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161
(160)
“나는 남자다. 잉태할 수 없어.”
“아냐, 할 수 있어.”
정신이 이상한 사람인가?
여신도가 왕실 직할령의 대리인 신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묻어버리는 ‘잉태’ 발언에 신관은 정신이 없었다.
그는 다시 힘주어서 말했다.
“남성은 잉태를 위한 기관이 없다. 그건 창조되었을 때부터 당연한 섭리로-”
“섭리?”
여신도는 날카롭게 웃었다.
“그래, 그놈의 섭리. 어차피 인간은 ■■ ■■■가 멋대로 낳은 자식들의 열화판에 불과하지. 그런 열등한 신에게 섭리 따위를 정할 재주가 있을 것 같아?”
“방금 뭐라고?”
“인간이 오래도록 섬기고 숭배하던 섭리, 창조의 순서는 더욱 거대한 힘 앞에서는 한순간 스러질 뿐. 우리들의 어머니께서는 풍요를 관장하시며, ■■ ■■■보다 위대하신 생명을 낳으신다!”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분노에 차서 외치던 여신도는 갑자기 죽은 성주를 덮고 있던 이불을 끌어냈다.
시신을 맨몸으로 안치하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할 새도 없이 더욱 충격적인 장면이 드러났다.
이불이 두툼해서 솟아오른 것처럼 보인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이불 아래 가려져 있던 시체의 몸이 잔뜩 부풀어 있었다,
노인의 커다란 배, 허벅지, 종아리를 거쳐 부푼 핏줄이 맥동했다.
피부 아래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여신도의 옆에 서 있던 처녀가 그녀에게 흑요석 단검을 건네주었다.
그것을 받아 든 여신도는 한 치의 거리낌도 없이 단검을 휘둘렀다.
“안 돼-!”
절규가 방 안을 울리며 살이 갈라지는 끔찍한 소리를 덮었다.
여신도는 교활하고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양손에 피를 흠뻑 적셨다.
침대의 시트가 흠뻑 젖는 내내 신관은 넋을 잃고 그 장면을 멍하니 쳐다봤다.
여신도의 손이 시신 속에 잠들어 있던 것을 억지로 끄집어냈다.
강제로 삶을 부여받은 그것은 인간의 형상이 아니었다.
반은 인간, 반은 염소의 모습을 섞어둔 그것은 절대로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게 아니다.
손과 발은 염소의 갈라진 발굽을 닮았으며, 다리 관절이 기묘하게 꺾이는 부분에는 발이 하나씩 더 솟아나 있었다.
귀가 있어야 할 곳에 비틀린 뿔이 솟아 있었고, 사람보다 동물에 더 가까운 얼굴은 울음소리 대신 씨근대는 숨을 뱉기만 했다.
잔뜩 젖어 가슴에 달라붙은 짙은 회색 털은 다리를 뒤덮고 있는 것과 동일한 색이었다.
손수 그것을 꺼낸 여신도는 만족스럽게 말했다.
“어머니께서는 필요 없다고 하시겠지만, 사실은 이게 필요하셔. 며칠 전 화신체를 잃으셨으니 위안이 되겠지.”
반인반수의 생명체를 다른 신도에게 넘긴 여자는 멍하니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신관에게 다가와 뺨을 쓸어주었다.
마르지 않은 피가 진득하게 묻어났다.
“어머니의 권능을 똑똑히 봤겠지? 그분을 부르는 의식을 치렀으니, 이제 어머니께서 강림하실 육신이 필요해.”
“육신…….”
“아름답고 강한 육신이 필요하지. 본디 저 여자를 태로 삼아 어머니를 부르려 했건만,”
신도들이 의식을 잃은 여자를 문양의 위로 내던졌다.
마치 사냥감을 내동댕이치는 듯한 모습에 섬뜩함이 묻어났다.
여신도가 나긋나긋하게 말을 이었다.
“여자보다는 남자가 더 튼튼한 육신을 가지고 있지. 최대한 오래, 품고 있는 것에게 피와 살을 빨려야 하거든. 그러니 역시 네가 적당하겠다는 결론을 내렸어.”
