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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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얼리는 검에 꿰뚫린 짐승이 울부짖었다.
머리가 셋, 눈이 일곱 개가 달린 개과의 형상을 관통한 상흔은 쉽게 복구할 수 없을 터.
그것이 무너지며 저 아래로 떨어지자 뒤이어 증식한 그림자 짐승이 거침없이 달려들었다.
성가시기 짝이 없다.
본인이 만들어 낸 가파르고 좁은 얼음의 길 위를 미끄러지듯 내달리던 몸이 얼음을 박차고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그와 동시에 얼음의 길이 봄눈 녹듯 스러졌고, 그에게로 달려오던 짐승들은 목표를 잃고 그림자 기둥으로 스며들어 공격을 회피하려 했다.
하지만 짐승들의 머리에 비수 같은 얼음 조각들이 내리꽂히는 게 먼저였다.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지는 날카로운 천연의 비수와 함께 떨어지던 레안드로스는 제 쪽을 노리고 솟구치는 그림자 촉수를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길디긴 몸에 얼음의 검을 박아 넣으며 낙하 속도를 줄이던 그가 속삭였다.
하나.
듣기 힘든 소리를 내며 붕괴와 수복을 반복하던 얼음검이 멈췄다.
둘.
검신을 박아넣은 곳에서부터 견딜 수 없는 한기가 흘러나오며 액체처럼 흐르는 그림자를 가두었다.
셋.
유리가 깨지는 것 같은 굉음과 함께 커다란 수정 같은 투명한 얼음이 그림자를 찢어발기며 솟구쳤다.
레안드로스는 촉수가 완전히 얼어 제 지배하에 들어온 것을 느끼자마자 그립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쩌적 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고, 레안드로스의 포악한 손길 아래에서 촉수의 얼어붙은 부분이 깨지며 양단되었다.
부수고, 베고, 찢는다.
전신을 휘도는 무구한 마력은 순종적인 노예처럼 그가 욕망하기도 전에 모든 준비를 마쳤다.
그가 얼음이었고, 얼음이 곧 그였다.
얼음을 만드는 건 눈을 깜박이는 것보다 쉬웠다. 마치 날 때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마저 떨어지는 그를 받아준 눈더미가 모습을 굳혀 단단한 지반이 되어 주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검은 그림자로 이루어진 촉수를 딛고, 고고한 모습으로 황금색 부정의 잔을 든 여인.
슈브-니구라스의 축복을 받고 형상을 갖춘 자.
바빌론의 대탕녀.
대탕녀의 본신인 여신도에게는 그녀 자신만의 목표가 있었고,
극권의 군주의 사도가 된 자신에게는 자신만의 목적이 있었다.
둘 중 누구도 양보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영원한 침묵을 지켜야 하리라.
바빌론의 대탕녀의 모습을 갖춘 여자는 베일 뒤에서 웃었다.
레안드로스는 바닥에서 솟아난 새로운 검을 쥐고 몸을 일으켰다.
새롭게 솟아난 부정한 짐승들이 우는 소리가 섬뜩했다.
* * *
벽에서 솟구치는 커다란 얼음의 낭떠러지.
사방을 사납게 후려치는 그림자 속의 부정한 짐승과 그 사이를 날래게 날아다니는 하얀 얼음을 탄 검은 사도.
아품 자에게 몸을 내어주었던 때와는 달리, 지금 제정신으로 그 싸움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오금이 저린 기분이 들었다.
“……위압감이 대단한걸.”
단순히 엄청나다던가 멋져 보인다는 수식으로는 부족했다.
얼음 위를 미끄러지면서도 앞으로 달려드는 짐승을 베고,
동시에 아품 자가 소유한 권능과 거의 다를 바가 없는 능력을 사용하며 단신으로 슈브-니구라스의 분신체와 동등하게 맞서는 모습이.
마치 잊힌 신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아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온몸이 저릿저릿하게 반응하고 다리가 굳어 버릴 정도로 힘든 중압감을 느끼면서도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이 들지 않았다.
눈사람이 내 다리를 붙들고 칭얼거렸다.
“신자, 다들 죽는다? 조금만 더 있는다? 우리에게 고드름 꽂힌다. 우리 꼬챙이 된다. 싫다. 거부한다!”
“아.”
그렇지. 우리가 여기에 있으면 안 됐다.
