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20
(19)
“그런데 그 사람들은 어떻게 한 거야?”
“묻었습니다.”
“머리만 빼고 묻은 거지?”
“……”
“머리만 빼고 묻은 거 맞지……?”
유릭이 붙인 기사들은 수도를 나서서 웬만큼 거리가 벌어지자 레안드로스가 알아서 처리했다.
내가 한 일은 그냥 불이나 쬐고 담요나 덮은 채로 무방비한 모습을 보여준 것뿐이었다.
밤에 아른트와 레안드로스가 뭐라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더니, 다음 날 일어났을 때는 기사들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레안드로스가 태연하게 짐 챙기자고 하는 걸 듣고 얼마나 섬뜩하던지.
아른트가 설명하기로는 대련을 핑계로 꾀어냈다는데.
……진짜인가?
“그런 거에 신경 쓰시다가는 스트레스 받으실 겁니다, 공작님.”
“신경 쓰는 게 당연하지 않아?”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보다 제가 신경 쓰는 건 공작님의 식사량입니다. 그 두 사람의 식사를 미리 뺏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만 드네요.”
아른트가 내 손에 들린 육포를 쳐다보자 가슴이 뜨끔거렸다.
“아니, 하지만 이거 맛있다고. 왕성에서는 매일 이런 걸 주는 건가? 우리가 만든 것보다 더 맛있어.”
“양념을 친 것과 안 친 것의 차이니까요.”
“진짜? 지금까지 먹은 것 중에 가장 맛있네.”
내가 육포를 한입 더 뜯어 먹자 아른트는 제 얼굴을 양손으로 가렸다.
손가락 틈에서 ‘우리 공작님께서 맛있는 걸 드신 지가 언제인지…….’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른트에게 하기엔 좀 심한 소리였나.
아른트가 과거의 영광과 추억에 젖어 허우적거리는 사이에 레안드로스는 새 지도를 펼쳤다.
“왕의 길의 옆을 따라가다가, 이대로 아래로 빠지면 되겠습니다. 남부로 향하는 관문을 목표로 하면 될 듯합니다.”
“동부로 가는 길과 남부로 가는 길이 같아?”
“어느 정도는 같습니다. 디켄터 산맥에서 이어지는 산줄기를 피해가는 게 좋아 보입니다.”
수도에서 산 고급 지도는 깨끗하고 덮개도 따로 달려 있었다.
게다가 길이 자세히 그려져 있어서 위치를 파악하기에도 한결 수월했다.
덕분에 이동이 빠를 것 같았다.
“그럼 그렇게 하자. 동부까지는 며칠이 걸리지?”
“좋은 기수가 있다면 열흘이 조금 넘게 걸립니다.”
“남부까지는?”
“열닷새 정도입니다.”
“중간에 왕성에 전보를 하나 보내야겠네. 의심하지 않게 하려면.”
우리가 남부로 향하는 이유는 별 거 없었다.
북부로 향하려면 험준한 산맥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추적이 따라붙을 경우에는 나름 효과적이겠지만, 나는 왕성에서 깨어난 이후로 이 몸을 조심히 다루겠다고 각오한 상태였다.
그렇다면 선택지는 남부만 남는다.
남부는 기후가 따뜻해 수도 다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는 지역이었다.
그 너머로 펼쳐지는 너른 바다도 매력적이었다.
무엇보다 남부는 무역으로 유명했다.
무역이라고 하면 보통 비싸고 진귀한 이국의 물건들이 생각날 터였다.
하지만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건 해외로 나갈 수 있는 출구였다.
한국에서도 재벌가는 무슨 일이 닥치면 무조건 해외로 탈출했잖아?
왜 진작 이 방법을 떠올리지 못했는지.
외국으로 나가면 유릭도 따라붙지 못할 것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한 이름을 바꾸고 숨을 시간은 벌 수 있겠지.
이야기의 결말이 도망자라니, 솔직히 맥이 빠지기는 하지만…….
레안드로스와 아른트에게 있어서는 몰락귀족의 시중을 들거나 아예 목숨을 잃게 되는 것보단 낫잖아.
“배 타면 외국어 공부 해야지.”
“미리 하지 않으시고요? 배 위에서 바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지금 여행길에 어떻게 공부해.”
“마차를 구하면 안에서 앉아 계실 수 있습니다, 도련님.”
“멀미 날 걸.”
“배 위라고 안 날 것 같으십니까?”