“왜.”
“너는 아름답거든.”
여신도가 활짝 웃었다.
“아름답고 강하지.”
고작 그런 이유로?
신관이 묻기 전에 여신도는 바닥을 뒹굴고 있는 여자에게 다가갔다.
불길한 예상에 신관이 목이 터져라 고함을 쳤다.
“그 여자에게 손가락 하나도 대지 마!”
“이 여자의 심장을 꺼내 쥐어짠 피로 문양을 완성하면 모든 준비는 끝나. 그리고 이 위에서, 바로 너랑 어머니의 충실한 신도인 내가.”
-부드드득.
핏기 없는 여자의 슈미즈가 뜯겨 나갔다.
허연 맨가슴 위로 검은 단도의 끄트머리가 스치면서 선명한 붉은 핏방울을 만들어냈다.
여신도는 그만큼 빨간 혀로 제 입술을 핥았다.
“어머니를 받아들이며 교합 하는 거야. 이 위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미친 소리였다.
신관이 몸부림을 쳤지만, 축축 처지는 몸이 자신에게 들러붙은 신도들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신이시여, 당신께서 거기 계신다면 이 시련을 헤쳐 나갈 힘을 주십시오.
저를 굽어살피고 있으시다면 제발!
속으로 비명을 지르는 신관의 눈앞에서,
목숨을 빚진 은인의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볼 수 없어서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그 순간,
“-레안드로스!”
창문과 벽이 통째로 박살 나며 사방이 하얗게 물들었다.
여신도의 당황한 비명과 신도들이 도움을 청하는 소리가 들렸다.
신관이 고개를 들자마자 무정한 검은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시릴 정도로 푸른 얼음을 딛고 있던 검은 기사.
그만의 신을 처음으로 만나게 된 순간이었다.
* * *
상황 파악이 잘되지는 않았지만, 눈에 익숙한 몇몇 사람들을 알아보고 나자 어느 정도는 유추할 수 있었다.
쓰러진 채로 가슴이 베인 아멜리아.
그리고 얼굴에 피가 묻은 채 무릎을 꿇고 있는 루셀.
레안드로스 역시 아멜리아를 발견한 모양인지, 나를 안고 있던 팔에 힘이 들어갔다.
“레안드로스.”
“명령하십시오.”
“출구를 봉하고, 저 사람들을 막아.”
“받들겠습니다.”
얼음의 검을 한 번 휘두르자, 문에 달라붙은 서리와 얼음 결정들이 급속도로 자라났다.
꼼짝없이 갇힌 사람들은 창문을 뚫은 거대한 얼음에서 미끄러져 내려오는 레안드로스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뭐, 그런다고 레안드로스가 너네 같은 잔챙이에게 지겠느냐마는.
나는 그에게서 벗어나 아멜리아를 깔아뭉개고 있는 여신도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검은 단검을 꽉 쥔 채로 소리를 질렀다.
“한 걸음만 더 가까이 왔다가는 이 여자의 목을 몸통과 분리해주겠어!”
나는 걸음을 뚝 멈췄다.
그러자 여신도의 얼굴 위에 안도감과 잔혹한 교활함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아멜리아의 머리채를 잡아 무방비한 목에 검을 대고 꾹 눌렀다.
“천천히 물러나. 다가오지 마!”
“공작님.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내 뒤에서 레안드로스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 혼자 할 수 있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둘 다 닥쳐, 닥치고 무기를 내려놔!”
여신도가 발악하며 외쳤다.
아멜리아의 목덜미로 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나는 여신도에게 말했다.
“나는 무기가 없는데?”
“네 뒤에 그 남자! 그가 무기를 내려놓게 해! 당장!”
“딱히 그럴 마음이 안 드는 상황이잖아. 그 여자를 놔줘.”
“그럴 수는 없지. 무기를 놓지 않는다면 이 여자의 목숨은 없어. 당장!”
레안드로스는 나를 흘긋 보더니, 그의 손에서 얼음 검을 부숴서 없앴다.
그때 내 망토 아래에서 뭔가 울룩불룩 움직였다.
