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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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냄새였다.
신전 내에 고여있던 묵은 공기 대신 악취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썩은 내가 비린내와 함께 코를 찔러대서 나도 모르게 소매로 입과 코를 가렸다.
문을 닫아주면 좋을 것 같은데, 레안드로스는 나를 등지고 문 안쪽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레안드로스? 괜찮아? 이게 대체 무슨 냄새야?”
“……공작님. 외람되지만, 이 너머의 현장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럼 나도 같이 가면.”
“공작님께서 보실만한 광경이 아닌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건물 안에 인기척은 없으니, 염려 마십시오. 곧 돌아오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레안드로스는 내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문 너머로 사라졌다.
그동안 나는 루셀 나빌로프와 끔찍한 냄새를 번갈아 되새기며 불안한 맘을 달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 * *
레안드로스는 문 건너편의 모습이 공작에게 조금이라도 보일세라 조심스러웠다.
그도 그럴 게, 문 너머에서 그가 본 것은.
‘그야말로 지옥이로군.’
레안드로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여기는 본래라면 신전을 관리하고 모시는 이들이 지내고 생활하는 공간.
그러나 정결한 백색에 가까운 회색이었을 바닥은 정체 모를 거무죽죽한 것으로 뒤덮여 있었다.
레안드로스가 한 걸음씩 뗄 때마다 말라붙은 끈적한 액체가 찌익찌익하는 거슬리는 소리를 냈다.
환기가 전혀 되지 않은 탓인지,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냄새가 점점 독해졌다.
아무리 레안드로스라고 해도 세상의 모든 불쾌한 악취가 결집한 것 같은 냄새를 하나하나 분석할 수는 없었다.
그나마 알 수 있는 것은, 냄새의 대부분을 부패한 고기 냄새와 썩은 피 냄새가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길지 않은 복도를 지나 사제와 신관들이 따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소예배당에 이르러서야 레안드로스의 발이 멈추었다.
신을 상징하는 빈 의자.
간소화한 제단.
그것들의 뒤에는 색 유리창이 있는 벽이 있었었다.
벽에는 천장에서부터 바닥까지 이어진 문양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작은 원, 그리고 원과 접하며 둘러싼 반원.
원과 반원을 통과하는 선 하나.
선의 양옆으로 뻗어나가는 알 수 없는 문양들.
어떻게 보면 그저 낙서 같기도 했고,
또 어떻게 보면 심오한 주술적 의미가 담겨있는 문양 같기도 했다.
만일 둘 다 아니라면?
레안드로스는 시선을 아래로 미끄러뜨렸다.
바닥은 한 때 신관이었던 이들의 주검으로 추정되는 살점과 뇌수가 사방에 튀어 있었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고요한 장소에서 굳건한 것은 오직 신의 뒤에 있는 문양뿐이니,
흡사 이들이 문양에 잡아먹힌 모양새였다.
레안드로스는 천천히 소예배당을 둘러봤지만 유의미한 흔적이나 단서를 발견하기가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그는 인내심을 발휘해 끈기 있게 역겨운 현장을 몇 번이고 관찰했다. 그리고 한 가지 의문을 찾아냈다.
아무리 사람이 산산조각으로 터졌다고 해도 소지품까지 증발되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왜 여기에서는 사제복이나 신관복이라곤 한 조각도 찾아볼 수가 없지?
그렇다면 여기에서 누워있는 이들은 전부 벌거벗고 있었다는 소리가 될 텐데.
대체 왜?
무엇 때문에 속세의 욕구를 버리고 몸을 단정히 해야 할 신자들이 나신으로 모여 있었단 말인가?
레안드로스는 정체불명의 문양이 그려진 벽을 한동안 노려봤다.
어렴풋이 아렌하이트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듯했다.
-슈브-니구라스를 소환시키려는 시도가 실패하거나, 혹은 여신의 오염이나 징표가 남은 곳에서 만들어진다는데.
여기는 신전 한복판.
유일신이 지배하는 곳.
그의 예민한 오감이 경고를 울리고 있었다.
* * *
아멜리아의 지친 몸을 부드러운 손길이 주무르고 있었다.
딱딱하던 어깨가 풀리면서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또 다른 손길이 그녀의 팔과 다리를 살살 매만지며 솜털같이 가볍고 상냥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부드러운 피부를 가지고 있네요.”
“긴 머리카락은 어떻고. 꽁꽁 묶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푸니까 훨씬 아름다워.”
