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28
(27)
“허리는 괜찮으십니까?”
“엉덩이뼈가 부서질 것 같아. 이게 맞아?”
성공적으로 말을 구입한 우리는 각각 말을 골랐다.
아른트는 성질이 더러운 말에게 물어 뜯기기보다는 자는 말을 깨우는 걸 택했고,
레안드로스는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했다.
결국 보다 튼튼한 검은 말에 나와 레안드로스가 타게 되었건만.
“잘 타고 계십니다.”
“아니, 엉덩이가 부서질 것 같다니까. 하반신이 없어진 것 같아.”
“옛날처럼 두 손 두 발로 말에 올라타진 않으시지 않습니까.”
아렌하이트, 넌 대체 뭐하던 인물이었나.
우리는 압생트를 벗어나 꽤 달렸다.
가끔 내려서 끼니를 때운 것 빼고는 내내 달린 것 같았다.
내가 먼저 그렇게 하자고 하기는 했지만.
확실히 가혹한 일정이기는 했다.
“이대로 가면 수도까지 며칠이 걸려?”
“엿새 정도.”
“더 좋은 지도가 있으면 좋을 텐데.”
“지금으로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더 빨리 갈 수 있잖아.”
“조급하게 생각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앞으로 시간은 많으니까요.”
아니, 얼마 안 남았을지도 몰라.
유릭 놈이 내 목을 자르러 오는 날이 가까워지는 기분이라고.
나는 무심코 하려던 말을 꾹 삼켰다.
“두 사람을 보면 안심이 안 돼.”
“……저희?”
“아른트랑 경 말이야. 일 초라도 더 빨리 좋은 식사랑 좋은 침대를 주고 싶어. 그건 내 욕심일 뿐이야?”
내 손에는 아른트가 쥐어 주고 간 수통이 있었다.
잠시 휴식을 위해 멈춘 우리는 길가에 있는 커다란 나무 그늘 밑에 앉아있었다.
아른트는 계속 졸기만 하는 말의 정신을 차리게 하겠다며 멀리서 풀을 먹이는 중이었다.
졸려서 멈춰선 말과 끙끙거리며 씨름을 하는 아른트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원래대로라면 공작가 안에서 잘 대접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아른트는 똑똑하고 착하잖아. 게다가 나한테 잘해주고.”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경도 그렇고. 설령 어머니께서 내게 경을 주셨다고 해도, 지금처럼 말 한 마리 살 때 쩔쩔매지 않아도 되었을걸.”
“그렇습니까.”
레안드로스는 아른트가 풀밭에 나뒹굴다가 벌떡 일어나는 모습을 함께 바라봤다.
“저는 어떤 식으로든 공작님께서 안전하시기만 하면 됩니다.”
“목숨만 붙어있으라고?”
“그런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앞이 불분명하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만, 어느 면에서는 분명 달라진 게 있을 겁니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암살기도가 줄어들기도 했고.”
“……암살? 내가? 당하고 있는 거?”
“네.”
“내가 살아있는데?”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그런 게 있다고 말 안 했잖아!
레안드로스는 뭘 이제 와서 그러냐는 듯 나를 봤다.
아니, 암살 시도가 있었다면 누구에게서? 언제부터? 그보다 그건 누가 막은 건데?
바보 같은 생각 하지 말자.
……당연히 레안드로스겠지.
여기에서 검 쓰는 사람이 얘 말고 누가 있겠어!
“그걸…… 지금까지 까맣게 잊고 있었네.”
“돌아가신 공작부인께서 이런 부분을 염려하시기도 하셨을 겁니다.”
“누가 보냈는지는 몰라?”
“옛날 같으면 캐냈겠습니다만, 지금은 굳이 알 필요가 없을 듯해서.”
“아니, 그걸?”
“뻔하지 않습니까.”
숫제 귀찮다는 투였다.
나는 그 뻔한 걸 몰라서 내내 머리를 굴렸다.
아. 진짜 누구냐.
“그래도 아까 말씀 드렸다시피 횟수가 상당히 줄었습니다.”
레안드로스는 급격히 어두워진 내 얼굴을 보며 무마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세상에는 내 목숨을 노리는 게 너무 많다…….
젠장. 어쩌지.
“어쩔 수 없네.”
“예?”
이렇게 된 거, 유릭에게만 안 죽는 걸 목표로 하자.
내가 살수에게 죽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냥 고통스럽게 죽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유릭에게 죽는 건 좀 다른 문제였다.
애초에 상대를 오체분시해서 나라 곳곳에 뿌리겠다는 게 사람이 할 생각이냐고.
“공작님?”
“아무것도 아냐. 잠시 다른 생각했어. 슬슬 갈까? 수도에 가려면 시간이 빠듯해.”
유릭 생각에 기분이 나빠졌다.
레안드로스는 갑자기 일어난 나를 보고 의아한 모양이었지만 티를 내진 않았다.
