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42
(41)
“왕세자 전하.”
그래. 유릭이 올 시기가 되긴 했지.
애초에 이 사단이 났는데 유릭이 오지 않는 게 말이 안 됐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단둘이 보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
나는 가능한 평정을 가장한 채 가볍게 목례를 했다.
“뜻밖의 장소에서 다 뵙습니다.”
“그래, 그래. 세간에서는 공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떠돌던데. 이렇게 안부를 확인하게 되니 좋군.”
말하는 투만 보면 여기가 왕성 접견실인 줄 알겠다.
나는 심사가 뒤틀려 뭐라고 대꾸해줄까 생각하다가 유릭의 옆에 서 있던 동물을 보고 할 말을 잊어버렸다.
눈이 붉은 검은 말이었다.
언뜻 봤을 때는 그 사이에 내 말을 끌고 간 줄 알고 기함할 뻔 했다.
하지만 내 말은 옆에 멀쩡히 서 있었고, 유릭의 말이 조금 더 체구가 컸다.
왜 자존심이 상하지?
유릭도 흑마에 향한 내 시선을 느낀 듯 의뭉스럽게 웃었다.
“우연의 일치로군. 누가 보면 한 말을 나눠 가진 줄 알겠어.”
“최근에 왕실 혈통 품종마를 교배하신 적 있으신가봅니다?”
“아니, 전혀. 했더라도 내가 모를 리가 있나.”
유릭은 자기 말의 콧등을 쓸었다.
“나한테는 특별한 말이거든.”
유릭의 말은 이글거리는 선홍색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 뒤에 있는 말을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슬쩍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말을 밀어냈다.
말은 주춤거리다가 경사의 아래로 뛰어내려 모습을 감추었다.
“애마가 있으시니 좋겠습니다.”
“공은 안 그런가? 틀림없이 그런 줄 알았는데. 그 말도 마찬가지로 똑똑하겠지? 말도 잘 듣고.”
“말은 원래 온순한 생물이지 않습니까. 잘 해주면 착해지죠.”
유릭은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아마 진짜 재미있어서 웃는 것 같은데, 왜 웃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는 한참을 웃어대더니 나오지도 않은 눈물을 장갑 낀 손가락으로 닦았다.
“그래. 그렇다고 해두지. 그보다 공이 여기에 있는 이유는 뭔가?”
“그게.”
“동부의 이상 징후를 보고 받고 손수 왔더니, 하필 여기에 공이 있을 게 뭔가. 누가 보면 오해할 수도 있겠어.”
유릭은 너스레를 떨더니 동부 황무지의 수평선을 가리켰다.
“소란의 중심에는 늘 하르트만이 있다고 선언하고 싶은 건가? 정말 사고뭉치로군.”
태평한 어조였다.
하지만 그 속에 숨은 뜻은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었다.
동부 황무지의 일은 단순히 ‘소란’으로 정리할 만한 사건이 아니었다.
하르트만은 과거 한 번 왕권 전복을 꾀했다는 누명을 쓴 적이 있었다.
유릭은 하르트만을 이용하고 싶어 한다.
이 지랄 맞은 삼박자 때문에, 나는 한 마디라도 삐끗하면 동부에 닥친 재앙에 대한 유력한 용의자로 끌려갈지도 몰랐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제 시종이 동부의 에이슬링 상단으로 왔다가 갇혔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주인 된 도리를 다 해야겠기에.”
“그래? 시종을 만났나?”
“네. 그가 구덩이에서부터 이상한 조짐을 느꼈다고 하더군요. 전하께서는 이 알이 뭔지 알고 계십니까?”
유도심문이었다.
전생의 그는 이 알에 대해서 틀림없이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눈앞의 유릭은 팔짱을 끼고 진흙투성이가 된 내 꼴을 감상했다.
그리고 빙긋 웃었다.
“아니. 하나도.”
“……그러십니까?”
“하지만 내가 추측하기로, 마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직전의 징조 같아. 몹시 위험한 상황이지.”
별걸음쟁이가 만들어낸 알을 그럴듯하게 포장한 그는 이어서 나에게 권유했다.
“공이 동부에 추가적으로 볼 일이 있지 않다면 돌아가는 게 좋겠네.”
“권하신 대로 하겠습니다.”
“좋은 생각이야. 여러 일로 놀랐을 텐데 이리 침착한 모습을 보여주다니, 새삼스럽게 감탄이 나오는군.”
경사로를 타고 내려가려는 내 뒤로 유릭이 덧붙였다.
“꼭 미리 알고 있던 것처럼.”
내려가려던 움직임을 멈췄다.
고개를 돌리자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는 유릭이 보였다.