“손끝은 거칠지만 기름을 바른다면 매끄러워지겠지.”
누구지?
아멜리아는 눈을 뜨려고 했지만 마치 약에 취한 것처럼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고작해야 잠투정같이 머리를 몇 번 휘저을 뿐.
그런 그녀에게 속삭임은 농밀한 꿀처럼 달라붙었다.
“지금까지 힘들었죠? 몸이 이렇게나 단단해졌는데. 어때요? 우리랑 같이 쉬어요.”
아냐, 아니야.
나는 할 게 있었어.
염소를 돌려주고, 뒤에 남겨둔 얼빠진 남자를 찾아서 약속 장소로 돌아가야 하는데.
“대체 무엇이 그렇게 바쁠까요? 서두를 건 하나도 없어요. 여기에는 뭐든 있어요.”
공작님은? 레안드로스 경은?
이 마을의 이름이 뭐였었지.
생각이 마음먹은 대로 잘되지 않았다. 희부연 안개가 낀 것 같은 불쾌함에 아멜리아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께서 당신을 여기까지 이끌었어요. 당신이라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아아, 생각하지 말아요. 그냥 이대로 있기로 해요.”
아냐, 가야 해요. 나는 갈 곳이 있어요.
하지만 역시 마을 이름이 기억이 안 나.
무서운 일을 겪었던 것 같은데, 사실 전부 꿈이었던 것 같아.
어머니. 아버지. 다들 어디 계세요? 저는 어디에 있는 거죠?
“우리의 어머니께서는 당신처럼 강하고 아름다운 딸을 원하셨답니다. 우리 역시 당신을 자매로 맞아들이길 원해요. 우리, ‘피의 딸’들은.”
몸을 풀어주던 손이 더욱 과감해졌다.
뜨뜻미지근한 손이 허벅지며 옆구리, 등, 쇄골로 파고들었다.
아멜리아가 낮게 한숨을 내쉬자, 목소리는 조금 더 상냥하고 다정해졌다.
“어머니는 딸에게 무한한 자비를 내려주시죠. 당신도 틀림없이 좋아하게 될 거예요. 지고의 쾌락도, 아름다운 미인도 멀리 있지 않답니다.”
아멜리아의 머리가 힘없이 툭 떨어졌다.
아냐, 그런 게 아닌 것 같아요.
제가 바라는 건 그런 게 아니에요. 손에 넣을 수 없는 것. 목숨을 걸어도 확신하지 못하는 것.
그런데, 저는 여기에 왜 온 거죠?
분명히, 분명히 중요한 이유가 있었어요.
귓가에서 예쁜 덫 같은 목소리가 속삭였다.
“사랑도 죄도 이 저택에서 떠나있다면, 대체 뭐가 두렵겠어요? 우리의 자매가 되어주세요. 어머니의 딸이 되어주세요.”
사랑과 죄.
그녀 스스로가 아주 멀리 놓아두고 도망치듯 와버린 감정들.
그녀가 사랑했던 것들은 한순간 사라졌다.
전부 그녀의 탓이었다.
그 사실을 뇌리에 새기는 순간, 아멜리아의 눈이 커다랗게 뜨였다.
코를 마비시키는 향내를 뚫고 기습적으로 몸을 일으킨 아멜리아는 제 손을 잡고 있던 사람을 내팽개치고, 붉은 빌로드 쿠션이 가득한 침대에서 뛰어내렸다.
누운 아멜리아의 주변에 모여 있던 여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여기는 어디?
아멜리아는 아래를 무심코 내려다봤다가 비명을 지를 뻔했다.
속옷 역할을 하는 짧은 슈미즈만 덩그러니 걸치고 있을 뿐, 자신이 입고 있던 검소한 여행용 복장은 사라졌다.
자신이 여태껏 누워있던 곳은 거대한 침대였다. 사방에는 호사스러운 쿠션, 양탄자, 카펫이 잔뜩 깔려 있었다.
전부 하나같이 피처럼 붉은색이라 눈이 다 아팠다.
게다가 이 사람들은 다 뭔가.
당혹한 기색의 여자가 대다수였고, 그 사이로 드문드문 남자가 보였다.
자신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같이 침대에서 누워있던 사람들이 아닌가?
하지만 아멜리아는 그들과 일면식도 없었다.
결국 모르는 사람들이 자기랑 같이 누워있었다는 건데,
“누, 누구?”