아른트가 바가지를 박박 긁고, 나는 그걸 무시하고, 레안드로스는 지도를 살피고 일정을 조정하고.
평화로운 하루였다.
수도를 나선 후 처음으로 들른 마을에서 말을 샀다.
아른트의 말대로 마차를 구하면 좋았겠지만, 그랬다가는 금세 눈에 띌 테니까.
말을 타지 못하는 나는 레안드로스의 뒤에 탔다.
그렇대도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바람은 시원했고 우리는 잠시 자유로웠다.
초조함은 아른트의 농짓거리에 저 멀리 뒤쳐지곤 했다.
멀리 보이는 숲과 들판, 말끔한 하늘.
저녁부터 떠오르는 별과 하늘에서 쏟아지는 반짝거림이 이 세계관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었다.
내가 누구인지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영원히 이대로 떠돌기만 해도 좋을 것 같은데.
그러나 그런 안이한 생각은,
남부에 들어서자마자 지독한 생선 썩는 내에 휘발되었다.
* * *
아른트는 좋은 기수는 아니었지만 레안드로스는 뛰어난 길잡이였다.
동부에서 허술한 지도를 보면서도 길을 찾아냈는데, 좋은 지도를 받았으니 얼마나 길을 잘 찾겠는가.
남부까지 열닷새가 넘는다고 했는데, 레안드로스가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샛길을 같이 쓴 덕분에 이틀이나 절약할 수 있었다.
남부의 관문을 통과한지 하루 만에 우리는 남부의 첫 도시에 들어설 수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드나드는 만큼 입장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들어서자마자 공기가 심상치 않았다.
“원래 해안 도시가 다 이런 거야?”
“코가 아프네요.”
바다가 근처에 있다면 비린내는 당연히 나야 한다.
하지만 공기 중에 맴도는 이 텁텁하고 고약한 냄새는 바다의 비린내와 달랐다.
주변을 둘러보던 레안드로스는 지나가던 사람을 붙잡았다.
“잠시 물어볼 것이 있소. 이 냄새는 대체 뭔가?”
“냄새? 아아.”
수염이 듬성듬성 난 남자는 코끝을 찡긋거렸다.
“냄새가 궁금하면 저기 해안가에 가보게. 참, 코가 무뎌지니까 뭘 맡을 수조차 없구만.”
코를 연신 문지르던 남자는 그 말만 던지고 가던 길을 갔다.
우리는 그저 서로 바라볼 뿐이었다.
해안가로 가보라니, 거기서 무슨 일이라도 일어났나.
여관을 구하기도 전에 해변부터 찾아 나섰다.
정확히 어디에 있는 건지도 모르는 채 나선 건데도 크게 문제가 안 됐다.
냄새가 강한 쪽으로 자연스레 걸음을 옮기게 되었으니까.
그렇게 도착한 해변가.
우리는 길이 끝나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모래사장의 너머를 바라봤다.
파도가 끊임없이 치는 평범한 해변이었다.
그러나 그 파도를 따라 무언가가 쉼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햇볕에 비쳐 반짝거리는 비늘.
물고기가 뭍까지 올라와 죽은 모양이었다.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해변을 따라 길게 이어진 파도가 죄다 은색이었다.
그리고 그 물고기 사이에는…….
“어인이에요, 공작님. 어인입니다!”
아른트의 손가락질을 따라가자 이질적인 존재가 보였다.
해초에 얽힌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채,
이미 죽어서 썩은 악취를 풍기는 물고기 위에 늘어진 사람.
그 사람의 다리는 물고기와 마찬가지로 은색의 비늘이 다닥다닥 붙은 채 반짝거리고 있었다.
이런 건 원작 속에 나오지 않았다.
동부의 구덩이처럼 단순 언급이 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말 그대로, 이런 사건은 등장한 적이 없었다.
남부에서는 어떤 소란에도 휘말리지 않았는데.
지금 와서 왜?
“공작님, 냄새가 너무 심합니다. 돌아가시죠.”
아른트가 소매로 내 입과 코를 막았다.
악취가 사라지자 그제야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도시의 가운데에서 잘 곳을 찾았다. 다행히 좋은 가격의 여관을 구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배요? 저렇게 물고기 떼가 들이찼는데 어떻게 올 수 있겠어요. 듣자하니 저걸 다 치우기 전에는 배도 정박을 못 한다는데.”
“그럼 저건 언제 다 치우나요?”
“한 번 치워도 몇 시간 후면 물고기떼가 몰려옵디다. 여기가 무슨 죽을 자리라고, 나 참.”
