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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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득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는 애써 눈을 감고 마음을 경건하게 다스렸다.
모든 시련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주어지나니, 신께서는 이것 역시 마땅한 시험이라 생각하심이라.
그러나 남자의 귓가에 끈질기게 들러붙는 웃음소리는 신의 시험보다는 사악한 정령의 농간에 가까웠다.
아, 신이시여. 어찌 이런 고난을 내게 내리시나이까?
남자는 거의 벌거벗은 상태나 다름없는 몸뚱이를 지나쳤다.
그들 일부는 죽었을 수도 있고, 또 일부는 살아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남자는 사람들을 조금 혐오스럽게 볼 뿐,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저들에게 손을 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용서받지 못할 죄였기 때문이었다.
창가에 선 남자는 주도면밀하게 바깥을 먼저 살폈다.
며칠 내내 닦지 않아 뿌연 창문 너머로, ‘딸’들이 줄지어서 정원으로 나가는 게 보였다.
그들은 환희에 찬 얼굴로 재잘거리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젊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소풍이라도 나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남자는 두 번은 속지 않을 작정이었다.
‘딸’들이 저렇게 밖에 나간다는 건, 분명 새로운 사냥감이 이 저택에 들어왔다는 뜻.
남자는 이 틈을 타 굳게 누구의 것인지 알지 못하는 옷을 서둘러 주워 입었다.
이 방의 문은 남자가 기억하기로 내내 잠겨 있었다.
‘딸’과 그들의 사냥감을 여기로 나를 때 외에는.
열쇠로 잠금을 풀거나 문고리라도 부수지 않는 한 열리지 않을 문이었다.
남자는 문고리를 잡고, 하나밖에 없는 신께 간절히 기도하며 문 틈새를 더듬었다.
손끝에 미약한 거슬림이 느껴지자 남자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그것을 쥐고 서서히 잡아당겼다.
겨우 머리카락보다 굵은 실은 팽팽하게 당겨지며 문 안쪽에서 걸린 부분을 건드렸고,
작게 달각거리는 소리가 이어지다가 마지막에는 찰칵하는 신호를 마지막으로 잠잠해졌다.
“신이시여.”
빠르게 성호를 그은 남자는 소리가 나지 않게 문을 열고 갇혀있던 방을 탈출했다.
여기의 성주는 어떻게 되었는지, 그리고 자신 이외에 멀쩡한 사람은 없는 건지 알아봐야만 했다.
검도 뺏긴 채 이상한 향만 맡으며 내내 감금되어 있었더니 손발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조력자를 만날 수 있다면 탈출도 꿈만은 아니었다.
남자는 복도의 벽을 짚으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 * *
모든 신은 기본적으로 하나 이상의 화신체를 가지고 있었다.
신 본체의 거동이 어렵기도 하고, 또 행성의 생명체를 싹 말려버리고 싶은 게 아니라면 본체로는 올 수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신의 인격을 투사한 화신체와 평범한 육신에게 깃든 분신체를 운용해 자신을 섬기는 자들에게 뜻을 전달하고 그들을 조종한다.
하지만, 신의 화신체라고 해도 모든 화신체가 전부 동일한 급이나 조건에서 만들어지는 건 아니었다.
“슈브-니구라스가 검은 염소로 여기에 있다는 걸 알면서도, 눈사람 아품 자가 그걸 제대로 감지할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어. 화신체의 특성 때문이야.”
“특성이라니. 화신체에도 특성이라는 게 있습니까?”
“갤로에서 봤던 여신의 화신체, 판을 생각해봐. 검은 염소 분신체에 숨어서 이쪽을 보고 있었잖아. 그러니까 분신체와 가장 흡사한 염소 화신체, 판을 사용했겠지.”
“신이 상황에 따라서 다른 화신체를 사용한다는 말씀이십니까?”
“비슷해.”
마도서 프나코틱을 레안드로스에게 보여줄 수는 없지만, 대신 텍스트를 짚어가며 설명했다.
“본질적으로 슈브-니구라스라는 여신은 뒤틀린 풍요와 다산의 성질을 가지고 있어. 그녀를 가리키는 ‘천 마리의 아이를 거느린 검은 염소’라는 이명 안에 그녀의 모든 속성이 다 있다고 봐야지.”
