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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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다! 인간!”
멀쩡했던 돌바닥이 순식간에 북부의 설원처럼 얼어붙었다.
촉수가 움직임을 방해하는 얼음에 붙들린 사이, 날카로운 검격이 수없이 겹친 우둘투둘한 근육을 베어냈다.
묵직한 촉수들이 바닥으로 떨어져 꿈틀거렸고, 사방으로 터진 점액이 벽에 달라붙어 끈끈하게 흘러내렸다.
누가 봐도 역겨워할 장면이었다.
그러나 레안드로스는 표정의 변화 하나 없이 바닥에서 경련하는 마수에게 다가가 촉수의 중심부를 헤집었다.
그 안에는 콩콩 뛰는 주먹만 한 붉은 심장이 촉수와 융합된 것처럼 달려 있었다.
레안드로스의 품속에 있던 눈사람이 심장을 보고 말했다.
“얼마 되지 않았다. 인간 심장이다. 맞다?”
“그렇군. 변형되지 않은 걸 보니 최근에 부화했어.”
그가 손에 힘을 주자, 쥐고 있던 심장이 툭 하는 소리 하나 없이 뭉그러졌다.
그와 동시에 들썩거리던 촉수도 발악을 멈추고 잠잠해졌다.
더러워진 손을 털고 일어난 레안드로스가 물었다.
“공작님이 계신 곳은 아직 멀었나?”
“신자, 근처다. 여기 맞다. 곧이다.”
눈사람의 인도에 따라 광장에서 마을 안으로 뛰어든 레안드로스는 괴물을 몇 번씩이나 조우했다.
눈사람이 있었기에 망정이었지. 하마터면 힘든 싸움이 될 뻔했다.
‘아무런 지식도 없이 괴물을 상대하는 건 좋지 못한 전략이니.’
어떤 신의 권속이라고 했나.
권속이 내린 축복은 본래 마땅히 아렌하이트 공작에게 가야 했다.
하지만 공작님은 자신에게 축복을 양보했다.
레안드로스는 축복을 받는 대가가 뭔지 아직 몰랐지만, 공작님이 그를 무척이나 위한다는 사실만은 이해하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인 전 공작부인이 그랬듯이.
그러니 공작님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은 자신의 임무였고, 어겨서는 안 될 일이었다.
조급한 레안드로스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눈사람이 한쪽 길을 가리켰다.
“이쪽이다. 인간. 이쪽으로 가라.”
레안드로스는 군말 없이 눈사람이 지시하는 대로 따랐다.
주변을 경계하며 빠르게 걷던 레안드로스가 문득 고개를 들고 냄새를 맡았다.
“타는 냄새가 나는군.”
“인간. 위대하신 이 몸. 코 없다. 장난?”
“이쪽으로 가는 게 맞긴 한 건가?”
“이 몸을 무시? 장난?”
아무래도 예감이 좋지 않았다.
레안드로스가 꺾인 길을 도는 순간, 그는 밤하늘에 퍼진 검은 연기를 발견했다.
그 연기의 근원은 이 구획 안에 있었다.
눈사람이 가리켰던 방향과 일치하는 쪽으로.
진짜로 돌겠군.
다급한 마음에 점차 발걸음이 빨라졌다.
마침내 그는 그토록 찾아 헤매던 공작을 발견했다.
하지만,
불타는 여관과 점점 더 크게 번지는 화재,
온몸에 혹이 달린 채로 도망가거나 주저앉은 사람들.
창백한 촉수를 휘두르는 괴물.
그 앞에서 불붙은 의자 다리를 쥐고 서 있는 아멜리아와 겁먹은 베르데.
그들의 뒤로, 유독 피처럼 붉은 책을 펼친 채 서 있는 아렌하이트.
매캐한 뜨거운 공기가 거리를 덮치며 불길의 색을 가진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아지랑이 너머로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아렌하이트의 눈이 커지며 입이 벙긋거렸다.
레안드로스는 그게 자신의 이름일 것이라 확신했다.
그래서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차가운 검을 들고 달렸다.
* * *
주인공은 언제나 위기에 빠진 조연을 향해 달려오는 법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 속의 주인공인 레안드로스도 그 법칙에서 어긋나지 않았다.
레안드로스가 바닥을 짚자 서리가 하얀 길을 그리며 뻗어나갔다.
그 길 위에 있던 촉수 위로 얼음이 빠르게 퍼져나갔고, 번들거리는 촉수가 매끄럽게 얼었다.