“그럼 배가 못 온다는 거 아닙니까?”
“저희도 죽을 맛이거든요. 외국인 손님도 사라지니까 매출이 안 나요.”
저녁을 핑계로 음식을 주문시키며 여관 주인에게 슬쩍 캐물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더한 하소연에 눈앞이 아찔했다.
배를 타려고 온 건데, 배가 안 온단다.
어떻게 이렇게 사람이 재수가 없을 수 있지.
레안드로스가 뒤에서 물었다.
“남부만의 문제인가?”
“그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 다른 지역은 어떠려나. 혹시 더 시키실 거 있으세요?”
“없소.”
“그럼 있으실 때 부르세요.”
여관 주인이 멀리 가버리자 아른트가 목소리를 낮췄다.
“지금이라도 다른 곳에 가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남부 도시가 여기만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런가? 다른 곳은 괜찮을까?”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쪽 해안선에서만 일어난 일일 수도 있으니. 제가 한 번 얼마나 걸리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아른트가 자리에서 일어났고, 레안드로스는 아무래도 찜찜한 듯 인상을 쓰고 있었다.
우리는 다음 날 바로 짐을 챙겨 옆 도시로 향했다.
말로 한나절이 넘게 걸리는 거리였지만, 그 도시의 형편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악취.
물고기의 이유 모를 떼죽음.
정박이 불가능한 항구.
우리는 계속해서 옮겨 다녔고, 결국 며칠이 지나서야 최남단 끝까지 와서 멈췄다.
남부에서 가장 작은 마을.
동시에 가장 작은 항구를 가진 곳.
마지막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여기까지 왔지만…….
“저 위에서부터 쭉 내려왔다고? 이걸 어쩌나. 위도 다 똑같나보이. 여기도 배가 안 들어와.”
마을에서 볕을 쬐는 할머니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완전히 낭패였다.
여기까지 배가 안 들어온다면, 대체 어디에 가야 배를 탈 수 있지?
아른트가 중얼거렸다.
“시간이 없는데.”
맞다.
시간이 없다.
여러 도시를 거치느라 동부에 도착하고도 남는 시간이 흘렀다.
이쯤이면 유릭도 슬슬 소식을 원할 텐데.
못해도 오늘내일 중으로 배에 타서 출국해야 했다.
“어쩌지?”
할머니는 후드를 뒤집어쓴 우리를 유심히 보더니 한 마디를 덧붙였다.
“외지인이 이런 거 신경 쓰면 오래 못살어, 응? 그냥 운 텄다고 생각하고 빨리 가.”
“하지만 꼭 여기서 배를 타야합니다. 무슨 방법이라도 없을까요?”
“방법이 있긴 어디 있어.”
“젊은 사람들 구해준다고 생각하고 한 번만요! 집에 제 나이뻘만한 손자도 있으실 거 아닙니까?”
할머니는 마른 입을 짭짭 다시더니 불편한 듯 입을 열었다.
“아유, 나는 잘 모르구. 저쪽에 이거 해결할라고 온 사람이 있는데 말이야.”
“그 사람이 누군가요?”
“듣기로는 학자 양반인가봐. 나는 잘 모르지. 이게 내가 아는 전부여.”
물고기 떼가 몰려온 것과 어인이 관련이 있는 걸까.
하지만 만일 그 학자라는 사람이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다면?
찾아가보는 것도 그렇게 큰 손해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럼, 할머니. 혹시 그 사람이 어디 있는지 아세요?”
“저기 안쪽으로 들어가 봐.”
감사의 뜻으로 동화 한 닢을 쥐여드린 후, 우리는 가르쳐준 방향으로 향했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 가로지르면, 곧 마을의 울타리를 벗어나 밖으로 나갈 수 있다.
그렇게 걸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보이는 작은 집 한 채가 보였다.
언제 고쳤는지 모를 낡은 문을 두드리자, 중후한 외모의 남성이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누구십니까?”
“안녕하세요. 저희는…….”
나는 고개를 들자마자 비명을 지를 뻔 했다.
낯이 익은 사람이 문간에 서 있었다.
희끗희끗한 머리, 주름진 피부, 안경 너머로 보이는 피곤한 눈.
전체적으로 각이 진 얼굴에 비해 왜소한 몸.
“원장님이 왜 여기 계세요?!”
오래 전에 마지막으로 뵀던 보육원 원장님.
그 분이 소설 속에 떡하니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