“발렌타인이라는 환경의 특성을 고려하자면 여신은…….”
“여성체의 인간 형상을 띤 화신체. 외모도 출중하고. 그 조건에 맞는 화신체는 하나뿐이야.”
“화신체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숲속의 귀부인.”
숲속의 귀부인.
사냥꾼, 흉물들의 지배자, 붉은 여인, 바빌론의 탕녀, 아르웨나.
다양한 별칭들이 이어졌지만 그건 인간들이 화신체를 보고 붙인 별명일 뿐.
이 화신체, 숲속의 귀부인은 슈브-니구라스가 내려보내는 몇 안 되는 인간형 화신체 중 하나였다.
아름다운 외모와 거역할 수 없는 매력으로 사람들을 홀리고 계시와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는 화신체.
그러나 그 계시는 올바르지 않고, 깨달음 또한 이치에 어긋나는 것.
한낱 인간인 그녀의 숭배자들은 그릇된 가르침과 깨우침을 갈구하다가 미치고 미친 끝에,
결국에는 모든 것을 부수고 파괴하는 야성과 재앙만을 본능에 새기고,
인간이 아닌 무언가가 될 뿐이었다.
“이 화신은 슈브-니구라스의 화신으로 여겨지지만, 화신체가 생성되는 전제조건이 조금 독특해.”
“어떤 조건입니까?”
“슈브-니구라스를 소환시키려는 시도가 실패하거나, 혹은 여신의 오염이나 징표가 남은 곳에서 만들어진다는데.”
역설적이었다.
신을 부르는 걸 실패해야만 나타나는 신의 화신체.
한마디로 이 화신체는 신의 강함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신을 부르고 싶어 하는 인간의 실패의 산물에 불과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품 자가 슈브-니구라스의 존재감에 대해서 긴가민가했던 거겠지.
레안드로스가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물었다.
“그 말씀은…… 여신의 표식이 남아있거나, 혹은 어딘가에서 오염이 진행되고 있다면. 여신의 화신체가 몇 번이고 나타날 수 있다는 겁니까?”
“그, 그렇게 되나?”
“화신체, 수에 구애받지 않는다. 위대하신 이 몸. 눈사람 백 개 만든다? 가능하다.”
눈사람이 어깨 옆에서 주장했다.
잠시만, 이렇게 되면 지금 도시 어딘가에서는 숲속의 귀부인이 또 만들어지고 있다는 이야기인가?
전신에서 핏기가 싸악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젠장.
“그건 죽어도 안 돼! 화신체라 여러 개라니, 사람 죽일 일 있어? 레안드로스, 도시를 다 뒤져서라도 수상한 표식이나 이상한 장소를 찾아봐!”
갤로에서 화신체 판이 하나가 아니라 두 마리, 세 마리였다고 생각해봐라.
레안드로스가 이길 수 있었을까? 그를 믿는 것과 싸움의 승패를 추측하는 건 전혀 별개의 문제였다.
눈앞이 다 아찔해졌다.
레안드로스는 침착하게 답했다.
“우선 진정하십시오. 공작님, 짐작이 가는 곳이 있습니다.”
“뭐라고?”
내가 모르는 사이에 그걸 벌써 찾아냈다고?
레안드로스의 고개가 약간 비스듬히 기울어졌다.
“지금 가보시겠습니까? 진입하는 데 약간의 어려움이 있을 수는 있겠습니다만.”
“안 가면 어떡해? 당연히 가봐야지!”
지금 갤로에서 각성했다고 여유를 부리는 건가?
아니면 뭐 믿는 구석이라도 있나?
드디어 미친 건 아니겠지.
레안드로스는 불호령에 따라 고분고분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레안드로스가 앞에서 멈춘 건물을 올려다봤다.
한 번 와봤던 여기는.
“중앙 신전이잖아.”
새하얀 벽에다가 서늘한 공기.
나 신성하다고 동네방네 소리치고 있는 이 건물은 불과 몇 시간 전에 들렀던 곳이었다.
여기에 수상한 점이 있었던가?
레안드로스는 신전의 정문에서 얼마간 떨어진 곳에 나를 내려놓았다.
“여기는 왜?”
“외람되오나,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뭘 기다리는데?
내가 그렇게 묻기도 전에 레안드로스는 굳게 닫힌 문을 밀었다.
