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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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 보르미가 거기까지 세를 뻗친 건 나도, 그리고 레안드로스도 고려하지 못한 문제였다.
원래 스토리대로라면 변종 보르미는 숲 안에 있어야 했다.
뭐, 스토리를 이어나가다보면 부작용 정도는 발생할 수 있는 거지.
다른 일에 비하면 변종 보르미가 이동한 정도는 사소한 축에 속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공작저에서 인원을 차출하게 되었어. 그래봐야 우리가 차출할 수 있는 인원은 최대 두 명이지만.”
레안드로스, 그리고 루셀 나빌로프.
평범하게 서 있는 레안드로스와 달리 루셀은 기합이 바짝 들어가 있었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목적은 변종 보르미를 죽이고 물류가 원활하게 도착하도록 하는 것. 그러니 도로의 손상도 유의해야 해.”
“네!”
“임시 전초기지까지는 나도 함께 동행할 거야. 그리고 변종 보르미를 목격했다는 장소부터 수색을 시작하면 돼.”
“공작님께서도 함께 가십니까?”
“뭐, 아직 대리인이 없으니까.”
있어도 안 맡길 거지만.
레안드로스가 물었다.
“수색 인원은 어떻게 하실 예정이십니까?”
“웬만하면 한 사람에게 맡길까 했는데, 조금 생각을 해봤거든. 나빌로프 경은 이제까지 다른 사람과 함께 마수를 사냥해본 적이 없지?”
“네. 기본적인 군사학은 배웁니다. 하지만 수도의 기사와 신성기사단의 목적은 다르기 때문에 개개인의 무력 향상을 가장 선순위로 두고 있습니다.”
들은 걸 정리하자면, 일반 기사는 레벨업을 위해서는 군사를 통솔하고 지휘하는 팀플레이 실력을 키워야 한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완전한 중립을 표방하는 신성기사단은 혼자서도 뭐든 해낼 줄 알아야 하는 솔로 플레이어라는 이야기다.
그러니 순례 같은 걸 떠나고 개인의 무예를 갈고 닦겠지.
“이왕이면 하르트만의 호위 기사가 되었으니 많은 경험을 하는 게 좋겠지. 레안드로스, 나빌로프 경과 함께 변종 보르미를 사냥해봐.”
“……차질 없이 이행하겠습니다.”
침묵하는 시간이 약간 있었지만 어쨌거나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좋아, 좋아.
“그럼 내일 바로 출발하기로 하자.”
* * *
다음 날, 늦은 오후.
짓다 만 캠프까지 어린 공작을 데려다준 두 명의 호위 기사는 저들끼리 다시 다른 곳으로 향했다.
물자가 오가는 산맥의 조그만 도로.
분명 동부와 동북부를 잇는 길 중 가장 빠른 길이지만 그만큼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평지가 아니라 짐마차가 굴러떨어질 수도 있었고,
비가 많이 오면 산사태로 길이 막힐 수도 있었다,
또 지금처럼 산맥과 인접해 마수의 눈길을 끌기도 좋았고.
‘그런 길을 부러 선택하다니.’
레안드로스는 아이든도 제법 성미가 급한 놈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의 주인이 부추긴 탓도 적잖이 있을 것이다.
하르트만 공작인 아렌하이트는 언제나 정해진 일정이라도 있는 것처럼 매사 바쁘게 움직였으니까.
레안드로스는 말을 몰며 약간 뒤에서 따라오는 루셀을 의식했다.
신성기사단에 몸을 담은 애송이.
처음 본 사람들은 헤실헤실 벙긋거리는 얼굴과 화사한 외모가 인상이 깊어 그 외의 것은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보다 긴밀하게 얽히는 사이가 되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레안드로스 경, 혹시 안에서 습격을 받으면 어찌합니까?”
루셀이 불쑥 튀어나와서 물었다.
길도 좁은데 굳이 옆에서 달릴 이유는 없었기에 레안드로스가 반대로 속도를 약간 줄였다.
