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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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불타고 있었다.
맹렬하게 타오르는 화염은 사람이든 건물이든 가리지 않고 집어삼켰다.
바람에 반짝거리는 불티가 날리고, 거리는 새카만 연기로 가득 찼다.
거리를 느릿느릿 활보하는 창백한 촉수 덩어리는 머리처럼 보이는 입을 힘없이 덜렁거리고 있었다.
검댕투성이인 사람들은 온 힘을 다해 달리고 있었다.
마치 사자를 목격한 가젤 무리처럼 공포에 질려 한쪽으로 돌진하는 인간들.
그런 군중을, 사람의 물길을 홀로 거슬러 올라가는 남자가 있었다.
오른손에는 그의 낡은 애검을,
왼손에는 불길 속에서도 녹지 않는 얼음으로 만들어진 푸른 검을 쥐고 있었다.
나는 그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최선을 다해서 그 사람에게 가려고 했지만, 다리가 천근이라도 되는 것처럼 무거워서 도저히-
“-공작님!”
“허억.”
꿈이었나?
바로 코앞에서 아멜리아가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놀라서 벌떡 일어나 주변을 둘러봤다.
온통 어둡고, 컴컴하고, 까마득히 위에 나 있는 작은 창문에서 흘러들어오는 빛줄기 외에는 불빛이라곤 없었다.
여기는 어디지?
아멜리아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 일어나셔서, 다, 다행이에요.”
“어떻게 된 거죠? 촌장은? 분명히 그때.”
“여, 여기는 아, 아무래도 광장에 있던 서, 석조 건물인 것 같아요. 노, 높은 탑 같은 거……. 기, 기억나세요?”
“그게 여기라고요?”
마지막으로 회관에서 질질 끌려 나가던 건 기억이 났다.
온몸이 마비된 것 같이 꼼짝할 수가 없었다.
아마 촌장이 직접 내어줬던 물 때문인 것 같았다.
이 교활한 놈.
아멜리아는 구석에 힘없이 누워있는 베르데를 가리켰다.
“아, 아무래도 제, 제가 가장 먼저 깨어난 것 가, 같아서요. 주, 주변을 살펴봤는데 도, 도저히, 빠져나갈 구멍이. 그, 그리고, 이 의원은 여태까지 이, 일어나지 않았어요.”
“우리가 먹은 게 뭐였던 것 같아요?”
“시, 신경을 마비시킨다던가, 그, 그런 종류의……. 하, 하지만 죽일 생각은 아, 아니었나 봐요.”
아니, 죽일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바닥에는 지푸라기가 깔려 있었고, 작긴 하지만 저 위에 창문이 달려 있는데도 벽이 축축했다.
한쪽에 난 문은 살펴보지 않아도 단단히 잠겨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돌을 쌓아서 생긴 틈새에는 미끄러운 이끼도 만져졌다.
떠올리기도 싫지만, 굳이 비유하자면 이 세계에 갓 빙의했을 때 남부에서 갇혀 있던 창고와 비슷했다.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요?”
“모, 모르겠어요. 아, 아직 몸이 잘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아서.”
[아멜리아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남이 주는 음료를 받아 마셨다는 사실이 창피했다.전 공작부인이 아셨다면 필히 경을 치셨을 텐데.]
그녀의 뒤로 흐린 서술이 깜빡거리며 돌아다녔다.
아멜리아가 빠져나가지 못한다면 자신이나 베르데도 도망칠 구석이 없다는 거다.
나는 문을 잠시 노려봤다.
인면쥐를 사용해서 이 탑의 열쇠를 훔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 방법밖에 없었다. 하지만 열쇠의 위치를 모르니까 탐색부터 해야겠지.
그럼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는 거고.
그 사이에 레안드로스에게 위험한 일이 생길지도.
아멜리아가 초조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바, 밖에 누군가가 서, 서 있을 것 같아요. 그, 그리고, 지키는 사람이 없다고 해도, 여, 여기는 광장이니까, 돌아다니는 사람도 마, 많을 테고.”
“나갈 대책을 강구한다고 해도 보는 눈이 적은 밤까지는 꼼짝도 할 수 없다는 이야기네요.”
나와 아멜리아는 울 것 같은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다.
이걸 어쩌지.
완전한 외통수였다.
* * *
매끈하게 새하얗기만 하던 눈사람의 얼굴에서 겨우 까만색 눈이 드러났을 때,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눈사람은 머리만 빙그르르 돌려 주변을 봤다.
“위대하신 아품 자님의 분신이 일어났다. 다들 어디 갔다? 무릎 꿇고 경배하지도 않는다. 미쳤다? 다들 제정신이 아니다?”
눈사람의 끄으응, 하는 소리와 함께 동그란 몸이 조금씩 흔들렸다.