우리는 한참 서로를 노려봤다. 얽히는 시선 속에서 창백한 입술이 열렸다 닫혔다.
“어머니였던 전 공작부인의 계시를 물려받았나?”
계시.
유릭은 계시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지?
그는 계시에 대해서 정확한 사실은 파악하고 있지 못한 게 분명했다.
자신의 계획에 요긴하게 쓰일 만능도구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겠지.
다만, 이 사실을 몰라도 유릭은 나를 끌어들이려 할 게 분명한데.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우선은 모르쇠 전략.
혼자서 팔짱을 끼고 있던 유릭의 손가락이 스스로의 팔을 톡톡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대는……. 처음 봤을 때와는 많이 달라. 꼭 전대 공작부인을 보는 기분이 들게 해.”
“과찬이십니다.”
“게다가 이번이 처음도 아닌 것 같고. 이상하게 기시감이 들어.”
유릭의 눈이 가라앉았다.
그가 깊게 생각할 때, 진지해질 때 보여주는 표정이었다.
역시 빌런은 빌런. 빌런에게 걸맞은 버프가 작동하려고 하는구나.
하지만 나는 그냥 지나가는 엑스트라일 뿐인데!
나를 대상으로 발현되면 어쩌라는 거냐고!
이 자리를 어떻게 타파해야 하지!
“공작, 그대가 지금 여기에 있는 건.”
그 때 뭔가가 입술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속으로 하도 식은땀을 흘리고 있어서 이것도 땀인 줄 알았다.
그런데 무심코 닦으니 더러워진 손 위로 핏자국이 길게 나 있었다.
“자, 잠시만요.”
갑자기 코피가 터져서 당황한 나는 손으로 몇 번 훔쳤지만 점점 더 지저분해질 뿐이었다.
그걸 본 유릭은 ‘오.’ 하고 말하며 나한테 다가오려고 했다.
하지만 그러기도 전에 쩌렁쩌렁한 소리가 끼어 들었다.
“공작님!”
위로 미처 올라오지 못하고 있던 말이 사납게 발길질을 했다.
아까 슬쩍 내려 보낸 말이 두 사람을 태우고 막 도착한 모양이었다.
말에 탄 두 사람 중 하나가 다시 외쳤다.
“부상을 입으셨습니까?”
레안드로스였다.
거기서 내 얼굴이 보이나?
나도 모르게 유릭을 쳐다봤다.
유릭은 멀뚱멀뚱 보다가 아래를 내려다보고 친절하게 확인을 해주었다.
“공작의 식솔들이로군. 레안드로스 경의 얼굴이 꽤 험악해.”
너도 여기서 그게 보여?
나는 짐짓 아쉬운 척 말했다.
“전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혹시 하시려던 말씀이?”
“신경 쓰지 말게. 어차피 나중에 또 만나게 될 것 같으니.”
어쨌든 유릭의 말을 멈추게 했으니까 결과적으로는 잘 된 거겠지.
나는 끙차 소리를 내며 무거운 몸을 움직였고, 유릭은 내려가려는 나를 도와주었다.
내 어깨를 붙든 유릭은 갑자기 엉뚱한 소리를 뱉었다.
“시종을 위해 여기까지 달려온 거라고 했지?”
“그렇습니다만.”
“두 사람이 자네에게 꽤 중요한 존재인가 봐.”
“그들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겠지, 보통은?”
갑자기 왜 이래.
아래에 있는 두 사람을 보던 유릭의 시선이 떨어지질 않자 점점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잠시간 그렇게 있던 유릭은 그제야 나를 보고 말했다.
“동부의 일은 걱정하지 말게. 왕성에서 처리할 테니. 하르트만은 이와 관계가 없지. 나는 자네를 여기서 본 적도 없고. 안 그런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부디 건강하게나. 조금 있다 볼 텐데, 건강하지 못하면 내 마음이 아플 것 같아.”
방금 뭐라고?
내가 미처 되묻기도 전에 유릭은 나를 아래로 내려 보냈다.
진흙이 잔뜩 깔려있어 미끈거리는 경사로를 타고 순식간에 내려가자, 대기하고 있던 레안드로스가 진흙에 파묻히기 전에 나를 멈춰 세웠다.
내 팔을 잡은 레안드로스가 물었다.
“왕세자입니까? 설마 지금 여기서 죽이려고 싸우진 않으셨겠지요.”
“뭐가?”
“코피가 멈추지 않으시기에.”
“이건 어쩌다보니.”
굳이 아니라고 해주기도 싫었다.
따지고 보면 유릭이 날 전생에서 괴롭히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와서 코피를 흘릴 일도 없었을 테니까.
이런 기적의 논리에 따라 나는 애매하게 얼버무리는 쪽을 택했다.