아무리 레안드로스라도 여기를 살피면서 싸울 수는 없을 테니까.
나는 축 늘어진 아멜리아를 겨우 부축해서 일어났다.
좋아, 이 정도면 금이 간 다리로도 어떻게든 움직일 수 있겠어.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든 순간, 내 눈앞에 아멜리아와 마찬가지로 정신을 잃고 쓰러진 금발의 남자가 보였다.
아 맞다!
“아, 아품 자. 혹시 지금 몸집을 부풀리거나 할 수는 없어?”
“신자, 과한 걸 바란다. 얼음도 없다. 지금 저 얼음 뗀다. 갈아서 나에게 준다. 몸 커진다. 그런데 지금? 얼음 간다? 시간 있다? 우리 죽는다.”
“나 혼자 두 사람을 어떻게 부축해!”
“이렇게 작은 신. 노동시킨다? 신자. 무엄하다.”
저 환자예요! 환자라고요!
레안드로스가 있었다면 이런 것쯤은 문제도 아니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레안드로스는 지금 저쪽 분신체를 상대하느라 바쁘다.
이런 제기랄.
나는 발을 질질 끌면서, 금이 간 늑골과 부러졌다가 붙는 중이었던 다리에서 전해지는 끔찍한 통증을 견디며 루셀을 겨우 집어 들었다.
“신자, 인간들 다 데려간다?”
“누구를 말하는…….”
헐떡거리면서 고개를 돌리자마자 가슴 한구석이 차가워졌다.
얼음 속에 갇힌 사람들이 보였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레안드로스와 대치하고 있던 이교도들은 얼음 안에 갇힌 채 눈만 굴려 나를 간절히 보고 있었다.
세상에. 저 사람들 혹시.
“아직 사, 살아있잖아.”
심지어 기절한 것도 아니었다.
이대로 뒀다가 이 사람들은 제정신인 채로 저 싸움에 휘말려 죽어 버릴지도 모른다.
저택 지하 바닥에서 뭔가 검은 게 자꾸 솟구치면서 바닥을 부수고 있는데,
잘못 걸렸다가는 얼음 속에서 즉사다.
게다가 레안드로스가 날리는 저 얼음창은 어떻고.
그게 삐끗해서 이쪽으로 날아와 얼음을 부순다면?
눈뜬 채로 본인의 몸이 절단 나는 광경을 봐야 하겠지.
내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자 눈사람이 보챘다.
“신자. 뭐 한다? 다른 생각 한다. 나간다. 빨리 나간다.”
시발. 시발시발.
나도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는데.
“……아품 자, 전에 했던 거 한 번 더 할 수 있어?”
“전에 한다? 무엇이다?”
“내, 내 몸에 강림하는 거.”
“무엇을 위한다? 인간 기사. 잘 싸운다. 내 신자의 피 먹었다. 날아다닌다. 필요 이상이다?”
“레안드로스 때문이 아니라. 이 사람들 때문이야.”
“에?”
눈사람은 얼음덩어리가 된 인간들을 훑어보다가 이등신 머리를 기울였다.
“위대하신 이 몸. 가능하다. 나의 신자. 이걸 바란다? 인간들을 옮긴다? 밖으로?”
“지금 내가 아무런 능력이 없어서 이 사람들을 다 옮겨주기가 힘들어. 밖으로 안전하게 바래다주고 저 얼음덩어리에서 풀어줘.”
“나의 신자. 바보천치다? 인간들 신자 공격한다. 생각 못 한다? 하등생물이다?”
“아니, 그 후의 일은 나중에 생각하자. 일단은 그냥 좀 옮겨줘!”
눈사람은 납득 못 하고 갸우뚱하면서도 결국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마도서. 신자, 펼친다.”
붉은 마도서가 한 번 더 펼쳐졌다.
내가 가진 마력에 반응한 책의 구절이 번득였다. 정신이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익숙한 기분과 함께, 나는 잠시 정신을 잃었다.
……그다음으로 눈을 떴을 때는 내 눈 바로 앞에서 검은 흑요석 같은 눈이 깜박이고 있었다.
“으아아악!”
“진정하십시오. 공작님, 저입니다.”
“아? 어? 왜?”
“이유가 궁금하신 겁니까, 아니면 왜 싸움이 지금 끝났냐는 말씀이십니까?”
“끝났어? 벌써?”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지?