흔들리다가 마룻바닥으로 털썩 떨어진 몸에서는 짧고 통통한 얼음 팔다리가 쑥 튀어나왔다.
잠시 비틀거리던 눈사람은 드디어 제힘으로 일어날 수 있었다.
“위대한 나님, 등장했다. 내 신자 어디 갔다? 불경한 태도 알고 있다. 하지만 건방지다.”
다행스럽게도 눈사람은 아렌하이트의 마력을 양분으로 삼아 움직였기에, 그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않다면 어디에 있든 추적할 수 있었다.
눈사람은 아렌하이트를 깜짝 놀라게 해주자는 마음으로 폴짝폴짝 뛰며 방을 가로질렀다.
객실을 빠져나오자마자 팔다리를 집어넣고 동그란 얼음덩어리로 변장한 눈사람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슬금슬금 굴러갔다.
먼지 쌓인 복도를 지나고,
여기저기 움푹 패인 계단도 통통 굴러 내려가고.
그렇게 여관의 1층에 도착한 눈사람은 벽면을 따라 데굴데굴 구르다가 잠시 멈췄다.
멈춘 이유 중 첫 번째는 여관의 문이 굳게 닫혀 있었기 때문이었고,
두 번째는 여관에 모인 사람들의 대화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놈들은 다 거기에 가두어뒀다고?”
“그래. 지금은 다들 돌아가면서 주변을 지키고 있어.”
“마을의 일이 밖으로 퍼져나가면 곤란하지. 그냥 여행자처럼 편히 쉬다가 순순히 떠나면 좋았을 것을.”
“뒷골목으로 통하는 그 아티팩트를 강화할 필요가 있어. 이거 봐, 저놈들이 아니더라도 그쪽으로 사람이 달아나는 건 가끔씩 있던 일이잖아.”
웅성거리는 목소리는 무언가가 바닥을 쾅쾅 치는 소리에 멈췄다.
“다들 조용히 하게! 그 빨간 머리와 일행은 가두어뒀으니, 아티팩트를 보강할 때 요긴하게 사용하도록 하세.”
빨간 머리?
얼음 구체인 눈사람은 스르륵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굴러갔다.
노인의 엄격한 목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바로 마을 바깥의 것이야. 그들이 조만간 여기에 그 알을 뿌린다는 소식이 있어. 어떻게 여기로 쳐들어올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라네.”
“하지만 장로님, 어떻게 아티팩트를 뚫고 여기까지 올 수 있겠습니까? 그것들은 부화하고 나면 지능이 심각하게 떨어집니다. 중심부까지 오려고 해도 헤맬 거예요.”
“하지만 이쪽에서 간 사람들이 있었네. 그렇다면 저쪽에서 올 수도 있다는 거겠지. 그 사실만큼은 분명하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누군가가 조심스레 물었다.
“하지만, 이 이상 어떻게 대책을 세워야……. 저희는 할 수 있는 걸 다 하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 철저할 순 없습니다.”
“막을 대책이 아니라네. 바로 저들을 먼저 공격하기 위한 대책이지.”
누군가가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다시 웅성거림이 시작되었지만, 장로라고 불린 노인은 침착하게 말했다.
“그자들과 반목하게 된 이후로 우리는 늘 저들을 경계해야 했네. 저들이 뿌리는 그 알은 타락의 상징이요, 인간됨을 부정한다는 증거일세. 그자들을 마을에서 완전히 몰아내지 않는 한 우리는 소중한 사람들이 결국에는 타락의 길로 들어서는 것을 보며 눈물을 흘리게 될 걸세.”
“하지만 장로님.”
“내 자네가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네. 물론 여의찮다면 이 마을을 떠난다는 선택지도 있겠지. 하지만 자네 부모가 살아온 집을 버릴 수 있겠나? 아니면, 자네가 이제까지와 다른 삶을 꿈꾸며 지었던 새집과 터를 두고 떠날 수 있겠나?”
사람들은 다시 조용해졌다.
장로는 소리를 한층 더 높였다.
“저 이교도들, 영생에 눈이 멀어 인간이 되기를 포기한 놈들! 저놈들을 마을에서 몰아내야 하네. 그렇지 않으면 갤로는 인간의 마을이 아니라 괴물들의 마을이 될 걸세!”
“마, 맞아. 몰아내자. 원래 여기는 인간의 땅이야!”
“그래, 저런 괴물들이 있을 곳은 없다고!”
“내쫓아버리자! 되찾자!”
“불태워버리자,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
“왜 우리가 중심에 처박혀서 겁먹고 있어야 해? 해치워버리자!”
흥분한 목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불태우자, 없애버리자, 죽여버리자!
얼음이 된 눈사람은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살그머니 뒤로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눈사람 앞을 가로막는 생물체가 있었다.