몇 번 밀어 보자 덜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레안드로스는 그 소리를 확인하자마자 갑자기 한 걸음 뒤로 물러나더니,
-쾅!
문을 발로 내리찍었다!
깡패가 불법 채무자 재산 압류하러 문을 뜯어내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레안드로스가 드디어 미쳤구나!
“그만둬! 신전인데 누가 보기라도 하면!”
내가 절뚝거리며 다가가는 사이, 레안드로스는 두 번이나 문을 더 걷어찬 후였다.
엄청난 힘을 받아내느라 너덜거려서 삐걱이던 문은 레안드로스가 손에 힘을 주자 엄청난 소리를 토해내며 겨우 열렸다.
열린 문 뒤에는 덧대어진 나무판자가 반으로 부서져 있었다.
레안드로스는 옷을 툭툭 털고 옆으로 온 내게 말했다.
“사슬로 묶여 있지 않은 게 다행이었습니다. 실은, 아까 공작님과 여기에 왔을 때 유향 냄새를 맡았습니다.”
“냄새? 착각한 것 같다고 했었잖아?”
“착각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이 없는 곳에 향내가 나는 게 이상하게 느껴진 탓에. 공작님 앞에서 무례한 꼴을 보여드렸습니다.”
무섭다.
냄새를 기어코 떠올린 레안드로스도 그렇고,
이 문을 부숴버린 무력도 그렇고.
정중하게 말하는 레안드로스를 피해 슬금슬금 신전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어두웠다.
원래라면 복도 양측에 성화가 밝게 빛나며 타오르고 있어야 하지만,
신전에도 사람은 없는지 거대하고 오목한 그릇에는 재밖에 쌓여 있지 않았다.
짧은 복도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 내관이 나온다.
손님들이 기도를 올리는 장소인 내관은 제법 넓었고, 창문의 스테인드글라스로 비치는 햇빛이 유일한 광원이었다.
“유향 냄새가 난다고?”
“들어오니 더 짙게 나고 있습니다. 여기서 흘러나온 게 맞군요.”
“공기가 좀 탁한 것 같기는 한데. 향내가 나는지는 잘…….”
진짜 인간 개 코가 따로 없네.
내관을 한 번 둘러봐도 특별한 점은 없었다.
내관의 가장 깊은 곳, 신상을 모셔두어야 할 장소에는 화려한 빈 의자와 꺼진 촛대만이 보일 뿐이었다.
공물대는 먼지만 쌓인 채로 깨끗했다.
레안드로스는 내관과 더 안쪽의 생활실을 잇는 문을 살펴보고 있었다.
내관을 한 바퀴 도는 와중에 한편에 비치된 독서대가 내 눈에 띄었다.
표지도 없이 종이를 묶어둔 것이 올려져 있었는데, 한눈에 봐도 성서나 교리는 아닌 듯했다.
이건 뭐지.
레안드로스가 안 보는 틈을 타 슬쩍 가보니, 이름이라고 추정되는 단어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막달레나, 동화 세 닢.
발두르, 과일 한 바구니.
호크너, 면포 한 단…….
아마 신전을 방문한 사람들과 그들이 공물로 바친 것을 기록한 모양이었다.
일종의 방명록이 된 기록을 훑어보다가, 나는 이름 목록의 거진 끝에서 익숙한 이름을 찾아냈다.
[루셀 나빌로프, 은화 세 닢.]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그러고 보니, 아멜리아가 뭐라고 했었지?
성기사를 수배하는 나에게 뭐라고 했었더라?
-고, 공작저에 오는 걸 기다리기에는 시, 시간상 무리가 있어서. 저희가 거, 거쳐 갈 마을에서 중도 하, 합류하는 방향으로…….
진정해, 유예성.
여기서 이미 나갔을지도 몰라.
그런 거 있잖아, 기사들은 원래 행동이 빠르니까 발렌타인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바로 나갔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러기에는 그의 이름이 너무 아래쪽에 있었다.
어디선가 끼익, 하는 낡은 쇳소리가 들렸다.
“공작님.”
나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레안드로스가 열린 문을 붙잡고 있었다.
더 안쪽으로 이어지는 문이었다.
그리고 그 문의 이면에,
진득한 피비린내가 탁한 공기를 비집고 스멀스멀 풍겨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