그 장면을 포착한 여신도가 다시 날카롭게 외쳤다.
“안에 있는 건 뭐지? 당장 내려놔. 이쪽으로 보내!”
“이건 무기가 아닌데.”
“상관없어. 그러지 않으면 이 여자가 어떻게 될지 알고 있겠지?”
어쩔 수 없지.
한숨을 푹 쉬고 망토 안에서 움직이는 것을 꺼내서 바닥에 천천히 굴렸다.
여신도 쪽으로 굴러간 하얀 공은 그녀의 무릎에 툭 하고 부딪혔다.
여신도가 제게 다가온 공에게 시선을 준 찰나.
공이 갑자기 부풀어 오르더니 뛰어올라 여신도의 얼굴을 덮쳤다.
“인간 여자 내놔라! 위대한 이 몸, 얼음 보충한다! 인간 여자 필요하다!”
“꺄아아아아아아악!”
“레안드로스!”
레안드로스에게 무기를 버리라니, 얼마나 멍청한 소리인지.
그는 검을 없애는 것보다 만드는 쪽이 더 빠른데도.
순식간에 한기를 두른 검을 생성한 레안드로스가 검을 휘둘렀다.
대치하던 신도들이 비명을 질렀고, 나는 여신도가 아품 자에게 시달리는 사이를 틈타 아멜리아를 여신도의 손아귀에서 빼냈다.
여신도가 아품 자를 겨우 떨어뜨렸을 때는, 이미 신도들이 차가운 냉기와 서리에 갇혀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된 후였다.
여신도가 비틀거리며 일어나자, 레안드로스는 바로 나와 아멜리아의 앞을 막아섰다.
“너는……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지? ……너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구나.”
바득바득 갈리는 잇새로 뱉은 말에 레안드로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여자는 뭐라고 중얼거리더니, 갑자기 마구 웃기 시작했다.
“어머니께서 안배하신 일이구나! 그렇구나, 저런 몸으로 만족하지 않으실 줄 알았어. 고작 외모 말고는 봐줄 것 없는 인간 남자의 태에 깃드시다니. 내가 너무 멍청했어. 어머니의 의중을 헤아리지 못하다니!”
미친 듯이 웃던 그녀는 레안드로스를 향해 손을 뻗었다.
광기가 서려 있는 얼굴은 순식간에 잠잠해지고 대신 위태롭고 저항할 수 없는 요색(妖色)을 품었다.
뱀만큼 가벼운 혀가 속살거렸다.
“기사님. 부디 노여움을 풀고 검을 내리세요. 그래 주신다면 저는 당신이 누려보지 못한 것들을 드릴게요. 그게 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애처롭고 상냥하면서도 다정한 목소리.
방금 전까지만 해도 표독스럽게 군 모습이 선명한데도,
그게 꾸며냈다는 걸 뻔히 알고 있는 상태로 그녀에게 다가가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이게 신의 힘인 건가.
나는 귀를 막았고, 레안드로스는 단호하게 말했다.
“싫다.”
“기사님, 저는 당신이 품은 열망이 보인답니다. 그것조차 깨끗하게 잊을 수 있는 쾌락을 드리죠. 세상 누구도 가져보지 못한 경험을 선사해드릴게요.”
“관심 없다.”
“정말인가요? 지금이 아니라면 두 번 다시 겪을 수 없을 텐데?”
“두 번 말하게 하는 사람은 취향이 아니라서.”
“……그렇다면 힘으로 가지는 수밖에!”
촉촉하게 젖은 목소리가 다시 날카로워졌다.
그녀는 단검을 높이 쳐들더니, 그대로 자신의 배를 찔렀다.
하늘하늘한 옷감이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죽어가는 여신도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기원했다.
“어머니, 딸이 당신을 청합니다! 제게 힘을 주세요, 당신을 품을 태를 바치게 해주세요! 가엾은 딸에게 당신의 축복을 내려주세요, 어머니를 모욕한 이들에게 벌을 내리세요!”
기원은 처절한 비명에 더 가까웠다.
