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37
(36)
“끄…… 으윽…….”
“내 팔, 내 팔…….”
레안드로스는 칼등으로 건달들을 때리진 않았다.
얘가 쓰는 검에는 칼등이 없으니까 당연하다.
하지만 내 말을 이해한 레안드로스는 검집으로 건달들을 두들겨 패는 방법을 택했다.
쪽수가 약간 걱정 되기는 했는데, 패는 모습을 보니 곧 괜한 걱정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기사들은 효율적으로 패는 법 같은 거라도 따로 배우나.
“끝났습니다.”
레안드로스는 바닥을 뒹구는 건달들을 거들떠 보지도 않고 보고했다.
나가떨어진 놈들은 총 다섯 명.
폐쇄된 기도원에 건달이라.
척 봐도 수상함이 풀풀 풍긴단 말이지.
나는 그 중 하나의 앞에 쭈그려 앉아서 쿡 찔렀다.
“아저씨.”
전기충격이라도 받은 듯 퍼덕이던 놈은 레안드로스의 못마땅한 눈치를 받고 나서야 무릎을 꿇고 앉았다.
“네, 네.”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뭐, 뭘 물어보시려고……?”
“여기서 뭐 하고 있었어요? 나쁜 짓이라도 하고 있었나?”
“어이구, 아닙니다. 나쁜 짓이라뇨.”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건달의 얼굴에도 같이 경련이 일었다.
“저희는, 에, 그 뭐냐. 그냥 이 근처를 떠돌다가 밤이슬이나 피할까 하던 부랑아죠! 귀공자께서 신경 쓰실만한 놈들은 아닙니다요. 에헤헤.”
“웃어?”
“헙.”
팍 씨.
나는 턱을 매만지다가 다시 물어봤다.
“그럼 기도원 안에는 아무도 없단 말이지?”
“네, 네! 그렇습니다. 아무도 없습죠. 텅텅 비어 있던걸요.”
“그럼 저기 불도 너희가 킨 건가?”
내가 고갯짓 한 쪽에는 야외 회랑을 따라 드문드문 횃불이 켜져 있었다.
그걸 본 건달은 황급하게 둘러댔다.
“저희가 켰습니다. 왜 그, 이 안이 너무 어두우니까 무서워서. 저희가 보기보다 겁쟁이거든요!”
“겁쟁이라서 불을 켰구나. 나는 또, 다른 사람들이 여기 있거나 방문할 예정인 줄 알았지.”
“어우, 공자님께서도 농담이 참. 그럴 리가요.”
눈가가 파르르 떨리고 있거든, 임마.
나는 일부러 웃었다.
“안에서 뭐해?”
“헉.”
“말 안 해줄 거면 관두고. 내가 직접 가면 되니까.”
내가 일어나자 레안드로스가 알아서 모시겠다는 투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건달은 허겁지겁 내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다.
“고, 공자님! 들어가시면 저희 진짜 죽습니다, 어디서 오셨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만 봐주세요!”
“죽어? 누구한테?”
“그건…….”
방금전까지는 세상 간절하게 말하더니 금세 수그러들기냐.
뭐, 상관은 없었다.
나는 시큰둥하게 발을 탈탈 털어서 그 손을 뿌리쳤다.
“죽는다니 안타깝기는 하네. 그럼 내가 제안 하나 할까?”
“무슨 제안인데요?”
“첫 번째 제안. 우리는 들어가고 너희는 다른 사람에게 죽는다. 두 번째는.”
나는 레안드로스를 보란 듯 가리켰다.
“말 안 하고 쟤한테 여기서 죽는다.”
건달의 얼굴이 파래졌다가 하얘졌다.
레안드로스가 분위기를 제대로 잡고 있어서, 손만 검집에 갖다 대도 움찔하는 수준이었다.
“골라.”
건달은 금방이라도 스스로를 기절시키고 싶은 얼굴이었다.
그러게 누가 일어나래?
기절한 척하면 됐을 거 아냐.
결국 건달은 울며 겨자 먹기로 기도원의 이야기를 낱낱이 고해 바쳤다.
그리고 그 노력에 감동한 나는 건달의 소원대로 그를 기절시켜주기로 했다.
레안드로스가 빡! 하니까 바로 쓰러지더라.
기절한 건달들을 한데 모아두는 작업이 끝나고 레안드로스에게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
“제가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기도원이 도박장이 된 건 경악할 만하지 않아?”
거대한 불법 도박장.
건달이 털어놓은 대로라면 아주 오래 전부터 수도원에서 불법 도박판이 벌어졌다고 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영주의 장원 밖에 있는 작은 마을이니까 큰 규모로 이런 일을 하는 게 가능한 거겠지.
도적떼가 주기적으로 약탈하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인 거다.
건달은 자신들을 마을에서 꽤 알아주는 불량배들이라고 했다.
이 마을 출신은 아니지만, 수도원 근처를 망봐주는 임무를 맡았다던가.
