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66
(65)
“레안드로스 경.”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에 레안드로스는 돌아보지도 않고 답했다.
“내기를 하신다더니 포기하셨습니까, 왕세자 전하.”
“그렇게 예의 바르게 굴지 않아도 괜찮아. 그대를 따라다니던 다른 기사와 헤어진 걸 알고 있어.”
레안드로스는 유릭의 사냥감 자루를 쳐다봤다.
아직 홀쭉한 것이 마땅히 사냥을 하고 다니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여기까지 웬일이십니까?”
“경에게 제안을 하러 왔지.”
“같은 제안이라면 거절하겠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제 처분은 이제 공작님께 달려 있습니다.”
“그건 나도 잘 알고 있다네. 하지만 새로운 공작은 그대의 의지를 존중해주는 편이잖나? 제법 무른 성격이지. 유약하기도 하고.”
“본론이 무엇입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네.”
유릭과 레안드로스의 시선이 맞부딪혔다.
“왕실 소속 기사단에 들어와. 그렇다면 하르트만 공작가의 안위를 보장하지.”
“전 공작부인께서 거절하셨던 제안을 제게 똑같이 하시는군요.”
“이제 경의 주인이 바뀌었으니까.”
“거절하겠습니다.”
“내가 하르트만의 예지를 포기하겠다고 약속해도?”
레안드로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유릭 왕세자가 음험한 일을 꾸미는 것이야 늘 있던 일이다.
게다가 하르트만의 예지에 대해서는 공작부인에게 들은 게 있었다.
왕세자와 마수, 그리고 예지.
그 세 개는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요소였다.
레안드로스는 품위 있는 미소를 띤 유릭에게 물었다.
“전하께서는 하르트만 이전부터 제가 왕실 소속이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지금 와서 감히 여쭈어보건대, 하르트만의 예지는 저를 얻기 위한 미끼입니까?”
“처음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차선책 정도로 생각하고 있네.”
어떤 차선책일까.
레안드로스의 입장에서 유릭이 하르트만을 괴롭히는 것은 자신을 내놓으라는 압박이었다.
예지 역시 압박을 위한 핑계로 이해하고 있었는데.
예지가 차선책이 된다면, 그건 어떤 의미지.
애초에 마수에 대한 통제권을 획득해서 무엇을 하려는 걸까.
레안드로스는 짧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황송한 제안이 분에 넘쳐 감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럴 줄 알았다네.”
유릭이 빙그레 웃었다.
사냥 중에 쫓아온 것치고는 참으로 뒤끝 없는 태도였다.
레안드로스는 유감없이 말머리를 돌렸지만, 그 뒤에 따라오는 유릭의 말에 멈춰야 했다.
“오늘도 상처받았네. 언제나 한결같은 경이 좋기는 하지만, 그래도 늘 상처받아.”
“왕성의 의원에게 가시면 되겠군요.”
“하지만 마음의 상처는 나을 수가 없지. 나는 성격이 좀 나빠서, 원하는 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좀 비뚤어지는 편일세.”
“수련으로 마음을 갈고 닦으십시오.”
“최근에는 수련 대신 상처 받은 원인을 없애는 편을 더 선호하게 되더라고. 그런데 그대를 없앨 수는 없지 않나. 그래서 그대의 책임자에게 그 죄를 묻기로 하였어.”
“……?”
유릭은 고개를 까닥했다.
“괴롭힘이 좀 지나칠 수는 있지만, 공작은 쉽게 죽지 않을 것 같아. 내 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거든. 가보지 않아도 되겠나?”
밖에서 자신이 모르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레안드로스는 대꾸조차 하지 않고 바로 그 자리를 떠났다.
말을 험하게 몰아 사라지는 레안드로스의 뒷모습을 보던 유릭은 손을 흔들어주었다.
이번에도 레안드로스의 영입은 실패했다.
날이 갈수록 자신을 싫어하는 표정이 잘 드러나는 것 같았다.
유릭은 레안드로스가 자신을 싫어할수록 충만한 기분이 들었다.
그저 손을 내밀기만 하는 놈들은 순식간에 잊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증오를 쌓으면 결코 잊을 수 없게 된다.
유릭은 뭔가 애틋하면서도 즐거운 마음으로 레안드로스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봤다.
“빨리 가야지, 그래야 모두가 너를 알게 되지.”