그 대답을 들은 레안드로스와 아른트는 저 위를 불꽃같은 눈초리로 한 번 노려봤다.
적대감 스택이 착실하게 쌓이는 둘을 보니 내가 다 흐뭇하다.
우리는 그렇게 유릭을 뒤에 두고 동부를 빠져나갔다.
* * *
동부를 벗어난 우리는 잠시 우왕좌왕하다가 하르트만 성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유릭의 태도로 봐서 동부의 일로 크게 책을 잡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의 입으로 ‘우리는 여기서 본 적 없다’고 못을 박았으니까.
영지로 돌아가는 길에서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동부에서 일어난 사고는 마수의 범람이 원인이었다고 알려졌다.
따라서 왕성은 병사들을 신중히 투입하여 토벌을 진행할 것이라고도 했다.
당연히 사업은 중지되었고, 아이든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다수 사망했기에 왕성과 이를 예측하지 못한 학술원들은 대대적인 비난을 듣게 되었다.
듣기로는 투자했던 상단 여럿이 함께 성명서를 발표한다는데, 그건 잘 모르겠고.
아이든의 일로 아른트가 워낙 상심해 있길래, 나중에 동부 수습이 되고 나면 에이슬링에게 조의를 표하러 가기로 했다.
그걸로 아른트가 조금은 기분이 나아지면 좋겠지만, 또 모를 일이다.
돌아가는 길은 시간이 배로 걸리더라도 일부러 빙 돌아가는 쪽을 택했다.
다들 몸도 안 좋았고, 지쳐있기도 했고.
이렇게 해서라도 유예 시간을 즐기고 싶었던 것 같다.
“저랑 갈라지고 나서 도박장에 가셨다고요.”
“전 집사장의 행적을 쫓다보니까 어쩔 수 없었어. 가서 나쁜 짓은 안 했고, 대신 레안드로스가 했지.”
“뭘 하신 겁니까?”
“레안드로스, 직접 말해줘.”
레안드로스는 묵묵히 검은 몰았다.
잃어버린 말 대신 다른 말을 구해 타고 있던 아른트는 레안드로스를 유심히 바라봤다.
“경, 혹시 그 신분으로 도박을 하셨어요?”
“……사정이 다 있었으니까 한 게 아닌가.”
“가문의 기강이 안 잡힌 시기라는 게 다행이네요.”
아른트는 레안드로스가 주사위를 굴리고 있는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것 같았다.
“리히트 자작가에 대한 이야기는 옛날부터 있었죠. 애초에 그런 식으로 축재하는데 소문이 안 날 리가 없다고요.”
“나는 기도원에 도박장을 차릴 줄은 생각도 못했어. 처음에 정보길드에서 건네준 자료를 읽고 놀랐던 게 기억나네.”
“그런 건 평범한 수준이에요! 거기 나이가 있는 어린 애들이 있는 것도 다 생각이 있어서 끌어들인 걸로 생각됩니다.”
“그런 것까지?”
아른트는 단호하게 말했다.
“어린 애들은 나이가 든 사람보다 도박에 끌어들이기 쉬우니까요. 더 충동적이고. 그렇게 해서 애가 빚을 지게 만들고 가문에 요구할 수도 있어요.”
“와. 악랄해.”
“한 번 빚을 갚는다고 해도 애가 중독 상태에서 벗어나는 건 아니니까요. 또 다시 몰래 찾아가게 되겠죠. 굴레 같은 겁니다.”
“그렇게 서부 여러 가문들이 빚을 지게 만들고?”
“그런 거죠.”
아른트의 가설이 제법 그럴듯했다.
리히트 가문은 장남을 중독자로 만들었으면서 도박장 운영은 놓질 못하는구나.
한국이나 여기나 부정적인 면이 있는 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물론 한국은 여기서처럼 미치거나 하진 않지.
이제까지 있던 일을 서로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하르트만의 텅 빈 장원으로 들어섰다.
멀리 산에 안긴 성이 보였다.
언제 그렇게 자주 봤다고 벌써 정이 들려고 하는지.
이러다가 이 소설을 벗어날 때가 되면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거 아냐?
“돌아가면 맛있는 식사를 만들어 드릴게요. 갓 구운 빵도 사 올 수 있었으니까요.”
아른트가 탄 말의 옆구리 짐이 제법 커다랬다.
오면서 제대로 된 식료품을 잔뜩 산 덕분이었다.
성에서 식사다운 식사를 하게 되는 건 처음인 것 같았다.
쌀이 아니지만 그게 어디야.
돌아가면 우선 저녁을 먹고, 몸을 깨끗하게 씻은 후에 침대에 누워서 앞으로의 일을 계획해야지.