근처에 묶어둔 흑마는 우리가 올 때까지 그 자리에 얌전히 서 있었다.
레안드로스가 묶어둔 고삐끈을 풀 때는 몸을 털며 싫어하기는 했다.
하지만 내가 손을 뻗어 얼굴을 만지자 곧 얌전해졌다.
“말이 이 정도면 고집이 센 건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이 말을 사려고 했던 손님들이 다 말을 못 타는 놈들이었던 거 아냐?”
“그러면 말을 살 생각도 안 하지 않았겠습니까.”
빨간 눈이 께름칙했지만 그래도 까만 몸은 보기만 해도 우아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말을 토닥이다가 레안드로스와 함께 올라탔다.
저 멀리서 아른트가 고집을 부리는 갈색 말을 달래고 얼러서 겨우 올라가는 게 보였다.
수도까지 많이 남았는데. 아른트와 말은 괜찮을까.
레안드로스가 나직하게 혼잣말을 했다.
“낙마나 안 하면 다행이겠군.”
……하더라도 어디가 부러지진 않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아른트를 위해 간절히 빌어줬다.
* * *
수도까지 가는 데에는 며칠이 걸렸다.
그 사이에 아른트는 말 위에서 두 번쯤 떨어질 뻔했고, 보다 못한 레안드로스가 말을 바꾸자고 했으나 검은 말까지 아른트를 거부했다.
결국 레안드로스가 말길들이기 진기명기쇼를 펼치고 나서야 갈색 말은 어느 정도 고집을 꺾은 것처럼 보였다.
그런 일을 겪고 나니 눈 깜짝할 새에 수도에 도착한 기분이 들었다.
“여기가 수도?”
“네, 너무 어릴 때 오셔서 기억이 잘 나시지 않으시죠? 수도에서 마차로 20분만 달리면 하르트만이 소유한 저택도 한 채 더 있습니다.”
“타운하우스인가 그거?”
“맞습니다.”
수도,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수도의 도시로 들어가기 위한 관문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 서 있었다.
이 사람들이 전부 도시로 향한다고.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그래도 그럭저럭 줄을 설만 했는데.
해가 점차 높이 뜰수록 우리 뒤로 붙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줄은 하염없이 길어지기만 했다.
“다음!”
드디어 우리 차례였다.
목이 다 쉰 수문장의 외침에 한 걸음 나서자 피곤에 찌든 병사가 물었다.
“어디서 오셨소?”
“북서부의 압생트.”
“길드 소속인가?”
“여행자요.”
“잠시 검문하겠소.”
평범한 검문이었다.
우리가 워낙 가진 게 없다 보니 밀수꾼으로 의심조차 못 받았다.
걱정했던 갈색 말도 얌전히 병사의 손길을 받았다.
문제는 검은 말이었다.
병사들이 안장 밑에 숨은 물건은 없나 슬쩍 살펴볼 때였다.
갑자기 누군가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아악! 으아악! 아아아악! 내 머리! 내 머리!”
-푸르르릉!
“야! 야 이놈아! 뭐해!”
검은 말이 뭔가 마음에 안 들었던지, 한 병사의 머리카락을 한 음큼 물어뜯었다.
뿌드득하는 불길한 소리가 나한테까지 들렸다.
놀라서 바로 떼어놓으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검은 모발을 퉤, 하고 뱉은 검은 말은 기세 좋게 콧김을 내뿜었다.
“왜 이래! 미쳤어!”
-푸르륵.
“누가 이런 거 가르쳤어! 사람 머리를 왜 뜯어!”
내가 말을 혼내는 사이에 바닥에 쓰러진 병사는 비틀비틀 일어나 제 머리를 더듬었다.
병사의 머리는 원래도 풍성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새로 난 구멍은 딱 주먹 지름만 했다.
병사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머리를 하염없이 만지다가 우리를 돌아봤다.
그 눈에는 울분과 분노, 절망이 함께 담겨 있었다.
병사는 한 글자, 한 글자 씹어뱉었다.
“당신들을…… 고소하겠소……!!”
도시에 진입하기도 전에 거하게 사고를 쳐버렸다.
씨발…….
* * *
우리는 경비대장을 만나 이제까지 있었던 일에 대해서 설명했다.
경비대장은 말 주인인 우리에게 책임을 묻는 것으로 마무리 지으려고 했다.
크게 다친 것도 아니고 머리가 뜯긴 것이니 배상액이야 몇 푼 되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경비병들 사이에서 소문이 퍼졌다는 거.
머리에 구멍이 난 경비병이 어찌나 입을 싸게 놀리고 다니던지.
“이대로 가다가는 옛날 고용인들 소문을 캐내기도 전에 유명인이 되겠네.”
“유명인이 되면 좋지 않나요?”
“아른트, 우리가 신분을 숨겨야한다는 걸 잊지 마.”
수도에서 가장 싼 여관을 잡은 우리는 말을 여관 옆에 묶어두고 나왔다.