유릭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숲의 깊은 곳으로 사라질 무렵, 레안드로스는 정신없이 달렸다.
언제부터? 어디서부터?
숲에 인기척이 사라진 이유가 단순히 다들 사냥을 위해 흩어져서가 아니었다.
증발했기 때문이었다.
“루셀!”
숲을 울릴듯한 목청으로 몇 번이고 루셀을 불렀다.
사냥감 따위는 이제 안중에도 없었다.
얼마나 부르짖었을까, 숲의 길에 놀란 눈의 루셀이 헐레벌떡 합류했다.
“방금 잡으려던 놈이 달아났다고요, 선배님!”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돌아가야 해.”
“예? 아직 사냥 종료까지는 시간이 한참…….”
루셀은 의문을 제기하려다가 레안드로스의 심상찮은 얼굴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순식간에 숲을 주파한 두 사람이 밖으로 나왔을 때는 대기석이고 뭐고 간에 남아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오로지 적막만이 흐를 뿐.
말에서 뛰어내린 루셀이 어리둥절하게 말했다.
“선배님 ……선배님?”
레안드로스는 루셀을 등지고 무언가를 살피고 있었다.
루셀이 다가가자, 레안드로스가 조용히 말했다.
“늦었군.”
레안드로스의 발치에 있는 것은 둥그렇게 굴러다니는 벌레 같은 존재였다.
벌레라기에는 너무 커서 징그러울 지경이었다.
계속 다리를 허우적거리며 묘한 소리를 내는 그것은 몸통만 구 형태로 부풀어 있었다.
레안드로스는 대기석을 살폈다.
흐트러지거나 넘어진 의자.
보이지 않는 사람들.
풀밭 위에 남은 혈흔들.
습격받으면 사냥터에 있던 병사들이 가장 먼저 대응한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은 안전지대를 찾아서 도망갔겠지.
그렇다면 그 안전지대는.
“연회장으로 간다. 나는 동쪽, 너는 서쪽을 수색하고 생존자를 확인해라.”
“네, 선배님.”
“그리고 한 가지 더.”
루셀은 레안드로스가 덧붙인 명령을 듣고는 군기가 바짝 들어가서 ‘네!’ 하고 답했다.
그리 멀지 않은 연회장.
멀리서 보기에는 멀쩡했지만, 가까이 다가가니 참혹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연회장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안에는 피가 낭자했다.
동쪽으로 향해도 마찬가지였다.
각각의 별채 건물은 대부분 유리창이 깨졌고, 그 안에 있었을 사람들은 증발한 것처럼 사라졌다.
어떤 집은 집 문이 부서져 있기도 했고, 혹은 2층의 벽이 뻥 뚫려있기도 했다.
레안드로스는 천천히 이동했다.
어디를 둘러봐도 전혀 살아있는 것이 없다.
천장이 부서진 건물까지 온 레안드로스는 잠시 귀를 기울였다.
신중한 걸음은 천장이 부서진 건물의 뒤쪽으로 향했다.
뒤편에는 별채 관리 물품을 쌓아두는 작은 창고가 딸려 있었다.
창고 문을 열자 보이는 건.
“이런 곳에 있었군.”
왼팔의 살갗이 붉게 타들어 간 아른트와 언젠가 한 번 봤던 남작 영애가 짚단 위에 앉아있었다.
남작 영애는 엉거주춤 일어나 아른트의 앞을 막아섰지만 레안드로스는 그녀를 완전히 무시했다.
벽에 기댄 아른트는 오른손에는 체액에 젖은 단검을 꼭 쥐고 있었다.
레안드로스는 아른트의 팔을 우선 살폈다.
지독한 냄새와 함께 투명한 기포가 팔에서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아른트의 너덜거리는 소매를 마저 뜯어낸 레안드로스가 팔의 수포가 터지지 않게 받치고 물었다.
“어디 있었나.”
“연회, 장에.”
“공작님도?”
“공작님은 여기에.”
“연회장은 문이 열려 있더군.”
“…….”
“됐다. 보고드리지 않으면 그만이니. 어느 방향으로 가셨지?”
“동쪽,”
“수고했다.”
레안드로스는 바로 일어나 창고를 나섰다.
뒤에서 아른트의 신음과 남작 영애가 어쩔 줄 몰라 하며 괜찮느냐고 묻는 소리가 들렸다.
