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153
(152)
도시, 발렌타인.
원래는 들를 계획이 없었던 도시.
발렌타인은 과거 북동부부터 남쪽을 향해 길게 뻗어 내린 드넓은 공작령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발렌타인은 공작령 내부의 무수한 마을과 도시 가운데에서도 이름이 잘 알려져 있었다.
여행자든 상인이든 그저 호기심에 가출한 어느 집 아들내미든,
공작령에 한번 발을 들였다 하면 가장 먼저 가보고 싶어 하는 곳이 바로 발렌타인이라나.
사람들이 그토록 발렌타인에 가보고 싶어 하는 이유는 단 하나뿐이었다.
“발렌타인은 서늘한 기후로 증류주가 특산품입니다. 발렌타인의 술은 왕실에도 납품될 만큼 품질이 우수하고 독특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특징은.”
“다른 특징이 있어?”
“미인이 많다는 겁니다.”
“미인? 내가 생각하는 그 미인?”
무슨 소리야?
성주는 참외, 대구는 사과라고 하는 건 많이 들어봤다.
그런데 발렌타인은 미인이라는 공식이 가능해?
미인이 밭에 마구잡이로 나는 잡초도 아니고.
내가 의심스럽게 보자 아멜리아는 살짝 웃으며 레안드로스를 거들었다.
“미, 믿기 힘드시겠지만 사, 사실이에요. 발렌타인 출신의 사람들은 외, 외모가 대단하답니다. 그래서 귀, 귀족 가문에서도 바, 발렌타인 출신의 사용인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이, 있었다고 해요.”
“아니, 얼마나 아름다우면 대체 미인으로 이름이 높을 수 있는 건데요?”
“그, 그거 때문에 도, 도시에 미인을 배출하는 아티팩트가 이, 있는 게 아니냐는 소문도 도는걸요.”
“그렇게나?”
베르데가 갑자기 뭔가 생각난 것처럼 낄낄거렸다.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게 하나 있는데. 용병단 입단 희망자가 발렌타인 출신이라고 하면 먼저 기혼 여부를 묻고 연인이 있는지 묻잖아요. 미혼이고 아직 연인도 없다고 하면 용병단 자체가 아주 높은 가능성으로 치정 문제 때문에 해체될 수 있거든요.”
“뭐? 고작 그런 것 때문에?”
대체 얼마나 아름답길래?
레안드로스와 지난 회차의 루셀로 눈이 어지간히 높아진 터라 실감이 나질 않았다.
아니, 아무튼.
지금은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도시의 특성보다 지금 중요한 건 발렌타인 내부에 일어나고 있는 일이야. 듣기로는 이단이 도시를 점거했다고 했지.”
“하, 하지만 레안드로스 경이, 마을을 둘러봤을 때는 트, 특이한 점은 없지 않, 았나요?”
“영애의 말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상당한 시간 차이가 있습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우선 파악해야 할 듯합니다.”
“나는 레안드로스의 의견에 동의해. 문제라면 역시 도시가 봉쇄된 거야. 사정을 알고 싶어도 물어볼 사람이 없네.”
“정보 길드를 사용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레안드로스가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이번 회차에서는 아직 정보 길드에 방문하지 않았다.
“혹시 길드는 대도시에서만 사용할 수 있어?”
“그렇지는 않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마을 단위로도 존재한다고 들었습니다.”
“인근에 길드가 있는 마을이 있다면 좋을 텐데.”
“발렌타인이 워낙 큰 도시이기 때문에 근처에 지점을 중복으로 냈을 확률은 적겠습니다만,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역시 든든하다니까.
우리는 신세 진 농가의 헛간에서 그날 밤을 지냈고, 그동안 레안드로스는 혼자서 말을 타고 움직였다.
레안드로스는 다음날 늦은 저녁에야 소식을 하나 물고 왔다.
“봉쇄 직전에 발렌타인을 통과했다던 상단과 여행자들을 수소문했습니다. 상단은 봉쇄 며칠 전부터 도시 내의 가게가 물건을 지나치게 적극적으로 매입하려는 듯한 움직임이 있었다고 증언했습니다. 여행자들은, 발렌타인에서 특별한 인상은 받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기 위해 방문한 신전은 굳게 닫혀 있었다고 합니다.”
“신전이 닫혀 있을 수가 있나?”
중앙 신전과 신.
유릭이 뭐라고 했더라? 열심히 기억을 더듬었지만 불쾌한 감정밖에 느낄 수 없었다.