그녀가 날카롭게 묻자, 가장 앞에 있던 아름다운 처녀 한 명이 나섰다.
“너무 당황해하지 마세요. 우리는 전부 당신의 자매가 될 이들. 정신이 막 들어서 혼란스러운 건 이해해요.”
“그, 그런 거 맺겠다고 한 적 없, 어요. 누구죠? 여기는 어디?”
“여기는 발렌타인 도시 성주의 저택이에요. 우리는 위험한 사람이 아니에요. 오히려 당신을 도와주는 거죠.”
“도와, 준다고?”
“염소를 따라오셨잖아요. 어머니가 보낸 검은 염소를.”
“어, 어머니라니. 그게 대체.”
어머니, 검은 염소, 뜻 모를 이야기를 하든 이들.
아멜리아는 잠시 숨을 멈췄다.
레안드로스가 갤로에서 신과 싸웠던 이야기를 하던 게 떠올랐다.
-여신이라고 불리는 슈브-니구라스는 처음에는 검은 염소와 그림자의 형태로 왔습니다. 그 직후 거대한 화신체인 판의 모습으로 변하더군요.
이들이 말하는 어머니가 검은 염소를 보냈다면 그 ‘어머니’ 역시 슈브-니구라스와 접점이 있는 게 틀림없었다.
아니,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다면 오히려 이들이 슈브-니구라스를 섬기는 이들일지도.
아멜리아가 잠시 가만히 서 있자, 그녀에게 말을 건 처녀는 산뜻한 봄바람처럼 싱그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마 아멜리아가 상황을 납득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이제 좀 믿어지나요? 우리가 당신을 돕고 있다는 게?”
“저, 저는 어떻게 되는 건, 가요?”
“다 괜찮아요. 안심하세요. 우리가 하나씩 알려줄게요. 당신은 어머니께서 선택하신 우리의 자매. 해치지 않을 테니 마음 놓아요…….”
처녀는 손을 내밀었다.
막 피어난 수선화처럼 새초롬하고 신선한 자태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 미모와 분위기에 홀려 무턱대고 손을 잡았겠지만.
아멜리아는 그녀를 밀치고 온 힘을 다해 문으로 돌진했다.
분명 잠겨있던 문이 충격을 이기지 못해 쩍 하는 소리를 내며 힘없이 열렸고,
그대로 도망치는 아멜리아의 뒤에서 새된 비명소리가 들렸다.
“잡아! 잡아서 사지를 마비시켜! 어머니께서 손수 고르신 몸이다!”
아멜리아는 융단이 깔린 복도를 내달렸다.
저택의 구조도, 어디에 병력이 포진되어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나오는 건 무모한 짓이었지만.
지금은 어떻게든 도망쳐야만 했다.
돌덩이라도 매단 듯 무거운 다리로 최선을 다해 달리던 아멜리아는 복도 끝에서 누군가를 발견했다.
하의만 간신히 걸친 채 벽에 몸을 지탱하며 걸어오고 있던 금발의 남성.
그는 고개를 들어 아멜리아를 보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그녀를 추적하는 인원을 보고서는 거의 기절하려고 했다.
이 반응, 저쪽 사람은 아니겠군.
아멜리아는 일언반구 말도 없이 남자의 손을 낚아채 끌어당겼다.
속도를 전혀 늦추지 않은 상태에서 잡은 터라, 남자는 갑작스런 변화를 이기지 못하고 거의 질질 끌려왔다.
복도 모퉁이를 돌아 가장 먼저 보이는 방으로 몸을 던진 그들은 문을 닫아걸고 귀를 기울였다.
문 너머 복도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우르르 지나가더니, 그 후로는 곧 조용해졌다.
숨은 곳이 발각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아멜리아는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르륵 주저앉았다.
그녀의 옆에는 먼저 쓰러진 남자가 있었다.
“……왜, 왜 여기에?”
“……저도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탈출은 하, 하고 싶으신, 거죠?”
“당연한 소리를 하시는군요, 숙녀분.”
두 사람의 시선이 오갔다.
그리고는 곧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을 내밀어 마주 잡았다.
꽉 쥔 손을 한 번 흔들고, 아멜리아는 다시 일어났다.
“서, 서로 정보를 교, 교환해보는 게 조, 좋을 것 같아요. 여기서 나, 나가려면, 웬만한 계획 가지고는, 안 될 것 같, 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