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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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오라고?
바쁠 촌장이 다른 도시까지 제 발로?
어이가 없었다. 이런 행정이 용납된다니.
여기가 한국이었으면 벌써 해당 공무원에게 민원이 오백 건은 들어갔을걸?
하지만 말도 안 되는 폭정도 뻔뻔하게 거행되는 게 이 고지식한 중세 계급 사회였다.
“대리인이 이래도 돼요? 왕실 어쩌고 속령이잖아? 왕실에 귀속된 영지를 관리하는 게 자기 일인데도?”
“그, 그렇기는 하지만. 피,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이 정도면 어지간한 ‘피치 못할 사정’으로는 감당이 안 될 것 같은데요.”
이걸 어쩌냐.
“아멜리아 양,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데 갤로의 촌장은…….”
“찾아보고는 이, 있는데. 다친 사람들을 돌보는 게 우, 우선이라서요. 인력이 여, 영 없는 탓에 진전이 안 보이네요.”
갤로의 촌장은 한순간 미치광이로 전락했다.
지금 와서 그를 찾는다고 해도 제정신으로 돌아올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그러니까 왜 마도서를 함부로 읽어서는.
“촌장은 가족이 없었답니까? 자식이라도?”
“가, 가족들이 저, 전부 저쪽으로…… 그러니까, 마수종이 되, 되는 방법을 택했다고, 들었어요.”
“저런. 촌장은 꽤 늙지 않았어요? 물려줄 사람을 사전에 지정해두었다던가. 그런 건?”
“어, 없는 모양이에요.”
“젠장.”
아멜리아가 ‘고, 고운 말을 쓰세요!’라고 주의를 주었지만 내 귀에는 들리지도 않았다.
이를 어쩐다.
이 마을에는 촌장도 후임자도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스스로 추스르기도 벅찬 상태였다.
아멜리아가 끙끙거리며 고뇌하는 나를 보고는 슬쩍 불렀다.
“고, 공작님.”
“생각 좀 해볼게요. 일단은 마을 사람들에게 조력하는 방침을 유지하는 걸로 하죠. 레안드로스 경에게도 전달해주세요.”
“네, 알겠습, 니다. 식사는.”
“생각이 없네요.”
“그럼 쉬, 쉬세요.”
아멜리아는 켜두었던 등잔불까지 끄고 나갔다.
이불 안에 있던 눈사람이 물었다.
“신자. 발렌타인 도시, 간다?”
“내가 왜 가. 난 성으로 돌아가기로 결정 내렸어. 레안드로스도 내 도움이 더 이상 필요 없을걸,”
“결정했다?”
“가봤자 어디서 실컷 구르기만 하고 오겠지. 귀찮은 일만 생길 거 아냐? 이럴 바에야 몸 좀 사리는 게 나아.”
“내가 신자 다치게 했다. 신자, 화났다?”
“화났다기보다는 이게 내 운명 비슷한 거라서.”
아품 자가 아니었더라도 분명 크게 다쳤을 것이다. 조연의 운명이라는 게 그런 거니까.
그래서 거기에 대해서는 별로 화가 나지 않았다.
눈사람은 더 말하지 않고 어기적거리며 내 옆구리에 붙었다.
싸늘한 냉기가 상처와 멍으로 부은 살을 식혀주었다.
* * *
다음 날.
나는 침대 신세를 이르게 청산했다.
조금 무리하고 있긴 하지만 곧 성으로 돌아갈 예정이니까.
떠나기 직전까지 누워있고 싶지는 않았다.
아침부터 베르데가 퀭한 몰골로 내 방까지 와서 상처를 점검하고 붕대를 갈아주었다.
“아, 진짜 너무 졸립니다. 공작님, 저 죽을 것 같아요. 그냥 죽으면 안 됩니까? 대체 환자를 몇 명이나 돌봐야 하는 거야…….”
“죽기 전에 날 완치시키고 죽어. 지금 내가 이 상태로 걸어 다녀도 괜찮을까?”
