가운데서 남자는 고통스럽게 온몸을 비틀며 침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어떻게든 기어가려고 개처럼 네 발로 땅을 긁던 남자는 순간 온몸의 핏기가 가신 것처럼 새하얀 얼굴로 엎어졌다.
곧 크게 부푼 등이 울룩불룩하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힘내! 조금만 견뎌!”
“지금이야! 지금이야!”
왁자지껄한 소음.
동시에 여기까지 쩌적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축축하고 얇은 살가죽이 힘없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조끼를 뚫고 무언가가 솟구쳤다.
수상쩍은 액체에 젖어 번들거리는 허여멀건 근육 다발이었다.
사방으로 홱홱 내젓던 것은 까칠한 바닥을 짚고 천천히 쓰러진 남자에게서 빠져나왔다.
창백한 근육과 촉수가 기생하던 등에서 끝없이 나왔다.
그사이에도 남자는 끊임없이 꿈틀거리며 기생충의 출산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그 작은 혹에 전부 들어 있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만큼의 크기가 길바닥에 널브러졌다.
거대한 회충같이 보이는 촉수의 끄트머리에서 금이 가더니, 점액질에 젖은 붉고 노란 눈이 근육과 촉수의 여기저기에서 눈을 떴다.
괴물의 마지막 촉수가 나오고, 남자의 등에 있던 갈라진 혹과 이어졌던 마지막 신경 다발이 끔찍한 소리와 함께 뚝 끊어졌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그거 봐, 할 수 있다고 했지!”
“장하다. 정말 장하다! 아직 어린 나이였는데!”
“벌써 이렇게 부화하다니. 정말로 좋은 꼬투리를 받은 모양이야.”
“고생했어! 이제 아무것도 힘들지 않을 테니 안심해.”
“그래, 길에서 부화하다니. 특별한 경험이었네!”
왁자지껄한 사람들 사이에, 그들보다 훌쩍 큰 괴물이 있었다.
끈끈한 촉수를 뒤틀고 기괴한 바람 소리를 내던 괴물의 머리에는 침을 흘리는 커다란 구멍이 있었다.
그 구멍을 통해 꺽꺽거리던 괴물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떠나, 느릿느릿 다시 길을 걸어갔다.
금세 자리를 떠나는 괴물의 뒷모습을 흐뭇하게 보고 있던 사람들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그렇군. 꼬투리를 챙겨야지.”
“어디 봄세. 깨지지는 않았는지 말이야.”
“껍데기도 조심해서 들어봐. 가끔 그 밑에 굴러 들어가기도 하더라고.”
그들은 축 늘어진 몸을 뒤적이며 몸 여기저기에서 무언가를 거두었다.
하나같이 붉은 피에 잠긴 둥그런 알이었다.
그렇게 알까지 전부 회수한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것까지 전부 본 여자는 감탄하며 말했다.
“저렇게 부화하는 걸 보는 건 쉽지 않아요. 게다가 꼬투리도 많이 남겨뒀잖아요. 저건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겠죠. 멋지지 않나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남자의 몸은 아무것도 남아있는 게 없이 텅 빈 것 같았다.
길바닥의 돌 틈새를 따라 흐르는 핏줄기가 유독 빨갛게 보였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그 ‘껍데기’를 무시하고 가던 길을 가고 있었다.
레안드로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좋은 정보, 고맙소.”
“뭘요. 궁금한 게 있다면 여기 있는 사람들은 전부 알려줄 거예요. 친구를 만드는 건 즐거우니까요. 바깥의 사람들도 기꺼이 받아들이면 좋을 텐데.”
그녀는 잠시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네요.”
그렇게 말한 여자는 가볍게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
아멜리아가 말을 더듬었다.
“그, 그렇게 될 날이, 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무, 무슨 말, 이죠? 혹시, 혹시 저게.”
“말하지 마세요, 아멜리아 양. 듣는 귀가 아직 많으니까.”
지나가는 사람들의 몸 어딘가는 괴상하게 부풀어있거나, 회백색 알이 달려 있었다.
이 뒷골목은 밖에서 들어오는 침입자를 막는 용도가 아니었다.
밖과 안이 서로 통할 수 없게 하는 용도였다.
공간을 비틀어서 누구도 들어갈 수 없고, 또 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미로.
중심부에 살던 몇몇 사람들은 끈질긴 도전 끝에 여기까지 도달했다고 하니 아주 완벽한 건 아닌 모양이었지만.
그래서였나?
외지인들에게 어떤 말도 해주지 않은 이유가,
마을 주민들이 이상을 느끼지 못할 리도 없는데, 그렇게 평화롭게 일상을 영위하는 것처럼 보였던 게.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중심부와 외곽, 두 구역을 차단하는 게 최선이라고.
그런데 만일 이들이 저 알을 바깥으로 내보냈다가는.
“……돌아가자.”
“도, 돌아가자고요? 하지만, 이, 이렇게 두고 볼 수는.”
“그냥 두고 본다는 게 아니야. 저 괴물의 정체를 알아내야 해.”
마도서 프나코틱을 가지고 와야 했다.
그 책에서 괴물에 대한 정보를 읽은 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계획을 세워야 했다.
나는 바닥에 웅크려서 죽은 남자의 몸을 보며 입맛을 다시던 쥐를 안아 올렸다.
주름진 얼굴의 까만 눈이 데굴데굴 굴렀다.
-가. 친구를 데리고, 이 주변을 늘 둘러봐. 나에게 전해줘. 빠짐없이. 그리고 돌아오면 좋은 걸 주지.
인면서가 고개를 이리저리 기웃거렸다.
좋은 게 뭔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내가 도로 쥐를 내려놓자, 쥐는 금세 건물 사이로 몸을 숨겼다.
“이쪽의 동태는 알 수 있을 거야. 이 사람들이 마을 쪽에 무슨 짓을 하기 전에 빨리 가자.”
“공작님.”
“왜?”
발길을 돌리던 차에 레안드로스가 뒤에서 불렀다.
그는 굳게 결심한 듯 말했다.
“저는 여기 남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