“잡종이라면 적당히 처리해.”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허락해주신 거죠? 저는 마수를 사냥할 때가 제일 좋아요.”
또 시작이네.
레안드로스가 골치 아파하든 말든 루셀은 명랑하게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산맥에서 올라오면서 제법 많은 종류를 만났는데 이번은 변이종이라고 하셨잖아요, 얼마나 두근거렸는지. 이번에도 공작님이 제외하셨으면 전 진짜 울었을 거라고요.”
“그만큼 마수에 관심이 있었으면 학술원으로 꺼지지 그랬나.”
“가만히 있는 건 싫습니다! 책만 들여다봐야 하고. 차라리 목이 반쯤 잘린 채로 놈들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을래요.”
지는 해의 마지막 빛을 받으며 찰랑이는 머리카락을 보던 레안드로스는 처음으로 그에게 물었다.
“공작님의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는 여기서 사냥을 할 기회가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인가?”
루셀에 대해 궁금한 점은 없었다.
처음 그를 구조했을 때 발견했던 모든 소지품을 검사하기도 했고, 신성기사단의 순례야 이미 유명했으니까.
공작님을 암살하기 위해 위장한 살수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충분한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멋대로 떼를 쓰며 성을 굴러다니는 모습을 보면 또 그런 것 같지도 않고.
루셀은 잠시 시원한 바람을 맞다가 대답했다.
“그런 것도 있기는 했는데, 선배님이랑 대련하는 게 좋아서요. 더 강해질 수 있잖습니까.”
“더 강해지면?”
“더 강한 마수를 사냥할 수 있겠죠?”
“그러고 나면?”
“그것까지는 생각 못 해봤는데. 아, 그리고 무고한 사람들을 지킨다?”
보기 좋게 포장한 이야기였다.
강해져서 사람들을 지킨다.
이 목적에 진정한 끝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레안드로스는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그런 걸 지적해주기에 상대는 너무나도…….
“보통 사람들도 그렇고, 공작님도 그렇고 전부 약하고 평범한 사람들이잖아요. 그러면 강한 사람이 지켜줘야 하는 게 아닌가요? 저는 그런 숙명이 좋더라고요. 뭐든 죽이고 없앤다면 언젠가는 그 약한 사람들이 안심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겠죠.”
“…….”
“아, 그래도 존경과 찬사 정도는 받고 싶어요. 그 이상은 바라지 않지만요. 보호해줘야 할 사람들을 보호하는 게 얼마나 기분이 좋은데요.”
너무나도 본질적으로 비뚤어져 있었다.
본인의 강함에 취한 놈과는 달랐다.
무조건적인 연민을 뿌리고 다니는 놈도 아니었다.
이런 사람들은 보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주변의 칭찬은 좋은 감미료로 작용할 뿐, 그게 진짜 목적은 아니다.
인정받는 얄팍한 즐거움이나 우월감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게 큰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이런 사람들은 어떤 신념이 있었다.
자신을 파괴하면서 계속해서 신념을 추구해나가는 것.
그 끝에 자신의 결말이 어찌 되더라도 상관없다는 것처럼, 스스로를 마모시키는 사람.
그 끔찍한 신념은 주변을 오염시킨다.
자신이 당했듯이.
레안드로스는 말했다.
“앞으로 넌 공작님께 말 한마디 걸지 마라.”
“네? 왜요? 너무해요!”
“조용히 해. 곧 내린다.”
숲에서 까마귀 떼가 푸드득 날아올랐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소름끼치는 낮은 울음소리가 황혼의 하늘으로 울려 퍼졌다.
* * *
“이, 이대로 괜찮을까요오……. 기사님들이 안 돌아오시면!”
“그럴 일은 없으니 좀 진정하게. 지금 지진이 일어난다면 그대가 너무 떨어서일 거야.”
“공작님은 농담도 잘하시네요!”
이본느는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으면서 안절부절못하고 돌아다녔다.