꺾인 풀은 그것의 방향을 보여주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았을 테니 멀리 가시진 못했을 것이다.
자신이 제때 도착한 것이길 바라며, 적어도 늦지는 않기를 바라며.
검은 인영이 풀 위를 날 듯이 달렸다.
하지만 그가 달리는 걸 멈췄을 때 싸늘한 직감이 몸을 관통했다.
저 멀리서 하얀 공처럼 보이는 벌레들이 몰려있었다.
그리고 그 벌레 떼에 둘러싸여 있는 거대한 마수가 길쭉한 목을 숙여 굽어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것 외에는 어떤 움직임도 없다.
저항도, 하찮게 위협하는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레안드로스는 다가가며 검을 뽑았고, 날카로운 쇳소리가 청명하게 울렸다.
다 끝나기 전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고약한 냄새가 진동했다.
마수의 체액에 닿은 땅은 사정없이 썩고 부패해 검은 흙만 남았다.
둥그렇게 굴러다니던 벌레도 마찬가지였다.
파들거리는 다리와 진득한 검은 체액을 줄줄 흘리는 녀석들의 갈라진 몸속은 보기만 해도 불쾌하고 소름 끼쳤다.
하지만 어떤 것도 레안드로스에게 감흥을 안기진 못했다.
그의 시선은 바닥에 누워있는 이에게 향해 있었다.
두껍고 호사스러운 망토도 사라진 하반신을 다 감추진 못했다.
“공작님.”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레안드로스는 남아있는 상반신의 가슴에 귀를 댔다.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래서 레안드로스는 제 망토를 벗어 싸늘한 몸에 둘러주었다.
어제 지고 온 사슴보다 가벼울 게 분명한 몸이 이상하게 묵직했다.
고작 반쪽인데도 그랬다.
레안드로스는 아렌하이트의 선택이 합리적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아렌하이트가 아른트를 비롯한 사람들을 얼마나 아끼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가 죽었다가 되살아나는 것이, 영영 아른트를 죽이는 것보다 나을 수도 있다는 판단을 이해했다.
그런데도 레안드로스는 이 광경을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본래부터 말을 많이 하지 않는 기사는 이 기분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대신, 무릎을 꿇고 죽은 어린 주인의 몸에 이마를 댔다.
레안드로스의 머리 위에 붉은 숫자가 떠올랐다.
[60/70]* * *
피에 젖은 사냥제는 왕성에서 기사단을 파견하고 나서야 종료되었다.
기사단이 도착하기까지 참가자의 일부가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하르트만의 호위기사들 덕분이었다.
루셀 나빌로프와 레안드로스.
그들이 현장에서 생존자를 찾아내고 안전한 장소에서 보호하고 있었기 때문에 왕성의 기사단도 빠른 대처가 가능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생존자들이 온전치 못하다는 사실이었다.
살아남은 이들의 대부분은 큰 충격으로 인해 정신 이상증을 겪거나 큰 부상을 입었다.
하르트만 공작도 그중 하나였다.
이러한 사실이 퍼지자 모든 귀족가가 슈첸페스트를 개최한 왕실로 그 책임을 돌렸다.
그러나 왕세자 역시 참가해서 부상을 입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슈첸페스트 장소 물색에 있어 사전 점검을 소홀히 한 이들이 그 대가를 지불하게 되었다.
게다가 책임자들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일부 하급 귀족과 평민 부르주아가 결탁해 왕세자를 노리고 이런 계획적인 참극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왕국은 순식간에 떠들썩해졌다.
그렇지만 항의할 사람도,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슈첸페스트에 참석했던 귀족들 대부분이 사망했기 때문이었다.
가주를 잃은 가문은 방황하거나 차기 가주를 노리는 방계와 집안싸움을 벌이는 데에 치중한 탓이었다.
수도 중앙 귀족들의 세력권이 재구성되고, 그 틈을 노려 치고 올라오는 지방 신흥 귀족들이 있었다.
바야흐로 혼란의 시대.
그런 시기 속에 침묵을 지키는 가문 중 눈에 띄는 가문이 있었다.
하르트만 공작가.
최근 복권 후 어린 공작이 작위를 계승했으며, 이번 참사에서 목숨을 구한 몇 안 되는 생존자 중 하나.
위중한 부상으로 인해 수도 타운하우스에서 틀어박혀 있던 공작이 처음으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장소는.
바로 왕실에서 주관하는 추도제였다.