그 자식이 한 말은 아버지 운운한 것밖에 없던 것 같은데.
하지만 분명한 건 이 나라에서 중앙 신전이 섬기고 나라가 받아들인 신은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만물을 관장하고 다스리는 신.
그렇기 때문에 왕궁 안에 있는 게 아니고서야, 일반인에게 공개된 장소에 있는 신전이라면 언제나 개방하는 게 원칙이었다.
“이단에 대해서도, 대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렇다 할 정보가 없네. 그래도 다녀오느라 고생했어.”
“죄송합니다. 발렌타인이 봉쇄한 일 자체가 상당히 갑작스러운 일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렇기에 도시를 제시간에 빠져나온 사람들이 드문 모양입니다.”
“정보가 없는 이유가 사람들이 전부 도시 안에서 발이 묶여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발렌타인으로 향하시겠습니까?”
“그래야지. 그런데 어떻게 들어가지?”
우리 역시 발렌타인에 용무가 있으니 반드시 그리로 가야만 했다.
하지만 봉쇄한 도시를 어떻게 들어간담.
도시에 몰래 들어간다는 건 마을에 몰래 들어가는 것과 차원이 달랐다.
마을이야 경비병의 눈을 피해 조금 높은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발렌타인은 도시였다.
외부의 침입에서 도시를 지키기 위한 벽도 있을 거고.
경계나 감시의 눈도 한두 개가 아닐 테고.
게다가 가장 마음에 걸리는 건 현재 내 상태였다.
다친 곳이 채 낫지도 않았는데 도시에 은밀하게 잠입한다?
그러다가 부상이 덧나기라도 하면?
젠장. 인간의 몸이 이렇게 불편할 줄이야.
레안드로스나 아멜리아, 베르데도 내 몸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 생각하는 눈치였다.
“여기도 용병단이 있다면 별로 빡빡하진 않을 테니…….”
“하지만 도시 자체적으로 병사를 두고 있다면…….”
“그런 것보다 차라리 위장을…….”
이런저런 궁리를 내놓았지만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내 망토 후드 안에서 졸던 눈사람이 하품을 하며 말했다.
“다들, 고민이다. 지능이 낮은 인간. 위대한 몸이 방법을 제안한다.”
“?”
“내 신자, 내가 얼린다. 그럼 다른 인간 셋. 얼어붙은 신자 들고 도시로 간다. 도시에서 인간들이 막는다? 너희 주장한다. 이거 시체다. 안에 인간 가족 있다. 그럼 통과한다.”
이게 무슨 소리야.
나는 눈사람의 말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천천히 해석했다.
“그러니까…… 나를 얼려가지고 시체인 척 연기를 하라고. 그리고 세 사람은 나를 들고 이 시체는 안에 연고가 있다며 들여보내달라고 하라고?”
“그렇다. 신자, 나는 위대한 아품 자. 인간에 대해서 공부한다. 잘 안다. 인간, 가족 좋아한다. 그럼 다 들어간다.”
거들먹대는 눈사람을 돌아보다가 눈사람을 달랑 들어서 아멜리아에게 건네주었다.
아멜리아는 말없이 눈사람을 짐가방에 넣고 가방 입구를 야무지게 조여서 묶은 후 그대로 구석에 대충 던져두었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자리에 다시 돌아온 아멜리아가 제안했다.
“보, 봉쇄한 도시의 경비가, 삼엄할 것 같지만. 잠시 교란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어떻게요?”
“도, 도시의 입구에서 두 사람이 시선을 끌어서 다, 다른 경비병까지 불러들이고. 그 사이에 다, 다른 쪽으로 두 사람이 들어가는 방법이죠.”
레안드로스가 물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법 큰 소란을 피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괜찮으신지 여쭙고 싶습니다만.”
“새, 생각해둔 건 있어요. 아, 아무래도 경께서 공작님과 함께 행동하고, 저, 저는 베르데 씨와 함께 가면 될 것 같은데요.”
“잠시만, 이쪽이 그렇게 시선을 끄는 데에 성공한다고 해도 이 기사님과 공작님이 성안으로 들어갈 수는 있겠습니까? 도시 방위벽이 생각보다 높으면 어쩌려고요?”
베르데의 반박에 아멜리아가 레안드로스를 쳐다봤다.
레안드로스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괜찮다. 일전에 조사차 방문한 도시니 벽의 높이 같은 건 대충 기억하고 있다. 시선만 끌어준다면 할 수 있을 것 같군.”
“……그래요? 공작님, 괜찮으시겠습니까?”