나는 내 머리카락을 숨기느라 내내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빨간 머리카락은 상당히 드문 편이라 어딜 가든 시선을 끌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경비병이 ‘포악한 말을 데리고 다니는 빨간 머리 마주’ 같은 말을 하고 다녀서.
아, 이 머리카락 좀 어떻게 할 수 없나.
대머리가 되고 싶은 건 차라리 이쪽이다.
“여긴 가발 같은 거 안 팔아?”
“어디서든 가발은 팝니다만, 좋은 것을 구하기는 어려우실 겁니다.”
“왜…… 아, 그렇겠네.”
짧아진 머리카락이 귓가에서 흔들렸다.
나일론 같은 게 없는 이 세상에서는 사람들의 머리카락을 잘라서 가발을 만들었다.
그러니 그럴듯한 가발은 단가가 비쌀 수밖에.
염색약도 없어, 가발도 못 써.
이 놈의 중세 세계관.
“어쩔 수 없지. 잘 가리고 다니는 게 최선이야. 그것보다 그 주점은 얼마나 더 가야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그보다, 정말 거기에 가는 게 맞을까요? 도련님께서 그 장소를 언급하신 이유가 당연히 있겠습니다만, 저로서는 알기 어려워서요.”
수도에 들어서서 공작님 대신 도련님 호칭을 쓰기로 한 아른트가 불쑥 물었다.
그럴 만도 하지.
지금 우리가 가는 곳은 단순한 주점이 아니었다.
바로 정보 길드에서 운영하고 있는 주점이었다.
정보 길드는 이름처럼 왕국 내의 온갖 정보들을 다루고 있었다.
남부의 생선 가격부터 동부 어느 영주의 추잡한 사생활까지, 구하려면 못 구하는 게 없는 정보의 보고.
하지만 아무리 대단하게 들리는 길드도 단점은 있었다.
정보를 얻는 데에는 그만한 대가가 필요하다는 것.
정보 한 글자가 천만금보다 귀할 때도 있었고, 반대로 두루마리 하나가 썩은 고기보다 값이 쌀 때도 있다.
지금 우리가 구하는 정보는 하르트만이 건재한 시절에 가문 내 주요 역할을 맡고 있던 사람들의 근황.
엄청나게 비싼 정보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쉽게 내어줄 만한 정보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그 정보의 값을 치를 수 있는 돈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걸 대가로 하르트만 가문에 대해서 파시려는 건 아니죠?”
“설마.”
나쁘지 않은 의견이다.
실제로 내가 진지하게 고민해본 선택지기도 했다.
어차피 망한 가문, 내가 가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크게 타격이 올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계획이 있기에 이 선택지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긴 했지만.
길의 저쪽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렸다.
심플한 간판을 세워둔 평범한 술집이었다.
낮인데도 흠뻑 취한 사람들이 신나게 잔을 부딪히고, 테이블 사이를 오가는 종업원이 메뉴 이름을 소리치며 주문자를 찾았다.
우리가 안으로 들어가자 여주인이 손을 닦으며 카운터 뒤에서 우리를 맞이했다.
“어서 와요! 날이 좀 덥죠. 지금 자리가 없어서 서서 마셔야 할 것 같은데. 에일? 물 탄 와인도 있어요. 식사도 돼요! 치즈나 빵이 어때요? 오늘 사거리에서 제빵사가 빵을 기가 막히게 구웠거든요.”
“서서 마셔도 상관없어. 사과주스에 허브를 넣어줘. 그리고 신선한 생선 요리도 추가로.”
여기가 정보 길드가 아닌지 물어보려고 하는 사이에 레안드로스가 먼저 답했다.
내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레안드로스를 보는 사이에도 주인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아, 사과주스에 허브, 생선이요. 마침 신선한 생선들이 막 들어왔답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일종의 암호군.
신선한 생선 같은 건 여기서 먹을 수 있는 요리가 아니다. 이전 생에서 갔던 남부라면 몰라.
없는 요리를 달라고 주문한 건 실수가 아니었다.
‘특수한 손님’만이 알고 있는 패스워드 같은 거였다.
그렇게 말한 주인은 카운터 문을 열어주고 컵이니 말린 식재료 같은 게 가득한 재료 선반의 뒤로 돌아갔다.
선반 뒤에는 공간이 없는 것처럼 보였는데.
하지만 막상 가니 딱 한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만한 너비의 통로가 있었다.
주인은 벽의 틈을 더듬다가 뭔가를 힘껏 옆으로 당겼고, 그러자 통로의 끝에서 달카닥하는 소리가 났다.
“수고가 많소.”
“별말씀을요.”
통로 끝의 나무 벽이 열리며 손님을 맞이했다.
넘어가자 뒤에서 주인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리며 문이 닫혔다.
“좋은 아침, 좋은 낮, 좋은 밤입니다! 원하시는 게 있다면 부디 지불하고 얻어가세요.”
수도가 자랑하는 소문의 원천,
정보 길드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