그녀의 발치에 고인 피 웅덩이가 약동하기 시작했다.
피는 중력을 거슬러 여신도의 발목을 타고 올라갔고, 그녀의 옷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다리를, 옷을, 살결을 타고 올라간 피는 여신도의 머리끝까지 뒤덮었다.
한순간 피가 씻겨 내려가듯 흩어졌다.
피를 입은 여신도는 더 이상 우리가 알던 여신도가 아니었다.
피처럼 붉은 옷이 여자의 발을 덮을 정도로 길어졌다.
그녀의 목과 팔을 장식하는 수많은 황금과 진주와 루비가 시야를 어지럽혔다.
그녀의 머리 위에는 솟아난 일곱 개의 흉측한 뿔에 베일이 걸려 있었다.
낡은 검은 베일이 그녀의 얼굴을 가렸다.
붉은색 긴 손톱을 달린 손에는 황금색 잔을 하나 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곧바로 하나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바빌론의 대탕녀…….”
슈브-니구라스의 화신체 중 하나.
하지만 신의 화신체가 이렇게 쉽게 생성된다고?
당황하고 있자 옆으로 굴러온 아품 자가 경고했다.
“신자, 저것은 여신의 화신체다? 아니다.”
“하지만 저건.”
“화신체 아니다. 평범한 인간의 육신이다? 화신체, 안 된다. 육에 속박되지 않는다. 모습을 흉내 냈다. 인형이다!”
정말인가? 그냥 모습만 흉내 냈다고?
여신도였던 슈브-니구라스의 화신체는 손에 들고 있던 황금잔을 천천히 기울였다.
잔에 담겨있던 자줏빛의 부정(不淨)이 흘러내려 카펫에 닿자마자, 침실 바닥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며 검은 그림자가 솟구쳤다.
염소를 비롯한 무수한 동물과 기괴한 모습의 괴물들이 검은 그림자 속에서 비명을 지르고 형상을 갖추었다.
그림자는 천장을 박살 냈고, 순식간에 하늘이 훤히 드러났다.
미친! 이게 뭐야!
“으아아악! 이 돌대가리 눈사람아! 화신체 아니라며! 아니라며!”
“……히, 힘이 세다! 화신체는 아니다! 그런데 힘이 세다!”
“이 사기꾼아!”
일단 이 저택을 벗어나는 게 급선무였다.
시간을 벌어서 이 가짜 화신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전략을 짜야 했다.
그때 하늘 끝까지 닿은 검은 촉수를 보던 레안드로스가 내게 말했다.
“공작님께서 먼저 저택을 벗어나 주십시오. 저는 이 자를 상대하겠습니다.”
“혼자서?”
지금 아품 자를 강림시키기에는 내 몸이 버거울 것 같긴 한데.
내가 마도서 프나코틱을 펼치려고 하자, 레안드로스가 내 손을 정중하게 막았다.
“괜찮습니다. 혼자서 처리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대신 저를 공작님의 피로 축복해주십시오.”
아품 자도 아니고, 내가?
눈사람을 내려다보니 눈사람은 짧둥한 팔을 휘휘 저었다.
“줘라. 내 신자, 아니면 빈혈이다? 피 아깝다? 쪼잔하다. 둘 다 아품 자의 축복을 받았다. 위대하신 이 몸의 분신체. 축복한다.”
“너는 무슨 말을 그렇게…… 아니다.”
피를 준다고는 해도 얼마나 줘야 할지 모르겠는데.
손에 감긴 붕대를 풀고 손바닥을 무작정 이로 물어뜯었다.
살이 뜯겨 나가는 화끈거리는 고통과 함께 쇠 맛이 물씬 느껴졌다.
옆에서 무식하게 그렇게 뜯냐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뭐 어쩌라고.
레안드로스는 피가 순식간에 고인 내 손을 경건하게 받아 들고, 손바닥에 입술을 묻었다.
그의 목울대가 정확히 두 번 움직였다.
맛을 음미하듯 시선을 내리고 있던 레안드로스는 조금 잠긴 목소리로 속삭였다.
“승리를, 반드시 가지고 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