“무슨 눈도 깜짝 안 하세요? 냉혈한인가?”
베르데는 붕대를 고정시켜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침대에 기대놓은 엉성한 목발을 내게 쥐여준 그는 또박또박 말했다.
“뛰지 마시고. 제발 꼭 부디 걸어 다니시고. 숨 크게 들이쉬지 마시고. 흥분하지 마시고. 무거운 거 당연히 들면 안 됩니다. 무리도 하면 안 됩니다. 그랬다가는…….”
“그랬다가는?”
“공작님의 몸을 해부할 기회를 제게 주시게 되겠죠. 저는 물론 좋습니다. 이야! 10년 살아도 오지 않는 이런 기회! 저는 아주 환영합니다!”
으. 지금 베르데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데.
박수 소리를 감칠맛 나게 쫙쫙 치는 베르데를 뒤로하고 목발을 짚으며 방을 걸어 나왔다.
느릿느릿 밖으로 나서니 간만에 보는 햇빛이 따가웠다.
눈을 찌푸리며 주변을 둘러보자 멀리서 레안드로스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공작님. 지금 움직이셔도 괜찮으십니까?”
“베르데가 무리만 하지 말래.”
“괜찮으시다면 제가 옆에서 부축해드리겠습니다.”
“괜찮아. 마수 소탕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
“거진 완료했습니다. 몸집을 줄여 도랑이나 무너진 건물에 숨은 놈들이 있어서 수색 범위를 넓히는 중입니다.”
“고생이 많네.”
레안드로스는 답지 않게 잠시 간격을 둔 후 답했다.
“공작님만 하겠습니까.”
“나야 며칠 누워있던 게 전부인데 뭐. 그나저나 사람들은 어때? 잘 대해줘?”
“영웅처럼 떠받듭니다.”
“어때? 기분 좋지?”
“큰 감흥은 없습니다. 다만 고마워하는 마음만은 알 것 같습니다.”
음. 본인보다 약한 자들과는 말을 섞지 않는다던 레안드로스의 발언이 떠올랐다.
이만하면 장족의 발전이지.
나는 절뚝거리며, 레안드로스는 그런 나의 느린 속도에 보조를 맞추며 걸어갔다.
레안드로스는 며칠 보지 못한 사이에 인상이 조금 달라져 있었다.
옛날에는 무뚝뚝하고 세상사에 관심 없는 인상이었다면 지금은 무뚝뚝하면서도 미묘하게 바깥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게 티가 난다고 해야 하나.
역시 주인공의 개화가 필요했던 거구나.
그는 건물이나 거리를 지나면서 나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었다.
“저쪽 길목은 다친 사람들이 머물고 있습니다. 베르데가 아침저녁으로 들러 사람들을 보고 있습니다.”
“베르데가 나한테 왔을 때 죽고 싶다고 하더라고. 힘들대.”
“목숨은 붙여두겠습니다. 그리고 저기는 생활이 가능한 사람들이 지내고 있습니다. 무너진 상점가 복구를 우선으로 하고 있습니다. 외곽 지역은 그리 중요하지 않으니.”
“물자가 부족하지는 않고?”
“아놀드 영애도 그 점을 우려했습니다만, 저희 쪽에서 원조가 가능한지 공작님과 상의드릴 예정인 것 같습니다.”
“아냐, 나에게 묻지 말고…….”
그냥 내가 돌아가서 처리할게, 라고 말하려던 순간 저 앞에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기사님 할 거야!”
“아냐, 내가 할 거야! 내가 검은 기사님 할 거야. 너 어제저녁에 콩 먹기 싫다고 울었잖아! 우리 누나가 그러는데, 영웅은 뭐든 잘 먹는대!”
“아냐! 기사님은 키가 크잖아. 내가 제일 크니까 내가 기사님 해야 해! 갤로의 영웅은 나야!”
조잘거리며 아웅다웅 다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그나저나 검은 기사님이라니. 설마.