밤이 깊어지자 임시 전초기지의 곳곳에 불을 피우고 사람들은 휴식을 취했다.
나 역시 이본느와 다른 이들의 초대를 받아 불가에 앉아있던 참이었다.
나무컵에 뜨거운 차를 채우고 호록거리던 일꾼 하나가 이본느를 살살 달랬다.
“그래도 공작가 제일의 무용을 자랑하시는 기사님들이 아니십니까! 공작님, 성에서 제일 실력이 좋은 기사님들이시죠?”
“응?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사실 공작저에 기사는 저 둘밖에 없으니까.”
내 답에 주변이 약간 싸늘해졌다.
이본느조차 나를 멍하게 보고 있을 정도였다.
“그, 그럼 저 기사님들이 끝이에요? 추가 인원 지원이라던가 그런 건? 오늘은 정찰만 하고 내일 다른 사람들을 더 데려올 계획이 아니셨어요?”
“번거롭게 그럴 필요가 있나?”
이본느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마치 세상이 끝났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 같았다.
주변에서도 급기야 나한테 눈치를 팍팍 주기 시작했다.
이를 어쩐다.
“……그대들이 그렇게 걱정할 만큼 녹록한 기사는 아니니 눈 좀 돌리게.”
“하지만 단 두 명뿐이신데 그 큰 놈을 어떻게 해치우실 수 있겠습니까? 마수예요, 중형을 뛰어넘는 마수라고요!”
“내기라도 하겠나?”
“내기요? 여기서요?”
“내 기사들이 무사히 돌아온다는 데에 아름다운 보석함을 하나 걸지. 나는 내 기사를 꽤 신뢰하고 있거든.”
애초에 나빌로프는 몰라도 레안드로스는 못 죽지.
거기까지만 말한 내가 차를 한 모금 마시자 이본느는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 앉았다.
“추태를 보였습니다. 무례를 용서해주세요, 공작님.”
“난 아무것도 못 봤네.”
“하지만 밤이 더 깊어지기 전에 빨리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너무 어두우면 돌아가시는 길도 곤란해지실 테니까요.”
“곧 오겠지.”
말은 그렇게 해도 사실 이본느가 맞았다.
이미 캠프장엔 어둠이 내린 지 한참이고, 곧 돌아오겠다던 둘은 오지 않고 있었다.
여기서 나를 하루 재울 셈인 건지, 무슨 일이 있는 건지.
내가 컵을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 보초를 서던 누군가가 외쳤다.
“오십니다!”
동시에 여기저기 앉아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일어나 입구로 몰렸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 사이에 섞여서 어둠 속을 뚫어져라 노려보자, 드디어 흐릿한 인영이 암흑 속에서 나타났다.
분명 두 필의 말과 두 명의 기사를 보냈건만, 돌아오는 말은 한 필 뿐이었다.
그것이 캠프 입구까지 다가왔을 때 몇몇 사람들 사이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기진맥진한 말 한 필 위에 앉아있는 피투성이의 두 장정.
특히 루셀은 그 황금빛 머리가 안 보일 정도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의 손에는 뭔가에 기분 나쁘게 젖어 있는 커다란 자루가 들려 있었다.
나를 뺀 사람들이 몇 발짝 뒤로 물러나, 졸지에 작은 공터가 만들어졌다.
레안드로스가 먼저 말에서 뛰어내려 내게 무릎을 꿇었다.
“신 레안드로스, 공작님의 명대로 변종 마수를 처치하고 귀환을 보고합니다.”
“그 피는 어떻게 된 거지?”
“마수와 싸우며 더러워진 것뿐입니다.”
“아아.”
그 뒤로 루셀이 내려와 레안드로스와 같이 내게 무릎을 꿇었다.
어쩐지 즐거운 목소리로 낭랑하게 외쳤다.
“신 루셀 나빌로프, 귀환을 보고합니다.”
“두 사람 다 수고했어. 그 자루에 있는 건 뭐지?”