아놀드 남작가에서 아른트를 찾아온다면 먼저 우리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하자.
차라리 이름 모를 평민 약사에게 죄를 덮어 씌우는 편이 나았다.
하지만 죽은 아멜리아를 위해서라도 유릭이 남작가에 심어둔 놈이 누군지 알아낼 필요는 있었다.
그리고 로타어 리히트. 그가 뱉은 정보로 유릭이 동부를 거쳐 남부의 사업을 개시할 시기도 예측해야 했다.
지금 동부의 일이 완료되었느냐고 한다면, 그건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전에 마지막으로 구덩이를 봤을 때는 진흙을 토하고 있었지.
이번에 본 알 형태가 유릭이 최종적으로 원하는 게 아닐 가능성이 있었다.
남부에서는 무슨 수작을 부릴 작정인지 두고 봐야 했다.
그리고, 그리고 또…….
성에 도착하면 할 일이 정말 많았다.
하지만, 성문을 넘자마자 그런 계획은 산산조각 났다.
막 여행길에서 돌아온 우리를 맞이한 것은 수십명의 기사들과, 얼굴이 분노로 시뻘개서 터질 것 같은 아놀드 남작이었다.
“네 죄를 스스로 알고 있으렷다!!”
나?
레안드로스는 바로 검을 뽑아 응대하려 했지만, 아놀드 남작이 가리킨 것은 내가 아니었다.
그 손가락 끝에 있는 것은 아른트였다.
남작의 노성에 훈련받은 기사들이 아른트를 포위했다.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말에서 뛰어내려 아른트와 그들 사이에 몸을 던졌다.
“이게 무슨 짓인가! 성에 함부로 침입한 것도 모자라 내 시종에게 검을 겨누다니, 공작가를 무시하는 처사가 아니고서야 이럴 수는 없어!”
몇 명이지?
이 기사들을 레안드로스가 다 처리할 수 있을까?
하지만 아놀드 남작이 직접 여기 와 있는데? 귀족을 폭행할 수 있는 건가?
내가 앞을 막아서자, 아놀드 남작이 부르르 떨리는 손을 꽉 쥐고 말했다.
“하르트만 공작님, 복권 후 처음으로 뵙는 자리가 이리 불미스러운 일으로 인한 것이라 저 역시 유감스럽습니다. 하지만 저 불한당이 공작님의 비호를 받는 것 역시 대단한 불명예가 아니겠습니까?”
“이해가 되게 설명하게. 내 시종은 내 의중을 거스른 적이 없네.”
“좋습니다.”
아놀드 남작은 화를 억누르느라 이를 악 물고 말했다.
그는 희번뜩한 눈으로 아른트를 노려봤다.
“일전에 공작님의 시종 호위기사와 함깨 인사차 저희 가문의 타운하우스에 들렀던 것을 알고 계십니까?”
“내가 허락했네. 그런데?”
“공작님의 시종은 그때 저희 타운하우스를 지키는 집사에게서 제 딸아이, 아멜리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집사에게 편지를 보냈죠.”
그는 품속에서 편지 봉투를 하나 꺼내들고 흔들었다.
“여기, 손수 쓴 편지입니다. 딸아이의 쾌차를 위한다며 평민 약사를 소개시켜주었더군요.”
“나 또한 알고 있는 사실이네. 돌아가신 내 양친께서 종종 쓰시던 이라 나 역시 소개를 허했네.”
“하지만!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 약사와 공작님의 무도한 시종이 사악한 간계를 꾸몄을 줄은!”
아놀드 남작이 부르짖었다.
“약사와 시종이 함께 병으로 오래 앓은 제 딸아이를 꾀어내어 파렴치한 일을 저지르려 했을 줄은!”
“뭐라고?”
“그 평민 약사를 체포하고 직접 심문하여 얻어낸 자백입니다. 공작님, 하르트만 공작가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시종을 넘겨주시지요!”
약사를 체포했다고?
그 약사는 나인데?
아른트나 레안드로스 역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눈치였다.
그 때, 아놀드 남작의 뒤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남작. 흥분을 가라앉히게. 가엾은 공작은 모르고 있으니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내가 설명하는 게 낫겠군.”
일국의 왕세자인 유릭은 동부에서 봤던 것과 다르게 몹시 단정한 차림이었다.
그를 보자마자 손가락 끝과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유릭…….”
그는 나를 보고 웃었다.
“곧 보자고 하지 않았나. 이렇게 또 만날 줄은 몰랐어?”
이제야 이해했다.
동부의 구덩이 위에서 유릭은 생각을 바꿨던 것이다.
내가 아니라, 내 곁에서 맴도는 이들을 겨냥하는 것으로.
그 첫 번째 목표물은 바로 아른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