“……저거 경을 두고 하는 이야기지?”
“…….”
“갤로의 영웅이래. 저 모습을 보고 무슨 생각이 드시나요, 검은 기사이자 갤로의 영웅님?”
“……당혹스럽습니다. 그렇게 보지 말아주십시오.”
함박웃음을 머금은 내게 레안드로스가 중얼거렸다.
그러던 중, 꼬마 중에서 하나가 이쪽을 돌아봤다가 팔짝거리면서 외쳤다.
“기사님이야!”
“어디? 진짜? 와, 기사님이다!”
“진짜 까맣고 크다!”
순식간에 이쪽으로 우르르 달려온 아이들은 레안드로스를 빙 둘러싸고 마구 떠들어댔다.
레안드로스는 당황해서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로 아이들이 자기 망토를 당기거나 다리에 붙는 걸 막지 못했다.
“기사님!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기사님이 세상에서 가장 멋지대요!”
“이거 보여주세요, 푸화악 하고 콰앙 하는 거 보여주세요!”
“기사님, 이거 만져 봐도 돼요? 이거 검이에요? 엄청 크다!”
고사리 같은 손을 쳐낸다는 생각은 할 수도 없는지, 레안드로스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어떻게든 해달라는 시선이었지만 나는 신나게 웃기만 했다.
요나스도 그렇고, 어린아이를 대하는 게 서툰 모습이 웃겨서 죽겠다.
레안드로스가 뒤집어져라 웃는 나와 ‘갤로의 영웅’을 보고 흥분한 아이들 사이에서 어쩔 줄 모르고 서 있자니,
자재를 옮기며 지나가던 어른 중 하나가 와서 아이들을 잡아당겼다.
“이 녀석들! 기사님께 뭐 하는 짓이야, 버릇없게! 죄송합니다, 기사님. 애들을 봐줄 어른이 없다 보니 이렇게 멋대로 몰려다녀서.”
“별일 아니었소.”
“그나저나, 옆에 계신 분은 기사님의 일행 되시는 분이십니까?”
“예. 안녕하세요.”
내가 인사를 하자마자 그는 내 손을 덥석 잡았다.
“기사님과 함께 끝까지 마을에 남아주셨다고 들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마을 주민들을 피신시켜 주셨고요. 정말, 기사님의 일행분들께도 아무리 감사를 드려도 모자랄 지경입니다.”
그렇게 순수한 마음으로 마을을 구한 것도 아니었는데.
괜히 멋쩍어서 손을 빼고 싶었지만, 그 사람은 내 손을 꽉 잡은 채 계속 말했다.
“지금도 계속 다친 사람을 치료해주시고, 마을 복구를 지도해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저희가 축제라도 열어서 은인을 대접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해서 면목이 없습니다. 다들 그래요.”
“아닙니다. 뭔가를 바라고 여러분들을 도운 게 아니니까요. 너무 부담 갖지 마세요.”
“갤로의 소식이 왕실 직할령의 대리인에게 닿으면 곧 지원이 올 겁니다. 그럼 저희도 조금 여유를 찾을 수 있겠죠. 그때까지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이렇게 도움만 받고 보내드리기 마음에 걸려서요. 뭐라도 접대를 해야죠.”
“그, 그게요.”
“꼭 좀 부탁드립니다. 저희가 이대로 기사님과 일행분들을 보낼 수는 없습니다. 도리가 아니지요. 마을을 구해주셨는데. 그렇게 오래 기다리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이 반응을 보아하니 아멜리아는 대리인이 보낸 편지의 내용을 아무에게도 공개하지 않은 게 분명했다.
잽싸게 가로채서 나에게만 보고한 모양이었다.
마을 주민이 제발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하는 거듭 요청하는 걸 보자 기분이 묘해졌다.
그게, 당신들의 대리인은 지원을 받고 싶으면 발렌타인이라는 도시로 오라고 했거든요…….
하지만 마을의 실질적인 행정 관리자가 사라진 지금.