근육질의 촉수가 순식간에 무거운 돌덩어리가 되자, ‘슈브-니구라스의 자식’은 얼어붙지 않은 촉수를 휘둘렀다.
팔뚝만 한 촉수가 레안드로스의 검을 휘감았다.
하지만 그가 검을 버리자마자, 하얀 검은 흔적도 없이 순식간에 녹아버렸다.
곧바로 새로운 얼음의 검을 주조해낸 레안드로스는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공중에 뜬 목표물을 겨냥하는 촉수의 기세는 매서웠지만 레안드로스는 그 움직임을 예상하기라도 한 것처럼 움직였다.
날렵하고, 군더더기 없다.
그가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얇은 얼음조각이 더운 공기 중으로 반짝거리며 흩어졌다.
흩날리는 얼음 파편에 불길이 비쳤다.
조금만 정신을 놓고 있으면 홀릴 것같이 아름답게 보이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넋을 빼버릴 수는 없었다.
레안드로스가 마수를 상대하며 관심을 돌리고 있을 때가 기회였다.
“다들 뭐 해요, 도망가라고요! 여기서 이대로 타죽을 거 아니면 빨리 가세요!”
아직까지 주저앉아있는 사람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제야 정신이 든 것처럼 움찔하던 사람들은 불붙은 간판이 제 앞에 떨어지자 화들짝 놀라며 불길을 피해 도망갔다.
그다음은 아멜리아와 베르데였다.
“아멜리아 양, 아까 들었겠지만, 아직도 집 안에 몸을 숨기고 있는 사람들이 있나 봐요. 다들 대피시켜야 합니다.”
“그, 그럴게요. 가, 가능하면 빨리 밖으로 데, 데리고 나가겠습니다.”
“베르데도 아멜리아와 함께 가줘. 사람들을 가능한 마을 밖으로 피신시키는 게 먼저야.”
“내가요? 저도요? 같이? 이 여자랑 같이 단둘이서 사람들을 구출하라고요? 여길 돌아다니다가 개죽음당할지도 모른다고요! 그건 절대 반대거든요?”
“고, 공작님이 말씀하시는데 지금 어, 어디서 감히 천둥벌거숭이처럼…….”
“그래, 레안드로스와 함께 있으면 목숨을 구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질지도 모르지.”
아무래도 주인공이고, 우리 중에서 가장 잘 싸우니까.
베르데가 레안드로스 근처에 있으려는 이유도 이해가 갔다.
근데 말이다.
“이제부터 나랑 레안드로스 경은 마수를 죽이러 갈 거거든. 혹시 한 열 마리가 넘는 촉수 마수 떼에게 둘러싸이고 싶다면야 말리지는 않-”
“가엾은 마을 시민을 구하는 게 의원이 해야 할 일! 이왕 이렇게 된 거 빨리 마을을 빠져나가죠!”
그래, 그게 안전할 확률이 더 높다니까.
그새 눈이 세모꼴이 된 아멜리아를 질질 끌고 사라지는 베르데를 보냈다.
그 사이에 레안드로스는 촉수가 거의 다 얼어서 꼼짝도 못 하게 된 슈브-니구라스의 자식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그것이 침을 흘리는 이빨로 레안드로스의 망토를 물어뜯었고, 천이 찢기는 소리와 동시에 머리에 길쭉한 얼음검이 내리꽂혔다.
퍽하고 뭔가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레안드로스 경!”
“공작님, 무사하십니까?”
“신자! 불경하다! 이 몸을 두고 도망갔다! 신자!”
레안드로스의 가슴을 감싼 가죽 경갑의 띠에 매달려 있던 눈사람이 버둥거리며 떨어졌다.
땅을 구르고 아장거리면서 다가온 눈사람을 들어 올리자 눈사람은 얼어붙은 눈물을 펑펑 흘렸다.
“드림랜드에서 신자 도왔다! 그런데 신자 사라졌다! 이 몸만 두고 갔다! 냄새난다! 쥐새끼 냄새도 난다! 신자! 나 버렸다? 배은망덕하다? 나 없이 잘되나 본다! 파면이다! 파면이다!”
“진정해봐, 이건 그럴 사정이 있었어. 나중에 다 설명해줄게.”
보호자를 찾은 미아의 대사 아니냐, 이거.
얼음을 쏟으면서 어깨 위로 올라온 눈사람을 만져주면서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눈사람을 보는 레안드로스에게 칭찬을 건넸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어.”
“다치신 곳은 없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그 눈사람이 말하길, 공작님과 두 사람이 광장에 갇혔다고 했습니다.”