“변종 마수의 수급입니다.”
자못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하는 걸 봐서 사냥이 꽤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그 수급을 향해 손을 뻗자, 루셀이 그걸 살짝 뒤로 뺐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공작님께서 보시기에 다소 흉한 것이라.”
“상관없어. 보고 싶어.”
“하지만.”
루셀은 내가 객기라도 부리는 게 아닌지 싶은 표정이었다.
그때 레안드로스가 말했다.
“실례했습니다. 드리도록 해라, 나빌로프.”
루셀은 ‘엥 진짜요?’ 같은 얼굴로 레안드로스를 쳐다봤다.
하지만 곧 어깨를 으쓱이며 젖은 자루에 손을 집어넣었다.
“아, 맙소사.”
“저렇게 흉한 것이.”
“세, 세상에…….”
루셀의 손 밑으로 아직도 점액질의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북슬한 털이나 끔찍한 인상은 일반적인 보르미와 비슷했지만 그 크기는 평균을 훨씬 더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한국 카페에 있는 원형 테이블 위에 놓으면 꽉 찰 것 같은 크기.
뒤에서 사람들이 경악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러 소음이 같이 들리는 걸 보니 기절하거나 토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루셀이 받쳐 든 그 머리를 살피다가, 비죽 튀어나온 거대한 송곳니를 발견했다.
“레안드로스 경, 단검이 있나?”
“예.”
“주게.”
가볍고 날카로운 칼날이 마수의 벌린 입 안에 들어갔다.
몇 번이고 단검을 단단한 살갗에 박아 넣었다.
이미 피가 굳어 터져 나오지는 않았지만, 쓸데없는 살점을 뜯어서 옆에 버리는 모습에 사방이 조용해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제법 상태가 좋게 뜯어낸 하얀 이빨들을 한 아름 안고 돌아섰다.
“이본느.”
그녀는 양손으로 입을 막은 채로 군중 사이에 섞여 있었다.
내 부름에 소스라치게 놀란 그녀는 몇 발짝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왔다.
명부의 사자가 그녀를 지목한 것처럼 하얗게 질려있었다.
“네, 네에.”
“내 기사들은 멀쩡하게 돌아온다고 했잖나. 나는 보석함을 걸었어.”
“아.”
“그대도 마땅한 걸 걸어야겠지만, 그 대신 부탁을 좀 하려고.”
갑자기 덥석 안겨주면 기절할 것 같다.
나는 그녀의 발 앞에 내가 안고 있는 이빨을 하나씩 늘어놨다.
송곳니 네 개를 비롯해, 날카로운 피투성이 이빨이 총 32개.
예쁘고 하얗게 정렬된 재료를 손짓하며 말했다.
“마공예사인 그대에게 내 기사들의 검을 제련해주길 부탁하고 싶네. 이 밖에도 다른 재료가 필요하다면 말해.”
“송, 송구, 아니, 충분! 충분할 것 같, 습니다.”
“기한은?”
“그, 제 목숨을 걸어서 최대한 빨리.”
“목숨까지는 됐고. 최선만 다해 주게. 보수는 추가적으로 논의하기로 하지.”
끈적한 손을 닦으며 돌아서니 레안드로스나 루셀도 이쪽을 빤히 보고 있었다.
루셀에게 명령해 보르미의 머리는 적당한 곳에 버리라고 한 후, 우리는 성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일주일 후.
전초기지가 완성되는 동시에 이본느에게서도 물건이 완성되었다는 전갈이 도착했다.
나는 아른트, 레안드로스, 루셀을 데리고 가 직접 그 자리에서 갓 만든 무기를 전해주었다.
아른트에게는 늘 몸에 지닐 수 있는 호신용 나이프를.
루셀에게는 어마어마한 힘을 잘 드러낼 수 있는 클레이모어를.
그리고 레안드로스에게는 은색 별처럼 반짝이는, 원래의 형태와 가장 유사한 롱소드를.
그날부터 하르트만은 왕국 내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