갤로에는 발렌타인까지 갈 사람도, 그럴 여유도 없었다.
그 사실을 알려주는 게 맞을까?
아멜리아야 주저 없이 하르트만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을 선택해서 나에게만 편지를 전달한 거겠지만.
“그게 말입니다.”
“사실은, 몇몇 사람들이 아직까지 여러분들에 대해서 나쁜 소리를 하고 있어서요. 이미 아실지도 모르겠지만 여러분이 이 마을에 온 저의가 수상하다느니, 촌장님을 사라지게 만든 게 여러분들이라느니.”
“그건.”
“듣고 있자니 화가 났죠. 마을을 구해주신 사람에게 무슨 망발을 그렇게 한답니까! 모든 원인은 저희 마을에 있는 거고, 여러분들은 운이 나쁘게 휘말렸을 뿐인데.”
그건 아니다. 정말로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이 사건을 촉발한 게 맞았다.
“그러니 너무 마음 상해하지 마세요. 저희들은 기사님과 일행분들 편입니다.”
속이 약간 울렁거렸다.
지원이 오게 되면 형편이 나아질 겁니다. 그러면 축제를 꼭 열겠습니다. 꼭 와주세요. 아이들도 이렇게 좋아하는데요…….
그 앞에서 대놓고 대리인은 오지 않을 거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저희는 다음 목적지로 떠나야 해요. 그래서 더 이상 도와줄 수가 없어요.
저희는 저희 나름대로의 계획이 있답니다.
내가 입술을 달싹이자 레안드로스가 내 눈치를 보고 살짝 끼어들었다.
“이분은 환자이니 오래 서 있을 수 없소. 그러니 양해하길.”
“아, 아. 그렇지요. 그렇겠죠. 미안합니다. 다친 사람을 붙들고 제가 너무 오래 이야기를 했네요.”
그는 거듭 인사하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멍하니 그들을 보고 있는 내게 레안드로스가 물었다.
“마음에 걸리십니까?”
“……대리인을 여기로 부를만한 권력을 가진 사람은 이 마을에 없겠지.”
“그렇다고 해도 저희를 탓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렇겠지.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성으로 돌아가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마음이 흔들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레안드로스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저희 역시 공작님께서 무슨 결정을 내리시든 탓하지 않습니다.”
“내 마음대로 너희들을 휘두르고 싶지 않아. 잘못된 판단으로 너희들을 힘들게 하고 싶지도 않고.”
“괜찮습니다.”
“내가 실수를 해도?”
“공작님께서는 늘 무모하시니 어떤 결정을 내리든 놀랍지는 않습니다.”
욕인가?
긴가민가하면서 레안드로스를 봤을 때.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그의 입꼬리가 평소보다 조금 더 올라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저희를 납득시켜 주십시오.”
“납득?”
“상관이 명령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만으로 원치 않는 피해를 입는 것보다는, 저희가 스스로 원해서 피해를 입는 게 훨씬 낫습니다.”
“나더러 너희에게 해가 되는 길을 선택하라고?”
“이익이 되는 길이 언제나 옳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피해를 감수하는 선택이 언제나 그릇되었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헛웃음이 나왔다.
신의 화신체 하나 해치웠다고 아주 자신이 넘치는 모양이지.
그래도 그가 이렇게 말해주는 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지금 와서 새삼스럽게 깨달은 점이 하나 있다.
지난 회차에서 내가 저질렀던 실수.
모든 걸 내가 결정했던 것.
혼자만 회귀하는 세상 속에서 나만이 가지고 있는 경험과 지식으로 모든 것을 타파한다니, 그런 게 본질적으로 가능할 리가 없었다.
수천 번을 회귀한다고 해도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여전했다.
이 이야기에는 나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엮여있었다.
그러니까, 이제는 나 혼자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는 걸 그만둬야 해.
“너희를 설득해볼게.”
이 끝에는 좀 더 나은 엔딩이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레안드로스에게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