“나야 뭐. 레안드로스가 그렇게 말해준다면야.”
“……진짜요?”
베르데는 영 의심스러운 눈치였지만, 그래도 우선은 제 의견을 접어두기로 했는지 입을 다물었다.
우리는 밤늦게까지 발렌타인에 잠입할 계획을 세우고, 겨우 휴식을 취했다.
* * *
“공작님, 몸 상태는 괜찮으십니까?”
“크게 움직이지만 않으면 괜찮아. 대신 좀 어지럽고 피곤한데.”
“계, 계속 밖에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 어요. 베르데 씨. 지금 약을 좀 더 먹어도 괘, 괜찮을까요?”
“그럼 잠이 오게 하는 약초를 좀 빼야 할 것 같은데요. 대신 진통 효과는 더 크게 만들고.”
노을이 질 무렵, 우리는 채비를 얼추 마쳤다.
농가에 말과 환자용 수레를 맡기고 우리는 걸어가기로 했다.
인원이 네 명이나 되는데 말이니 수레니 하는 것까지 끌고 가면 분명 의심을 받을 것 같다는 아멜리아와 레안드로스의 의견 덕분이었다.
그럼 나는 어떻게 이동하느냐고?
“공작님.”
레안드로스가 양팔을 뻗어 보였다.
내가 쭈뼛거리며 그의 앞에 서자, 그는 가볍게 내 몸을 번쩍 들어서 안아 올렸다.
전에는 별생각 없었는데, 지금은 몸이 아파서 그런가.
그의 팔이 딱딱하게 배겨와서 아팠다.
대체 근육이 얼마나 있는 거야.
아멜리아는 안긴 나를 망토로 꽁꽁 감싸주고는 베르데에게 약초를 받으러 갔다.
레안드로스가 물었다.
“불편하지는 않으십니까?”
“불편하지는 않은데, 이런 자세로 발렌타인까지 걸어야만 하는지 이유를 좀 생각하게 되네.”
“물론 업히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공작님께서 갈비뼈가 몇 개나 금이 갔는지 떠올려보십시오. 등에 매달려 계실 수는 있으십니까?”
우리 갤로의 영웅이자 이야기의 주인공은 뭐 하나 못 하는 게 없네.
하다 하다 팩트 폭행까지 잘해버릴 줄이야.
레안드로스가 다시 말했다.
“괜찮으시다면 제 목에 팔을 두르셔도 됩니다. 그편이 안정적입니다.”
“나도 그러고 싶긴 한데.”
아멜리아가 너무 꽁꽁 싸매준 탓에 팔을 쭉 뻗을 수가 없었다.
불안해서라도 어디 하나를 잡는 게 좋을 것 같긴 한데.
레안드로스를 물끄러미 보다가 손이 닿는 대로 그의 옷깃을 꽉 잡았다.
휴. 이러니까 좀 낫군.
“공작님.”
“응.”
“세간에서는 공작님께서 잡으신 곳을 멱살이라고 합니다.”
“알고 있어. 혹시 숨쉬기 불편해?”
“……아닙니다.”
그의 표정이 약간 피곤해진 것 같기는 하지만, 그냥 넘어가자.
멱살 한두 번 잡혀보는 것도 아닐 거 아냐.
아멜리아가 최종 확인을 마치고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레안드로스는 나를 배려한 탓인지 느리고 큰 보폭으로 움직였다.
발렌타인은 말을 천천히 몰아서 몇 시간이면 닿을 거리에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부지런히 걸어도 달이 머리 위로 떴을 때 겨우 도시를 둘러싼 방위벽을 볼 수 있었다.
“여기서 슬슬 갈라질까.”
아멜리아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호, 혹시 그럴 일은 없겠지만, 아, 아침까지 꼭 계획한 대로, 만날 수 있길, 바랄게요.”
“고맙습니다, 아멜리아 양. 나중에 봐요. 베르데도 조심해.”
도시 관문 쪽으로 가는 두 사람을 보던 나에게 레안드로스가 물었다.
“아놀드 영애라면 베르데를 데리고 함께 벽을 넘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만.”
“뭐……. 시선을 끄는 역할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데 좀 의외기는 해.”
“아놀드 영애가 말한 것, 말입니까?”
“응.”
분명 농가의 헛간에서 계획을 세울 때 아멜리아가 말했었다.
경비병의 경계를 지나치게 사지 않으면서도 이목을 집중시키는 방법.
“대체…… 어떻게 경비병들을 역할극으로 잡아놓는다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