“잡종이다? 괴물쥐가 왜 여기 있다? 비키지 않는다? 이렇게 보여도 무서운 얼음이다. 무엄하다?”
인면쥐는 늙은이의 얼굴을 눈사람에게 들이대며 냄새를 맡았다.
눈사람이 이리저리 피하려고 굴러다니며 외쳤다.
“무엄하다! 위대하신 아품 자의 분신이다! 예의를 갖춘다! 경배한다! 냄새나는 놈이다!”
눈사람이 떽떽거리는 소리에 겁을 먹었는지 인면쥐는 잠시 물러났다.
그러더니 쥐는 뒷발로만 서서 눈사람을 덥석 집었다.
“아?”
쥐가 그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눈사람은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난데없이 들리는 울부짖음에 당황해서 발아래를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무엄하다! 무엄하다! 미친 쥐다! 신자! 신자아아! 살려준다! 신자아아아아아아아!”
인면쥐는 사람들의 발 사이를 요리조리 피하며, 문 옆에 뚫려있던 작은 구멍을 통해 밖으로 도망쳤다.
인면쥐의 힘이 어찌나 센지, 눈사람이 함부로 도망칠 수도 없을 정도였다.
평소 같으면 아예 얼려버리기라도 했을 텐데 하필 막 깨어난 직후라 신자에게서 마력을 왕창 끌어올 수가 없었다.
눈사람은 고귀한 극권의 군주로서 난생처음 당해보는 폭거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신자아아아아아!”
도망친 쥐는 사람들 사이를, 빈집의 가재도구와 가구 사이를, 뒷마당의 높게 자란 풀 사이를 비집고 달렸다.
동그란 얼음을 꽉 쥔 쥐가 두 발로 달리는 모습은 실로 기묘한 광경이었다.
눈사람의 괴성은 뒷골목으로까지 이어졌다.
분노했다가 애원했다가 죽여버리겠다고 협박까지 메들리를 부르던 눈사람의 비명이 멈춘 것은,
커다란 손이 인면쥐한테서 눈사람을 뺏은 후였다.
“어디서 많이 들었던 목소리더라니. 왜 이런 곳에서 난동을 피우고 있는 거지?”
“인간 남자!”
눈사람은 반가워서 눈물이 쪼록 흐를 뻔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눈사람이 인간이었다면 이야기지만.
눈사람은 그의 손에 붙들려 버둥거리면서 팔다리를 쑥쑥 빼냈다.
“저 하찮은 괴물쥐 놈이 미쳤다. 나를 여기까지 들고 왔다. 벌 받는다! 저놈을 얼린다! 뇌까지 얼려서 빙하 밑바닥에 처박는다!”
“납치된 주제에 말이 많군.”
레안드로스가 눈사람을 내려주자, 눈사람은 알아서 레안드로스의 발등 위로 기어올랐다.
“위대하신 이 몸, 너그럽다. 그런데 여기 어디다? 뭐 하는 곳이다?”
“네가 알 필요 없는 곳.”
길가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까 여관을 막 벗어났을 때와는 완전 딴판이었다.
다른 길로 들어온 건가 싶었지만, 기쁜 듯 몰려다니며 왁자지껄 떠드는 사람들을 보자마자 이상한 점이 눈사람에게도 보였다.
“■■-■■■■의 자식이 왜 여기 있다? 이상하다. 여기가 그녀가 둥지를 튼 곳이다? 아직이다. 아무것도 못 느꼈다.”
“뭐라고?”
“■■-■■■■의 자식이다. 부화하지 않은 알이다. 콩의 여문 꼬투리다. 사람이나 동물에게 기생한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수는 처음이다.”
레안드로스는 잡음이 섞여서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던 그 이름을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몸에는 크든 작든 회백색 알이 하나씩 달려 있었다.
“자식이 이렇게나 많으면 고생이다. 고생은 사서도 한다? 바보다. 부화한 자식도 꽤 많이 있다. 그건 느껴진다.”
“저 회색 알을 말하는 것 같은데. 한 장소에 자식이 많이 부화하면 어떻게 되지?”
“인간 기사, 그것도 모른다? 그야 어머니가 알게 된다.”
“어머니?”
어머니라는 건 뭘 말하는 거지?
하지만 그 전에 눈사람이 레안드로스의 의문을 깨끗하게 날려버렸다.
“여관에서 사람들이 말한다. 불태운다. 싹 다 없앤다. 그거 유효하다. 이렇게나 자식이 많다? 인간은 전부 죽는다. 자식의 숙주가 된다. 그리고 어둠의 어머니 온다. 마을 불탄다. 불구경한다. 다들 사라진다. 여기 있는 인간, 전부. 목숨이 아깝다? 도망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