허락 받지 않은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수도원을 지키는 일이었다.
그 임무를 준 의뢰주가 누구냐고 물었지만 거기에서는 입을 꼭 다물었다.
건달치고 쓸데없이 의리가 깊은 놈이었지.
레안드로스는 걷었던 소매를 내렸다.
“기도원의 목적을 상실한 이상, 과거에 어떤 의미가 있었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럼 지금 중요한 건 뭔데?”
“저 안에 들어가면 알게 될 겁니다.”
어둠 속에서 우뚝 서 있는 거대한 그림자.
우리는 더할 나위 없이 성스러운 자세로 무릎을 꿇은 신도의 조각을 지나 도박장 안으로 향했다.
경비가 허술한 건지, 아니면 밖에 있던 그놈들을 너무 믿은 탓인지.
들어가는 내내 문지기는 몇 번 만났지만 그들 전부 나를 흘긋거리기만 할 뿐 말이 없었다.
한국 같았으면 벌써 네 번쯤 걸리고도 남았겠다.
대강당만큼 큰 예배홀에 들어서자마자 요상한 냄새가 확 풍겼다.
독한 향수와 구취, 땀과 분냄새가 어지럽게 섞여 있었다.
창문까지 꼭 닫고 있는 탓에 더욱 환기가 안 되고 있었다.
내부에는 테이블과 바닥에 깔아둔 판이 즐비했다.
주사위와 기괴한 그림이 그려진 플레잉 카드가 오갔고, 거기에 더해서 끊임없이 짤랑거리는 동전의 소리까지.
웃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불같이 화내는 사람도 있었고, 구석에서 우는 사람도 있었다.
그걸 다 둘러보기도 전에 누군가가 내 옆에 잽싸게 붙었다.
“아이고, 도련님! 귀공자께서 저희 업장을 찾아주시니 황공합니다. 이렇게 서 계신 걸 보니까 아직 취향인 판이 없으신가요? 아니면 오늘 처음 오시는 걸까요?”
“나는…….”
마치 VIP를 모시듯 알랑거리는 남자가 쉬지 않고 떠들었다.
당혹스러워하다가 주변을 한 번 더 둘러보고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여기저기 청년과 소년 사이에 있는 손님들이 제법 보였다.
전체 손님의 30퍼센트 정도는 되려나.
대부분 망토를 눌러쓰거나 깃털처럼 나이 들어 보이는 장식을 달았지만 앳된 목소리나 외모는 어쩔 수 없었다.
남자를 보자, 그는 돈 냄새가 나는 순진한 도련님이라고 판단한 게 분명한 얼굴로 손을 싹싹 비볐다.
“좋아하시는 게임을 새로 만들어드릴깝쇼? 아니면 초보자들이 하기 좋은 판으로 안내해드릴깝쇼?”
이것 봐라.
어쩐지 밖에 경비원들이 날 막지 않더라.
코 묻은 돈을 뜯으려고 작정했네.
“먼저 좀 둘러보지. 내 마음에 드는 게임이 있으면 좋겠지만 없다면 불러볼게.”
“아이고, 아무렴요. 마음껏, 마음꺼엇! 둘러보십쇼.”
목청 좋은 남자는 잽싸게 뒤로 빠졌다.
레안드로스는 뒤에서 몸을 조금 숙여서 속삭였다.
“참가하실 생각이십니까?”
“내가 왜? 사기일 게 분명한데.”
레안드로스는 의외라는 듯 잠시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도박을 뭐 하러 굳이 해야 해?
내 인생에서 절대로 하지 않는 게 딱 세 개 있었다.
도박, 보증, 밥 먹고 이 안 닦는 거.
나는 레안드로스에게 넌지시 말했다.
“돌아다니면서 찾아봐. 나는 의심받지 않게 구경하는 척할 테니까. 수상한 행동은 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레안드로스는 대답하고 나서 바로 사람들 사이로 섞여들었다.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본 레안드로스가 찾는 게 더 쉬울 것이다.
나는 얼굴을 모르는데 아는 척 하는 것도 힘드니까.
내가 서 있는 중심으로 몇 발짝만 가면 참가할 수 있는 도박이 다섯 개나 있었다.
천천히 둘러보던 중, 한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자, 자! 이 컵 안에 있었는데 왜 못 보는 건가? 자알 보라고. 여기야.”
작은 나무판 위에서는 컵 세 개와 작은 돌이 있었다.
판을 이끄는 딜러 역할을 하는 놈은 으쓱거리며 돌을 컵 안에 넣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는 컵을 천천히 섞기 시작했다.
점점 섞는 속도가 빨라지자 게임에 참가하는 사람이 눈을 벌겋게 떴다.
그리고 마침내 컵이 멈췄다.
“이번에는 얼마를 걸게?”
“아까 딴 돈을 전부 걸지! 이번에는 확실해, 확실하게 봤다니까!”
“그래? 몇 번째 컵인가?”