고개를 돌리자, 저 멀리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저택이 보였다.
거의 반파된 저택 뒤로는 석양 때문에 분홍색으로 변해가는 하늘이 보였다.
“꽤 전에 끝났습니다. 공작님의 몸을 빌린 신이 엄호해준 덕분입니다.”
“아. 진짜?”
그 정도까지는 부탁하지 않았는데. 아품 자가 빨리 해치우고 이 짓을 끝내고 싶었나 보지.
서둘러 일어나려고 하는 순간 몸이 아파서 비명이 저절로 나왔다.
대체 내 몸을 어떻게 쓴 거지?
내 옆에는 눈사람이 대자로 뻗어 있었다.
레안드로스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설명을 덧붙였다.
“공작님께서 몸이 성치 않다는 건 그 신도 알고 있을 텐데, 엄호하면서도 제법 잘 뛰어다니더군요.”
“뛰어다녀? 미쳤나?”
몸을 한 번 빌려줄 때마다 누더기가 되어서 돌아오는 걸 보면 아품 자는 인간의 신체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게 분명했다.
기껏 잘 붙어가는 다리에 다시 금이 간 것 같았다.
아흔 살 먹은 노인처럼 레안드로스의 조심스럽기 그지없는 부축을 받아 일어났더니,
주변에는 나 외에도 정신을 잃고 쓰러진 사람들이 널려 있었다.
그 사이에서 아멜리아만 검은 망토를 덮은 채 반듯하게 눕혀져 있었다. 레안드로스가 보살펴준 거겠지.
하지만 이 밖에도 찾아야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무거운 머리를 레안드로스의 어깨에 떨구고 겨우 입을 열었다.
“저택 안에서 베르데는. ……못 찾았어?”
저택의 지하에서 도시 사람들 대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베르데나 아멜리아도 여기로 왔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멜리아밖에 발견하지 못했다.
베르데가 없다면 내 상태를 봐줄 사람은 물론이고 내가 죽었을 때 내 몸을 관찰해줄 사람마저 없어지게 된다.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물었다. 하지만 레안드로스는 어쩐지 망설이는 기색이었다.
“아뇨, 발견했습니다.”
“역시 못 찾았다면 이 근처를 수색해서- 어? 찾았다고?”
“찾았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저택의 밖에서 발견했습니다만.”
“밖에서? 혹시 나쁜 일이 있던 건 아니겠지?”
머릿속에서 이 하드코어한 세상에 어울릴 법한 단어들이 휘리릭 지나갔다. 고문, 살육, 신체 분리, 사망 같은 단어들.
레안드로스는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신 나를 응시하다가 대답했다.
“신체적으로 위해가 가해진 흔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공작님께서 아시다시피, ‘이것’들이 희생자를 유혹하는 방식이 워낙 저질스러운지라.”
“오.”
“정원의 구석에서 발견했습니다. 수풀 사이에 기절한 상태더군요.”
“그리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나와 레안드로스는 잠시 말이 없었다.
아. 그래, 그러니까 유혹에 이끌려서 이 정원에서 그렇게 되었다는 말이지.
누구는 본인을 찾아다니다가 여기까지 와서 목숨을 잃을뻔했는데.
정작 당사자는 광활한 아름다운 정원 한가운데에서 이단의 신도들과 뒹굴면서 육체적인 즐거움에 충실하고 있었구나.
이 새끼가.
“……어떻게든 깨워봐.”
“예.”
레안드로스는 나를 제대로 앉혀두고 정원을 가로질러 어딘가로 향했다.
하얀 꽃이 점박이처럼 피어난 수풀을 뛰어넘어 모습을 감추더니.
잠시 후 멀리서 ‘빠악!’ 하는 소리와 함께 단말마 같은 비명이 들렸다.
“아악! 누구세요, 이러지 마세…… 레안드로스 경? 뭐야 이거? 왜 내가 여기 있지? 그 여자는 어디 갔는데요? 혹시 경이 내 옷을 다 버린 건가요? 같은 남자 놈의 몸을 그렇게 보고 싶었, 아니, 주먹은 왜? 지금 나를? 여기서? 공작님한테 이를 거예요! 지금 무방비한 민간인에게 이렇게에아아아악!”
해질녘을 배경으로 처절한 곡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망가진 저택을 바라보며 발렌타인 에피소드가 거의 끝났다는 안도감을 한참이나 곱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