“시기가 안 좋았어. 마을 중심을 외곽과 분리하려고 사람을 연료로 하는 아티팩트를 사용하고 있던 모양이야. 그걸 위해 붙들렸거든. 저쪽은…….”
“단체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무엇을 하려는지는 모르겠지만, 꼬투리라고 불리는 회색 알을 가루 내어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가루?”
서서히 감이 잡혔다.
마수가 되길 선택한 사람들은 직접 알에 접촉한다.
하지만 이쪽 사람들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어떤 식으로라도 알에 접촉하게 만드는 것이다.
가루로 만들어서 접촉하는 방법도 유효한 모양이지.
아까 숄을 뒤집어쓰고 있던 사람이 무슨 수로 주변에 있던 사람 대여섯을 한꺼번에 전염시킨 건지 이제야 이해가 갔다.
“당장 아티팩트를 조종할 사람이 없어. 이대로 마수가 마을 밖으로도 퍼져나갈지도 몰라.”
“마수로 분류할 수 있는 겁니까?”
“슈브-니구라스의 자식들이라고 해. 사악한 풍요를 관장하는 여신의 자식. 엄밀히 말하자면 그녀의 여러 자식 중 하나겠지만.”
순간 레안드로스의 낯에 당혹스러운 빛이 스쳤다.
“슈브-니구라스, 라고요.”
“여기서 이럴 시간 없어. 지금도 계속 마수들이 부화하고 있다고! 자식들이 많아지면 어미가 찾아오기 마련이야. 그 전에 어떻게든 조치해야-”
-딸랑.
매운 연기를 뚫고 종소리가 들렸다.
종탑이 움직이면서 내는 웅장한 소리가 아니라, 소름 끼치게 선명하고 아름다운 소리였다.
종소리는 하나씩 더해지더니, 이윽고 수천 개의 유리종이 한꺼번에 울리는 것처럼 웅장해졌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감상적인 소리에 우리는 잠시 말을 멈췄다.
어깨 위에 올라앉았던 눈사람이 작게 말했다.
“그녀가 왔다. 아이들의 기원을 들었다. 그녀가 왔다. 신자. 조심한다. 도망친다.”
그녀, 슈브-니구라스.
제 배로 낳지 않은 아이들이 도륙당하며 내지른 소리 없는 울음을 듣고 찾아온 모신(母神).
레안드로스는 눈사람의 말을 듣자마자 내 손목을 잡고 전체가 불타고 있는 길을 등지고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레안드로스!”
“당장 맞설 수는 없습니다. 이제까지 싸워왔던 것과는 존재 자체가 다른 것이 아닙니까.”
“맞아. 그런데 이대로 도망가려고? 여기를 내버려 두고?”
“불타서 무너지는 잿더미 속에 파묻히는 것보다 낫겠지요.”
“유릭 왕세자가 건 조건을 잊었어?”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라고 했습니다만, 공작님.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겁니다. 괴물로 변한 인간들의 마음을 얻을 필요는 없습니다.”
“아냐, 사람들이 있어.”
레안드로스는 답하지 않고 달리기만 했다.
아까 길가에 서 있는 동안 연기를 좀 마셔서 그런가, 숨이 계속 차올라서 기침과 가쁜 호흡이 동시에 나왔다.
“그래서 아멜리아와 베르데를 먼저 보낸 거야! 사람들이 남아 있으면 구할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그녀’는? 어떻게 처리하시렵니까?”
“그걸 위해서 네가 여기에 있는 거야.”
간신히 손을 비틀어 레안드로스에게서 빼냈다.
레안드로스는 나를 돌아봤다.
“무모합니다. 신을 죽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형태를 갖춘 것이라면 잠시만이라도 물러나게 할 수 있어. 시간을 버는 게 우리가 이기는 거야.”
“형체를 가진 신을 격퇴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나는 형체를 갖춘 신을 죽인 자를 알고 있었다.
그는 이번 회차에서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와 함께했던 신살의 기억만큼은 내가 가지고 있었다.
여기는 그때의 북부처럼 전설에 기반한 스토리라는 특이한 환경적 조건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신을 죽일 수 있는 완벽한 열쇠를 쥐고 있었다.
“그래, 신을 인간이 죽인다는 건 어떤 금서에서도 등장하지 않거든.”
“그렇다면 서둘러 여기를 빠져나가면.”
레안드로스가 서둘러 말했지만,
나는 어깨에 앉은 눈사람을 들어서 바닥에 내려놨다.
눈사람이 나를 올려다봤다.
나는 그것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신은, 같은 신을 죽일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