“분명 여기에 있어. 다 봤다고. 아까 딴 돈을 전부 뱉어야 할 거다!”
판돈이 어지간히 큰 모양인지, 참가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컵을 손가락질했다.
주변 사람들도 동의하는 뜻으로 웅성거렸다.
딜러는 참가자가 가리킨 컵을 쥐고 물었다.
“마지막으로 바꿀 기회를 주지. 어떤가? 바꾸겠어?”
“아니! 그 컵이 확실해!”
“흠. 좋아. 좋아.”
그리고 딜러가 컵을 들었다.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잠시의 정적이 흐른 후, 참가자가 소리를 질렀다.
“분, 분명 그 컵이었다고!”
“아이구, 내가 눈 크게 뜨고 똑똑히 보라고 했잖아! 안타깝게 됐네 그래.”
“아닌데, 이럴 리가 없는데!”
“이 돈은 제가 다 압수. 이것 봐라. 많기도 하네.”
딜러는 판 위에 쌓아 올린 동전들을 양팔로 모아서 제 쪽으로 쓸어왔다.
한순간에 돈을 다 잃은 참가자는 뭐라 알아들을 수 없는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난동을 부리기도 전에 다른 참가자가 그를 거칠게 밀어내고 앉았다.
완전 개판이네.
그 꼴을 지켜보던 나는 유감없이 고개를 돌렸다.
레안드로스는 여기서 어떻게 로타어를 찾아내려나.
* * *
레안드로스는 도박 같은 걸 해본 적이 없었다.
그나마 비슷한 걸 대라면 전 공작부인에게 자신을 호위기사로 삼아 달라고 몸을 던졌던 일 정도일까.
하지만 지금은.
‘이런 걸 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었지.’
레안드로스는 잠시 고개를 저었다.
눈앞의 일에 집중하자.
이런 곳에 공작님을 오랫동안 둘 수는 없었다.
도박장이라니, 공작부인이 살아있었다면 기절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레안드로스는 옛날에 봤던 집사장의 모습을 떠올렸다.
나이에 비해 새치가 유독 많던 집사장의 모습을 그리며 수많은 도박판을 지나던 레안드로스는 잠시 멈춰 섰다.
저 구석.
예배홀과 기도원의 내부로 이어지는 통로를 가린 붉은 커튼.
누군가가 커튼을 들추고 그 너머로 사라졌다.
다른 건 다 몰라도, 걷는 뒷모습이 왠지 눈에 익었다.
레안드로스는 빠른 걸음으로 그 커튼으로 향했다.
하지만 정작 커튼을 걷고 들어가려 하자, 그 옆에 서 있던 안내원 역할을 하는 사람이 막아섰다.
“여기는 못 들어갑니다.”
“방금 들어간 사람과 친분이 있는데.”
“그래도 안 됩니다. 특별한 손님을 위한 게임이 열리고 있거든요. 자격이 되는지 알아봐야겠는데요.”
“특별한 손님?”
레안드로스가 되물었다.
그러자 안내원은 도박장을 가리켰다.
“특별히 이런 유흥에 재능이 있는 손님들을 위한 게임입니다. 여기에서 돈을 특별히 많이 따신 분들을 위한 자리라고 할까요?”
“중요한 손님이 그런 뜻이었군.”
“너무 따다 보면 재미가 없어지잖아요? 그런 분들을 위해 흥미진진한 판을 준비했죠.”
다시 말해서, 들어가고 싶으면 여기에서 도박을 하라는 이야기였다.
레안드로스는 다시 물었다.
“입장이 가능한 최소 금액은 얼마지?”
“큰 걸로 오십 개?”
금화 오십 닢.
레안드로스는 간이 작은 편은 아니었지만, 액수를 듣자마자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평민이라면 감히 꿈도 못 꿀 액수다.
그 돈을 전부 이 도박장 안에서 따는 거라니.
그는 이 도박장의 규모를 짐작할 수 없게 되었다.
레안드로스는 커튼 앞에서 물러나며 두 가지 방법을 떠올렸다.
첫 번째는 아렌하이트에게 보고해서 금화 오십 닢을 바치고 들어가는 거다.
말만 잘 하면 그게 딴 건지 개인의 사비인지 알 게 뭔가.
두 번째는 자신이 직접 따는 방법이었다.
아렌하이트에게 도박을 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니, 자신이 게임에 참가하는 수밖에.
하지만…….
레안드로스는 얼굴을 한 번 쓸어내렸다.
그리고 가장 가깝고, 사람이 적은 도박판으로 향했다.
갑자기 장신의 남성이 판에 불쑥 끼어들자 구경꾼들은 놀랐다.
레안드로스는 사람들을 헤치고 참가자의 자리에 쭈그려 앉으며 결심했다.
이 일은 아렌하이트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겠다고.
자신 혼자서 어떻게든 해볼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정확히 10여 분 후.
레안드로스는 더 걸 수 있는 판돈이 없어 구석으로 쫓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